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화가?) 주재현

2019. 5. 11. 09:10미술/한국화 현대그림










 

 

그는 일찍 죽었다.

1961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다.

장남으로 공부를 잘했던 그는 화촌초등학교와 남춘천 초등학교를 거쳐 춘천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춘천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결국 강릉대학교 미술과에 입학했다.

 

재수를 하여 강원대학교 미술교육과에 입학하였다.

1983년에 나와 같은 해 의무경찰에 자원입대를 했다.

나도 군생활에 적응을 잘 못했지만 주재현은 더욱 힘들었다. 

일종의 고문관 소리를 들으면서 부대안에서 늘상 그림그리기를 하였다.


화가 군인인 셈이었다. 이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힘들어 유서를 쓰고 자살을 기도했다.

연대장이 적십자병원에 정신감정을 의뢰하기에 이르렀다.

정신과 치료와 안정이 요하다는 소견서를 받아 한 달여간의 휴가를 받았다. 

부대에 복귀하여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군생활을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나도 같은 해에 제대를 하였다. 

주재현은 1986년에 3학년에 복학을 하였다. 

2명의 여동생이 대학에 입학을 하여 집안은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교수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하여 수업분위기를 어수선하게 했다.

그는 학교에서 원하는 캔버스 그림 그리기를 거부하고 계속 8절지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1988년에 강원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교사로 발령이 나는데 그는 이를 거부하고 화가를 고집했다.

이는 부친과의 큰 싸움으로 벌어졌지만 아들을 이기는 아버지는 없었다.

그는 가난한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개인전을 몇 번 했다.

걸레스님 중광이 자신과 비슷한 화풍의 주재현의 그림을 보고 300만원짜리 그림을 구입했다. 

중광스님은 그림값대신 노트를 찢어 자기앞수표를 써주었다.

미술계에서 중광스님의 자기앞수표는 인정을 받았다.

이후 수안스님과 함게 그림일기 초대전도 하였다.

 

1994년 3월 29일 그의 나이 34살때 나의 나이 33살 때

오토바위를 타고 홍천으로 가는 도중 평창읍에 다가가 화물차에 부딪혀 사망하고 말았다. 

화가 주재현..  그의 그림은 2,500여점이 남았다.

 

2007년 얼마전에 그의 유작전을 열렸다. 

주재현 형이시여...연면하시라.......     


 

 

*

아래는 평생 장가를 가지 못한 화가의 작품이다.

그림으로 자신의 한을 표현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그림이 다가온다.




 


 

 

    












1961년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성산리에서 4남매중 맏이로 태어났다.
1968년 화촌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73년 남춘천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76년 춘천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79년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88년 강원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안정된 미술교사의 직업을 포기하고 전업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1990년 강원도청앞 거리에서 <주재현의 그림소풍전>을 열었다.

8절 그림 1795점을 전시하였다. 인사동 길거리에서 8절지 <그림소풍전>을 열었다.


춘천에서 경포대바닷가 마을로 장소를 옮겨 작업에 열중하였다.

1991년 서울청남미술관 1,2,3층 전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대구 대백갤러리, 부산시 부산일보사, 제주시 문화회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인사동 사거리 허름한 옥탑방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화선지와 캔버스에 주로 그림을 그렸다.


1992년 서울은 생리에 맞지 않는다하여 춘천으로 작업실을 옮겨 작업하였다.

1994년 강원도 영월에 대학동창생 백중기가 사는 작은 마을로 처소를 옮겼다.

같은 동네 몇몇 친구들과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며 그림에 몰두하였다.

이 시절 주재현의 그림은 순수하고 가열차게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융화하는 방대한 양의 그림들을 그렸다.

자유로운 영혼의 그림들이 숙련되고 노회한 솜씨로 터져 나왔다.


새롭게 전시를 치르고자하는 계획을 일체 궁리하지 않았다.



1994년 장남으로서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기 위해 고향 홍천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중

평창읍에 이르러 운전과실의 차량에 부딪혀 영면하였다.


