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진

2019. 6. 23. 11:36미술/한국화 현대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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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진 Kang Ha Jin_자연율,1993

 

 


강하진이라는 작가는 내 젊은 날의 아름다운 미래였다. 굵게 주름 잡힌 얼굴로 환하게 웃어주며 총명하고 예리한 눈빛 속에는 자애로움이 가득했다. 그는 그 또래의 수많은 작가 중 작품과 사람 두 가지로서 필자를 감동시키는 가장 뛰어난 작가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묻혀 가고 있다. 범상치 않은 그의 작품세계를 범상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람은 사람자체보다 그 사람이 성취해놓은 스펙으로써 가치가 정해지고 그가 속한 환경과 조건에 의해서 평가된다.




 


▲서양화가 강하진 Kang Ha Jin

 

 

 필자에게 동양학을 가르쳐 준 스승은 올해 98세 되신 할머니다. 내 일생 처음 스승으로 모셨는데, 정작 공부는 중도에 하다가 말았다. 사주 명리학을 공부하던 시절, 중국 연변을 가서 몇몇 북한 사람들을 만났고, 거기서 필자가 본 것은 그들이 좋은 사주를 갖고 태어났음에도 끼니를 굶으며 연명해 간다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그 사실이 준 충격 때문에 그 이후 더는 사주 명리학을 공부할 수 없었다. 옛날 정조대왕이나 다산 정양용 선생 같은 분들이 사주 명리학에 일가를 이루었으면서도 개인의 사주팔자에 관해서 더는 언급하지 않았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강하진 Kang Ha Jin_자연율, 1986

 

 


개인의 행복은 결국 환경에 의한 지배를 받게 되고, 그 환경에 따라서 결정되므로, 아무리 좋은 사주를 타고 나더라도 주변환경을 바꾸어 주지 않는다면 결코 행복을 찾지 못하게 된다. 재벌 회장 같은 사주를 타고난 사람이라도 서울역 노숙자로 살게 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스스로 또는 자신의 주변을 어떤 유리한 환경으로 그 자신이 만들어 놓느냐에 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강하진 Kang Ha Jin_자연율, 1987

 

 


필자가 알기로 작가 강하진은 정상적으로 미술대학을 다니지 않았다. 혼자서 그림을 배우고 익혀서 현대미술을 꿰뚫는 밝은 눈을 갖추었다. 그런 그는 사회속에, 최소한 미술속에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놓지 못하였다. 그럼으로써 그의 작품이 얼마나 대단하고 그가 얼마나 뛰어난 작가인지 세상에 알릴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그는 균형잡힌 선비로서 이익을 위해 함부로 나대는 파렴치함을 갖추지 못하여 현재까지는 불행한 작가다.



 


▲강하진 Kang Han Jin_자연율, 1992

 

 

야생 상태에 놓여 있게 되는 생명들의 세계에서는 기회주의가 그 보편적 습성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야생에서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 나가야 살아남을 수 있는 동물들의 세계는 기회주의가 그들의 유일한 가치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인간이란 말 그대로의 야생 생활이 아니라 항상 그 무엇인가로부터 보호받게 되어 있기 때문에 삶의 보편적 가치가 그런 기회주의의 형태로는 있게 되지 않는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변화할 수 있는 능동적 창의성을 지닌 유일한 동물이다. 결국 야생의 기회주의가 인간세계로 넘어오게 되면 진보주의로 승화하게 되는 것이다.



 


▲강하진 Kang Ha Jin_자연율, 1986

 

 


 이렇게 놓고 보면 강하진은 보수성향이 강한 사람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원칙주의자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금방금방 받아들이는데 익숙하지 못하다. 그의 옷차림이 그렇고 그의 생김새 전체가 그렇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그의 눈이 세상을 꿰뚫어 보는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잃어버린 적은 없다.



