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 최승자 시집

2022. 5. 27. 20:22詩.

 

 

연인들 ─ 최승자 시집저자

출판 문학동네  |  2022. 2. 15.   페이지수72 | 판매가서적 9,000원    e북 6,300원

 

 

 

 

책소개

“(혹) 잊을 순 있어도, 잃을 순 없는” 우리들의 시인(박연준), 그 폭발하는 언어로 “언제나 미래”가 된 시인(이원) 최승자의 시집 『연인들』을 문학동네포에지 41번으로 다시 펴낸다. 1979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한 그의 다섯번째 시집이다. 1999년 홀연 11년간의 오랜 침묵 속으로, 저 너머의 세계로 떠나기 전 그가 삶의 자리에 매어두었던 약속 같은 시집이라 하겠다.
2010년 시로 돌아오며 그간 무소식의 사정을 조현병과의 씨름이라 밝힌 바, 그가 골몰했던 정신의 세계, 타로 카드와 음양오행과 신비주의의 세계로 향했던 출발점이며 분수령이 된 것이 이 시집이다. 후에 그 투병의 10여 년을 두고 시인은 “나를 병에 지치게 한” “어린아이 같은 짓”(『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난다, 2021, 이하 ‘산문집’)이라 소회하였으나, 23년 만에 되살아나는 이 시집을 앞에 둔 지금의 시인은 그토록 “무지막지한 고통 속을 달려왔던 시간,/무지막지한 고통 속을 헤매었던 시간”을 생각하며 “가히 참, 아름답다” 말한다.

 

 
최승자 시인

 

1952년 충청남도 연기에서 태어났다. 수도여고와 고려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했으며, 계간 '문학과 지성'에 '이 시대의 사랑' 외 4편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최승자는 현대 시인으로는 드문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 박노해, 황지우, 이성복 등과 함께 시의 시대 80년대가 배출한 스타 시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2001년 이후 투병을 하면서 시작 활동을 한동안 중단했으며, 2006년 이후로 요양하다 2010년, 등단 30주년 되는 해에 11년의 공백을 깨고 신작을 발표하였다.

저서로 시집 '이 시대의 사랑', '즐거운 일기', '기억의 집', '내 무덤 푸르고', '연인들' 등이 있고, 역서로 '굶기의 예술', '상징의 비밀', '자스민', '침묵의 세계', '죽음의 엘레지', '워터멜론 슈가에서', '혼자 산다는 것', '쓸쓸해서 머나먼' 외 다수가 있다.

 
 
 
 
 

목차

시인의 말
개정판 시인의 말



마흔두번째의 가을 /

심장론 /

상경 /

안부 /

아득한 봄날 /

시간은 /

둥그런 거미줄 /

1번 국도 /

우라노스를 위하여 /

빈 공책 / 흔들지 마 /

한 사람이 /

더스트 인 더 윈드, 캔자스 /

번역해다오 /

천년 지복 /

이 시 /

하얀/위에/다시/하아얀 /

인터내셔널 식탁 /

제주기(濟州記) /

바오로 흑염소 /

유카 나방이 /

“그릇 똥값” /

생각은 /

월하(月下), 이 빵빵한 /

백합의 선물 /

좌우지간 /

왕국 /

일점 일순 /

나는 용서한다 /

러스코의 추억 /

구토 /

한 생각으로서의 인류사 /

버추얼 리얼리티 /

돈벌레 혹은 hanged man /

또다른, 걸인의 노래 /

눈이란 무엇인가 /

? /

연인들 1 /

연인들 2 /

연인들 3

 
 
 
 

책 속으로

 

누가 펼쳐놓았나.
아무것도 씌어져 있지 않은 이 빈 공책.
그 위에 깊은 눈이 내려 침묵조차,
침묵이 걸어간 발자국조차 지워져버린
이 태초의 빈 공책을.
아니 그것은 내가 지워버린 공책이다.
나는 내가 써왔던 텍스트를 모두 지워버렸다.
이제 나는 더이상 쓰지 않을 것이다, 라고
그 위에다 나는 쓰지 않는다.
나는 다만 지워버렸고,
지워버렸다고 말할 뿐이다.
지워져버린 공책 위에 쌓인 눈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보고, 그리고 안다.
이제 그 위로 소리 없이 바람이 한차례 지나가고,
그리고 그 공책은 영원히 닫혀질 것임을.

─「빈 공책」 전문

 
 
 
 

출판사서평

 

절판되었던 시집을 다시 펴본다.
절단되었던 다리가 새로 생겨나오는 것 같다.


