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있는 도시』

2019. 8. 26. 08:48미술/미술 이야기 (책)





이 책의 글들은 사회비평산문인 동시에 미술비평산문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그림 읽기(회화비평)를 매개로 한 사회비평이다.

미술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사를 더 잘 기억하게 하고,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미술은 사색과 철학과도 친근한 장르이기도 하다.

음악 무용 영화 등 시간의 한정 속에 감상하는 예술과 달리,

미술을 감상할 때는 시간의 구속을 좀처럼 받지 않는다.

이렇듯 미술의 힘은 사색을 초대하는 특유의 성질에 있다.

말보다 글이, 글보다 이미지가 이 힘에서 월등하다.





각성 없는 그 시대를 허균은 이렇게 묘사했다.

"항상 눈앞 일에 얽매여 법이나 지키며 윗사람에게 부림당하는 사람들을 '항민(恒民)'이라 한다.
항민은 두렵지 않다.
두려워해야 할 백성은 天地間을 흘겨보다가 시대적 변고가 있으면 소원을 실현하고 싶어 하는 '호민(豪民)'이다.
호민이 팔을 휘두르며 소리 지르면 항민도 호미 들고 따라와 무도한 놈들을 쳐 죽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세금 5푼을 내면 4푼은 간사한 개인에게 흩어진다.
관청이 가난해 일만 있으면 1년에 세금을 두 번씩 매기고 수령들은 마구 거둬들인다.
그럼에도 위에 있는 사람은 태평스러운 듯 두려워할 줄을 모르니, 호민이 없기 때문이다."


- 허균, '호민론(豪民論)',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11권 '문부(文部)')



왜 호민이 없었는가. 조선 정부가 호민이 될 여지를 없앴기 때문이다.
'천지간 흘겨볼' 여유를 없애버리고 농사나 짓고 충성과 효도를 다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쉽고 효율적인 문자를 가진 나라 백성은 그렇게 살았다.
1771년 찌는 여름날 경희궁 궁내에서 발가벗긴 채 죽음을 기다리던 책장수들 운명이 그러하였다.




철학이 있는 도시

철학이 있는 도시 그림으로 읽는 우리 시대, 한국 도시 인문학

2016. 2



『철학이 있는 도시』는 고대와 현대,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미술작품을 통해

휴전 후 한국사, 우리 시대, 도시, 집단과 개인의 문제를 탐색한 책이다.

저자는 개개인의 인간적 삶이 처참히 무너져내리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이해하기 힘든 사태를 당연시하는 태도에 제동을 걸며,

한국인의 당대 이해, 자기 이해를 돕고자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강세황, 김수철, 이인문에서 민정기, 임옥상, 반 고흐, 클로드 모네, 알프레도 마르티네스에 이르기까지

50여 장의 다채로운 미술작품은 오늘날 한국과 한국인, 도시의 문제를 탐색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한편,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사색과 철학의 길을 열어 주는 힘을 발휘하여

과거사를 더 잘 기억하게 하고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준다.


저자 우석영은 철학, 사회학 분야 연구자이자 작가.
연세 대학교, 시드니 대학교 대학원, 뉴사우스웨일스 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 문학, 철학을 공부했다.
환경철학, 문명론, 평화학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인문사회과학과 과학의 융복합 글쓰기를 추구한다.
환경철학회, 녹색아카데미 등에서 활동 중이며, 환경담론 영문 페이스북 페이지 Food Peace를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한자어의 기원 연구를 철학적 사유와 접맥한 교양철학서 『낱말의 우주 : 말에 숨은 그림, 오늘을 되묻는 철학』,
나무를 주제로 문학, 철학, 인류학, 생태학을 아우르며 펴낸 책 『수목인간 : 나무의 시학, 나무의 생태학』,
『녹색당 선언』(공저)이 있다.
옮긴 책으로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 『페어 푸드』,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등이 있다.




