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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8. 20:32산행기 & 국내여행/여행정보 & 여행기 펌.





비닐봉투 책가방에 담긴 희망



두 번째로 학교를 방문하던 날, 대강당에 전교생이 모여 아침조회를 하고 있었다.

조회는 명상으로 시작됐다.

지구상의 모든 지각 있는 존재들을 위해, 그 존재들의 행복과 고통 없는 삶을 위해 명상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경이로웠다.

명상이 끝난 후에는 교호흡으로 마무리를 했다.

이 학교의 모든 수업은 명상으로 시작해 명상으로 끝나고 있었고, 아이들은 정기적으로 요가 수업을 받고 있다.

학교를 둘러보는 내내 아이들은 외국인인 나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수줍어했지만, 눈빛은 맑았고, 행동은 예의 발랐다.

대부분 아이들이 책가방도 없이 비닐봉투에 책을 넣어 등교하고 있었지만, 옷차림이며 머리 손질이 모두 깨끗했다.

무엇보다 그늘 없는 표정과 환한 미소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이동 병원이 절망적인 현실에 대한 확인으로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이 학교의 아이들은 인도의 밝은 미래를 말해주는 것 같아 마음을 환하게 했다.

부모가 남겨주는 유일한 유산인 가난을 극복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

고질적인 신분제와 종교 갈등, 무수한 편견과 벽이 없는 새 세대가 자라나고 있다는 희망.

삶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여건을 일방적으로 수용해야만 하는, 이길 확률이 극히 낮은, 이 처절한 싸움터에서,

어쩌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아이들은 그 희망을 증거하고 있었다.

보드가야를 떠나던 날,

나는 명상센터로 가 병원 앞으로 기부금을 냈다. 물론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었다.

센터를 나서며 마음을 다졌다. 작년 가을, 빼마와 잠양의 꿈을 위해 열었던 제1회 작은 음악회.

올 가을 두 번째 작은 음악회는 이곳 병원을 위해 열겠다고.

병원과 학교의 1년 예산의 10분의 1을 모으는 것. 그 일이 제 2회 작은 음악회의 목표가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안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있지 않느냐,

그 사람들부터 돕는 게 순서 아니냐고.

그 주장은 내가 먹고살만 해야 남을 도울 수 있다는 논리와도 맥을 이어간다.



이웃에게 손을 내밀 때는 바로 지금이다

길 위에서 만났던 사람들, 내게 손을 내밀고, 뭔가를 나눠주려 했던 이들은 언제나 물질적으로는 나보다 더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때, 나보다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서 베풂을 받고 있을 때, 가난한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나였다.

지금 이웃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는 이들은 아마도 오래도록, 어쩌면 평생 손을 내밀지 못할지도 모른다.





▲ 곧 있을 발표회를 대비해 학생들이 노래극을 연습하고 있다.

강당 벽에는 힌두교, 이슬람, 불교, 시크교, 기독교의 상징이 나란히 붙어있다.  
ⓒ2005 김남희



먹고살 만하게 되면 누구나 어려웠던 지난 날을 쉽게 잊는다.

돌아보면 우리 역시 외국의 원조와 도움으로 삶을 연명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을 이미 잊어버렸기에 우리는 이웃의 가난을 그들의 무지와 게으름 때문이라고 쉽게 탓하는 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누리는 안락한 생활이 누군가의 몫으로 돌아가야 할 것을 빼앗은 거라는 생각을 해 볼 수는 없을까?

나 역시 나이 서른을 훌쩍 넘길 때까지 빈약한 내 몫이나마 뺏기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며, 더 갖기만을 열망하며 살아왔다.

그 얼마 갖지 않은 것들을 내려놓고 길 위에 섰을 때, 세상은 내게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아 가기 시작했다. 더 많이 가지려 할수록 공허해질 뿐이고, 삶은 비울수록 채워진다는 것을.

삶의 질은 더 많이 갖는 데서 결정되는 게 아니라 덜 갖되 더 충실한 삶을 사는 데 있다는 것.

나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나누며 살아야 할 때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있다.

‘겨우 이걸로 어떻게 세상을 바꿔낼 수 있겠어?’
‘이게 무슨 큰 도움이 되겠어?’

앉은 자리에서 불평만 하며 의심하고 망설이기만 하는 삶의 태도는 이제 버리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아서, 그 일을 성실하게 해 내며 살아가고 싶다.

내 삶이 그렇게 변해갈 때, 내가 가진 희망의 양도 커질 것임을 믿는다.

보드가야는 내게 그 소중한 삶의 태도를 다시 일깨워준 곳이었다.






▲ 미륵불 학교의 모든 수업은 명상으로 시작하고, 명상으로 끝난다  
ⓒ2005 김남희




---------------------------------------- 덧붙이는 글 ----------------------------------------




병원과 학교 모두 자원봉사자를 환영한다.

병원은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의 자원봉사를 받고 있으며, 최소 3개월 이상 거주해야 하며 영어가 필수이다.

자원봉사자들에게 보수는 없으나 숙소와 식사는 제공된다.

학교는 영어교사, 교재 개발, 교육 내용 개발, 교사 훈련 등의 분야에 있어 자원봉사자를 받고 있다.

물론 두 곳 모두 각종 구호품과 기부금도 환영한다.

병원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은 담요와 겨울옷

 - 이곳의 겨울은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없지만, 추위에 익숙하지 않아 해마다 많은 동사자가 생겨난다 - 

비타민 등이다.

무엇보다 필요한 건 물론 그 모든 물품과 약품을 구입할 수 있는 돈이다.

한 주에 6일 운영하던 이동병원은 비용 문제로 5일로 감소했고, 의약품이 부족해 환자 치료에 제약이 많은 실정이다.

현재 의사 4명이 하루 평균 250명의 환자를 진료하는 이 병원의 1년 예산은 우리 돈 5000만원이며

 그 돈은 대부분 서양인들의 기부로 모아진다.

학교의 재원 역시 싱가포르, 홍콩, 호주, 유럽의 기부자들이 지원하는 연간 5만 달러의 비용으로 충당된다.

120달러를 기부하면 학생 한 명을 일년간 후원하는 셈이 된다. 각종 문구용품과 책가방 등의 물품 지원도 환영한다.

www.maitreyaeducation.org
www.rootinstitute.com







지금까지 게시한 김남희 여행기를 퍼온 곳 : 

 http://cafe.daum.net/sungkwang19/NMej/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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