 


▲강하진 Kang HaJin_자연율, 2004

 

 


어떤 시점에서든 '진보'라고 불리는 것들은 당연히 필요에 의해서 비롯되기 마련인데, 아득한 옛날 먹을 것을 따라 떠돌며 유랑하던 인류가 어느 시기엔가 물과 음식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비옥한 강가에 자리 잡아 정착하게 되었다.  

  그들은 차차 농사를 짓게 되고 농사를 짓는 땅에 경작을 할수록 석회질이 퇴적됨으로써 일정하게 반복하는 농사법으로선 수확에 한계가 있어 곧 농사를 짓는데 있어서 새로운 방법 개선이 계속해서 필요했다. 결국 '진보'라는 것은 정신적 가치를 찾고자하는 구호 속에서 물질과 이익을 추구하는 욕심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자기의 모든 열망과 욕심을 내려놓은 강하진은 철저한 보수주의자다.



 


▲강하진 Kang HaJin_자연율, 1995

 

 


사실 현대 미술가는 그들이 처해있는 상황이 야생상태의 동물들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상대적으로 빈곤한 먹잇감과 항상 다량의 먹이를 필요로 하는 개별 개체와 무척 닮았다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예술가들이 기회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일면 다행일 수도 있겠으나, 동물세계와는 달리, 사람은 현재 놓여있는 어려운 상황을 동물들과는 다른 방법을 통해 극복해나가려고 하는 현명함을 택한다.



 


▲강하진 Kang HaJIn_자연율, 1999

 

 


강하진의 작품의 가치는 그가 내뿜는 에너지의 총량이 대단히 크고 강하다는 것을 이해해야만이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작가들의 그림이 화면에서 평면적으로 확산되는 물질의 변모를 보이고 있다면, 강하진은 비록 화선지 위에 먹이 아니고 캔버스 위에 현대적 안료를 사용한다 해도 화면에 종적으로 구현되는 에너지의 응집은 뛰어나다.



 


▲강하진 Kang Ha JIn_자연율

 

   


그가 화면에 그은 선 하나와 화면에 찍은 점 하나는 그려진 조형이 아니라 구현된 에너지 덩어리로써 화면을 평면에서 삼차원의 공간으로 바꿔 버리는 마술이다. 그런 그 마술은 평범한 눈으로 볼 수 없는 신기루 같은 마술이다.



 


▲강하진 Kang HaJIn_자연율, 1990

 

 


진화 심리학으로 보면 남성은 여성에 비해 훨씬 많은 수렵생활을 하는 특성을 지녔다고 한다. 채집을 하는 여성에 비해 사냥감이라는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유일한 가치로 보고 그것만은 추구하기 위해서 주변을 보살피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예술가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간에 수렵을 업으로 하는 사냥꾼이다. 미술사에서 우월적 지위의 획득이라는 절대적 가치의 목표는 여하한 방법도 결과를 위해서 인정한다는 모순을 낳는다. 곧 "유명해진 자가 좋은 화가다"



 


▲강하진 Kang HanJIn_자연율, 1998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급진적이고도 중요한 획을 긋는 작품은 마르셀 뒤샹의 <샘>이라고 이름 붙여진 변기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기성 변기를 전시장에 전시해놓을 때 모든 사람들은 황당해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했지만, 비평가들이나 미술사적 견지에서는 그 작품에 대해 장황하게 부연설명해가며 그 작품의 가치를 인정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들이 그렇게까지 한 까닭이라고는 뒤샹이 보통 사람이 아니고, 그 이전 수십 년 간 있어 온 뒤샹의 미술적 행위들을 인정하고, 미술사 안에서 그 나름의 가치로 자리매김한 한 예술가로서의 행적때문이다.



 


▲강하진 Kang HanJIn_자연율, 1990

 

 


 그렇다고 해서 뒤샹의 작품이 깊은 철학적 사고에 의한 논리적 추론으로 결집된 결과물은 아니다. 단지 동물적 사고로 사냥에서 획득한 노획물과도 같은 아이디어의 돌출이었을 뿐이다.  

