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 15. 12:21ㆍ詩.
겨울의 노래 / 서정윤
겨울입니다
내 의식의 차가운 겨울
언제라도 따스한 바람은 비켜 지나가고
얼음은 자꾸만 두터운 옷을 껴입고
한번 지나간 별빛은
다시 시작할 수 없습니다
눈물이 떨어지는 곳은
너무 깊은 계곡입니다
바람이 긴 머리를 날리며 손을 흔듭니다
다시는 시작할 수 없는
남루한 의식의 겨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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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무 / 이정하
그대가 어느 모습
어느 이름으로 내 곁을 스쳐 지나갔어도
그대의 여운은 아직도 내 가슴에
여울되어 어지럽다
따라나서지 않은 것이
꼭 내 얼어붙은 발 때문만은 아니었으리
붙잡기로 하면
붙잡지 못할 것도 아니었으나
안으로 그리움 삭일 때도 있어야 하는 것을
그대 향한 마음이 식어서도 아니다
잎잎이 그리움 떨구고 속살 보이는 게
무슨 부끄러움이 되랴
무슨 죄가 되겠느냐
지금 내 안에는
그대보다 더 큰 사랑
그대 보다 더 소중한 또 하나의 그대가
푸르디 푸르게 새움을 틔우고 있는데..
겨울 들판을 걸으며 / 허형만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아무것도 피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겨울 들판을 거닐며
매운 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땅의 품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어느 겨울날 / 기윤배
어느 겨울날 나는 얼음처럼 투명한
시간 속을 걸었네
앞서간 사람들의 발소리가
따뜻하게 남아 있었네
바람은 모든 떨림을
담아내고 햇살은 추억이었네
내가 만난 것은 버려진 것들의 슬픔이었네
버려진 것들은 한동안 빛이었으나
회색의 단단한 몸으로 굳어져
깨지지 않는 말이 되어 있었네
나는 말의 완강한 슬픔을 보았네
시간 속에서 들꽃이 피고 물소리가 들리고
잎들은 색깔을 바꿔입었네
바람은 모든 떨림을 담아내어 슬픔에게 주었네
물소리가 떨고 색깔들이 떨었네
그것들은 떨면서 버려질 것이네
버려져 슬픔으로 빛나고 내가 시간 속을 걷는 동안
단단한 몸으로 굳어져 슬픔이 될 것이네
슬픔은 오랜 후에 터지는 힘이 될 것이네.
겨울 숲에서 / 안도현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수록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 마음 속 헛된 욕심이며
보잘것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발 속에다
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가 돌아가야 할
길도 지워지고
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
빈 겨울 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
천지 사방 가슴 벅찬
폭설로 오십시오
그때까지 내 할 일은
머리 끝까지 눈을 뒤집어쓰고
눈사람되어
서 있는 일입니다.
겨울 길을 간다 / 이해인
봄 여름 데리고
호화롭던 숲
가을과 함께 서서히 옷을 벗으면
텅 빈 해질녘에
겨울이 오는 소리
문득 창을 열면
흰 눈 덮인 오솔길
어둠은 더욱 깊고 아는 이 하나 없다
별 없는 겨울 숲을
아는 이 하나 없다
먼 길에 목마른
가난의 행복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겨울 숲길을 간다.
겨울 사랑 / 문정희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겨울 연가 / 신달자
한번 더 용서하리라
겨울 이별은
땅끝까지 떨려
설악산엔 이미
안개처럼 눈 덮히고
서울엔 영하로 떨어져
내 창의 울음 커지는 때
한번만 더 용서하리라
5시에 몰려오는 새벽 어둠은 차고
12월의 노을은 너무 적막해
몸속의 뼈는
회초리로 모두 일어서서
심장을 내려치는
영웅적 고독을
나는 혼자서는 견딜수가 없어
그대여 좀 더 따뜻한 날에
이별할지라도
지금은 혼자서는 결딜 수가 없어..
겨울의 노래 / 서정윤
겨울입니다
내 의식의 차가운 겨울
언제라도 따스한 바람은 비켜 지나가고
얼음은 자꾸만 두터운 옷을 껴입고
한번 지나간 별빛은
다시 시작할 수 없습니다
눈물이 떨어지는 곳은
너무 깊은 계곡입니다
바람이 긴 머리를 날리며 손을 흔듭니다
다시는 시작할 수 없는
남루한 의식의 겨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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