무지막지한 고통 속을 달려왔던 시간,
무지막지한 고통 속을 헤매었던 시간,


그 순간들이 점철되어 있는 이 시들이
어떻게 이렇게도 숨겨져 있을 수 있는지

가히 참, 아름답다.

 

_개정판 시인의 말 전문

 



시집의 제목 『연인들』은 타로 카드에서 대비밀, 혹은 메이저 아르카나로 알려진 22장의 카드 중 6번 ‘Lovers’에서 따왔다. 카드의 그림 속에는 한 쌍의 연인이 대칭으로 서 있다. 시인은 그 위에 아니무스와 아니마, 남성과 여성, 하늘과 땅을 겹쳐 본다. 그리하여 이 시집을 ‘사이’의 시집이라 말하건대, 그 양단에 이쪽과 저쪽을, 차안과 피안을, 죽음과 삶을 놓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시인에게 ‘사이’는 갈라섬에 머무르지 않고 ‘넘어섬’으로, ‘건너감’으로 나아간다. 타로 카드 그림의 남녀 사이에 자리한 천상적 존재로, 혹은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이 말한 성(聖)의 제4요소, ‘페미닌’으로. 시인은 거기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할 것 없이 이 지상 사람들 모두가 천상적 존재를 껴입은 땅님, 즉 따님”임을 발견한다(시인의 말). 그러므로 그 땅속에서 기쁨으로 불러보는 나의 페르세포네, 나의 에우리디케, 나의 말쿠스, 나의 웅녀, 그리하여 나의 신부이자 누이일 “나의 따님”(「연인들 1」)이란 그가 움켜쥐고픈 세계의 비밀, 우리 모두의 첫 이름일 것이다.

몇만 년의 어둠, 무력의 맹점에서
이제 비로소 몇억 광년을 날아와
내 눈빛이 너를 찾는다.
내 눈빛이 네 흙의 눈빛과 만나니,
너 비로소 하늘빛으로
살아, 날아오르는,
이 빛의 혼인, 축복의 환한 빛,

 

_「연인들 1」 부분

 


앞서 1993년 『내 무덤, 푸르고』(문학과지성사)를 출간한 뒤, 시인은 미국 아이오와에서 생애 첫 외국 생활을 경험했다. 그곳에서 우연히 점성술과 신비주의를 맞닥뜨리고는 그 세계로 기꺼이 또 과감히 뛰어들었다. 그 기록인 『어떤 나무들은』(난다, 2021)에서 그가 얻었다 말하는 것은 “변화하지 않으면 나는 그 종래의 불행을 감수하고 살아야” 한다는 인식, 그러나 “이제는 옛날의 나였던 것을 잘라, 떨쳐버리게 해줄 수 있다는” 확신이다. 5년을 오롯이 바친 탐구이자 여정의 시간은 “‘죽음’의 죽음, 즉 ‘죽음’이라는 의식이 죽는 과정”이며 스스로가 만들어낸 ‘나’라는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다 (시인의 말).



나는 그제야, 내가 그를 태곳적부터
알아왔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나는 그를 안다.
그리고 이제 깨닫는다. 모든 여행은 쓸모없는 여행이고,
모든 여행은 돌아가는 여행이고,
모든 여행은 떠난 적도 없는,
잠 속의, 꿈속의 여행이라는 것을.

 

_「구토」 부분



이 시집 『연인들』의 앞에 무덤이 있었다면

그 뒤에는 『쓸쓸해서 머나먼』(문학과지성사, 2010)이 있다.

“시인으로서는 이미 죽...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아득한 봄날

 
 
통과해야만 할 아득한 봄날의 시간이
저 밖에서 선혈처럼 낭자하다.
베란다 앞 낮은 산을 뒤덮으며
패혈증처럼 숨가쁘게,
어질어질 피어오르는 진달래.
눈물이 나 더는 못 보고
쪽문을 소리내어 쾅 닫는다.
 
어떻게 견뎌야 할지,
내 앞에 펼쳐질
봄 꽃, 여름 잎
가을 단풍, 겨울 눈꽃.
 
닫혀버린 집안 한구석에서
인조 장미 몇 송이가
무게도 없이 깊이깊이 가라앉는다.
 
 
 
 
 
 

"그릇 똥값"

 

노량진 어느 거리 그릇 세일 가게

쇼윈도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그릇 똥값"

순간 충격적으로, 황금색으로

활짝 피어나는 그림 하나.

