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와 <돈>

2008. 4. 10. 18:16책 · 펌글 · 자료/문학

 

 

책 제목이 특이하고 재밌습디다. 아직 제대로 읽어 본 것은 아니고

그저 앞머리나 대충 살피는 중인데, 프롤로그에 재미난 내용이 있어서

앞뒤 살피지 않고 그냥 옮겨 적어봅니다.

 

 


 

 

 

 

그의 소설들은 작가의 돈에 대한 집착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저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무 소설이나 집어 들고 아무 쪽이나 펼쳐보라.

거기에는 반드시 돈 이야기나 나올 것이다.

돈도 그냥 돈이 아니다.

돈의 개념이나 부와 빈곤에 관한 윤리적인 진술도 물론 있지만,

그보다도 그의 소설을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주 노골적이고 구체적이고 때로는 소름끼치도록 적나라한

몇 루블, 몇 코페이카까지 액수가 정확하게 밝혀지는 돈이다.

심지어 살인범이 여자를 죽이는 데 사용한 칼조차도 그냥 칼이 아니라 '얼마짜리' 칼이다.

얼마나 돈에 사무쳤으면 그렇게 돈타령만 했을까.

 

그러니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 무작정 형이상학적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할 필요는 없다.

그의 소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통속적이다.

그가 즐겨 다룬 가장 주된 소재는 돈, 치정, 그리고 살인을 정점으로 하는 폭력이다.

돈이 있는 곳에 여자가 있고 돈과 여자가 있는 곳에는 폭력이 따르기 마련이다.

주간지 기사나 대중적인 추리소설의 기본 골격을 충실하게 따르는 그의 소설은 일단 재미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위대함은 이토록 통속적인 소재로부터 세기를 뛰어넘는 철학과 사상과 예술을

빚어냈다는 것에 기인할 것이다.

아니, 그건 돈이라는 소재 자체가 가장 통속적인 동시에 가장 철학적일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 속에서 돈에 관해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까?

 

첫째, 돈은 자유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돈은 주조된 자유다.

그래서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돈은 열 배나 더 소중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돈은 자유다.

돈은 '잘먹고 잘사는' 삶을 제공해 주기에 앞서 심리적, 육체적 자유를 보장해준다.

돈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은 그 어떤 사회적, 정치적 자유보다 더 절실하게 돈의 자유를 추구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돈에 집착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도 바로 이 자유를 향한 갈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인물들 역시 부자유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를 꿈꾼다.

그러면 돈이 보장해 주는 자유는 무한한 걸까?

그 자유의 한계는 무엇인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문제에 관해 명쾌한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소설들을 읽다 보면 독자는 저절로 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둘째, 돈은 시간이다.

밴저민 프랭클린의 유명한 말, '시간은 돈이다.'가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는 뒤집힌다.

시간은 돈이고 또 돈은 시간이다.

그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돈을 위해 시간을 제공하고, 또 돈을 주고 시간을 산다.

인간이 누리는 시간의 양과 질은 인간이 가진 돈의 양에 비례한다.

그러므로 돈에 대한 추구는 곧 보다 좋은 시간을 보다 많이 누리려는 욕구로 바꿔 말할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돈과 시간의 등식을 섬뜩할 정도의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돈이 정말로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은 '돈 = 시간'의 등식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셋째, 돈은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고리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친지중 어떤 식으로든 돈을 통해 그와 관계를 맺지 않은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가 지인들에게 보낸 수백 수천 통의 편지는 반드시 돈 문제를 언급한다.

그의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예외 없이 돈으로 연결되고 돈으로 맺어진다.

그들에게 돈은 의사소통의 일차적인 수단이다.

"돈이 말한다money talks"는 표현도 있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들에게서 돈은 문자 그대로 인간의 언어를 대신하여 말을 한다.

인물들은 돈을 통해 사랑과 증오와 우정과 동정심을 소통하고

돈 때문에 죽고 죽이고 결혼하고 헤어지고 궁극적으로 돈 덕분에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넷째, 돈은 힘이다.

돈은 많은 것을, 아니 거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도박꾼』에서 여주인공이 주인공에게 왜 돈이 그렇게 필요하냐고 묻자

주인공은 참 별 이상한 질문도 다 있다는 듯이 되묻는다.

"왜 돈이 필요하냐고 물으셨나요? 왜라니요? 돈이 전부 아닙니까?"

 

도스토예프스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갖는 위력을 정확하게 집어냈다.

20세기 러시아 시인 마야코프스키는 매우 시인답게 "나는 말語의 위력을 안다"고 노래했다.

19세기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에서 "나는 돈의 위력을 안다"고 노래했다.

돈은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처럼 보인다.

돈이 있음으로 해서 인간은 타인을 지배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찰하고, 세상을 변하게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에서 이 가장 강력한 힘의 위력과 한계를 풀어나가는 가운데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모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