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洙映

2008. 1. 25. 06:36詩.

 

 

 

 

봄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 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한 시인의 시를 모두 읽고 한 편의 시를 고르는데, 이 시인만큼 고심한 시인은 없었다.

나는 이 시를 몇 번 썼다가 지우고, 다른 시를 몇 편 썼다가 지운 뒤에 다시 이 시를 택했다.

특별한 의미는 없다.

다만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는 시구가 내 옷깃을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다.

김수영의 모든 시는 아직도 펄펄 살아서 우리를 팽팽하게 긴장시키고,

통렬하고도 신념에 가득 찬 그의 발언은 아직도 현실을 압도한다.

그는 세월이 가도 식지 않는 사랑을 알고 있었다.

 

-  김용택 '시가 내게로 왔다' -

 

 

 

 

 

 

 

 

 . 

 

 

김수영의 풀

 

 

김수영의 풀은 울림이 큽니다. 해석의 폭이 넓습니다.

 읽는 이는 얼마든지 자기 마음 가는대로 읽을 수 있고 그 편차를 풀은 무리 없이 받아냅니다.

조선일보에서 시인들에게 한국 현대시사에서 한 편의 시를 꼽으라고 했습니다.

 가장 많은 시인들로부터 지지를 받은 것이 풀이라고 합니다.

 왜 풀일까요?

분석이 필요한 대목이지만 김수영의 풀이 많은 시인들에게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의 지평을

새로이 열어준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인식의 지평’ 그것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저는 우선 ‘눕는다’는 풀의 행위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눕는다는 것은 쓰러지는 것과는 다릅니다.

쓰러지는 것이 수동적인 행위임에 비해 눕는다는 것은 능동적인 행위입니다.

눕는 것은 일상적인 차원에서 보면 잠자기 전에 잠을 준비하기 위해 사전에 행하는 동작입니다.

우리는 잠자기 위해서, 잠자기 전에 우선 누워야 합니다.

왜 시인은 바람에 나부껴 넘어지는 풀을 ‘넘어진다’, ‘쓰러진다’ 등으로 표현하지 않고

 ‘눕는다’라고 표현했을까요?

풀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눕는다’에 대해서 마땅히 응분의 주목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1연에서 풀의 행위는 둘로 나타납니다. ‘눕는 행위’와 ‘우는 행위’입니다.

‘풀은 눕고 울었다.’ 1연 전체는 이렇게 간단히 압축됩니다.

풀은 눕고 울고 울다가 다시 눕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아직 인식의 새 지평이 열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막연한 비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눕는다’와 ‘쓰러진다’의 의미상의 차이도 아직은 채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다.

 2연으로 가 봅시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드디어 인식의 전환이 일어납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의 지평이 비로소 새로이 열리며.

 왜 ‘쓰러진다’가 아니라 굳이 ‘눕는다’여야만 하는가가 명확해집니다.

풀은 바람에 불려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누워버린다고 함으로써

시인은 과감히 지금까지의 사물에 대한 인식과 결별을 선언합니다.

풀은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눕습니다.

눕는 것은 바람에 의해 피동적으로 일어난 행위가 아닙니다.

풀 스스로가 바람이 있기 전에 선취한(先取한) 능동적 행위입니다.

 

상식적 차원에서는 바람이 먼저고 풀이 나중입니다.

바람 없이 풀의 동작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우리의 통상적 인식을 배반하고 그럼으로써 상식으로는 포착되기 어려운 사물의,

혹은 사물들끼리 맺은 관계의 감추어진 부분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새로운 인식이 말 그대로 새로운 인식이 되기 위해서는 그 인식 자체가

진리를 담보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이는 단지 인식의 도착, 뒤집힘으로 끝날 뿐입니다.

 우리는 많은 시에서 그럴듯한 새로운 표현을 만나긴 하지만 그 생명이 매우 짧음을 목격합니다.

‘바람이 부네. 풀은 쓰러지네. 풀은 쓰러져 우네. 그러나 풀은 다시 일어서네.

쓰러져도 쓰러져도 끝내는 다시 일어서네.’ 만약 시인이 이런 방식으로 노래했다면

시인의 인식은 결코 새로운 지평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시인은 결코 그런 방식으로 풀을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독자들이 ‘풀’을 위와 같은 방식으로 읽었다면 아무래도 미흡한 읽기 방식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난다’로 보지 않고 ‘더 빨리 눕고 먼저 일어난다’라고 본 데 이 시의 새로움이

 있음을 주목하고자 합니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3연에서는 눕는 행위의 철저성을 강화합니다.