2007 화가 주재현의 그림에 대한 열망과 천재성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자발적 정성을 모아

서울, 춘천, 홍천에서 연이어 추모전을 열었다.

130여 쪽의 도록을 제작하여 그림자료를 귀하게 남겼다.


2014 새로 개관한 홍천미술관에서 천재적이고 열정적이었던 주재현의 추모전을 열다.

화가 주재현은 생전에 2천500여점의 방대한 그림을 남겼다.



<작가노트>


접었던 날개가 소생하였다.

깃이 서서히 자라고 힘줄은 fantasy를 좇아 바르르 떤다.

지금이 때이다. 가장 현명한 때이다. 날개가 파닥이고 있다.
날자! 날자! 날아야 한다!

터져 솟구치려는 뇌혈.

흉골을 쥐 뜯어 가슴을 트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

면전까지 다가온 예리한 창살에서 벗어나 하늘에 차올라야 한다.
삶을 정지한다.

부활주(復活酒)를 마시고 잠시 정지한다.

불사조 불새는 회생하기 위하여 안개같이 향기로운 나무를 모아 부활을 예견한다.

거기에 불을 질러, 불꽃에 몸을 불살라 다시 새롭게 부활하는 도다.
죽음에 이르렀을 때 늘 하고픈 말이 있었다.
"아하! 이것이 삶이었구나.

태우고 또 태우고 재라도 다시 태워 이제 더 태울 것이 없도다.

굳바이! 세상아!"






 


 

 

 

 

 


 


   















































               

 






화가 주재현 10주기 추모행사 알림(주재현을 기리는 기리는 모임)| ,·´″```°³о☆ 자유 게시판

동산에 | 조회 112 |추천 0 | 2004.03.22. 01:23


<화가 주재현을 기리는 모임>에 부쳐
백 중 기

안녕하세요.
폭설이 크게 내렸으나 어김없이 새싹이 돋는군요.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기억하실 십여 년 전에 영면한 화가 주재현을 기리고자하는 당위성과 소회를 말씀드리고자합니다.

저는 강원도 영월에서 그림 그리는 백중기입니다.
오늘 이 초청장을 보냄에 있어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 여러모로 이야기 될 수 있겠지만, 너그러운 양해를 바랍니다.

주재현은 81년도 강원대학교 미술교육과에 입학한 후부터, 스스로 자칭 화업 원년 운운하며 94년 영면할 때까지 그리 길지는 않으나 집요하도록 그림이라는 하나의 화두에 몰두해왔습니다.
유달리 기행적인 면모도 있었고 삶에 대한 애정과 불만과 적응과 부적응의 부대낌이 남달랐다고 생각되어집니다.

화가의 삶과 그림이 따로 분리되어 질 수는 없는 노릇 일 겝니다.
더불어 그림이 한 사람의 삶과 인격을 결국 말해주는 가장 중요한 증거일 것입니다. 삶을 이미 마감한 한 인격에 대해선 더욱 잣대가 엄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영면한 지 십년이 흘러 강산과 문화풍토가 크게 변하였으나 변함없이 남아있는 화가 주재현의 유작들을 그의 삶과 더불어 객관적으로 사려 깊게 살펴 보아야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화업 십 몇 년, 그리고 일찍 요절한 작가이지만, 화업의 길고 짧음이 결코 화가의 일생과 그림에 대한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평범한 상식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몇 가지 근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그가 남긴 그림이 이천오백여점을 헤아립니다.
일차로 그가 틀림없이 사인하여 완성작이라고 남긴 그림들의 그 방대한 분량에 첫째로 주목해야할 것입니다.

2. 아마도 그의 방대한 그림 전체를 꼼꼼히 살펴보았을 관객은 거의 없었다고 보입니다. 전체를 보았건 절반을 보았건 혹은 대강을 보았건... 제가 돌이켜 살펴본 관객의 반응들은 이랬습니다. 대부분 일단 충격을 느낍니다. 일반적 가치기준으로 보는 그림의 완성도를 따질 꺼리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유화를 그릴 때 거쳐야하는 과정을 그는 애초에 공부하려거나 시도하려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원하는 그림의 방편으로 필요했을 뿐입니다.

