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2021. 10. 20. 19:50詩.

 

 

 

 김호석 作 '김남주'/1995/206 x 141/수묵/작가소장
 
민족시인 또는 혁명시인 '김남주'
 
김남주 시인의 시를 노래한 안치환의 음반 'Remember' 와 '꽃다지', '노찾사' 그외 곡들, 그리고 김남주 육성낭송 까지 전곡 모두 이어듣기로 만들었습니다. 곡이 많아서 파일용량을 줄였습니다. 개별곡을 듣고자 하시는 분들은 각 곡의 제목을 딸깍(클릭)하시면 됩니다. 노래 제목의 ( ) 안의  제목은 시의 원 제목 입니다. 모든 곡은 노래의 가사가 아닌 김남주 시인의 원작을 올렸습니다. 전곡 모두 파일을 열어서 들을 수도 있고 각자 저장해서 들을 수도 있습니다. 단, 좀 더 나은 음질을 듣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각 파일의 용량을 늘리시면 됩니다. 안치환의 음반 수록곡 중에서 마지막 곡인 김남주 시인의 육성 낭송인 '이 가을에 나는' 은 김남주 육성낭송시선에 있습니다.
 


 
김남주, 그는 누구인가
 
김남주 시인은 80년대 한국 민족문학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그는 80년대 사회변혁운동의 이념과 정신을 온몸으로 밀고나간 '전사(戰士)시인' 이며, 혁명적 목소리로 한국문단을 일깨운 '민족 시인'이다. 또한 청춘의 10년을 감옥에서 보내는 등 반독재 투쟁에 앞장선 혁명 시인이었다.
 
1946년 전남 해남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호남의 명문 광주일고를 입학하였으나 입시 위주의 교육에 반대, 자퇴하였고 이후 검정고시로 전남대 영문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재학중 '3선개헌반대투쟁'에 참여하는 등 반독재 학생운동에 투신한 그는 1972년과 이듬해에 전국 최초의 반유신투쟁 지하신문 '함성'과 '고발'을 제작·배포하여 징역 8개월의 옥고를 치렀고, 이후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1974년『창작과비평』에「진혼가」등으로 문단에 얼굴을 내민 김남주 시인은 이후 작가 황석영 등과 함께 '민중문화연구소' 등을 결성하기도 했다.
 
1978년 가장 강력한 반유신투쟁 지하조직 '남민전'의 '전사'로 활동하다가 이듬해 10월 4일, 80명의 동지와 함께 체포·구속된 김남주 시인은 이 사건으로 징역 15년형이 확정되어 광주교도소 등지에서 복역했다. 그는 옥중에서 교도관 몰래 수많은 옥중시를 써서 극비리에 유출했는데, 이 시들은 80년대 우리사회 변혁운동에 일대 도화선이 됐다. 또한 김남주 시인은 1988년 12월 21일 9년 3개월의 옥고 끝에 석방되기까지 80년대 한국문학의 빛나는 정점이자, 큰별이었다.
 


 
 
김남주 시인은 옥중투쟁에서 얻은 지병으로 투병하다가 1994년 2월 13일, 불과 마흔 아홉의 나이로 그 생을 마감했다. 2월 16일, '민족시인 고 김남주선생 민주사회장'이 치러져 광주 망월동 5·18 묘역에 안장됐다. 2000년 5월 20일, '민족시인김남주기념사업회'와 '광주전남작가회의' 주최로 광주 비엔날레공원 안에 대표작「노래」가 수록된 '김남주 시비(詩碑)'가 제막되었다. 유족으로는 박광숙 여사와 아들 토일 군이 있다.
 


김남주 시인 주요 저서
 
1984년 첫시집『진혼가』간행
1987년 제2시집『나의 칼 나의 피』간행
1988년 제3시집『조국은 하나다』간행
1989년 시선집『사랑의 무기』제4시집『솔직히 말하자』간행
1990년 광주항쟁시선집『학살』간행
1991년 제5시집『사상의 거처』간행
1992년 제6시집『이 좋은 세상에』 및

                          옥중시선집『저 창살에 햇살이』간행
1993년『나의 칼 나의 피』『조국은 하나다』재출간
1994년 유고시집『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간행

 
 


 임옥상 作 김남주시인 / 1994 / 53 x 40cm / 흙에 채색





  
똥파리와 인간

 
똥파리에게는 더 많은 똥을 
인간에게는 더 많은 돈을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똥파리는 똥이 많이 쌓인 곳에 가서 
떼지어 붕붕거리며 산다 그곳이 어디건 
시궁창이건 오물을 뒤집어쓴 두엄더미건 상관 않고

 
인간은 돈이 많이 쌓인 곳에 가서 
무리지어 웅성거리며 산다 그곳이 어디건 
범죄의 소굴이건 아비규환의 생지옥이건 상관 않고

 
보라고 똥없이 맑고 깨끗한 데에 가서 
이를테면 산골짜기 옹달샘 같은 데라도 가서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 떼지어 사는 똥파리를

 
보라고 돈 없이 가난하고 한적한 데에 가서 
이를테면 두메산골 외딴 마릉 깊은 데라도 가서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 무리지어 사는 인간을

 
산 좋고 물 좋아 살기 좋은 내 고장이란 옛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똥파리에게나 인간에게나 
똥파리에게라면 그런 곳을 잠시 쉬었다가 
물찌똥이나 한번 찌익 깔기고 돌아서는 곳이고 
인간에게라면 그런 곳은 주말이나 행락철에 
먹다 남은 찌꺼기나 여기저기 버리고 돌아서는 곳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이란 게 별 것 아닌 것이다 
똥파리와 별로 다를 게 없는 것이다



 
▲ 김봉준 作 '해방의 십자가'/1983/250x400/아크릴릭/분실




 
자유

 
만인을 위해 내가 노력할 때 
나는 자유이다 
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이다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이다 
피와 땀을 눈물을 나워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밖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지는 잎새 쌓이거든

 
당신은 나의 기다림 
강 건너 나룻배 지그시 밀어 타고 
오세요 
한줄기 소낙비 몰고 오세요

 
당신은 나의 그리움 
솔밭 사이 사이로 지는 잎새 쌓이거든 
열두 곁 포근히 즈려밟고 오세요

 
오세요 당신은 나의 화로 
눈 내려 첫눈 녹기 전에 서둘러 
가슴에 당신 가슴에 불씨 담고 오세요

 
오세요 어서 오떼요 
가로질러 들판 그 흙에 새순 나거든 
한아름 소식 안고 달려 오세요 
당신은 나의 환희이니까요

 




 홍성담 作 '창'(全州獄에서)/23 x 17/종이에포스터칼라




 
저 창살에 햇살이  (햇살 그리운 감옥의 창살)

 
내가 손을 내밀면 
내 손에 와 고운 햇살 
내가 볼을 내밀면 
내 볼에 와 다순 햇살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자꾸자꾸 자라나 
다람쥐 꼬리만큼은 자라나 
내 목에 와 감기면 
누이가 짜준 목도리가 되고 
내 입술에 와 닿으면 
어머니가 씹어주고는 했던 
사각사각 베어먹고 싶은 
빨간 홍당무가 된다.