목차


|서문 | 콜라주로 본, 당대 한국 도시와 한국인

1장. 공포의 대물림이라는 악순환의 회로

 
알베르트 앙커 《선데이 스쿨 워크》, 《건초더미에서 자는 아이》
이경현 《컨센트레이트》
박용빈 《학교 야경》
샤임 수틴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하교》

2장. 거류민국의 아파트

 
정재호 《청운동 기념비》
임옥상 《이사 가는 사람》
김정헌 《아파트에 한 뼘의 땅을 선사함》

3장. 장소정체성과 평화

 
게오르게 그로스 《메트로폴리스》
폴 시냑 《베생 항, 칼바도스》
심사정 《임간서옥》

4장. 레시피 시대의 식사 철학

 
조지 투커 《점심》
시그마 폴케 《슈퍼마켓》
피에르 보나르 《베르농의 테라스》

5장. 음식, 도시인의 자기 이해 관문

 
칸지두 포르치나리 《커피 수확》, 《커피 농부》
알프레도 마르티네스 《과일 든 여인들》
라울 뒤피 《아름다운 여름》
김정헌 《흙산》

6장. 인간에서 고객님으로, 인격 마케팅 시대를 애도함


오윤 《마케팅 2-발라라》
딘호 벤토 《인간 동물 II》
조지 투커 《웨이팅 룸》
최동열 《서커스 독》

7장. 프레카리아트의 탄생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프롤레타리안 마더》
빈센트 반 고흐 《아니에르의 공장》
임옥상 《행복의 모습》
게오르게 그로스 《실직 상태》

8장. 고속 문명,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베르나르 간트너 《석양 쪽으로 향하는 증기기관차》
라울 뒤피 《전기 요정》
로베르 들로네 《행진의 현장-붉은 타워》
윌리엄 터너 《비, 증기, 속도-위대한 서부철도》

9장. 모바일링의 시대, 단순과 평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클로드 모네 《눈 속의 산드비켄 마을》
스튜어트 데이비스 《멜로우 패드》
탕인 《동음청몽도》

10장. 휴식이 능력이 된 시대


강세황 《초옥한담도》
김수철 《송계한담도》
이인문 《송계한담도》

11장. 걷기 예찬

 
빈센트 반 고흐 《몽마르트의 밭》
클로드 모네 《부기발의 센》
폴 세잔 《굽어 들어가는 숲길》

12장. 도시엔 숨 붙은 것들이 많다

 
게오르게 그로스 《로우어 맨해튼》
라울 뒤피 《볼로뉴 거리》
바실리 칸딘스키 《운동 I》
도화서 《동궐도》
정선 《삼승조망》

13장. 생명의 침몰, 신이 된 ...손 

 
이난영 《우리가 꽃이 되고 나무가 되리》
키비인 《인바이런-멘털: 기후 혼돈과 오염》
디에고 리베라 《무어 박사의 손》

14장. 야만과 야만 사이에서, 또는 문명의 이상

 
윌리엄 터너 《눈 폭풍: 어느 항구 초입의 증기선》
현혜명 《숲 1201》
민정기 《양평 여름》



| 도판 찾아보기 |





책 속으로

“삶을 견딘다는 것, 삶을 지나간다는 것, 삶이 그럭저럭 살아진다는 것.

이것과 삶을 살아간다는 것, 순간순간 풍요로운 지금, 자신의 온전성을 느끼며 삶을 즐겁게 살아간다는 것은 굉장히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쪽인가요?

여기 이 땅,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우리는 위기의 시대, 새로운 가치의 모색기에 도달해 있습니다.”

- 저자의 말 중에서

“오늘날 우리는 이 시대를 압축성장 시대라 부르는 데 별다른 이견을 제기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는 이 압축성장 시대를 되돌아보며, 단기간에 이룩된 산업화와 민주화를 내외에 자랑스레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는 압축성장, 산업화, 민주화의 결과가 무엇인지,

지금 우리가 대도시에서 과연 어떤 모양새로 살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 명확히 알지 못하며 분명히 말하지 못한다.

우리 자신이 도시살이라는 현실에 매일같이 매몰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삶의 양태가 매우 복잡하고 모순적이어서 우리 스스로 이해하기 어려운 탓도 있을 것이다.

…… 오늘날 어떤 모양새로 도시살이를 하고 있느냐는 질문은, 왜 이런 모양새로 살고 있느냐는 질문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오늘날의 어떻게를 캐보다 보면, 이 어떻게의 형성사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 보면 저 왜의 문제와 답변이 표면에 나타난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대도시는 전후(戰後)의 재건 도시인 바,

당대 한국의 도시와 도시의 삶을 논하기 위해서는 이 재건의 역사, 60여 년에 이르는 현대사를 톺아볼 수밖에는 없다.

