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4. 08:33ㆍ미술/미술 이야기 (책)
1
1970년대 우리 미술계는 형식 과잉시대였다.
내용에는 관심이 없었다.
미술가들은 전달할 내용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즉 수단 방법에만 몰두하던 시대였다.
배달할 물건도 없는 택배원이 오토바이로 갈지 지하철로 갈지 혹은 걸어서 갈지를 고민하는 모양새였다.
점이나 선 만으로 화면을 빼곡히 채우는 그림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점이나 선을 어떤 재료로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느냐가 주 포인트였다.
20세기에 나온 서양미술 사조 중의 하나인
형식에만 예술적 가치를 두는 미니멀리즘이 한국에서 '현대미술'이란 이름으로 유행하던 때였다.
미니멀리즘은 추상미술의 맨 끝에 나타나는 아주 논리적인 미술이다.
보고 느끼며 즐길 수 있는 미술이 아니다.
이론을 모르면 감상이 불가능하다.
이와 반대로 1980년대에는 내용이 넘쳐나는 미술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민중' '민족'이란 이념이 시대의 뜨거운 화두였기 때문이다.
형식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낸 화가는 혁명투사가 아니면 진정한 작가로 대접받기 어려웠다.
2
1990년대초 S대기업 회장 부인이 미술관장으로 취임하면서 특급호텔 중식당에서 간담회를 했다.
새로 출시된 카메라가 선물로 증정되었는데
카메라에 기자들 이름까지 새겨주는, 성의를 다한 자리였다.
여러 상투적인 질문과 의례적인 답변이 오가던 중
한 기자가 관장 개인의 취향을 물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미니멀리즘에 마음이 끌린다"라고 대답했다.
이어서 다른 기자가 "그러면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 말해줄 수 있겠느냐"라고 물었다.
관장은 서슴없이 외국의 미니멀리즘 작가와 한국작가 몇 사람을 꼽았다.
거론한 작가는 1970년대 우리나라 미니멀리즘을 선도한 대표 작가들이었다.
모든 신문 문화면에 이 인터뷰 기사가 실렸고,
미술잡지들에는 미니멀리즘이 기획특집으로 실렸다.
대형 화랑들은 앞다투어 미니멀리즘 작가 전시회를 열었고,
흘러간 유행가가 리바이벌되어 히트하듯
미니멀작가들의 작품들이 미술시장에서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미니멀리즘
회화나 조각을 만들어내는 최소의 단위인 점, 선, 면, 색채 중 한 가지만으로 예술작품을 제작하는 방법.
추상미술의 맨 끝 부분에서 나오는 미술로
감상을 위한 전통적인 미학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현대미술이다.
따라서 점, 선, 면, 색채 등을 어떻게 만들었느냐 하는 방법 자체에 미술의 가치를 두는
논리적인 미술이다.
196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 1970년대에는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했다.
극도로 단순한 형태의 표현과 즉자적 · 객관적인 접근을 특징으로 하는 미술 사조.
러시아의 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1913년 구성 작품에서 출발했다.
흰색 바탕에 검은색 4각형이 그려진 이 그림은
현대미술의 환원주의적 경향을 최초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이후 잠복해 있던 환원주의적 경향은 1950년대 전반을 통해 미국의 전위미술을 지배했던
직관적 · 자발적인 행위를 바탕으로 하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의 한 부류인
잭 영거먼 등은 hard-edge painting을 통해서 회화에서의 미니멀리즘을 보여주었고,
조각가 도널드 저드 등은 primary structure 를 통해서 미니멀리즘 조각의 방향을 제시했다.
1) 미니멀리즘 회화는 평면성을 강조하고
보는 사람의 직접적이고 순수한 시각적 반응을 위해서
회화적 접근보다는 기하학적이고 단순한 형태와 선을 사용했다.
2) 그들은 추상표현주의의 색면 추상화가인
바넷 뉴먼과 애드 라인하르트의 침착하고 감정을 나타내지 않는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
3) 전체적으로 하드에지 회화는
평평한 표면에 크고 단순화된 기하학적인 형태, 정확하고 날카로운 윤곽,
밑칠하지 않은 캔버스에 원색을 직접 사용하는 것 등이 특징이다.
4) 미니멀리즘은
서정적이거나 수학적인 구성도 화가의 개인적 표현이 되기 때문에 거부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기하학적 추상과 구별된다.
한국의 미니멀리즘
서구에서는 미니멀리즘의 개념에 대한 논란과 평가가 한창 진행중이었던 가운데
한국 화단에서는 서구 미니멀리즘 미술의 형식과 논리를 변형시킨 한국적 변이형태가 나타났다.
1975년,
권영우 · 박서보 · 서승원 · 이동엽 · 허황 등 5인의 작가가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 백색전>을 개최하면서 한국적 미니멀리즘의 싹을 틔웠고,
이후 2년뒤,
도쿄에서 열린 <한국 현대미술의 단면전>의 배후에서 지원한 이우환의 영향으로
단색화 운동이 시작되었다.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성격규정에 있어
강한 논리성을 띠고 대두한 이 경향의 미술을 흔히 단색화(모노크롬 회화)라고 불렀다.
한국적 미니멀리즘인 단색화 운동의 핵심 인물은 이우환이었다.