 




▲ 김호석 作 '농부 아저씨 김씨의 한숨'/1991/182 x 91/수묵채색/개인소장




 
물따라 나도 가면서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건듯건듯 동풍이 불어 새봄을 맞이했으니
졸졸졸 시내로 흘러 조약돌을 적시고
겨우내 낀 개구장이의 발때를 벗기러 가지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오뉴월 뙤약볕에 가뭄의 농부를 만났으니
돌돌돌 도랑으로 흘러 농부의 애간장을 녹이고
타는 들녘 벼포기를 적시러 가지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동산에 반달이 떴으니 낼 모레가 추석이라
넘실넘실 개여울로 흘러 달빛을 머금고
물레방아를 돌려 떡방아를 찧으러 가지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봄 따라 여름가고 가을도 깊었으니
나도 이제 깊은 강 잔잔하게 흘러
어디 따뜻한 포구로 겨울잠을 자러 가지

 




▲ 너희는 아느냐, 돌멩이 하나에 실린 역사의 무게를..




 
돌멩이 하나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나 제방을 걸으며 
돌멩이 하나 되자고 했다 
강물 위에 파문 하나 자그많게 내고 
이내 가라앉고 말 
그런 돌멩이 하나

 
날 저물어 캄캄한 밤
친구와 나 밤길을 걸으며 
불씨 하나 되자고 했다 
풀밭에서 개똥벌레즘으로나 깜박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세 사라지고 말 
그런 불씨 하나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대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노순택 作 '잠시 멈춘 전쟁 024'/80*120 (cm)/2003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걷다 넘어지고 마는 
미팔군 병사의 군화에도 있고 
당신이 가다 부닥치고야 마는 
입산금지의 붉은 팻말에도 있다 
가까이는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짖어대는 
네 이웃집 강아지의 주둥이에도 있고 
멀리는 
그 입에 물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죄 안 짓고 혼줄 나는 억울한 넋들에도 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낮게는 
새벽같이 일어나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농부의 졸라 맨 허리에도 있고 
제 노동을 팔아 
한 몫의 인간이고자 고개 쳐들면 
결정적으로 꺾이고 마는 노동자의 
휘여진 등에도 있다 
높게는 
그 허리 위에 거재(巨財)를 쌓아올려 
도적도 얼씬 못하게 가시철망을 두른 
부자들이 담벼락에도 있고 
그들과 한패가 되어 심심찮게 
시기적절하게 벌이는 쇼쇼쇼 
고관대작들이 평화통일 제의의 축제에도 있다 
뿐이랴 삼팔선은 
나라 밖에도 있다 바다 건너 
원격조종의 나라 아메리카에도 있고 
그들이 보낸 구호물자 속이 사탕에도 밀가루에도 
달라의 이면에도 있고 자유를 
혼란으로

바꿔치기 하고 동포여 동포여 
소리치며 질서의 이름으로 
한강을 도강(渡江)하는 미국산 탱그에도 있다 
나라가 온통 
피묻은 자유로 몸부림치는 창살 
삼팔선은 감옥의 담에도 있고 침묵의 벽 
그대 가슴에도 있다.

 
 




산국화

 
서리가 내리고
산에 들에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찬서리 내려 산에는
갈잎이 지고
무서리 내려 들에는
풀잎이 지고
당신은 당신을 이름하여 붉은 입술로
꽃이라 했지요
꺽일 듯 꺽이지 않는
산에 피면 산국화
들에 피면 들국화
노오란 꽃이라 했지요.

 
 




희망이 있다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내가 심고 가꾼 꽃나무는
아무리 아쉬워도
나 없이 그 어느 겨울을
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땅의 꽃은 해마다
제각기 모두 제철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늘 찾은 별은
혹 그 언제인가
먼 은하계에서 영영 사라져
더는 누구도 찾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오늘밤처럼
서로 속삭일 것이다.
언제나 별이

내가 내켜 부른 노래는
어느 한 가슴에도
메아리의 먼 여운조차
남기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의 노래가
왜 멎어야 하겠는가
이 세상에서..

무상이 있는 곳에
영원도 있어
희망이 있다.
나와 함께 모든 별이 꺼지고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내가 어찌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가.

 
 



▲ 김봉준 作 '총파업 시대' / 1989 / 70x40 / 와트만지,담채 붓그림 / 작가소장




 
아이고! I Go!  (날마다 날마다)

 
차에 깔려 죽고 
물에 빠져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흉기에 찔려 죽고 
총기에 맞아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임이다 
공부 못해 죽고 대학 못가 죽고 
취직 못해 죽고 장가 못가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아이는 단칸 셋방에 갇혀 죽고 
에미는 하늘까지 치솟는 전세값에 떨어져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농부는 농가부채에 눌려 죽고 
노동자는 가스에 납에 중독되어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여름이면 흙사태에 묻혀 죽고 
겨울이면 눈사태에 얼어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낮에 죽고 밤에 죽고 
아침에 죽고 저녁에 죽고 
시도때도 없이 세상을 온통 죽음의 공동묘지 
이 묘지에서 고개 들고 죽음이 세계에 항거한 자는 
쇠파이프에 머리가 깨져 죽고 
최루탄에 가슴이 터져 죽는다




 
 
 노래(죽창가)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웃녘에서 울어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靑松綠竹)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 여명 / 1983 / 55x43 / 채색목판화 / 작가소장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앞서 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일이면 일로 손잡고 가자 
천이라면 천으로 운명을 같이 하자 
둘이라면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물이라면 건너주고 
물 건너 첩첩 산이라면 넘어주자 
고개 넘어 마을 목마르면 쉬어가자 
서산 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주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가시발길 하얀 길 
에헤라, 가다 못 가면 쉬었다나 가지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 김봉준 作 '노래' / 1983 / 35x26 / 채색목판화 / 작가소장






김남주의 시를 노래하다
꽃다지, 노찾사, 메아리, 노동자 노래단, 문민협, 박치음 등등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꽃다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노찾사
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  - 서울대 메아리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함께 가자
앞서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투쟁 속에 동지 모아 손을 맞잡고 가자
열이면 열 천이면 천 생사를 같이하자
둘이라도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자
고개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서산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주고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 시련의 길 하얀 길
가로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길 하얀 길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사랑은(사랑) - 대학노래패


사랑만이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릴 줄 안다

사랑만이
불모의 땅을 갈아엎고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릴 줄 안다

천 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줄 안다

그리고 가실을 끝낸 들에서
사랑만이
인간의 사랑만이
사과 하나를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 홍성담 作 '혈루'/1993_1994/목판화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 노동자 노래단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는 않았다 
오월은 왔다 비수를 품은 밤으로 
야수의 무자비한 발톱과 함께 
바퀴와 개머리판에 메이드 인 유 에스 에이를 새긴 
전차와 함께 기관총과 함께 왔다 
오월은 왔다 헐떡거리면서 
피에 주린 미친 개의 이빨과 함께 
두부처럼 처녀의 유방을 자르며 
대검의 병사와 함께 오월은 왔다 
벌집처럼 도시의 가슴을 뚫고 
살해된 누이의 웃음을 찾아 우는 
아이의 검은 눈동자를 뚫고 
총알처럼 왔다 자유의 거리에 
팔이며 다리가 피묻은 살점으로 뒹구는 
능지처참의 학살로 오월은 오월은 왔다 그렇게!



바람에 울고 웃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일어나거라 쓰러지지 않았다 
오월의 무기 무등산의 봉기는 
총칼의 숲에 뛰어든 맨주먹 벌거숭이의 육탄이었다 
불에 달군 대장간의 시뻘건 망치였고 낫이었고 
한 입의 아우성과 함께 치켜든 만인의 주먹이었다 
피와 눈물 분노와 치떨림 이 모든 인간의 감정이 
사랑으로 응어리져 증오로 터진 다이너마이트의 폭발이었다



노래하지 말아아 오월을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바람'은 
학살의 야만과 야수의 발톱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노래하지 말아아 오월을 
바람에 일어나는 풀잎으로 '풀잎'은 
피의 전투와 죽음의 저항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학살과 저항 사이에는 
바리케이드의 이편과 저편 사이에는 
서정이 들어 설 자리가 없다 자격도 없다

적어도 적어도 오월의 광주에는!