이 재건의 시대를 들여다보는 역사사회학은 우리가 왜 이런 모양새로 살게 되었는지, 다른 길은 없는지,

자성하고 모색하는 철학을 열어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국가가 언제나 강조되며 국민 위에 군림해왔지만,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보호하는 국가 없는 국가주의라는 모순적인 사태는, 이 난해한 사태의 한 가지 예에 불과하다.

사실상 독점재벌이 전 국민을 고객으로 환원해 그 삶과 정신의 세세한 구석까지 지배하고 있는데도,

그 피지배의 당사자들은 재벌을 지배자로 인식하기는커녕 명예로운 한국의 대명사로 호출하는 데 망설임이 없는데,

이러한 사태도 받아들이기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

 …… 특정 영화를 1,000만 명이나 보고, 베스트셀러가 쉽게 조작 가능하며,

 ‘인터넷 검색어 1위’ 따위로 전 국민적 화제를 통일하는 집단주의 도시 문화는,

전 세계에서 그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특이 현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당연시할 뿐 자기이해나 분석, 자성의 대상으로 삼으려 하지 않는다.

이러이러한 삶이 바람직한 삶이라는 표준적인 삶의 모델, 행복의 모델을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이를 의식하며 사는데,

이런 모델화된 삶의 추구 또한 다른 사회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고층 아파트살이를 당연시하고, 고속과 테크놀로지를 탐닉하는 정신 역시 지구상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그 예를 찾기 어렵다.

…… 이 책은,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사...태를 당연시하는 태도에 제동을 걸며,

한국인의 당대 이해, 자기 이해를 돕고자 쓰였다.

대다수의 한국인이 오늘날 도시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 왜 그렇게 살아가게 되었는지,

이 시대의 집합적 삶을 그 근원에서 네비게이팅하는 정신성과 그 뿌리는 무엇인지,

우리 자신에게 비추어주는 책이 되려 한다.”

- 본문 중에서

“미술품 감상이라는 것이 완물상지(玩物喪志)로 전락하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어떤 때 미술은 감상자를 붙들어, 정박하게 한다. 이를 명상의 힘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어떤 미술작품은 어느 순간에 인간의 가슴에 와 박히고

부유하던 존재, 파편화되어 있던 존재를 뿌리내린 존재, 집중된 존재로 승격한다.

말보다는 글이, 이러한 승격의 힘에서 앞서는데, 어느 경우엔 글보다는 이미지가 이 힘에서 월등하다.

가령 태극기에 그려진 문양의 힘은 얼마나 강력한가.

정말이지 어떤 미술품은 우리의 심저(心底)로 곧장 자신을 밀고 들어와 우리를 웃거나 찡그리게 하고,

어떤 때는 우리 자신이 고집해온 삶의 근본 지향과 가치를 통째로 뒤흔들어놓기도 한다.

도시, 철학이라는 두 꼭지점에 미술이라는 꼭지점이 더해 삼각형을 완성한 이유이다.”

- 본문 중에서

 


“그들은 여기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살고 있나?
우리 임시 거주민들.
그릇된 별을 추종하는 우리들은
여기 이 섬에서 난파되었다,
늪에서처럼.”
- 파블로 네루다, 「인간 9」 중에서 
 


젊은 사회학자의 ‘페인팅 토크’로 풀어본 ‘철학이 있는 도시’ 산책기
이방인이 된 자의 눈에 발각된 우리 시대의 민낯은 어떤 모습일까?
당대의 한국, 한국인, 도시, 현대성, 극단화된 자본주의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강세황, 김수철, 이인문에서 민정기, 임옥상, 반 고흐, 클로드 모네, 라울 뒤피,
칸지두 포르치나리, 베르나르 간트너, 알프레도 마르티네스, 딘호 벤토에 이르기까지
고대와 현대,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50여 장의 미술작품 읽기를 통해
현대와 도시의 문제를 탐색하다! 