다만 편하지는 않다. 불편한 점도 있다. 어떻게 판단해야 할런지 잘 모르겠다. 혹은 어떤 이들은 그의 그림을 낱낱이 살펴보며 눈물을 펑펑 흘리기도 합니다.
그는 그의 그림에 대해 스스로 설명한 적이 없습니다. 상징적으로 가끔 이야기하긴 했지만.. “작가는 다만 그림으로 말해 줄 뿐이다” 정확히 이 입장이었습니다.

3. 그 스스로 몇 번의 그림 전을 열기는 했으나. 제도권의 화랑이 아닌 거리에 빨랫줄에 주렁주렁 그림을 매달았습니다.
< 그림소풍전>이라 스스로 명명했고, 한꺼번에 수백 점의 그림을 수백 미터에 걸쳐 늘어놓는 전시방식을 택하였습니다. 무모한 방식이었지요.
하지만 그 때 몇몇 언론에서 상당한 지면으로 주목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언론의 주목과 상관없이... 소풍객들이 그의 그림을 어떻게 제대로 바라보았을 것인가...다섯 걸음에 일고여덟 그림이 함께 걸었을 겝니다.

4. 딱 한 번 제도권 화랑에서 대작위주의 그림으로 상당히 성공적인 전시를 치른 후 그는 모든 것을 접고 낙향했습니다.
상식적으론 그 제도권화랑에서의 그림은 그의 사절지 그림과는 다른 엄청난 에너지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더욱 시도해 보았더라면...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만, 그는 그 점에 대해 미련이 없었습니다.
한 번 그런 곳에서 해 보았으니.. 다시 할 생각은 없고.. 사절지가 천상 편하고ㅡ 골방이 편하다..그랬지요.
낙향하여 일년 여간 죽어라 그림 그린 곳이 하필 그 나름의 연고도 하나 없는.. 제가 살고 있는 산골짜기 연당이란 곳이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한 번 온 셈입니다.
왜 몽땅 다 버리고 여기 와서 그림 그렸는가는.. 저도 아직 모릅니다.

그는 어느 때부터인가 그가 그때껏 그려왔던 모든 그림들에 지문을 찍었습니다. 늦게야 그림이 제대로 평가되리란 말도 했습니다.
또 자신의 그림이 하나의 종결 점에 이르렀다는 암시를 자주 했음을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론, 그는 아주 지독히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추함, 삶의 희망과 아름다움과 절망에 몰입했거나 당당히 그 시점을 추구했고, 그 것은 그 개인만이 가진 삶의 운명이었고 독특한 개성이었습니다.
그 점에선 애초부터, 시대의 유행에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시대와 화해하는 인연을 대부분 거부해왔습니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그 갈등 속에서 그는 늘 사랑을 꿈꾸었고, 그의 기질은 이 상식적인(?) 사회와 늘 정신적 육체적 마찰 속에 있어왔다는 것입니다. 그의 삶 앞에 어정쩡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삶이 세상과 그다지 화해하지 못하였으나, 그는 분명 자신의 삶과 그림에 엄정하고 치열했으며 자기 스스로에 대해 냉엄했습니다.
이상이 제가 십년이 지난 후 개인적 감정을 자제하고 지독하게 냉정히 내린 결론입니다.
그 전의 그의 행동은 기질과 감정이 앞선 면이 있으나... 나중 정작 교사의 길을 그만 두고 강릉으로 춘천으로 떠돌며 그림그릴 때의 그의 심장은 근본적인 그 무엇이었습니다. 그는 분명 그림을 그려볼 자신은 있었으나, 미술교사를 할 자신은 없었습니다. 선택의 여지 따로 없는 운명적인 그의 팔자소관이었습니다.