▲ 홍성담 作 '친구'/1993_1994/203 x 270/목판화








벗에게 - 조국과 청춘


좋은 벗들은 이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네
살아 남은 이들도 잡혀 잔인한 벽 속에 갇혀 있거나
지하의 물이 되어 숨죽여 흐르고
더러는 국경의 밤을 넘어 유령으로 떠돌기도 하고



그러나 동지, 잃지 말게 승리에 대한 신념을
지금은 시련을 참고 견디어야 할 때,
심신을 단련하게나 미래는 아름답고
그것은 우리의 것이네



이별의 때가 왔네
자네가 보여준 용기를 가지고
자네가 두고 간 무기를 들고 나는 떠나네
자네가 몸소 행동으로 가르쳐준 말



"참된 삶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로 향한 끊임없는 모험 속에 있다는
투쟁 속에서만이 인간은 순간마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혁명은 실천 속에서만이 제 갈 길을 바로 간다는"



그 말을 되새기며






그대에게(지는 잎새 쌓이거든) - 개똥이


당신은 나의 기다림 
강 건너 나룻배 지그시 밀어 타고 
오세요 
한줄기 소낙비 몰고 오세요

당신은 나의 그리움 
솔밭 사이 사이로 지는 잎새 쌓이거든 
열두 곁 포근히 즈려밟고 오세요

오세요 당신은 나의 화로 
눈 내려 첫눈 녹기 전에 서둘러 
가슴에 당신 가슴에 불씨 담고 오세요

오세요 어서 오떼요 
가로질러 들판 그 흙에 새순 나거든 
한아름 소식 안고 달려 오세요 
당신은 나의 환희이니까요







▲ 김봉준 作 '대지의 그늘'/ 1998 / 24x28 / 목판화 / 작가소장







고목 - 조국과 청춘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해를 향해 사방팔방으로 팔을 뻗고 있는 저 나무를 보라
주름살투성이 얼굴과
상처 자국으로 벌집이 된 몸의 이곳 저곳을 보라
나도 저러고 싶다 한 오백 년
쉽게 살고 싶지는 않다 저 나무처럼
길손의 그늘이라도 되어주고 싶다.







산국화 - 박치음


서리가 내리고
산에 들에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찬서리 내려 산에는
갈잎이 지고
무서리 내려 들에는
풀잎이 지고
당신은 당신을 이름하여 붉은 입술로
꽃이라 했지요
꺽일 듯 꺽이지 않는
산에 피면 산국화
들에 피면 들국화
노오란 꽃이라 했지요.





 


전사 2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많은 사람이 실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수천 명이 죽어갔다
수만 명이 죽어갔다
아니 수백만 명이 죽어갈지도 모른다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세계도처에서 나라 곳곳에서
거리에서 공장에서 산악에서 감옥에서
압제와 착취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

어떤 사람은 투쟁의
초기 단계에서 죽어갔다
경험의 부족과 스스로의 잘못으로
어떤 사람은
승리의 막바지에서 죽어갔다
이름도 없이 얼굴도 없이 죽어갔다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아내는 지하의 고문실에서
쥐도 모르게 새도 모르게 죽어갔다
감옥의 문턱에서
잡을 손도 없이 부를 이름도 없이 죽어갔다

그러나 보아다오 동지여!
피의 양분없이 자유의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했으니
보아다오 이 나무를
민족의 나무 해방의 나무 민족해방투쟁의 나무를 보아다오
이 나무를 키운 것은 이 나무를 이만큼이라도 키워 낸 것은
그들이 흘리고 간 피가 아니었던가
자기 시대를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자기 시대와 격정적으로 싸우고
자기 시대와 더불어 사라지는 데
기꺼이 동의했던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오늘 밤
또 하나의 별이 
인간의 대지 위에 떨어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해방투쟁의 과정에서
자기 또한 죽어갈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기의 죽음이 헛되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렇다, 그가 흘린 피 한 방울 한 방울은
어머니인 대지에 스며들어 언젠가
어느 날엔가
자유의 나무는 결실을 맺게 될 것이며
해방된 미래의 자식들은 그 열매를 따먹으면서
그가 흘린 피에 대해서 눈물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부끄럽게 쑥스럽게 이야기할 것이다.







▲ 홍성담 作 '가자,도청으로'/1993_1994/545 x 408/목판화





학살 2


오월 어느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리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앗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대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둔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낮이었다 
낮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이민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민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군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낮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낮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 낮이었다
낮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낮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잡이 없었다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낮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리 처참하지는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리 치밀하지는 않았으리







진혼가


총구가 나의 머리숲을 헤치는 순간 
나의 양심은 혀가 되었다 
허공에서 헐떡거렸다 똥개가 되라면 
기꺼이 똥개가 되어 당신의 
꽁구멍이라도 싹싹 핥아 주겠노라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의 싸움은 허리가 되었다 당신의 
배꼽에서 구부러졌다 노예가 되라면 
기꺼이 노예가 되겠노라 당신의 
발밑에서 무릎을 꿇었다 나의 
양심 나의 싸움은 미군(迷宮)이 되어 
심연으로 떨어졌다 삽살개가 되라면 
기꺼이 삽살개가 되어 당신의 
손이 되어 발가락이 되어 혀가 되어

 
삽살개 삼천만 마리의 충성으로 
쓰다듬어 주고 비벼 주고 핥아 주겠노라 
더 이상 나의 육신을 학대 말라고 
하찮은 것이지만 육신은 나의 
유일(唯一)의 확실성(確實性)이라고 나는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손발을 비볐다 나는





 
마지막 인사


오늘밤 아니면 내일
내일밤 아니면 모레
넘어갈 것 같네 감옥으로
   
증오했기 때문이라네
재산과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자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네
노동의 대지와 피곤한 농부의 잠자리를
  
한마디 남기고 싶네 떠나는 마당에서
어쩌면 이 밤이 이승에서 하는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모르니
유언이라 해도 무방하겠네
  
역사의 변혁에서 최고의 덕목은 열정이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다 된 것은 아니네 지혜가 있어야 하네
지혜와 열정의 통일 이것이 승리의 별자리를 점지해준다네
한마디 더 하고 싶네 적을 공격하기에 앞서
반격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지않으면
공격을 삼가게 패배에서 맛본 피의 교훈이네
  
잘 있게 친구
그대 손에 그대 가슴에
나의 칼 나의 피를 남겨두고 가네
남조선민족해방전선 만세!