  뒤샹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변화가 급격히 이루어지는 사회속에서 작가로 살아남는다는 명제는 곧 다른 사람들이 작가로서의 자신을 얼마나 익숙하게 알아보느냐에 달려있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의외의 스캔들을 일으켜서 눈에 띄게 만드는 스캔들리즘이나 유명인의 지극히 일반적인 상식에 의존하는 포풀리즘으로의 이행이라는 과제를 항상 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강하진 Kang Hajin_자연율, 1989

 

 


그래서 뒤샹은 바로 뒤샹이라는 한 개인으로서 보다는 변기라는 물질을 스캔들리즘 속에 던지는 행위를 통해 당시 사회에서 뒤샹보다는 변기라는 작품을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강하진 KangHaJin, 2005

 

 


陰陽이 화평하고 안정된 인간으로서 주변과 사물을 보살피는 강하진에게 수렵형 인간으로서 이기적인 작가를 요구하는 것은 맞지 않다. 더욱이 자신의 정신세계의 확산보다는 몸짓의 확대를 통한 스캔들리스트로서 역할은 더욱 그렇다. 모든 것이 서구화 되는 세상에서 진정으로 우리의 정신을 찾는 열망이 타오를 때 그때 강하진을 맨처음 찾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게 나의 소망이다.

 

 

글: 한오/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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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오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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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주로 성장하였으며,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학사, 홍익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 석사를 졸업하였다. 1993년 미술판을 바꿔보겠다는 열망으로 미협 이사장직에 도전했다가 기득권층에 밀려 실패를 맛본 후 화단을 떠났다가 16년만인 2009년 복귀했다.

그는 난을 치듯 흙손으로 물감을 발라 이를 다시 깎아내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나간다. 방법상 기존의 유화 방식이 계속 덧칠해가는 것에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200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주최,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미술부문) 수상








한오씨 16년 만에 화단 복귀


16년 전 화단을 등졌던 화가 한오(52·사진)씨가 홀연히 나타났다. 이름도 바꾸고 화풍도 달라졌지만 얼굴은 서른여섯 그때 그대로다. 그가 사라진 것은 1993년. 미협 이사장직을 놓고 대선배인 이아무개 교수와 경합을 벌인 직후였다. 당시 그는 물정 모르는 순수청년. 돈을 위한 미술에 반대하여 공모전에도 응모하지 않았으며, 기성세대가 펴놓은 전시마당에 작품을 내지도 않았다.

10여년 전 IMF가 휩쓸고 지나간 뒤 비수기인 8월에 서울의 대형화랑들을 빌려 ‘프런티어 제전’을 벌였다. 전국의 가난한 화가들 1,500명한테 공짜로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저런 이유로 그의 이름은 민중미술가 명단의 머리에 올랐다. 그는 미술판을 바꿔보겠다는 열망으로 미협 이사장직에 겁없이 도전했다. 교수를 시켜 준다며 사퇴 권유를 받기도 했다. 동료들의 열화 같은 지지를 얻어 후보로 등록했지만 막상 투표를 하는 날 투표장에 그를 지지하던 이들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기득권층인 교수들에 의해 월급쟁이 조교 자리가 좌우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쓴잔을 마신 뒤 자신을 돌아보니 자신이 가장 가난하더라고 했다. 집은 비좁았고 아내는 병들어 있었다. ‘내가 잘못 살았구나’ 하는 자각이 왔다. 그리고 돈에 의한, 돈을 위한 미술판이라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잠적이었다. 16년 동안 아파트 짓기, 인테리어회사 등 별의별 일을 다 했다. 지금은 후불결제시스템을 개발 ·판매하는 업체인 PSGK 회장이다.

그림은 힘들고 외로울 때 친구였다. 그는 그림이 일종의 치유행위였다고 했다. 그동안 강화도, 북한강 등에서 몰입해 만든 작품들을 모두 없애버렸다. 어차피 치유의 목적을 이룬 마당에 미련이 없었다.
“이제 나만의 그림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즉 몸과 마음이 스스럼없는 그림을 보여줄 수 있게 되기까지 16년이 필요했던 셈이다.