예술이 무엇이고 문화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화가 주재현이 무명화가이고 비 제도권 화가이고 지방화가인.. 여러 가지 여건 속에서 그의 그림이 정당하게 평가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고 이후로도 누군가 애써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면 쓸쓸히 잊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때로 공포감을 느낍니다. 알뜰살뜰 누군가의 그림을 챙겨 보아줄 만큼 이 시대가 여유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더구나 잊혀질 만한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옛 작가를 주목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정당하게 평가받을 기회, 혹은 그러한 여건은 있어야 이 나라 문화가 정상적이란 판단합니다.
물리적인 그림 숫자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백 번을 생각해 보아도, 정당한 평가의 장이 마련되어야한다는 판단입니다.

3월 28일 <주재현을 기리는 모임>십주기 행사를 갖고자합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십년만의 소회와 만남의 정과 주재현을 생각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길 소망합니다.
십주년행사에 참가하는 것과는 별개로, <주재현을 기리는 모임>의 발족이야말로 그의 유고전을 마련하기위한 작지만 큰 출발입니다.
관심과 애정으로 지켜보아 주시길 호소 드립니다.
이 모임에 흔쾌히 동참을 약속해주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건강과 평화를 기원 드립니다.


▣3월 13일(토요일)에 몇몇 분이 춘천에서 만나 궁리를 하였습니다.

그 때 궁리한 결과는 이러합니다.

< 주재현을 기리는 모임>이라는 명칭은 <주재현 유작전을 준비하는 모임>과 같은 딱딱한 명칭보다 부드럽게 하자는 의미로 그리하였습니다.
대표나 총무같은 자리를 만들지 말고 모두가 함께 주재현을 기리는 친구로 하자는 것이지요..
이 모임의 발족을 위해 동문제위 분들께는 제 능력상 일일이 연락을 취해 부탁을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저 눈에 띄는 데로(표현의 무례함을 용서하세요. 달리 표현할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죈 종일 전화통을 잡고 모임에 동참하는 이름 석자 올려 주십사 부탁드렸습니다. 전화통화가 가능했던 동문들과 동문이 아닌 분들의 동의를 얻어 <주재현을 기리는 모임의 친구들> 명단을 올립니다.
“당장 무슨 도움이 필요한가?” 물으신 분들이 많으셨는데... 당장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심정의 동감만으로도 황송할 뿐입니다. 연락을 드리지 못한 분들께는 적당한 기회에 설명 드리고 고견과 도움을 요청 드리겠습니다.

<< 주재현을 기리는 모임의 친구들>>... 가나다와 같은 순서 없이 수첩에 적힌 대로 올리겠습니다.

이영섭(총동문회장) 신종택(조각가) 유진규(춘천 마임의집대표)
한영호(예술대교수) 효산(스님) 고현준(화가) 최해운(민영뉴스통신사 newsis대표) 김귀오(노랫꾼) 노인경(아원공방) 신명덕(목조각가) 권광무(도예가) 박병태(교사) 권광칠(교사) 전장원(화가) 박미현(도민일보 문화부기자) 변현옥 주재선(교사)
신수연 홍승(스님) 박학준(교사) 송병진(교사) 이종우(교사) 박정우(교사)
유화식(교사) 김기화(교사) 김윤선(교사) 윤재복(교사) 표기석(교사) 정태범(교사) 박지영(교사) 김봉환(제2그래픽대표) 조우성(미술학원) 김경남(교사) 원종언(교사)
송광희(조각가) 엄재오(동문회연락꾼!) 최형순(미술평론가) 윤석길(교사)
류삼렬(교사) 이영섭(조각가) 강신영(조각가) 김동성(교사) 유혜숙(교사)
이창원(교사) 정원미(교사) 백남식(교사) 이승민 엄주열 김규성 조모희 백중기

이상 51人입니다.