                                                                                   ▲ 홍성담 作 '개밥'/1987/28 x 21/종이에 목판화
 
이 세상에


사슬로 이렇게 나를 묶어놓고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압제자 말고는

벽으로 이렇게 나를 가둬놓고
주먹밥으로 이렇게 나를 목메이게 해 놓고
배부를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부자들 말고는

아무도 없다 이 세상에
사람을 이렇게 해 놓고 개처럼 묶어 놓고
사람을 이렇게 해 놓고 짐승처럼 가둬 놓고
사람을 이렇게 해 놓고
주먹밥으로 목메이게 해 놓고
잠자리에서 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압제자 말고
부자들 말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천에 하나라도 만에 하나라도
세상에 그럴 사람이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 한 번 나와 봐라

나와서 이 사람을 보아라
사슬 묶인 손으로
주먹밥을 쥐고 있는 이 사람을 보아라
이 사람 앞에서
묶인 팔다리 앞에서
나는 자유다라고 어디 한 번 활보해 봐라
이 사람 앞에서 굶주린 얼굴 앞에서
나는 배부르다라고 어디 한 번 외쳐 봐라

이 사람 앞에서 등을 돌리고
이 사람 앞에서 얼굴을 돌리고
마음 편할 사람 있으면
어디 한 번 있어 봐라

남의 자유 억누르고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남의 밥 앗아먹고
배부를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압제자 말고
부자들 말고는







▲ 조규봉 <남녘땅의 어머니> 1959년




어머니


어머니
그 옛날 제가 외지로 나설 때마다
동구 밖 신작로에 나오셔서
차 조심하고 사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시던 어머니
가가 먼 길 구풋하면 먹어두라고
수수떡 계란이며 건네주시고
옷고름 콧잔등에 찍어 우시던 어머니

이제는 예순 넘은 나이로
끌려간 자식놈이 그리워
철이 바뀔 때마다 옷가지 챙겨 들고
흰 고개 검은 고개 넘나드시는 어머니

서러워하거나 노여워 마세요
날 두고 언 놈이 뭔 말을 하더라도
내 또래 친구들 발길 뜸해지더라도

어머니 저를 결정할 사람은 저들이 아니니까요
사형이다 무기다 10년이다
사형 구형 놓기를 남의 집 개이름 부르듯 하는
저 당당한 검사 나으리가 아닌니까요
높은 공부하여 높은 자리에 앉아
사슬 묶인 나를 굽어보는
저 준엄한 판사 나으리가 아니니까요

나를 결정할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고
날 낳으신 당신이고 당신 같으신 어머니들이고
날 키워 준 이 산하 이 하늘이니까요
해방된 민중이고
통일된 조국의 별이니까요.









                                                                                             ▲ 임옥상 作 '어머니'/1988
 
이 가을에 나는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오라에 묶여 손목이 사슬에 묶여
또다른 감옥으로 압송되어 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번에는
전주옥일까 대구옥일까
아니면 대전옥일까

나를 태운 압송차가
낯익은 거리 산과 강을 끼고
들판 가운데를 달린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 만큼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숫돌에 낫을 갈아 벼를 베는 아버지의
논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나도 여기서 차에서 내려
아이들이 염소에게 뿔싸움을 시키고 있는
저 방죽가로 가고 싶다
가서 나도 그들과 함께 일하고 놀고 싶다

이 허리 이 손목에서 사슬 풀고 오라 풀고
발목이 시도록 들길을 걷고 싶다

가다가 숨이 차면 아픈 다리 쉬었다 가고
가다가 목이 마르면 샘물에 갈증을 적시고
가다가 가다가 배라도 고프면
하늘로 웃자란 하얀 무를 뽑아 먹고
날 저물어 지치면 귀소의 새를 따라
나도 집으로 가고 싶다
나의 집으로

그러나 나를 태운 압송 차는 멈춰 주지를 않는다
강을 건너 내를 끼고 땅거미가 내린 산기슭을 달린다
강 건너 마을에는 저녁밥을 짓고 있는가
연기가 하얗게 피어오르고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이 가을에 나는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김봉준作'어머니 돌아왔어요'/1981/19x21/목판화
 
편지


산길로 접어드는 
양복쟁이만 보아도 
혹시나 산감이 아닐까 
혹시나 면직원이 아닐까 
가슴 조이시던 어머니 
헛간이며 부엌엔들 
청솔가지 한 가지 보이는 게 없을까 
허둥대시던 어머니 
빈 항아리엔들 혹시나 
술이 차지 않았을까 
허리 굽혀 코 박고 
없는 냄새 술 냄새 맡으시던 어머니

늦가을 어느 해 
추곡 수매 퇴짜 맞고 
빈 속으로 돌아오시는 아버지 앞에 
밥상을 놓으시며 우시던 어머니 
순사 한나 나고 
산감 한나 나고 
면서기 한나 나고 
한 지안에 세 사람만 나면 
웬만한 바람엔들 문풍지가 울까부냐 
아버지 푸념 앞에 고개 떨구시고 
잡혀간 아들 생각에 
다시 우셨다던 어머니

동구 밖 어귀에서 
오토바이 소리만 나도 
혹시나 또 누구 잡아가지나 않을까 
머리끝 곤두세워 먼 산 
마른 하늘밖에 쳐다볼 줄 모르시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다시는 동구 밖을 나서지 마세요 
수수떡 옷가지 보자기에 싸들고 
다시는 신작로 가에는 나서지 마세요 
끌려간 아들의 서울 꿈에라도 못 보시면 한시라도 못 살세라 
먼 길 팍팍한 길 
다시는 나서지 마세요 
허기진 들판 숨가쁜 골짜기 어머니 
시름의 바다 건너 선창가 정거장에는 
다시는 나오지 마세요 어머니







철장에 기대어


잡아보라고 
손목 한번 주지 않던 사람이
그 손으로 편지를 써 보냈다오 
옥바라지를 해주고 싶어요 허락해주세요
이리 꼬시고 저리 꼬시고 
별의별 수작을 다해도 
입술 한번 주지 않던 사람이 
그 입으로 속삭였다오 면회장에 와서 
기다리겠어요 건강을 소홀히 하지 마세요
15년 징역살이를 다하고 나면 
내 나이 마흔아홉 살 
이런 사람 기다려 무엇에 쓰겠다는 것일까 
5년 살고 벌써 
반백이 다된 머리를 철창에 기대고 
사내는 후회하고 있다오 
어쩌자고 여자 부탁 선뜻 받아들였던고






권력의 담


나는 나가야 한다 살아서
살아서 더욱 튼튼한 몸으로



나는 보여줘야 한다 나가서
나가서 더욱 의연한 모습을



나는 또한 보여줘야 한다
놈들에게
감옥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전사의 휴식처 외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무기를 바로잡기 위해
전선에서 잠시 물러나 있었다는 것을



보라 창살에 타오르는 이 증오의 눈을
보라 주먹으로 모아지는 이 온몸의 피를



장군들 이민족의 앞잡이들
압제와 폭정의 화신 자유의 사형집행자들
기다려라 기다려라 기다려라
나는 싸울 것이다 살아서 나가서 피투성이로
빼앗긴 내 조국의 깃발과 자유와 위대함을 되찾을 때까지
토지가 농민의 것이 되고
공장이 노동자의 것이 되고
권력이 민주의 것이 될 때까지.







                                                       ▲ 김봉준 作 '민주주의 만세' / 1990 / 120x150 / 유화 / 개인소장






자유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
땀흘려 함께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 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 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
피와 땀과 눈물을 함께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 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혁명전사로서의 삶과 예술적 실천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당시의 학살을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버렸다/ 밤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두어버렸다"([학살2])고 노래한 시인 김남주.

현실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자본주의는 이념적 착종현상을 보이고 있는 21세기 벽두에도 여전히 그의 시가 문제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합리주의적 생산성을 추구하는 근대적 이성이 무력해지고 경계선이 불분명해진 오늘날까지도.

시인 황지우는 김남주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에서 그를 일러 "아아, 이 아무도 못말리는 꼴통이여, 통큰 강도여, 혁혁한 전사여, 혁명가여,/ 그러나 끝끝내는 시인이여, 이 저주받은 대지를 노래한 시인이여"라고 규정한다.

아마도 인간 김남주를 이 보다 더 적합하게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는 길지 않은 전 생애 동안 '사랑의 무기'로서 시를 가지고 온몸으로 혁명을 실천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대가리를 치면 꼬리로 일어서고
꼬리를 치면 대가리로 일어서고
가운데를 한 가운데를 치면
대가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일어서고

뭐 이 따위 것이 있어
그래 나는 이 따위 것이다

만만해야 죽는 시늉하고 살아야
밥술이라도 뜨고 사는 세상에서

나는 그래 이 따위 것이다.
([率然] 전문)


"침묵의 시위를 떠나 피로 씌어진 언어의 화살로 가자"([길])고 다짐하는 예술적 실천이 혁명가로서 그의 임무였다. 그 혁명은 손자병법에 있는 솔연(率然)처럼 하는 것이었다.