일어남을 전제해서 적당히 눕는 것이 아니라, 또는 눕는 체하는 것이 아니라,

발목까지 발밑까지 완전히, 철저히 눕는다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눕는 행위의 철저성을 강조하기 위해 시인은 논리적 모순조차 감내합니다.

 2연에서는 ‘풀이 바람보다 빨리 눕는다’고 해 놓고는 3연에서는 ‘늦게 누워도’라고 한 발 물러섭니다.

빨리 누우면 당연히 먼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늦게 누워도 먼저 일어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시인의 자연의 순리를 한번 더 거슬러버립니다.

 그럼으로써 풀의 능동성을 제곱으로 강조해 버립니다.

 

자, 우리는 이쯤에서 따분한 자구적 해석에서 벗어나 도대체 풀의 이러한 독해 방식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 생각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말인가?

시인이 바람과 풀의 관계를 전도시켜 풀이 바람보다 먼저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것이 도대체 우리의 구체적 삶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사실은 저도 생각 중입니다.

아마도 김수영은 저의 이런 태도가 못마땅할 것입니다.

 ‘생각 중이라고? 자네는 틀렸어. 자네는 결코 자네 삶을 혁신할 수 없어.’ 그렇습니다.

 김수영의 풀을 백 번 읽는다고, 김수영의 풀을 천 번 만 번 곱씹어 생각하고 그 의미를

이리저리 반추해 본다고 저의 이 지지부진한 삶이 뭐 눈꼽만치라도 달라질 리는 없지요.

그러나 패배를 승리로 전환하는 김수영의 역동적인 시적 사유의 힘에 편승하여

독자들은 각자의 삶을 쇄신하고자 하는 안간 힘이라도 써 볼 밖에 또 다른 무슨 수가 없음도

 분명합니다.

김수영의 풀이 과연 우리의 삶을 쇄신할 수 있을까요?

김수영의 풀이 과연 우리의 삶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은 긍정이기도 하고 부정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항용 그렇듯이.

 

출처 :  http://blog.daum.net/kimo-56/14522264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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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1954. 10. 5>

 

 

 

 

 

 

 




 너를 잃고
 
 

늬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
억만 번 늬가 없어 설워한 끝에
억만 걸음 떨어져 있는
너는 억만 개의 모욕이다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꽃들
그리고 별과도 등지고 앉아서
모래알 사이에 너의 얼굴을 찾고 있는 나는 인제
늬가 없어도 산다

늬가 없이 사는 삶이 보람 있기 위하여 나는 돈을 벌지 않고
늬가 주는 억만 배의 모욕을 사기를 좋아하고
억만 인의 여자를 보지 않고 산다
나의 생활이 원주(圓周) 위에 어느 날이고
늬가 서기를 바라고
나의 애정의 원주가 진정으로 위대하여지기 바라고

그리하여 이 공허한 원주가 가장 찬란하여지는 무렵
나는 또 하나 다른 유성을 향하여 달아날 것을 알고

이 영원한 숨바꼭질 속에서
나는 또한 영원한 늬가 없어도 살 수 있는 날을 기다려야 하겠다
나는 억만무려(億萬無慮)의 모욕인 까닭에.
 
<1953>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명령하고 결의하고
<평범하게 되려는 일> 가운데에
해초처럼 움직이는
바람에 나부껴서 밤을 모르고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투명한 움직임의 비애를 알고 있느냐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순간이 순간을 죽이는 것이 현대
현대가 현대를 죽이는 <종교>
현대의 종교는 <출발>에서 죽는 영예(榮譽)
그 누구의 시처럼
그러나 여보
비오는 날의 마음의 그림자를
사랑하라
너의 벽에 비치는 너의 머리를
사랑하라

비가 오고 있다
움직이는 비애여

결의하는 비애
변혁하는 비애‥‥‥
현대의 자살
그러나 오늘은 비가 너 대신 움직이고 있다
무수한 너의 <종교>를 보라

계사(鷄舍) 위에 울리는 곡괭이소리
동물의 교향곡
잠을 자면서 머리를 식히는 사색가
ㅡㅡ모든곳에 너무나 많은 움직임이 있다

여보
비는 움직임을 제(制)하는 결의
움직이는 휴식

여보
그래도 무엇인가가 보이지 않느냐
그래서 비가 오고 있는데!
 