저자 우석영은 철학, 사회학 분야 연구자이자 집필가로 연세 대학교, 시드니 대학교 대학원, 뉴사우스웨일스 대학교 대학원을 유랑하며 예술사회학, 문학, 철학 분야의 내공을 쌓았다. 예술사회학, 그중에서도 저자의 전공은 미술사회학이었고, 대학을 졸업한 뒤로도 미술에 대한 관심과 공부는 중단해본 일이 없다. 그는 ‘파인 아트(Fine Arts)’라 불리는 장르에 줄곧 매료되어왔는데, 이러한 사정이 이 책의 주제를 풀어나가는 데 미술작품 읽기를 사용하게 된 바탕이 되었다. 시대를 비추는 그림들을 통해 “지금 이 도시에서 우리가 어떻게, 왜 그렇게 살고 있는가”라는 선뜻 답하기 어려운 화두에 독자들이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서고 답을 찾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미술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사를 더 잘 기억하게 하고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
- 알랭 드 보통과 존 암스트롱, 『영혼의 미술관(Art as Therapy)』

본문에는 강세황, 김수철, 이인문, 정선에서 민정기, 임옥상, 반 고흐, 클로드 모네, 라울 뒤피, 칸지두 포르치나리, 베르나르 간트너, 알프레도 마르티네스, 딘호 벤토에 이르기까지 고대와 현대,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예술가들이 남긴 50여 장의 다채로운 미술작품이 등장한다. 각각의 그림들은 오늘날 한국과 한국인, 도시의 문제를 탐색하는 도움을 주는 한편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독자로 하여금 사색과 철학의 길을 열어주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고 있다.

-------------------------------* 책 속 미술작품들 *------------------------------
강세황 《초옥한담도》 / 게오르게 그로스 《로우어 맨해튼》, 《메트로폴리스》, 《실직 상태》 / 김수철 《송계한담도》 / 김정헌 《아파트에 한 뼘의 땅을 선사함》, 《흙산》 /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프롤레타리안 마더》 / 도화서 《동궐도》 / 디에고 리베라 《무어 박사의 손》 / 딘호 벤토 《인간 동물 II》 / 라울 뒤피 《볼로뉴 거리》, 《아름다운 여름》, 《전기 요정》 / 로베르 들로네 《행진의 현장-붉은 타워》 / 민정기 《양평 여름》 / 바실리 칸딘스키 《운동 I》 / 박용빈 《학교 야경》 / 베르나르 간트너 《석양 쪽으로 향하는 증기기관차》 / 빈센트 반 고흐 《몽마르트의 밭》, 《아니에르의 공장》 / 샤임 수틴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하교》 / 스튜어트 데이비스 《멜로우 패드》 / 시그마 폴케 《슈퍼마켓》 / 심사정 《임간서옥》 / 알베르트 앙커 《선데이 스쿨 워크》, 《건초더미에서 자는 아이》 / 알프레도 마르티네스 《과일 든 여인들》 / 오윤 《마케팅 2-발라라》 / 윌리엄 터너 《눈 폭풍: 어느 항구 초입의 증기선》, 《비, 증기, 속도-위대한 서부철도》 / 이경현 《컨센트레이트》 / 이난영 《우리가 꽃이 되고 나무가 되리》 / 이인문 《송계한담도》 / 임옥상 《이사 가는 사람》 / 임옥상 《행복의 모습》 / 정선 《삼승조망》 / 정재호 《청운동 기념비》 / 조지 투커 《웨이팅 룸》, 《점심》 / 최동열 《서커스 독》 / 칸지두 포르치나리 《커피 수확》, 《커피 농부》 / 클로드 모네 《눈 속의 산드비켄 마을》, 《부기발의 센》 / 키비인 《인바이런-멘털: 기후 혼돈과 오염》 / 탕인 《동음청몽도》 / 폴 세잔 《굽어 들어가는 숲길》 / 폴 시냑 《베생 항, 칼바도스》 / 피에르 보나르 《베르농의 테라스》 / 현혜명 《숲 1201》
-----------------------------------------------------------------------------

철학이 깨어 있는 도시를 위해 물어야 할 질문들
지금 이 도시에서 우리는 어떻게,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
오늘날의 한국, 한국인들은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가?
이 시대,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총 14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각기 다른 꼴을 합성하여 새로운 전체를 만드는 콜라주(Collage) 기법으로 이야기를 완성해간다. 즉 도시와 도시살이의 여러 다른 풍경(예술작품)들을 조합하여 한국 대도시의 전체 풍경을 펼쳐보이는 동시에, 우리네 민낯을 고스란히 마주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진정 ‘살고 있다’라고 표명할 수 있는 삶, 개개인의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 살뜰히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 한국의 대도시에서 성장하는 일, 곧 교육받는 일이란 무엇일까?
1장 ‘공포의 대물림이라는 악순환의 회로’의 주제는 한국의 대도시에서 성장하는 일, 곧 교육받는 일이다. 대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해 뜨면 학교로, 해 지면 학원으로 시계추처럼 오가며 하루하루 견디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삶을 으레 그런 것이려니, 하며 당연시하는 동안, 우리가 상실하는 것은 없을까? 우리는 지금 제대로 된 미래 도시민을 만들어내고 있는 걸까?