그는 전통적 미의식, 표현, 작가의 감정, 영감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보았고,
작가의 철저한 자기부정과 극복을 통해
‘관계항’을 드러내는 모순적 행위를 예술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모노파의 논리가 이후 동양적 초월과 선의 개념과 결합하면서
무위자연과 같은 전통적 자연관과
동양화의 공간 감각이 단색파의 화면으로 나타난 것이 한국의 미니멀리즘이었다.
따라서 한국의 미니멀리즘은 미국이나 일본의 미니멀리즘과는 다른 양상으로 발전했다.
“에꼴 드 서울”의 리더였으며, 한국 단색화 운동의 구심점이었던 박서보는
이우환과 동료이자 경쟁자로서 자신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했고,
1973년 묘법 시리즈를 통해 우리나라 백색 단색화의 한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 외에도 정상화 · 하종현 ·윤 형근 등이 단색화 운동을 이끈 주역들이었다.
한국적 미니멀리즘은 이우환과 단색화의 깊은 영향 속에서 성립되었으나,
이후 단색화와도 다른 세계를 보였으며, 서구의 미니멀리즘과도 본질에서 차이를 보였다.
평론가 이일은 한국적 미니멀리즘을 서구의 미니멀리즘을 극복하는
‘포스트미니멀리즘’이라고 부르면서,
서구의 자극에 대응하여 전통을 접목시킨 고유의 모더니즘 미술로 보기도 했다.
단색화는 1970년대말로 접어들면서
양식의 획일화, 몰개성적 집단주의, 논리의 독단성 등을 드러내
화단 전체를 경직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2010년 이후 단색화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면서 새롭게 그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서구의 미니멀리즘이 한국 미술에서 변형된 모양으로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다.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성격규정에 있어
강한 논리성을 띠고 대두한 이 경향의 미술은 흔히 단색회화(모노크롬 회화)라고 불린다.
서구의 경우는 미니멀리즘의 개념 ·해석· 평가를 놓고 열띤 비평적 논쟁이 있어왔으나
19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는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크게 부족한 실정이었다.
1970년대 들어와 아카데미즘의 아성인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의 권위도 상당히 퇴색했고,
한국 현대미술이 국제미술의 무대로 진출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전후의 표현주의적 추상미술의 기반을 형성했던 앙포르멜 미학의 청산이 숨가쁘게 이루어졌고,
각종 실험성이 강한 미술들이 대거 등장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서구 미니멀리즘 미술의 형식과 논리를 변형시킨 한국 모노크롬 회화가 나타났다.
한국의 모노크롬 미술이 처음 대두한 것은 1975년 동경화랑이 기획한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 흰색전'(권영우· 박서보· 서승원· 이동엽· 허황)이 개최되면서부터이다.
일본 전시는 미니멀리즘의 일본적 해석이라 할 수 있는
일본의 '모노파'와 형식적으로나 논리상으로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개 모노크롬 화가들은 그리는 행위와 평면의 관계, 표면의 변화과정 등에 주목하면서
화면의 무표정· 비활성· 무생명· 중성· 무질서 등을 추구했다.
선묘와 한지를 이용하는 박서보는
그린다는 행위의 원초적 궤적과 그 행위가 이루어지는 바탕과의 일치를 추구하며
한지 표면의 변화에 주목했다.
윤형근은 화면을 갈색조의 변화로 이루어진 넓은 색면으로 다루면서
염색하듯이 물감이 스며드는 과정을 드러내보였다.
권영우는 화선지에 구멍을 뚫거나 찍는 방식으로 행위의 우발성과 표면의 현상변화를 연결시켰다.
정상화는 캔버스에 부착된 백색의 한지를 작은 4각형으로 일정하게 분할· 반복했다.
또한 김기린은 무거운 침묵의 단색조로 화면을 지배하며 물감과 화면의 일치를 도모했다.
이러한 특징들은 전반적으로 인위성이 최대한 배제된 상태에서
주객합일의 경지를 보여주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단색의 화면이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소박함과 단아함을 두고서
'한국적 자연주의 심성이 현대적 어법으로 승화된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 대해
'한국적 미감에 대한 편협하고 유치한 발상에서 빚어진 논리'라는 비판이 맞서기도 했다.
모노크롬 회화는 1970년대말로 접어들면서
양식의 획일화, 몰개성적 집단주의, 논리의 독단성 등을 드러내
화단 전체를 경직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다.
3
미술 수집 붐이 시작된 곳은 국제무역으로 유럽경제의 중심이 된 네덜란드였다.
도시민 행세를 하려면 집안에 그림 한 점쯤은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유행처럼 번져갔다.
그래서 도시 인구의 60%가 컬렉터였다.
이들은 장식용 그림을 선호했으며 특히 정물화와 초상화가 인기를 누렸다.
4
2012년 세계미술시장을 이끈 작가 '베스트 10'에
장대천(2위), 제백석(4위), 서비홍(6위), 이가염(7위), 전포석(10위) 등 다섯 명이나 올랐다,
이들은 모두 전통 산수화를 바탕으로 현대화에 성공한 20세기 작가들이다.
1990년대 백남준을 만난 적이 있다.
이런저런 얘기 말미에 '현대미술'이 뭐냐고 물었다.
그는 서슴없이 '사기(詐欺)'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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