그의 그림은 일종의 스크래치 유화. 원하는 색을 캔버스에 도포한 다음 여러 가지 칼로 긁어내면서 자기 내부의 형상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물기가 듣는 울창한 여름 숲, 낙조가 비치는 가을 숲 등 그의 그림에서는 나무향이 난다. 그는 내부의 에너지를 표출하기로는 손의 충동만으로 그려나가는 음각이 제일이라고 말했다.

“저는 장인이나 인간문화재가 되지 않고, 실력은 갖추되 권력은 탐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인생을 즐기는 한량이나 옛 시골선비처럼 즐겁고 거침없이 살 것이라고…. 그것이 화가라고 생각해요.” 그는 요즘 아내를 위해 그림을 그린다. 그림이 잘됐는지 안됐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내가 그림 앞에서 미소를 지으면 잘된 줄만 안다”고 말했다.




▲ 한오그림_무제無題

 

 


 사람의 마음은 한결같지 않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바뀌고,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화남의 여러 가지 생각들은 롤러코스터처럼 우리를 큼직한 감정의 소용돌이로 태운다. 우리는 작은 바람에도 움직이는 가을 나뭇잎처럼 시시때때로 바뀌는 우리의 마음을 다잡고자 심호흡을 하고, 자기 계발서를 읽으며, 종교지도자들이 쓴 글귀에 위로받지만, 이 또한 잠시의 위안일 뿐,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바람 앞의 촛불이고, 시냇물 위의 나뭇잎이며, 굴뚝 위의 눈송이 같다.

 

  한오의 그림은 우리의 마음을 그린다. "예술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자신의 잠재상태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의 흐름과 비슷해야 예술답다"는 작가는, 인간이 나고 자라면서 어떻게 변하는가에 대한 이해를 동양학에 대한 관심을 통해 발현한다. 

  밝은 기운을 가진 사람이 어두운 색의 그림을 그리고, 우울한 기분을 가진 사람이 밝고 즐거운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초기에 다소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그림을 그리던 작가는 마음이 점차 밝아짐에 따라 그림도 점점 밝은 빛으로 그리게 되었다. 마음이 일생 동안 똑같지 않은 것처럼 일생 동안 같은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서에 바탕을 두고 있는 그림", "내 몸에 대한 것과 맞는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는 작가에게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그대로 내는 것이야말로 손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리라.



 

▲ 한오그림_Represent

 



  물감을 뿌리고 물감을 발라 마르기 전에 이를 다시 깎아내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는 그의 작품은, 한 호흡에 그려지는 동양화와 같이 일시적이고 즉흥적으로 에너지를 분출한다. 미칠 듯 넘쳐나는 색의 향연으로 꽃들은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그 향기는 강하게 피어오르는 듯하다. 


그러나 이 시리즈의 제목은 '과유불급(過猶不及). "제목을 통하여 전체를 표상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표상한다"고 말하는 작가는 꽃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나 그러한 욕구를 억누르고, 자연이 이끄는 대로 그린다고 한다.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 자체가 지나치게 과잉되어 나타날 수 있다면서 무의식적인 붓자국이 오히려 실제 사물과 더욱 가까울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오의 그림 속에서는 넘쳐나는 색과 단순화된 묘사 사이의 팽팽한 에너지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마티에르(matière질감)가 강하게 느껴지는 표면에서는 꽃이 기쁘고 편하게 웃으며 피어나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며, 파랗고, 빨갛고, 노란 꽃들은 봉오리에서 터져 나오듯이 초록색 배경에서 앞으로 튀어나올 듯 분출하고 있다.