<1958>

 

 

 

 

 

 

 

 


 후란넬 저고리 

 

 

낮잠을 자고 나서 들어보면
후란넬 저고리도 훨씬 무거워졌다
거지의 누더기가 될락 말락 한
저놈은 어제 비를 맞았다
저놈은 나의 노동의 상징
호주머니 속의 소눈깔만한 호주머니에  들은
물뿌리와 담배 부스러기의 오랜 친근
윗호주머니나 혹은 속호주머니에 들은
치부책 노릇을 하는 종이쪽
그러나 돈은 없다
ㅡㅡ돈이 없다는 것도 오랜 친근이다
ㅡㅡ그리고 그 무게는 돈이 없는 무게이기도 하다
또 무엇이 있나 나의 호주머니에는?
연필쪽!
옛날 추억이 들은 그러나 일년 내내 한번도 펴본 일이 없는
죽은 기억의 휴지
아무것도 집어넣어 본 일이 없는
죽은 기억의 휴지
아무것도 집어넣어 본 일이 없는 왼쪽 안호주머니
ㅡㅡ여기에는 혹시 휴식의 갈망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ㅡㅡ휴식의 갈망도 나의 오랜 친근한 친구이다‥‥‥
 
<1963. 4. 29>

 

 

 

 

 

 

 



푸른 하늘을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1960. 6. 15>

 

 

 

 

 

 

 

 


거대한 뿌리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남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 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8 · 15 후에 김병욱이란 시인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 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 대학에 다니면서 4년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强者)다

나는 이자벨 버드 비숍* 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1893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 왕립지학협회 회원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의 종놈, 관리들뿐이었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천하를 호령한 민비는 한번도 장안 외출을 하지 못했다고 ‥‥‥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寅煥)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
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대한민국 관리,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ㅡㅡ제3인도교의 물 속에 박은 철근 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이자벨 버드비숍(1831~1904) : 영국의 여행가. 작가. 지리학자이다.
 
<1964. 2. 3>

 

 

 

 

 

 

 

 

 

구슬픈 육체


불을 끄고 누웠다가
잊어지지 않는 것이 있어
다시 일어났다

암만 해도 잊어버리지 못할 것이 있어 다시 불을 켜고 앉았을 때는
이미 내가 찾던 것은 없어졌을 때

반드시 찾으려고 불을 켠 것도 아니지만
없어지는 자체를 보기 위하여서만 불을 켠 것도 아닌데
잊어버려서 아까운지 아까웁지 않은지 헤아릴 사이도 없이 불은 켜지고

나는 잠시 아름다운 통각(統覺)과 조화와 영원과 귀결을 찾지 않으려 한다

어둠 속에 본 것은 청춘이었는지 대지의 진동이었는지
나는 자꾸 땅만 만지고 싶었는데
땅과 몸이 일체가 되기를 원하며 그것만을 힘삼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러한 불굴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인가
어둠 속에서 일순간을 다투며
없어져버린 애처롭고 아름답고 화려하고 부박한 꿈을 찾으려 하는 것은

생활이여 생활이여
잊어버린 생활이여
너무나 멀리 잊어버려 천상의 무슨 등대같이 까마득히 사라져버린 귀중한 생활들이여

말없는 생활들이여
마지막에는 해저의 풀떨기같이 혹은 책상에 붙은 민민한 판때기처럼 무감각하게 될 생활들이여

조화가 없어 아름다웠던 생활을 조화를 원하는 가슴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나
조화를 원하는 심장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나

지나간 생활을 지나간 벗같이 여기고
해 지자 헤어진 구슬픈 벗같이 여기고
잊어버린 생활을 위하여 불을 켜서는 아니 될 것이지만
천사같이 천사같이 흘려버릴 것이지만

아아 아아 아아
불은 켜지고
나는 쉴 사이 없이 가야 하는 몸이기에
구슬픈 육체여.
 
<1954>

 

 

 

 

 

 


 피곤한 하루의 나머지 시간
 


피곤한 하루의 나머지 시간이 눈을 깜짝거린다
세계는 그러한 무수한 간단(間斷)

오오 사랑이 추방을 당하는 시간이 바로 이때이다
내가 나의 밖으로 나가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산이 있거든 불러보라
나의 머리는 관악기처럼
우주의 안개를 빨아올리다 만다
 
<1960. 10. 29>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1956>

 

 
 
 
 
 
헬리콥터


사람이란 사람이 모두 고민하고 있는
어두운 대지를 차고 이륙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것은
우매한 나라의 어린 시인들이었다
헬리콥터가 풍선(風船)보다도 가벼웁게 상승하는 것을 보고
놀랄 수 있는 사람은 설움을 아는 사람이지만
또한 이것을 보고 놀라지 않는 것도 설움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자기의 말을 잊고
남의 말을 하여 왔으며
그것도 간신히 떠듬는 목소리로밖에는 못해 왔기 때문이다
설움이 설움을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젊은 시절보다도 더 젊은 것이
헬리콥터의 영원한 생리(生理)이다