대가리를 치면 꼬리로 일어서고 꼬리를 치면 대가리로 일어서며 한 가운데를 치면 대가리와 꼬리로 한꺼번에 일어서는 솔연의 병법이야말로 싸움에 이길 수 있는 적극적인 전술이다.

그가 감옥에서 밖으로 보낸 편지들에는 필명으로 이 '솔연'이 쓰이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그가 얼마나 철저한 혁명 전사로 살고자 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가 삶과 예술에서 보여주었던, 불의에 저항하는 혁명의 선도성과 불굴의 실천력은 한국문학의 시금석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역사적 사건을 추동하는 힘으로서 동학혁명, 3·1운동, 4·19혁명, 5·18민중항쟁 등이 그 구체적인 과정을 사상하고 오직 그 이념만이 시퍼렇게 살아 오늘날까지 우리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것처럼,

보다 나은 삶을 향한 인간정신의 숭고함을 혁명전사적 치열함으로 문학적 실천을 선도했던 김남주의 시정신은 앞으로 한국문학의 형상적 이념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시정신은 끊임없이 우리 문학사에 끼어들면서 한국문학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혁명의 진정성과 순결성, 그리고 실천적 선도성은 한국문학의 문학적 이념은 될 수 있을지언정 미학적 예술성까지 담보하지는 못한다.

김남주의 시가 한국 현대시의 미적 전통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새로움의 미적 자질과 형상성을 획득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의 시가 그런 자질과 특성을 머금고 있는가를 밝히는 작업이 곧 이 글의 목적이다.


2. 김남주 시의 인식론적 토대


김남주가 혁명가의 길을 걷고, 그의 시가 혁명전사에 대한 찬가일 수밖에 없었던 정신사적 맥락은 어디에 있을까. 산업화되어 가는 1970·80년대에 분단된 한국의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대한 인식론적 토대를 살핌으로써 그 맥락을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의 개인사적 삶이 투쟁과 투옥의 연속이었고, 시의 대부분이 감옥에서 씌어졌기 때문에 실제 현실에서 일정하게 절연되어 구체성이 떨어지고 신념에 가까운 고정관념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된다.

그 고정관념이란,

첫째 시는 혁명의 무기로서 복무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시는 여타의 물리적 수단들과 마찬가지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

둘째 모든 사회적 현실과 인간관계, 나아가 자연현상들까지도 유물론적·계급적 관점에서 파악해야 하며 시의 성취도는 그 철저성에 비례한다는 것,

셋째 시는 이지적 판단에 의해 계산되고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

넷째 우리 민족사회의 본질적 현실은 제국주의에 의한 분단과 매판적 지배계급의 독재적 지배로 규정될 수 있고, 따라서 근로 대중의 비타협적 계급투쟁만이 새로운 사회를 가능하게 할 수 있으며 시인은 모름지기 그러한 혁명운동의 이념적 전위가 되어 동참함으로써만 감동적인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유물변증법적 인식의 토대가 시의 육체라고 할 수 있는 시적 형상성을 얼마만큼 획득하고 있는가에 있다.

다음의 시는 김남주의 고정관념이라고 할 수 있는 인식론적 토대가 어떻게 시적 형상성을 획득하는가를 보여준다.


마을 앞에 개나리꽃 피고
뒷동산에 뻐국새 우네
허나 무엇하랴 꽃 피고 새만 울면
산에 들에 나물 깨는 처녀가 없으면

시냇가에 아지랑이 피고
보리밭에 종달새 우네
허나 무엇하랴 산에 들에
쟁기질에 낫질 하는 총각이 없다면

노동이 있기에
자연에 가하는 인간의 노동이 있기에
꽃 피고 새가 우는 봄도 있다네
산에 들에 나물 캐는 처녀가 있기에
산에 들에 쟁기질 하는 총각이 있기에
산도 있고 들도 있고
꽃 피고 새가 우는 봄도 있다네

([나물 캐는 처녀가 있기에 봄도 있다] 전문)


이 시에서 우리는 김남주의 유물론적 인식태도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어느 평론가는 이 작품이 우리 현대시에서 사랑의 걸작으로 평가받을만하다고 말하면서 "자연의 변증법적 단계의 애정관을 뛰어넘어 우주 삼라만상의 주체자로서의 인간이 향유해야 할 사랑의 참모습을 추구"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랑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대상과의 관계에서 인간이 주체적으로 노동함으로써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해 가야 한다는 이성중심주의적이고 유물변증법적인 인식론을 시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자연에 가하는 인간의 노동'이란 주체가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근대적 사유방식이다. 그러므로 개나리꽃, 뻐꾹새, 꽃, 새, 시냇가의 아지랑이, 보리밭의 종달새 등은 그 자체로 존재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하는 인간과 함께 할 때 존재자로서의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에게 자연과 사회는 인간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변혁되어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그는 하이네, 마야코프스키, 네루다, 브레히트, 아라공의 시와 생애를 통해서 유물론적이고 계급적인 관점에서 세계와 인간관계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창작기술을 배웠으며 전투적인 휴머니스트로서 그들의 인간적인 매력에 압도되기도 했다.

그들이 김남주에게 주었던 교훈은 "인류에게 유익하고 감동적인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작가 자신이 진실된 삶을 살아야 하고, 자기 시대의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착취와 억압에 저항하는 불굴의 전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의 시에는 '육체를 가진 인간'이 있고, '인간과 인간 사이를 원수지게 하기도 하고 동지이게 하기도 하는 물질'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따라서 "사랑마저도 그들에게는 물질적이다 전투적이다 유물론적이다"([그들의 시를 읽고])고 노래한다.


나는 그린다 여인의 얼굴을
허공에 담배연기 속에 그 까만 눈을
내 고뇌의 무덤 그 하얀 유방과
달빛에 젖은 골짜기 그 축축한 허벅지를
눈을 감고 그린다 허공에 담배연기 속에

오 부챗살처럼 펼쳐지는 여인의 몸 밤의 잠자리여
입술을 기다리는 입술
팔을 기다리는 허리
가슴을 기다리는 가슴
오 귀가 멀수록 가깝게 들리는 그대 거친 숨결이여
나는 놓는다 나는 놓는다 나는 놓는다
그대가 마시는 모든 술잔에 나의 입술을
그대가 만지는 모든 사물에 나의 무기를
그대가 그리는 모든 그리움에 나의 노래를
깊고 깊은 골짜기에서 그대는 갈증의 샘처럼 흐르고
나는 땅속 깊이 그대를 파헤쳐 하늘 아래 별처럼
붉은 아기 하나 태어나게 하고 싶다

([고뇌의 무덤] 전문)



남녀의 사랑까지도 유물론적 전투성을 바탕으로 한다. [고뇌의 무덤]은 에로티시즘의 절창이라고 할만하다. 그러나 그 사랑은 '붉은 아기'를 태어나게 하는 혁명의 메타포이다.