신성한 밥그릇 안에 소중하게 담겨 있는

김 모락모락 나는 커다락 똥 무더기 하나,

아니 쇼윈도 안 모든 그릇들 안에 담겨

폴폴 향기로운 김을 피워올리는 똥덩이들.

그 황금색의 환한 충격.

입과 항문이 한 코드로 연결되듯

밥과 똥이 한 에너지의 다른 형태들이니,

밥그릇에 똥을 퍼담은들,

밥그릇에 똥을 눈들 어떠랴,

산다는 것은 결국 싼다는 것인데

 

 
 
 
 
 

더스트 인 더 윈드, 캔자스

 
 

창문 밖. 사막. 바라보고 있다.

내세의 모래 언덕들, 전생처럼 불어가는 모래의 바람.

창가에서 20년 전쯤 처음 만났던 노래를 들으며

찻잔을 홀짝이다가, 나는 결정한다.

이제껏 내가 먹여 키워왔던 슬픔들을

이제 결정적으로 밟아버리겠다고

한때는 그것들이 날 뜯어먹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 자신이 그것들을 얼마나 정성스레 먹여 키웠는지 이제 안다.

그 슬픔들은 사실이었고, 진실이었지만

그러나 대책 없는 픽션이었고, 연결되지 않는 쇼트 스토리들이었다.

하지만 이젠 저 창밖 풍경, 저 불모를 지탱해주는

눈먼 하늘의 흰자위,

저 무한으로 번져가는 무색 투명에 기대고 싶다.

더스트 인 더 윈드, 캔자스

 

 
 
 
 
 
 
 
 

한 사람이

 
 
한 사람의 생애를 기울여
울타리를 만든다. 그 안에다
자기 집을 세우고
결혼을 안치시키고
자기 가족, 자기 자식들의 강철 인형을 만든다.
 
한 사내가 제 생애를 용광로에 쏟아부어
황금색 미니어처 왕국을 만드니,
그는 자기가 건설하는 게 감옥인지 모른다.
그는 자기가 제 살의 진흙으로 무덤을 만든다는 것을 모른다.
그것을 깨들을 무렵엔, 허공 너머로
황금의 잔들은 차례로 쓰러져 사라지고
밤은 한없이 명왕성 쪽으로 기울고,
우주를 떠도는 미확인비행물체,
그것을 우리는 이승의 삶이라 부른다.
 
 
 
 
 
 
 
 
 

일점 일순

 
 
 
 
 
 
 
 
 

구토

 
 

오늘 내가 들은 빅 뉴스, 굿 뉴스는,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하지 않았다,

우리가 이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세상을 이렇게 창조해놓은 신은

죽여버려야 한다는 시를 썼었던

나는 이제 해방이다. 오늘에서라도

그 뉴스를 듣지 못했더라면, 나는 필경

그를 죽여버렸을 테니까, 그래서

신의 살해자가 되었을 테니까.

창세기라는 이름의 소설, 아니면 영화 속에서

그 구조와 진행에 묶여 신음하던 여자가

그 스토리 밖으로 가볍게 빠져나온다.

도대체 이런 스토리를 쓴 작자는 누굴까.

죽여버려야지, 나는 그 안의 한 고통스러운

배역으로 존재하지 싫으니까, 그리고

내 모든 형제들도 탈출시켜야 하니까,

이 작자를 죽여버려야지, 두리번거리면서,

찔끔찔끔 구토하면서.

하지만 그때 어떤 손이 내 등을 두드리며

내게 말한다. "이봐, 그것도 꿈이야. 꿈에서

아무리 죽인들 무슨 소용이야, 그저 그 꿈을

용서하는 게 최상이지. 용서가 가장

완벽하게 빠져나오는 길이야."

나는 그제야, 내가 그를 태곳적부터

알아왔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나는 그를 안다.

그리고 이제 깨닫는다. 모든 여행은 쓸모없는 여행이고,

모든 여행은 돌아가는 여행이고,

모든 여행은 떠난 적도 없는,

잠 속의, 꿈속의 여행이라는 것을.

 
 
 
 
 
 
 
 

흔들지 마

흔들지 마, 사랑이라면 이젠 신물이 넘어오려 한다.

내 잔가지들을 흔들지 마.

더이상 흔들리며 부들부들 떨다 치를 떠느니,

이젠 차라리 거꾸로 뿌리 뽑혀 죽는 게 나을 것 같아.

프라하에서 한 집시 여자가, 운명이야, 라고 말했었다.

운명 따윈 난 싫어, 라고 나는 속으로 말했었다.