 

▲ 한오그림_과유불급

 

 


보들레르는 이상적인 화가를 설명하면서 "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게다가 표현하는 능력까지 갖춘 사람은 더욱 적다"고 적고 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화가는 "마치 이미지들이 도망칠까 두려워하는 것처럼, 혼자이면서도 토론하듯 중얼거리며, 서두르면서 격렬하게 활동적으로 작업을 한다. 그러면 사물들이 종이 위에 자연스러우면서 자연스러운 것 이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아름다운 것 이상으로 마치 저자의 영혼같은 열광적인 삶을 부여받고, 특이하게 다시 태어난다."

 

  한오가 포착하는 이미지들은 그의 마음과 감정, 손과 하나가 되어 캔버스에서 열광적인 삶을 부여받고 다시 태어난다.

 

  "작품은 감동을 줄 수 있고, 실제적이어야 한다. 작품은 물건이 되어서는 안 되며, 정서이자, 치유이며, 해소가 되어야 한다"는 작가에게 작품을 창작하는 것은 삶의 한 방식이자 자신을 품어내고 해소하는 하나의 방법이고, 치열하기만 한 이 사회의 삶에서 영혼을 치유하는 숲과 같은 곳으로 느리게 산책을 하는 것이다.

 




▲ 한오그림_투우透牛

 


  사진 같이 정교한 식물도감의 그림들은 그 뛰어난 묘사에 놀라움을 주기는 하나 원래 그 식물들이 가지고 있던 생명력을 느끼기는 힘들다. 어떤 사물을 보고 이를 그대로 따라 그렸을 때, 이것은 사물의 특징을 잘 드러내기는 하지만 이미 그 사물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사물을 마주했을 때의 감정이나 감각을 포착해 냈을 때는 그 사물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한오 작품들은 사물을 눈으로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적 이미지를 포착한다. 간결하고 명료한 이미지는 작가의 심리상태를 그대로 전달한다. 꽃은 밝으며 때로는 격정적이고 때로는 고요하다. 금새라도 콧구멍에서 거친 숨소리를 내뿜으며 달려들 것 같은 소에게서는 삶의 투지가 느껴지며, 말들은 싸울 듯 내달리며, 닭들은 잃어버린 야생성을 되찾았다.  

  

  한오 작품의 생명체들은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충동적 삶의 에너지를 내뿜고 있다. 이 생명들은 꽃꽂이를 해놓은 꽃이 아니요, 우리 안에서 먹이를 받아먹는 가축이 아니다. 이들은 가장 원초적인 자연 상태의 모습 그대로 삶을 향해 내지르면서 작가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한오의 작품은 작가의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이성적이고 관념적인 예술적 행위가 아니라, 작가가 온몸으로 내뿜는 생명적 활동이다.

 




▲ 한오그림_Represent

 


  작가의 경험은 캔버스에 고스란히 흩뿌려져 우리는 이를 또한 경험하고 있다. 그가 온몸으로 그려낸 꽃들과 소들, 말들, 닭들을 우리 앞에 마주했을 때, 우리는 그들이 전하는 생명력의 특질을 두 눈으로 포착하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아름다운 것을 보면 그것을 사고 싶다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지만, 우리의 진정한 욕망은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기 보다는 그것이 구현하는 내적인 특질을 영원히 차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가장 깊은 수준에서 보면, 그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대상과 장소를 물리적으로 소유하기 보다는 내적으로 닮는 것이다." 우리는 작가가 펼쳐놓은 아름다움 앞에서 사물의 본질을 본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생명들처럼, 그리고 매 순간 달라지는 우리의 마음들처럼.

 

 



한오

홍익대학교 및 동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200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가 주최한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미술부문)을 수상했다. 박영덕 화랑, 박여숙 화랑, 갤러리 현대, 관훈갤러리, 갤러리 토포하우스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서울과 뉴욕에서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5년 불가리아 소피아에서의 전시를 시작으로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에서의 전시가 예정되어 있으며, 사물의 근본을 꿰뚤어 표현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글: 전혜정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창작자와 감상자, 예술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 등에서 전시기획, 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