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16. 20:21ㆍ책 · 펌글 · 자료/문학
나는 추천사를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새로 출간되는 남의 책 추천사를 꽤 많이 썼다.
주례사 비슷한 서평도 꽤 많이 썼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지만 팔자소관이거니 여겼다.
추천사를 의뢰하는 사람들은 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출판사 편집자나, 그 책의 저자인 경우가 많다.
성격이 모질지를 못해서 매정하게 거절할 수 없었다.
속된 말로 '안면이 갈보 만든다'고.
나는 추천사를 남발함으로써 수많은 文友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추천사 중 가장 고약한 것은 출판사가 미리 文句를 작성해 놓고 推認을 부탁하는 경우다.
심지어는 내가 외국에 머물고 있는데도 추인을 요구하기도 한다.
나는 나쁜 놈들 요구에는 절대로 응하지 않는다.
나는 추천사를 의뢰받으면 교정지(矯正紙) 보내줄 것부터 요구한다.
나는 교정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 잡듯이 뒤져 읽기 전에는 절대로 추천사를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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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라니!
"꿈으로 가득 찬 설레이는 이 가슴에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이렇게 시작되는 유행가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어째서 연필로 써야하는가?
"사랑을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 그렇단다.
"처음부터 너무 진한 잉크로 사랑을 쓴다면 지우기가 너무너무 어렵"기 때문에 그래야 한단다.
도대체 지우개로 지우는 상황이 전제되는 사랑을 왜 시작하는가?
이 노래 지은 사람, 이 노래 부른 사람,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퍽 궁금한데,
모르기는 하지만 아직도 쓰고 지우기를 되풀이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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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깊은 사랑이었기에 이별의 역설을 이렇게 노래한 것임을 금방 알겠구만,
이윤기답지 않게시리......
이름값의 허실
2007년의 일이지, 아마.
미국 워싱턴의 지하철역 앞에서 한 청년이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었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에 야구모자를 눌러쓴 아주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의 앞에 놓인 바이올린 케이스 안에는 1달러짜리 지폐 몇 장과 동전 몇 개가 들어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약 45분동안 연주했다.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가 연주곡에 들어있었던 거 보면 행인들에게 친숙한 음악을 연주했던 것 같다.
45분간 이 연주자 앞을 지난 행인은 1,097명이었지만
이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에 잠깐이라도 귀를 기울인 사람은 7명에 지나지 않았단다.
바이올린 케이스에 모인 돈은 고작 32달러.
이 거리의 악사는 미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당시 39세)이었다.
벨의 연주를 들으려면 100달러는 지불해야 한다.
그가 이날 연주한 바이올린은 名器 스트라디바리우스였다. 45억원을 호가하는 명품 중의 명품이었다.
사람들은 조슈아 벨을 알아보지 못했고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소리를 들어보지도 못한 채 그 앞을 지나쳤다.
이름값이란 그렇게 허무한 것이다.
조슈아 벨이 평소 연주회에서 받는 개런티는 시간당 7천만 원꼴이다.
이윤기 유고 산문집
위대한 침묵 / 2013. 1
책소개
한 번도 ‘꽃’으로 피어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잎’으로 잘 살고 있다!
우리 시대의 대표 지성 이윤기 유고 산문집 『위대한 침묵』. 깊은 인문학적 지식과 풍부한 유머감각으로 사랑받아온 이윤기의 산문 37편과 번역가인 딸 이다희가 아버지를 추모하며 쓴 글을 더했다. 동서양의 역사와 문화, 신화 등을 넘나드는 풍부한 인문 교양과 우리네의 평범한 일상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에피소드들이 담겨있다. 특히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삶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탐색하는 이윤기의 혜안과 주옥같은 명문장이 빛난다. 크게 5부로 구성되어, 자연에 대한 단상과 저자의 일상과 지인들과의 추억, 신화와 고전, 문화에 관한 이야기와 우리 사회에 대한 비평,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다.
☞ 북소믈리에 한마디!
고등학교는 두세 달 만에 때려치웠고, 검정고시를 치른 후 신학대학에 입학했지만 그 역시 얼마 안 돼 그만두고, 월남전에 참전했고 제대하고 공사판을 전전했던 이윤기. 파란만장했던 청춘을 살았던 그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150여 권에 이르는 번역서를 내놓은 가장 신뢰 받는 번역가였다. 하지만 정작 이윤기 자신은 한 번도 꽃이 되어보지 못한 잎이라고 표현한다. 신춘문예도 당선이 아니라 가작으로, 대학도 졸업이 아니라 중퇴를, 교수가 아닌 객원 교수를, 박사가 아닌 명예박사를 그는 자신이 ‘잎’으로만 살았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래도 잘 살고 있으니 젊은이들이여 힘을 내라고 말하며, 우리 삶의 진정한 진실이 무엇인지 담담하게 사색하도록 이끈다.
목차
1 날마다 지혜를 만나다
나무만이 희망이었다
날마다 지혜를 만나다
빈 땅에는 나무를 심어야지요
잔인한 4월, 고라니 한 마리
오, 소리
재앙은 홀로 오지 않는 법이거니
2 내가 뿌린 씨앗, 내가 거둔 열매
떠난 자리
내가 뿌린 씨앗, 내가 거둔 열매
속 깊은 친구 이야기
52년 저쪽에서 날아온 이메일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네
3 위대한 침묵
여자 때문에 망했다고?
좋은 말 몇 마디, 감옥이 되는 수도 있다
정말 그 이름들이 내게 스며들어 있을까?
나는 문화가 무섭다
위대한 침묵
터키의 ‘흐린 주점’에서
아름다워라, 저 울분
조르바, 지금 이 순간 뭐하는가?
4 부끄러움에 대하여
아직도 나의 옷을 입지 못하고
불편한 진실
야만적인, 너무나 야만적인
부끄러움에 대하여
이름값의 허실
‘선플’ 뭡니까, ‘선플’이?
나도 저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한식 세계화? 좋지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라니!
5 어머니는 한 번도 날 무시하지 않았다
진짜 나이, 가짜 나이
나만 짠했을까?
고독은 나의 고향
없는 호랑이 만들어 내기
듣지 못하고도 살 수 있을까?
어머니는 한 번도 날 무시하지 않았다
가을 날씨가 참 좋군요
나는 추천사를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악우들이여, 안녕
아버지의 이름_ 이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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