· 한국의 대도시 거주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2장 ‘거류민국의 아파트’와 3장 ‘장소정체성과 평화’는 한국의 대도시 거주, 특히 아파트살이 위주의 거류(居流)와 장소 정체성의 문제에 주목한다. 아파트 자산 운용이 서민과 중산층에게 가정 경제 운용의 중심으로 자리하면서, 아파트살이는 한국의 대다수 호모 이코노미쿠스들의 표준적 삶이 된지 오래다. 그런데 이는 최첨단 설비와 인테리어, 자산이라는 혜택을 얻는 대신에 땅과 진정으로 관계 맺는 삶을 포기하는 선택이다. 더욱이 2년마다 또는 더 자주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전월세 세입자라면 장소정체성 상실이라는 질병을 앓게 되어 있다. 21세기는 유목의 시대라는 수사로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온 대로 살아가면 그만인가? 집과 거주, 정주의 의미를 새로이 생각해야 하지는 않나?

· 현대 도시인에게 음식과 식사란 무엇일까?
4장 ‘레시피 시대의 식사 철학’과 5장 ‘음식, 도시인의 자기 이해 관문’은 이 시대의 첨예한 사안이기도 한 음식과 식사의 문제를 파고든다. 미식의 쾌감을 제공하는 한 문제될 것 없는 음식. 나는 이런 음식을 단기성 음식이라 부른다. 10~20분의 짧은 식사 시간, 다음 끼니 전까지 몇 시간 동안 유지되는 열량원으로써 단기 효과를 낼 뿐이므로 적당한 용어이리라. 화학농법, 공장식 농법으로 생산되고 장거리 수송으로 공급되어 식탁에 올랐을 가능성이 높은 이런 유의 음식은 장기적으로는 인체에, 나아가 생태계에 위해를 가하기 쉽다. 그런 점에서 폭력의 음식이지만, 오늘날 이 도시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이들 가운데 음식의 폭력성에 주목하는 이는 소수자인 듯하다.

· 도시 소비자와 도시 노동자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나?
6장 ‘인간에서 고객님으로, 인격 마케팅 시대를 애도함’과 7장 ‘프레카리아트의 탄생’에서는 각기 도시 소비자와 도시 노동자의 존재론적 지위를 다루며, 한국 극자본주의의 단면을 논한다. 언제부턴가 한국의 대도시 소비자들은 고객님들이 되었다. 인간 존중의 감각, 윤리의 감각마저도 마케팅 수단으로 만들어버리는 기업 정신의 결과물이다. 이 고객님들 중 상당수는 비정규직, 기간제, 파트타임 노동자들, 즉 프레카리아트 계급인데, 이들의 문제는 단지 임금과 노동시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들은 사회적 정체성의 문제, 인생 비전 만들기의 문제 같은 보다 심각한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 한국 사회의 고속 문명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을까?
8장 ‘고속 문명,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의 주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속도의 시대로, 한국에서 고속이 최고선이 되어버린 사태의 역사적 뿌리와 그 발전 과정을 추적한다. 18세기 중엽 이래의 산업혁명의 시작과 발전, 19세기 전기혁명, 에펠타워의 건립 등을 탐사하며, 고속의 지향이 어떻게 현대 세계를 형성했는지 살펴본다. 그러나 이 장에서 제기하는 문제의 대상은 전 세계적 맥락의 고속이라기보다는 한국의 고속이며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정신성인 하이테크 지상주의다.

· 끊임없이 이동하는 ‘모바일링’의 시대, 단순과 평화는 가능할까?
9장 ‘모바일링의 시대, 단순과 평화는 어떻게 가능한가?’에서는 모바일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초래한 ‘모바일링’이라는 새로운 사회 현상과 대안을 이야기한다. 온라인에 접속한 이들은 쇄도하는 정보(뉴스, 상품, 광고, 관계)를 미끄러지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모바일링의 삶을 산다. 이는 체험의 깊이를, 어쩌면 체험 자체를 우리의 삶에서 지워내고 있다. 그러나 체험의 깊이라니? 우리 시대에 가당한 이야기일까?

