2008. 6. 10. 07:44ㆍ이런 저런 내 얘기들/네 얘기 · 쟤 얘기
아이가 첫돌 갓 지나고 였으니
한참 전의 일이다.
선후배 계모임의 여행에서 차마 빠질 수 없어
아침 일찍 공항으로 향했는데,
비온 다음날이라 그런지
몇십년 만에 서울의 視界가 가장 좋았다 할만큼 맑은
칠월의 아침이었다.
공항으로 향하는 88도로는
그날따라 정체停滯도 없어 좋았고
잡힐듯 선명한 북악산의 녹음이 한눈에 들어와
경탄할때 까진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런데,
도착해 수선스런 인사가 오가고
스무여명을 인솔한 가이드 총각의 주의를 듣고 어쩌고..할때부터
후회가 슬며시 피어났는데
굉음을 내며 바퀴가 땅에서 떨어져
아득히 올라가면서 나는 이미 지독한 절망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기전, 취소 못한 우유부단을 탓했고
여행 제의에 덜컥 수락한 걸 후회했으며
내게 제의한 선배를 원망하고
그 계모임에 참여한 거부터 잘못이라고
진작에 그 모임에서 탈퇴했어야 옳았다고, 내 뒤늦은 깨달음을
자책했으며
두런거리는 소리와 간간히 터지는 나즈막한 웃음들을
정말이지 혐오하고 있었다.
내가 대체 뭘하고 있는가,
대체 어디로, 왜, 가고 있는가,
내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저 아래 있는데
왜 나만 여기 공중에 떠있는가,
이 물체는 중력에 상관없이 왜 안떨어지고 매달려 있는가,
공황장애를 겪듯
식은땀으로 온몸이 젖어 마음도 이미 지치고 있었다.
기내식은 물론
선배들이 권하는 군것질도, 말도, 웃지도 않고
시위하듯 앉아있는 나를 이미 눈치들 채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어리둥절한 표정들로
手話하듯 자기네끼리 소통하고 있었는데
나는 개의치 않고
온몸으로 시위하길 열중했다.
그네들이
나를 이 곤혹에 처하게 했으므로,
이 낭패는 그들에서 비롯됐으므로,
나를 이 공중으로 끌고 올라온 그들이므로,
그들은 나의 어떤 횡포도 마땅히 감내해야 했다.
할머니 등에 업혀
나를 잡으려 애절하던 아이의 작은 손짓,
기어이 터뜨리던 울음소리,
비릿한 향내, 감미로운 체온으로 부터 나를 강제로 떼어내
이곳까지 끌고온 그들은 당연히 내 행패를 견뎌야 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언제 발작증 일어날지 모르는 환자를 대하듯
시한폭탄 다루듯
여행 내내 그들은 내 눈치를 살피며 전전긍긍했는데,
여행 이튿날 밤, 혼자 돌아가는 방법을 가이드에게 슬며시 물었던 게
그들을 더욱 긴장시킨 거 같았다.
모두 나를 감시하느라 촉수를 곤두세웠고
지켜보다 우연히 나와 눈길이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 시선을 피하곤 했다.
버스로 이동할 땐 그들은 노래도 불렀다.
마이크가 내 앞에 왔을때
내가 왜 노래를 불러야 되냐,고 물었고
순서라고,순서니까 불러야 한다는 그들을 이상하게 쳐다보다
결국 유일하게 가사가 생각나는 애국가를,
늘어난 불량테입 박자늘이듯 불렀다.
식탁에 함께 앉지도 않고
저만큼 따로 떨어져 혼자 밥을 먹는 난 그들의 감시하에 놓여있는
인질이었다.
시간마다 호텔 공중전화에 매달려 나를 이곳서 구출해 주길
고국의 남편에게 애원했다.
이왕간 거, 즐겁게 지내다 오라는 남편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나를 데려가라고, 악을썼다.
그렇게 며칠의 악몽이 끝나고 무사히? 돌아와
아이를 품에 안았을때,
나는 비로소 해방된 민족이었고
구출된 인질일 수 있어
아이를 옆구리에 끼고 며칠 내리 단잠을 잤다.
얼마전 그때 함께 여행했던 선배를 만났다.
- 선배, 그때 참 죄송했수.. 나참 미안시러버 어쩌우...
환장하겠습디다.. 구경이고 머고
애가 눈에 밟혀 정신이 반쯤은 나간 상태였다우..
다들 나를 납치한 범인들로 보이지 뭐유...
불가사의가 풀렸다는 표정이던 선배는
깔깔대고 한참을 웃더니
용서는 안 되나 이해할 수는 있겠단다.
그러나,
다시는 납치할 생각은 없단다...
☜
참말로 모질데이.
아니? 암만 그렇기로 애국가가 뭐여? 애국가가?
살다보믄 존 일만 있을 턱은 없으니
내랑두 언제 한번 틀어지면 냅따 애국가 불러제낄꺼 아니냔 말여.
하이고야 생각만 해두 등짝 시리다.
마뜩찮은 일은 또 입내밀면 되지요.
가끔 애국가 불러제끼는 것도 괜찮지 않수?
시리긴,그래도 논네끼리 함께,가 덜 시길껀디.
< 松 >
'이런 저런 내 얘기들 > 네 얘기 · 쟤 얘기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향생각 (0) | 2008.06.15 |
---|---|
친구 (0) | 2008.06.11 |
늘보와 달퐁이 (0) | 2008.06.01 |
민망 (0) | 2008.05.30 |
무식(無識) (0) | 2008.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