1950년 7월 이후에 헬리콥터는
이 나라의 비좁은 산맥 위에 자태를 보이었고
이것이 처음 탄생한 것은 물론 그 이전이지만
그래도 제트기나 카고*보다는 늦게 나왔다
그렇지만 린드버그가 헬리콥터를 타고서
대서양을 횡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동양의 풍자(諷刺)를 그의 기체(機體) 안에서 느끼고야 만다
비애의 수직선을 그리면서 날아가는 그의 설운 모양을
우리는 좁은 뜰 안에서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항아리 속에부터라도 내어다볼 수 있고
이러한 우리의 순수한 치정(痴情)을
헬리콥터에서도 내려다볼 수 있을 것을 짐작하기 때문에
「헬리콥터여 너는 설운 동물이다」

ㅡㅡ자유
ㅡㅡ비애

더 넓은 전망이 필요없는 이 무제한의 시간 위에서
산도 없고 바다도 없고 진흙도 없고 진창도 없고 미련도 없이
앙상한 육체의 투명한 골격과 세포와 신경과 안구까지
모조리 노출 낙하시켜 가면서
안개처럼 가벼웁게 날아가는 과감한 너의 의사 속에는
남을 보기 전에 네 자신을 먼저 보이는
긍지와 선의가 있다
너의 조상들이 우리의 조상과 함께
손을 잡고 초동물(超動物) 세계 속에서 영위하던
자유의 정신의 아름다운 원형을
너는 또한 우리가 발견하고 규정짓기 전에 가지고 있었으며
오늘에 네가 전하는 자유의 마지막 파편에
스스로 겸손의 침묵을 지켜가며 울고 있는 것이다
 
*카고 (Cargo) : 화물기의 뜻이다.
 
<1955>

 

 

 

 

 

 

 



구름의 파수병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시(詩)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산정에 서 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해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위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 늦은 거미같이 존재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수러울 수가 있을까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
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 보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국도 꿈도 없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든 가야 할 반역의 정신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ㅡㅡ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1956>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1968. 5. 29>

 

 

 

 

 

 

 



파리와 더불어
 

다병(多病)한 나에게는
파리도 이미 어제의 파리는 아니다

이미 오랜전에 일과를 전폐해야 할
문명이
오늘도 또 나를 이렇게 괴롭힌다
싸늘한 가을바람 소리에
전통은
새처럼 겨우 나무그늘 같은 곳에
정처(定處)를 찾았나 보다

병을 생각하는 것은
병에 매어달리는 것은
필경 내가 아직 건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거대한 비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거대한 여유를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저 광막한 양지 쪽에 반짝거리는
파리의 소리 없는 소리처럼
나는 죽어가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1960. 2>

 

 

 

 

 

 

 



 그 방을 생각하며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사지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ㅡㅡ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의지의 잔재 대신에
다시 쓰디쓴 담뱃진*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담뱃진 : 초판에서 누락되었는데 원고에 근거해 되살렸다.
 
<1960. 10. 30>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3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 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장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들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작으냐 : 시인 자신이 원고에 <작으냐>로 썼다가 지우고 <적으냐>로 표기하였다. 현행 맞춤법에 맞게 고쳤다.
 
<1965. 11. 4>

 

 

 

 

 

 

 



풍뎅이
 

너의 앞에서는 우둔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좋았다
백년이나 천년이 결코 긴 세월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사랑의 테두리 속에 끼여 있기 때문이 아니리라
추한 나의 발밑에서 풍뎅이처럼 너는 하늘을 보고 운다
그 넓은 등판으로 땅을 쓸어가면서
늬가 부르는 노래가 어디서 오는 것을
너보다는 내가 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추악하고 우둔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너도 우둔한 얼굴을 만들 줄 안다
너의 이름과 너와 나와의 관계가 무엇인지 알아질 때까지
소금 같은 이 세계가 존속할 것이며
의심할 것인데
등 등판 광택 거대한 여울
미끄러져가는 나의 의지
나의 의지보다 더 빠른 너의 노래
너의 노래보다 더한층 신축성이 있는
너의 사랑
 
<1953>

 

 

 

 

 

 

 