· 한국의 대도시에서 참된 휴식이란 무엇이며, 지금의 여건에서 어떻게 가능할까?
10장 ‘휴식이 능력이 된 시대’와 11장 ‘걷기 예찬’의 화두는 참된 휴식과 그 방법이다. 우리 시대의 한 가지 결정적인 특징은 휴식이 어렵다는 것이다. 초고속인터넷망이 열어주는 끝 모를 정보와 상품의 쾌락계, 24시간?주7일 무휴라는 구조적 조건, 저임금 비정규직의 장기화 속에서 현대 도시인들은 휴식의 권리뿐만 아니라 능력마저 상실하고 있다. 이에 저자는 걷기에 대한 명상, 도시와 자연의 관계(12장 ‘도시엔 숨 붙은 것들이 많다’), 당대 한국인의 이중적 자연관(13장 ‘생명의 침몰, 신이 된 손’) 등을 통해 그 해결법을 발견해보고자 청한다.

· 지금 우리는 영혼과 이성이 살아 있는 존엄한 삶, 즐거운 삶을 살고 있는가?
14장 ‘야만과 야만 사이에서, 또는 문명의 이상’은 마무리 장으로, 휴전 후 지금까지의 한국 전후사(戰後史)를 거시적으로 다루며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당면 과제와 문명의 이상을 사색한다. 지금 우리는 60여 년 전의 전쟁 상황, 야만 상황에서 정녕 멀리 벗어나 있는가? 문명인다운 삶, 영적 생명과 이성이 살아 있는 존엄한 삶, 즐거운 삶을 살고 있는가? 답변이 궁금한 이들이라면 14장으로 직진해도 좋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제목 ‘철학이 있는 도시’를 ‘철학이 필요한 도시’에 대한 이야기라고 읽어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강조했듯 “여기 도시의 낙원 또는 지옥에서 철학 없이, 혹은 영혼 없이 살고 있지 않는가?” 하는 질문이 이 책의 주된 화두이기 때문이다. 철학이 없는 도시에서 철학이 있는 도시로 가자는 말의 함축도 품고 있음을 거듭 기억하길 바라며.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1
















이경현 作 ‘집중’(Concentrate)  / 아크릴






박용빈 <학교 야경>






정재호 <청운동 기념비> 2004






김정헌의 개인전에 부쳐

1988, 2회 개인전

 

이윤수(미술평론) 

 

 

 풍요로운 삶을 창조하는… 1981

 

 

 

 김정헌의 경우 11년은 그러므로 그 개인으로서나 우리 화단으로서도 매우 의미 있는 기간이 아닐 수 없다.

변혁을 하기 시작한 데는 80년대의 치열한 정치적, 정신적 상황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내면적 동기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 동기가 무엇이었는가는 논외로 하고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서나 화가로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했다는 사실이다.

것은 우리의 사회현실과 역사에의 눈뜸에서, 기존질서와 지배문화 그 가치체계와 사고방식에 대한

거듭된 성찰과 그것에 길들여져 온 자신에 대한 심각한 반성 요컨대 비판적 정신과 철저한 자기부정을 통해서

이룩할 수 있었다. 그것은 또 기존질서와 체제순응, 제도권의 저 안락함과 기대, 온갖 유혹을 뿌리치며

자기를 끊임없이 배반하는 일이기도 했다.

어떻든 이렇게 하여 점차 자기전환을 이룩해갔고 거기에 따르는 갖은 질시와 탄압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이제는 흔들림 없는 입장과 세계관을 확보하고 있다.
 

 

 일어서는 땅  1987

 

김정헌_달빛이 우리를 구하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5×91cm_2015

 

 

김정헌은 따라서 신식민주의 문화종속, 반민중적 지배문화, 냉전 이데올로기와 분단모순을

눈감거나 회피해온 수많은 선배·동 세대 화가들과는 단연코 다르다.

뿐만 아니라 "70년대의 모더니즘의 극성을 체험하고" 그것을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극복한 화가라는 점에서

80년대에 나온 일군의 후배화가들과도 다르다. 80년대의 새로운 미술운동 특히

민족미술운동이 모더니즘 일변도의 제도권 미술에 충격을 가하면서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바,

그 분수령의 선두에 위치한 화가중의 한사람이 김정헌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현실과 발언」에서의 활동을 통해 그는 당대 지배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비판적 사고를 갖게 되고,

그 이데올로기인 모더니즘이 우리에게 있어 기존질서와 체제를 옹호하는

신식민주의 문화종속의 한 형태임을 깨닫고 모더니즘에 대한 거부와 비판의 길을 다각적으로 모색했다.