그는 철저하게 막시스트였다. 막시즘의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실천논리와 유물변증법이 그의 시적 토대이다.
 전자는 세계를 해석할 것이 아니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고, 후자는 인간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식론적 편향성을 가지고 있는 그가 시 쓰는 이유를 "변혁운동의 사회적 토대이며 원동력인 대중의 정서와 이성에 어떤 변화를 일으켜 대중들 스스로가 현실에 대한 바른 이해와 변혁의지를 갖도록 하는 데"에 두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시가 평이하고 논리 정연한 어법으로 대중을 가르치려고 한 작품이 많다는 것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김남주는 체험적 진실과 시를 동일시한다. "위대한 작품을 창조해내는 유일한 길은 위대한 삶인 것이다"라는 명제를 시금석으로 삼기 때문에 그의 시는 체험의 세계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시들은 그의 인간적 체험 모두를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는 그의 시들만 읽어가도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시적 주체인 화자가 대부분 김남주이거나 그를 닮은 '전사'이다. 그는 자신의 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내 시의 내용은 맑은 공기, 깨끗한 물, 따뜻한 불, 밥이며 집이며 옷이며 학교며 노래며, 이런 것들을 갖고 싶어하되 그것을 제 뼈와 살의 노동으로 만들어내는 노동자 농민에 대한 애정이고, 기본적인 그런 것들을 갖고 싶어하면서도 그것을 남의 노동의 대가를 착취함으로써 독점하려는 자들에 대한 증오이고, 증오의 대상 '나쁜 사람들'을 찾아 무기를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찬가이다.

김남주 시의 큰 구도는 못 가진 자들에 대한 애정과 가진 자들에 대한 증오를 예각화하는 것이고, 노동의 대가를 착취하여 자본을 독점하는 '나쁜 사람들'과 '솔연'처럼 싸우기 위해 무기를 버리는 사람(혁명전사)들을 찬양하는 것이다.

그가 추구한 시의 길은 계급해방을 기저에 깔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억압의 사슬에서 민중이 풀려나는 길이고/ 외적의 압박에서 민족이 해방되는 / 노동자와 농민이 자본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길])로 세분화되었다.



나의 양심은 혀가 되었다


허공에서 헐떡거렸다 똥개가 되라면


기꺼이 똥개가 되어 당신의


똥구멍이라도 싹싹 핥아 주겠노라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의 싸움은 허리가 되었다 당신의

배꼽에서 구부러졌다 노예가 되라면


기꺼이 노예가 되겠노라 당신의


발밑에서 무릎을 꿇었다 나의

양심 나의 싸움은 미궁(迷宮)이 되어


심연으로 떨어졌다 삽살개가 되라면


기꺼이 삽살개가 되어 당신의


손이 되어 발가락이 되어 혀가 되어


 
삽살개 삼천만 마리의 충성으로

쓰다듬어 주고 비벼 주고 핥아 주겠노라


더 이상 나의 육신을 학대 말라고


하찮은 것이지만 육신은 나의


유일(唯一)의 확실성(確實性)이라고 나는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나는


손발을 비볐다 나는


2
쓰고 있다


지금 나는 쓰고 있다


세 겹으로 네 겹으로 갇혀 쓰고 있다


내 탓이다라고


서투른 광대의 설익은


장난 탓이다라고


어설픈 나의 양심 탓이라고


미지근한 나의 싸움 탓이다라고


모두가 모든 것이 내 탓이다라고


나는 지금 쓰고 있다


움푹 패인 주먹밥 위에


주먹밥에 떨어진 눈물 위에


눈물 같은 국물 위에


환기통 위에 뺑끼통 위에


시멘트 바닥에 허공에 천장에


벽 위에 식구통 위에


감시통 위에 침 발라


손가락으로 발가락으로 혓바닥으로


마르도록 벗겨지도록


피나도록 쓰고 있다

 

여러 골이 쑥밭이 된 것도


여러 집에 뒤집힌 것도


설익은 광대의 서투른


장난 탓이라고 함께


사랑했다는 탓으로 불려다니고


끌려다니고 밥줄이 막히고 끊어지고


스승의 난처한 입장도 나의


어설픈 양심 탓이다라고


법관의 어색한 표정도


간수의 안타까운 동정도


또 누구의 미안한 응원도 모두가


모든 것이 내 탓이다라고

 

공포(恐怖)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캐내는 데


가장 좋은 무기(武器)이다라고


3
참기로 했다


어설픈 나의 양심과 나의


미지근한 싸움은 참기로 했다


양심이 피를 닮고


싸움이 불을 닮고


피와 불이 자유를 닮고

 
자유가 시멘트바닥에 응집된

피 같은 불 같은 꽃을 닮고


있다는 것을 배울 때까지는


응집된 꽃이 죽음을 닮고


있다는 것을 알 때까지는


만질 수 있을 때까지는


온몸으로 죽음을


포옹할 수 있을 때까지는


칼자루를 잡는 행복으로


자유를 잡을 수 있을 때까지는


참기로 했다


어설픈 나의 양심


미지근한 나의 싸움


양심아 싸움아 너는


차라리 참아라 차라리


참는 게 낫다고 참아라

([진혼가] 전문)



이 시는 《창작과비평》 1974년 여름호(32호)에 그가 처음으로 문단에 시를 발표한 8편중의 하나이다. 이 시도 "하찮은 것이지만 육신은 나의/ 유일(唯一)한 확실성(確實性)"이라고 믿는 유물론적 인식태도가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시적 주체는 1973년 '함성지 사건'으로 취조를 받을 때 총구가 머리숲을 헤치는 극단적인 죽음의 공포 앞에서 얼마나 무참하게 굴복하고 말았는가를 통렬하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미지근한 싸움에 대한 처절한 자기반성에서 그는 감방에서 주는 주먹밥과 거기에 떨어지는 자신의 눈물과 국물과 환기통, 뺑끼통(변기), 시멘트바닥, 허공, 천장, 벽, 식구통, 감시통 위에 침을 발라 손가락, 발가락, 혓바닥으로 '마르도록 벗겨지도록 피나도록' 모든 것이 자신의 미지근한 싸움 탓이라고 쓴다.

이렇게 처절하게 쓰는 행위는 자기반성이며 그의 시이기도 하다. 한국 현대시에서 부당한 권력에 굴복하고 이처럼 처절하고 통렬하게 자기반성을 수행하고 있는 시가 있었는가? 염무웅이 "김남주의 싸움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남이 대신하기 어려운 무기는 그의 대책없는 순결성이다."라고 말한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따라서 이 시는 총구로 인해서 영혼이 파괴되었는데 이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는 방식이면서 동시에 미지근하고 어설픈 투쟁과 설익은 양심을 지닌 생활인으로서 김남주를 조상하는 진혼가이고, 혁명 전사로서 시인의 출발을 알리는 선언문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가 미지근한 싸움을 참기로 한 것은 혁명가의 전술에 의한 것이다. 이것은 '피의 교훈'으로서 반격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의미한다. '남민전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으로 넘어가면서 뒤에 남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 동지들에게 유언처럼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화자는

"역사의 변혁에서 최고의 덕목은 열정이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다 된 것은 아니네 지혜가 있어야 하네/ 지혜와 열정의 통일 이것이 승리의 별자리를 점지해준다네/ 한마디 더 하고 싶네 적을 공격하기에 앞서/ 반격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공격을 삼가게 패배에서 맛본 피의 교훈이라네"([마지막 인사])라고 말하고 있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만반의 준비는 곧 "온몸으로 죽음을/ 포옹할 수 있을 때," "칼자루를 잡는 행복으로/ 자유를 잡을 수 있을 때"이다. "다시 한번 칼자루를 잡아 보기 위해서"는 살아 남아야 하고, 아낌없이 가진 것을 내줄 줄 알아야 하는데, 예를 들면 "개떡인 양 한 점 살점이라도/ 선뜻 던져줄 줄 알아야"([일보전진 이보후퇴]) 진정한 혁명가"라는 것이다.

열정과 지혜의 통일을 이룬 혁명전사의 덕목은 때를 기다려 승리를 쟁취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그 승리는 전사의 자기희생에 다름 아니다.