아름다움이 빤빤하게 판치는 프라하, 그러나 그 뒤편

숨겨진 검은 마술의 뒷골목에서 자기 몸보다 더 큰

누렁개를 옆에 끼고 땅바닥에 앉아

그녀는 내 손바닥을 읽었다.

난 더이상 읽히고 싶지 않다.

나는 더이상 씌어진 대로 읽히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운명이라 말하지 마, 흔들지 마.

네 바람의 수작을 잘 알아, 두번 속진 않아.

새해, 한겨울, 바깥바람도 내 마음만큼 차갑진 않다.

내 차가운 내부보다 더 차가운 냉수 한잔을

마시며, 나는 차갑게 다시 읊조린다.

흔들지 마, 바람 불지 마, 안 그러면

난 빙하처럼 꽝꽝 얼어붙어버리겠어.

창문 밖으로 사람들이 하나씩 오고가면서

내게 수상한 바람소리들을 보낸다.

그때마다 나는 접시 깨지는 소리로 대답한다.

"접근하면 발포함" 그러나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뭔지 나는 안다. 그것은 외부를 향한 게 아닌.

내부를 향한 내 안의 폭탄이다.

 

 
 
 
 
 
 

시간은

시간은 시간을 갖고 있지 않다.

모든 사물이 저마다의 시간을 갖고 있을 뿐.

나는 자전하면서 그것들 주위를 공전하고

지금 내 주파수는 온통 우라노스에게 맞춰져 있다.

가이아는 지금 온몸이 총체적 파장이다.

저 멀리서 네가 입은 무명 도포 자락

한끝이 하얗게 펄럭인다.

이제 우리의 첫아들,

한 마리의 어린양이 깨어나리라.

세상의 진흙 꿈들을 헤치고

한 마리 어린양이

푸른 눈을 뜨리라.

 

 
 
 
 
 

한 생각으로서의 인류사

최초에 한 생각이 있었다.

한 생각이 열심히 기원하여 한 개념이 되었다.

한 개념이 열심히 기원하여 한 이름이 되었다.

한 이름이 열심히 기원하여 한 이미지가 되었다.

한 이미지가 거울 앞에서 열심히 기원하여 한 형태, 한 몸을 이루었다.

최초의 한 생각은 제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비춰보기 위해

또 한 생각을 이끌어냈고, 그 생각이 또 한 개념, 또 한 이름,

또 한 이미지, 또 한 몸을 이루어냈다.

최초의 '나'라는 생각이 나라는 개념을 만들고

나라는 이름, 나라는 이미지, 나라는 몸을 만들고,

나는 내 형태를 보기 위해, 너라는 생각을 불러내고

너라는 개념, 너라는 이름, 너라는 이미지, 너라는 몸을 만들어냈고,

나는 너를 통해 나를 확인하고 보강하며,

너는 나를 통해 너를 확인하고 보강하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모자란다고 생각되는 것들의 집적으로

이루어진 또 한 이념, 또 한 이미지, 또 한 우승, '그를' 만들어냈고, 그리하여 나는, 너는, 그는 '우리들' '너희들' '그들'로

갈등하고 화해하면서, 증폭되어 인류사를 낳고, 세계사를 낳고,

진화사를 낳고, 천문학사를 낳고, 철학사를 낳고, 문학사를 낳고, 영화사를 낳고

나라는 한 생각, 한 개념의 무한 복제, 그리고 그 무한 복제품들끼리의

무한한 싸움, 그게 곧 세상이 아닐까.

 

 
 
 
 

 

눈이란 무엇인가

눈은 오직 올바로 보지 않기 위해 만들어놓은 장막,

눈은 오직 길 잃고 헤매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스모크 스크린.

눈은 오직 허상들만을 보기 위해 찍어 만들어놓은 필름,

오직 스크린과 스크린 안의 것들만이 실재하는 것이라고 믿기 위해 만들어놓은 유구한 낡은 필름.

그 스크린 안의 무서운 형상들에 놀란 또 어떤 눈들은,

그 필름을 행복한 필름으로 고치려 애를 쓰다 제가 죽어버린다.

이 세계는 영원한 고쳐쓰기의 과정, 구제불능의 패러디이다.

그 세계에서 어떤 이들은 작자가 되길 원하고,

어떤 이들은 독자가 되길 원하지만, 그러나 그 둘은 하나이고

둘 다 그 주인 없는 테이프의 각본의 원작자가 되길 원한다.

우리는 내면에서 먼저 쓰고 그것을 바깥에서 읽을 뿐이다.

그리고 눈이란 안을 보지 않기 위해

오직 바깥만을 증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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