강가에서
 

저이는 나보다 여유가 있다.
저이는 나보다도 가난하게 보이는데
저이는 우리집을 찾아와서 산보를 청한다
강가에 가서 돌아갈 차비만 남겨 놓고 술을 사준다
아니 돌아갈 차비까지 다 마셨나 보다
식구가 나보다도 일곱식구나 더 많다는데
일요일이면 빼지 않고 강으로 투망을 하러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반드시 4킬로가량을 걷는다고 한다

죽은 고기처럼 혈색없는 나를 보고
얼마전에는 애 업은 여자하고 오입을 했다고 한다
초저녁에 두 번 새벽에 한 번
그러니 아직도 늙지 않지 않았느냐고 한다
그래도 추탕을 먹으면서 나보다도 더 땀을 흘리더라만
신문지로 얼굴을 씻으면서 나보고도
산보를 하라고 자꾸 권한다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는데
남방샤쓰 밑에는 바지에 혁대도 매지 않았는데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고
그는 나보다도 짐이 무거워 보이는데
그는 나보다도 훨씬 늙었는데
그는 나보다도 눈이 들어갔는데
그는 나보다도 여유가 있고
그는 나에게 공포를 준다

이런 사람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다 그처럼 살고 있는 것 같다
나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도 가련한 놈 어느 사이에
자꾸 자꾸 소심해져만 간다.
동요도 없이 반성도 없이
자꾸자꾸 소인이 돼간다
속돼간다. 속돼간다
끝없이 끝없이 동요도 없이
 
<1964. 6. 7>

 

 

 

 

 

 

 


사령(死靈)


‥‥‥활자(活字)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아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아라
이 황혼도 저 돌벽 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도
행동의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아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1959>
 
 
 
 
 
 
 


 절망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1965. 8. 28>

 

 

 

 

 

 

 



도취의 피안
 

내가 사는 지붕 위를 흘러가는 날짐승들이
울고 가는 울음소리에도
나는 취하지 않으련다

사람이야 말할 수 없이 애처로운 것이지만
내가 부끄러운 것은 사람보다도
저 날짐승이라 할까
내가 있는 방 위에 와서 앉거나
또는 그의 그림자가 혹시나 떨어질까 보아 두려워하는 것도
나는 아무것에도 취하여 살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번씩 찾아오는
수치와 고민의 순간을 너에게 보이거나
들키거나 하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나의 얇은 지붕 위에서* 솔개미 같은
사나운 놈이 약한 날짐승들이 오기를 노리면서 기다리고
더운 날과 추운 날을 가리지 않고
늙은 버섯처럼 숨어 있기 때문에도 아니다

날짐승의 가는 발가락 사이에라도 잠겨 있을 운명ㅡㅡ
그것이 사람의 발자국* 소리보다도
나에게 시간을 가르쳐주는 것이 나는 싫다

나야 늙어가는 몸 위에 하잘것없이 앉아 있으면 고만이고
너는 날아가면 고만이지만
잠시라도 나는 취하는 것이 싫다는 말이다

나의 초라한 검은 지붕에
너의 날개 소리를 남기지 말고
내가 던지는 조그마한 그림자가 무서워
벌벌 떨고 있는
나의 귀에다 너의 엷은 울음소리를 남기지 말아라

차라리 앉아 있는 기계와 같이
취하지 않고 늙어가는
나와 나의 겨울을 한층 더 무거운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나의 눈이랑 한층 더 맑게 하여다오
짐승이여 짐승이여 날짐승이여
도취의 피안(彼岸)에서 날아와 무수한 날짐승들이여
 
 
*나의 얇은 지붕 위에서 : <시집>에는 "얇은 지붕에서"로 되어 있으나 <초판>에서 원고를 따라 "얇은 지붕 위에서'로 되돌렸다.
발자국 : "발자국"은 당시의 표기대로 "발자죽"(원고)."발자욱"(시집. 초판)으로 되어 있으나 현행 표기대로 바꾸었다.
 
<1954>

 

 

 

 

 

 

 



 사랑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1961>

 

 

<김수영 전집 1 시 (민음사) 에서> 


 
 
 
 
 

 


* 김수영(남)
 
1921년 서울 출생.
1947년 예술부락 동인지로 등단
1958년 제1회 한국시인협회상수상
1968년 6월 16일 사망.
1981년 김수영문학상수상제정
시집 <달나라의 장난> <거대한 뿌리> <주머니속의 시>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사랑의 변주곡> <김수영전집> 등.
 
 
정세학 그림 /푸른 산
정평한 그림 / 장안화우
 

 

출처 : [기타] 블로그 집필 - 한돌샘 - 바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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