그는 미술이 당대 삶의 구체적인 발언의 한 방식이어야 할뿐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소통되어야 하며

또 그것은 언어라는 다른 '시각예술'의 고유한 형식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이는 80년에 그려진 「풍요로운 삶을 창조하는…」과 같은 현실 비판적이고 풍자적인 작품에서 구체화되었다.

이후 「도시와 시각」「행복의 모습」전 등 「현실과 발언」동인전에 출품한 작품에서 주변생활 속의 소재로

누구나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쉬운'그림을 그려 보여주었다.

이 즈음의 그는 예술은 기존질서에 대한 끊임없는 항변이고 기성체제를 혁신적인 것으로 개조하는

비판이론의 관점에서 사고하고 작업을 해나갔다.

당시에 쓴 에세이 「미술과 소유」에서 그것이 잘 드러나고 있는데,

거기서 그는 기존체제를 옹호하는 미술-모더니즘을 포함한 모든 제도권 미술을 비판하면서

"오늘날의 그림은 소통으로서가 아니라 물건으로서 소유하고 소비하는 작고 예쁜 그림"이라 규정하고

이에 대항하여 진정으로 소통될 수 있는 '큰 그림'을 제안했다.

'큰 그림'은 상징과 장식으로서가 아니라 실질적인 삶의 이야기, 너와 내가 착취적인 소유관계로부터 해방되어

더불어 사는 이야기, 분리와 억압으로부터 삶의 주체자가 된 이야기"라야 하며

그것은 "일(생산)과 놀이(표현)가 건강하게 순환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예술론의 핵심을 이루는 매우 독특하고 흥미 있는 논리인데, 이 논리는 캔버스그림에서보다는

자신이 그린 공주교도소 벽화에서 더 구체화되지 않았는가 싶다.

 

 

 

 

김정헌 

1946년 05월 20일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전 ('한국의 미술 오늘의 상황전' ; 예술의 전당 미술관 ; 1990)

개인전 3회 (견지미술관 ; 1977, 그림마당 민 ; 1988, 학고재 화랑 ; 1993, 학고재 ; 1997)
남북 코리아 미술전 현지참가 (일본 동경 센트럴 미술관 ; 1993)
민중미술 15년전 추진위원장 (국립현대미술관 ; 1994)
광주 비엔날레-국제현대미술제 (광주비엔날레 ; 1995)
해방 40년 역사전 (예술의 전당 ; 1995)
AD2019전 (갤러리 아트빌)
도시와 미술전 (서울 시립 미술관 ; 1996) 외 다수

<공공 미술>
공주교도소 벽화 <꿈과 기도> 제작 (1985)
라미화장품 이천공장 로비벽화 <화장의 역사> 제작 (1987)
서울시 지하철 5호선 천호역 미술장식 설치 (1991-1995)

 

 

 

 



어머니의 한 뼘 땅


나종영



업어보면 마른 솔갱이처럼

가벼우신 울 어머니

병들어 앓으신 몸으로

몇 이랑이나 일구셨다


가난한 칠십 평생 밭 한 뙈기

논 한 배미 가지지 못하였으면서

어떻게 땅심을 헤아렸을까

땀 배인 흰 수건 머리에 동이고

호박 배추 무 고추 마늘

가지 오이 토란 들깨 심으시고

아침 밥상머리에 앉아

고봉봅에 생김치 버무려 놓아주던 어머니


저녁 해거름 서걱이는 옥수수밭 너머로

호미질 하는 어머니 여윈 뒷등을 보면

못난 아들 가슴 서늘하여

몽달개비 꽃잎마냥 눈시울에 이슬이 맺히고


이제는 울 어머니 땀 흘리던 묵정밭에

고층 아파트단지 끝없이 들어서고

누룽지 밥그릇에 숟가락 갈 곳 몰라

더는 말이 없으신 어머니

만져보면 부서질 듯 잔주름만 남으신

어머니, 한 뼘 땅 흙 돌멩이

하늘 아래 간 곳이 없고



[나는 상처를 사랑했네]/실천문학사/2000.12.

 




조지 투커 <L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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