꽃이다 피다
육신이다 영혼이다
그대는 영혼의 왕국에서
육신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그대는 피의 꽃밭에서
영혼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파도의 침묵 불의 노래
영혼과 육신은 어떻게 만나
꽃과 함께 피와 함께 합창하던가
숯덩이처럼 검게 타 버리고
잿더미와 함께 사라지던가

([잿더미] 부분)


그대가 한 발자국 전진하면
그 뒤에는 피가 강물이 되어 흐르고

그대가 한 발자국 물러나면
그 앞에는 시체가 산이 되어

오 자유여 무서운 이름이여
나는 부르지 않으리 그대 이름을 함부로

내란의 무기 위에서 시가전의 바리케이드에서
피의 꽃으로 내가 타오르는 그 순간까지는

([꽃이여 이름이여 자유여] 부분)


그의 시에서 '꽃'은 혁명을 실천하는 육신을 상징하고, 피는 자유를 부르는 고귀한 영혼을 가리킨다. 그 육신과 영혼이 혁명의 실천 과정에서 "숯덩이처럼 검게 타 버리고/ 잿더미와 함께 사라"진다는 것은 "내란의 무기 위에서 시가전의 바리케이드에서/ 피의 꽃으로 내가 타오"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것은 '피의 꽃으로 내가 타오르는' '전사'의 자기 희생만이 자유를 쟁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천명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소망의 시적 형상이다. 그에 따르면 "싸움을 낳는 죽음보다 아름다운 죽음은 없"기 때문이다.

불의에 투쟁하다 죽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움이며, 이것이 역사에의 진보를 가능하게 했다는 시적 인식이다.

그가 시속에서 보여주는 '혁명의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 도피와 투옥의 길이고/ 죽음으로써만이 끝장이 나는 긴긴 싸움"([혁명의 길])이었다. 그래서 "기어코/ 어둠을 사르고야 말 불빛"([솔직히 말해서 나는])이 되고자 했던 이 같은 도덕적 우월성과 혁명적 열정이 김남주 시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미지근한 싸움은 역사 앞에서 유죄가 된다.([시집 {진혼가}를 읽고]) 따라서 '투쟁의 그날그날'이 김남주에게는 시의 요람이었다.

"혁명이 나의 길이고 그 길을 가면서/ 부러진 낫 망치 소리와 함께 가면서/ 첨으로 시라는 것을 써보게 되었다고/ 노동의 적과 싸우다 보니 농민과 함께 노동자와 함께/ 피 흘리며 싸우다 보니/ 노래라는 것도 나오더라고 저절로 나오더라고/ 나는 책상머리에 앉아 시라는 것을 억지로 써본 적이 없다고/ 내 시의 요람은 안락의자가 아니고 투쟁이라고 그 속이라고/ 안락의자야말로 내 시의 무덤이라고"([시의 요람 시의 무덤]) 노래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우리는 그가 감옥에 있을 때 오히려 더 행복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래서 그의 옥중시들이 더욱 시적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4.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직접성과 서정적 진실



김남주의 시가 '전사의 찬가'로서 시적 형상성을 얻는 것은 단숨에 문제의 핵심에 육박해서 촌철살인하는 직접성에 있다.

시적 주체가 물러설 수 없는 싸움에 임하는 전사이기 때문에 살기(殺氣)에 가까운 적의를 가지고 적과 대치하는 긴장된 투쟁상황이 시의 형식을 간명하게 만든다. 군더더기 없는 진술은 문제의 핵심으로 곧바로 치고들어 시를 무기로 만든다.

예를 들면 "시인이여/ 누구보다 먼저 그대 자신이/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시인이여/ 누구보다 먼저 그대 자신이/ 압제자의 가슴에 꽂히는/ 창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시인이여])의 경우에서처럼 실천 없이 입으로만 자유 평등과 투쟁을 노래한 시인에게 거침없이 일침을 놓는다.

이런 시작법은 시적 대상을 간접적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기존의 시문법을 무질러버린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고
주인이 종을 깔보자
종이 주인의 모가지를 베어버리더라
바로 그 낫으로.

([낫] 전문)


종으로 상징되는 민중의 분노와 복수를 그 어떤 수식도 없이 섬뜩하게 보여준다. 가진 자에 대한 증오를 넘어서서 광기에 가까운 분노의 폭발이다. 유대인들의 지혜서인 {탈무드}에서는 복수와 증오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자네가 나에게 낫을 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말을 빌려줄 수 없네"라고 한다면 '복수'이고, "자네가 낫을 빌려주지 않았지만 나는 자네에게 말을 빌려주겠네"라고 한다면 증오이다.

김남주의 시에서는 점잖은 증오의 차원을 훨씬 뛰어 넘어버린다. 피아의 관계설정 자체가 목숨을 담보하여 싸우는 전장이다. 이렇게 긴장된 전투적 정신의 백열상태가 '허위의 장막'을 헤치는 '시인의 칼'([하늘과 땅 사이에])로서 촌철의 시 형식을 가능하게 하고, 그러한 시는 '피묻은 진실'을 알몸으로 드러낸다. 이것이 [나의 칼 나의 피]의 세계이다.


미군이 있으면
삼팔선이 든든하지요
삼팔선이 든든하면
부자들 배가 든든하고요

([쓰다 만 시] 전문)

미군이 없으면
삼팔선이 터지나요
삼팔선이 터지면
대창에 찔린 깨구락지처럼
든든하던 부자들 배도 터지나요

([다 쓴 시] 전문)


위의 두 시는 상호텍스트적으로 읽어야만 시적 긴장과 의미가 살아난다. 김남주 시의 한 축인 반외세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시는 분단국가인 현실에서 부자들이 미군의 보호를 받으며 든든하게 잘 살고 있는 현실과 그런 현실의 파괴를 두려워하는 부자들의 허위의식을 섬뜩한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그에게 미국은 "침략과 약탈로 거재를 쌓아올린 마천루의 나라"([아메리카여 아메리카여 아메리카여])이기 때문에 "내가 죽어 차라리 개로 환생할 수 있다면/ 내 눈엣가시 주둔군의 저 철사줄이라도 물어뜯을 것을/ 내 증오의 깃발 성조기에 대고 울부짖기라도 할 것을"([동두천에서])하고 염원하기도 한다.

이러한 민족의 문제는 "조국은 하나다"라는 슬로건으로 응집된다.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 모르게가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권력의 눈 앞에서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
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조국은 하나다] 부분)


하나된 조국을 방해하는 세력은 크게 세 가지이다. 하나는 인간다운 삶을 구속하는 독재권력으로 시속에서 '권력의 눈'으로 구체화되었다. 또 하나는 민족해방을 가로막는 외세인데 이것은 시속에 '양키 점령군의 총구'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계급해방과 평등사회를 가로막는 자본가계급으로 이 시속에서는 '자본가 개들의 이빨'로 이미지화되었다. 이 방해 세력이 적이고, 이 적을 물리치기 위한 전사가 시인이며, 그 시인의 슬로건이 "조국은 하나다"이다.

김남주의 이러한 슬로건이나 선전선동시들은 역사에 대한 성급한 열망에서 연유한다. 이런 시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대중을 지나치게 피동적인 존재로 설정한다는 데 있다. 변혁운동에 나설 것을 목청껏 외친다고 변혁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독자 대중들이 능동적으로 변혁운동에 참여할 때 변혁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시는 답답한 현실일지라도 그 현실을 집요하게 추구하여 그 본질을 드러냄으로써 독자 대중이 스스로 변혁의 방향과 동력을 찾아내고 이를 자각하는 데 있다.

이런 선언적 명제로서의 슬로건이나 선전선동이 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와 같은 이야기 시(narrative poem)가 가지고 있는 솔직성과 냉혹한 자기비판, 그리고 곧바로 진실에 육박하는 촌철살인의 직접성, [어떤 관료] 등에서 쓰인 풍자나 알레고리 등 다양한 기법을 동원한 혁명적 대중성 등이 시적 형상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알레고리적 상징의 사용을 예로 들면, "이 길로 가다 오른 쪽으로 꺾으면 노예의 길이고/ 저 길로 가다가 왼 쪽으로 펴지면 해방의 길이다/ 옳지 옳지"([옳지 옳지])와 같은 경우, 우익은 노예의 길이고 좌익은 해방의 길인데 전자는 꺾이고 후자는 펴진다는 이미지가 부각된다.

시적 사유가 여기와 저기, 오른쪽과 왼쪽, 노예와 해방, 꺾이고 펴지고 등 철저하고 단순하게 이분법적이지만 이것들이 서로 대위법적으로 맞물리면서 좌우익에 대한 시인의 정치적 이념이 구체적 형상을 얻는다.

이처럼 시적 사유가 이분법적인 까닭은 시인의 효용론적 문학관에서 연유한 것인데, 몽매한 대중으로 하여금 진취적이고 혁명적인 정서를 배양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의 대중성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시를 시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혁명적 서정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서정성은 철저한 자기성찰을 거치고 나서야 가능하다. 대지적 상상력에 기대고 있는 김남주의 시가 자신의 생활 기반을 벗어나면 공허한 관념의 차원에 머물고 만다.

시인이 "생활의 이 기반에서 내가 발을 떼면/ 내 시는 깃털 하나 들어올리지 못한다"([다시 시에 대하여])고 언표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시가 관념의 차원에서 벗어나 구체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사실에의 통각이었다.

그가 자신의 현실을 얼마만큼 집요하게 추구하면서 과장하지 않고 자신의 삶으로의 성찰로 내면화시켰느냐에 따라 시의 성패가 좌우된다. 다음과 같은 시는 그러한 내면화가 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나를 태운 압송차가
낯익은 도시 거리의 인파를 빠져나와
들판 가운데를 달린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만큼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에서
숫돌에 낫을 갈아 나락을 베고 있는 아버지의 논에서
빙둘러 서서 염소에게 뿔싸움을 시키는 아이들의 제방에서
내려서 그들과 함께 일하고 놀고 싶다
내려서 손발에서 허리에서 이 오라 풀고 이 사슬 풀고
내달리고 싶다 아이와 같이 하늘 향해 두 팔 벌리고
내달리고 싶다 발목이 시도록 논둑길을
내달리고 싶다 가슴에 바람 받으며 숨이 차도록
가다가 목이 마르면
손으로 표주박을 만들어 샘물로 갈증을 적시고
가다가 가다가 배라도 고프면
땅으로 웃자란 하얀 무우를 뽑아 먹고
날 저물어 지치면
귀소의 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그러나 나를 태운 차는 멈춰주지 않고
들판을 가로질러 역사의 강을 건넌다
갑오농민들이 관군과 크게 싸웠다는 황룡강을
여기서 이기고 양반과 부호들을 이기고
장성갈재를 넘어 전주성을 넘보았다는
옛 쌈터의 고개를 나도 넘는다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 되어.

([이 가을에 나는] 부분)


시적 주체는 열정적 파토스를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자신의 처지와 희망을 점검한다. 다른 감옥으로 이송되면서 느끼는 소망이 어린 날 자신이 체험했던 고향을 추체험하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체험의 세계는 가장 구체적이고 자유로운 곳이다. 이 세계가 감옥이라는 세계와 대비되면서 시적 주체의 자유에 대한 간절함이 뚝뚝 묻어난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를 태운 차가 들판을 가로질러 '역사의 강'을 건넘으로써 시인의 인식의 지평이 넓어진다.

지금 이 순간 감옥살이하면서 장성 갈재를 넘는 행위 자체가 동학혁명 때 동학도들이 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 넘었던 행위와 겹치면서 동일시된다. 이것은 곧 자신의 수인생활이 동학의 떨쳐일어섬과 다름없다는 역사인식이다.

이 같은 내성적 사유를 거쳐 이루어진 시들은 독자 대중을 단순하게 피동적 존재나 계몽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자신과 함께 가야 할 능동적 존재로 설정함으로써 시적 형상성을 얻고 독자에게 감동을 준다.

시인은 모름지기 삶 앞에 다소곳하게 서서 귀 기울여야 하는 것, 그의 시적 표현대로 한다면 "파란만장한 삶/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는 돌아와 마을 어귀 같은 데에/ 늙은 상수리나무로 서 있는/ 주름살과 상처자국투성이의 기구한 삶 앞에서/ 다소곳하게 서서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시인은 모름지기])이 필요하다.

이런 성찰을 거치고 난 다음 시인이 추구하는 삶의 모습은 혁명적 서정성을 동반한다.


한파가 한차례 밀어닥칠 것이라는
이 겨울에
나는 서고 싶다 한 그루의 나무로
우람하여 듬직한 느티나무로는 아니고
키가 커서 남보다
한참은 올려다봐야 할 미루나무로도 아니고
삭풍에 눈보라가 쳐서 살이 터지고
뼈까지 하얗게 드러난 키 작은 나무쯤으로
그 나무 키는 작지만
단단하게 자란 도토리나무
밤나무골 사람들이 세워둔 파수병으로 서서
그 나무 몸집은 작지만
다부지게 생긴 상수리나무
감나무골 사람들이 내보낸 척후병으로 서서
싸리나무 옻나무 나도밤나무와 함께
마을 어귀 한구석이라도 지키고 싶다
밤에는 하늘가에
그믐달 같은 낫 하나 시퍼렇게 걸어놓고
한파와 맞서고 싶다

([이 겨울에] 전문)  


해방공간에서 백석이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를 정신적으로 닮아가려고 했다면 김남주는 1980년대 민주화의 시대에 "삭풍에 눈보라가 쳐서 살이 터지고/ 뼈까지 하얗게 드러난 키 작은", "싸리나무 옻나무 나도밤나무와 함께/ 마을 어귀 한구석이라도 지키"는 '도토리나무'나 '상수리나무'를 닮아 '한파'로 상징되는 압제를 막아내기 위해 '파수병'이나 '척후병'으로 행동할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런 소망이 구체적인 이미지와 메타포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김남주 시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김남주는 민중이 해방되기를 바라는 혁명의 노래를 부르다 갔다 . '피로 씌어진 언어의 화살'인 그의 시에는 '피묻은 진실'이 담겨 있고, 그런 진실은 한국문학의 형상적 이념으로 계승되어 갈 것이다. 마치 김수영과 김지하가 각각 1960년대와 1970년대 시정신의 벼리 역할을 담당했듯이 김남주는 1980년대 우리 시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당했다.

고은 시인이 그의 시야말로 "우리 자신들의 비겁을 깨뜨리게 하는 사상과 정서의 무한 교직의 폭력"이라고 언급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런 폭력적 이념이 [진혼가], [이 겨울에], [이 가을에 나는], [쓰다 만 시], [다 쓴 시], [낫], [어떤 관료], [고뇌의 무덤] 등과 같은 몇 작품에서 육체를 얻었다.

혁명적 이념이 시적 육체를 얻을 수 있었던 가장 주요한 요인은 시인의 처절하리만큼 냉엄한 자기반성과 내성적 사유, 그리고 현실의 본질과 진실을 촌철살인하는 직접성과 혁명적 서정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