동문 선배님들과 동료 후배님들께 연락드려야 마땅하나, 열 분 정도에게는 전화연락이 되질 않았습니다. 화가 주재현을 아시는 동문들께서는 이 모임의 발족이 다만 모임을 알리는 상징적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화가 주재현 십주기 추모행사에 관해 드리는 말씀>

이 번 십주기 추모 행사는 <화가 주재현을 기리는 모임>에 선뜻 동참해 주시는 분들 중 참석이 가능한 분들이 일차로 함께 모여 그를 추모함과 동시에, 이제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 볼 것인가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유작전에 대해 미리 나누어본 의견은 이렇습니다.
화가 주재현의 그림들을 제대로 세상에 드러내고 우리 모두가 함께 공유할 비전과 틀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의 그림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형식과 내용 공간을 함께 연구해 보는 것이 그 것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시작과 준비와 결과에 이르는 기간은 어떤 형식이 될 런지, 몇 년이 걸릴 런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런 글을 띄우는 주체는 누구인가?
진척된 어떤 결과물이 있는가? 없습니다..
역부족이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역부족이었음으로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무슨 도움을 청하겠는가...그 역시 또한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동참하시는 분들의 고견을 듣고 싶고, 향후 도움을 받을 일이 있으면 도움을 청하겠습니다.

진지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여러 가지 궁리들이 있으면, 그 중 바람직하고 예쁜 것들을 모아 추진하게 될 것입니다.
추진하는 사람들은 입장이 서고 전망이 서면, 행동할 것입니다.
행동하는 과정의 결과 또한 소상하게 밝혀드릴 것입니다.
유작전을 추진함에 있어 열 가지 스무가지의 가능성, 아이디어 모든 것을 의론해보고 핵심적으로 가능하다 여기는 몇 가지를 중점적으로 실행에 옮기게 될 것입니다.

여러 가지 고언과 질책과 격려와 사랑을 주시길 바랍니다.






▣화가 주재현 십주기 행사<주재현을 기리는 모임>의 내용을 알립니다.

●. 십주기추모식 장소와 시간/ 3월28일 오후2시/강원도 영월군 남면 연당리 강변
● 연락처/ 033- 372- 4398 핸드폰/ 011- 9793- 4398
(오시는 분은 미리 연락주시면 고맙겠고요, 길이 헷갈릴 땐, 전화 로 연락주고 받음이 젤로 확실하고 편하더라고요)

● 행사내용/ 연당강가에서 화가 주재현의 친구들이 풍물 비나리로 시작합니다. 세부적 일정은 여기에서 마련하겠습니다. 노래를 부르실 분이나 나름대로 가진 노하우가 있으시면 그 날 펼쳐주시면 되겠습니다.

● 행사 끝난 후에 화실로 이동하여 <주재현을 기리는 모임>에 대한 여러 의견을 나누게 됩니다. 그의 그림 일부를 감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 시간을 2시로 정한 것은 당일 오셨다 가실 분들을 고려하여 정하였습니다.
잠자리 편히 모시겠습니다. 먹거리도 푸짐하게 준비하겠습니다.
기타 궁금한 점은 조☝ 위에 전화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메일주소/dongsane@dongsane.com)

▣주재현 프로필
1961 강원도 홍천 生
1980 춘천고등학교 졸업
1988 강원대학교 미술교육과 졸업
1990 춘천 강원 도청앞 거리전
1990 인사동 거리전
1990 강릉 경포대 그림소풍전
1991 그림일기 초대전(강릉. 갤러리 자화상)
1991 그림일기 초대전(대구. 대백갤러리)
1991 개인전(서울. 청남미술관)
1992 강원도 영월에서 그림에만 열중하다
1994년 3월 29일 세상 떠남

따로 주재현 프로필에 대해선, 어설픈 홈페이지에 선명하지 못한 그림 수십 점과, 그에 대한 단상이 소설식으로 소개되어있습니다.
http://dongsane.com/주재현/재현프로필.htm




               

 

주재현 展

 

빛과색채의 드로잉초대전

 

 

 

 

 

 

 

 

 

 

 

 

 

 

 

 

 

 

 

 

 

 

 

 

 

 

 

 

 

 

 

 

 

 

 

 

 

 

 

 

 

 

 

 








주재현화가 그림읽기<많은 참여 요망드려요>| ♡ 자유게시판

백중기 | 조회 110 |추천 0 | 2007.02.24. 11:13

 

이 글은, 이제 주재현화가의 그림을 세상에 본격적으로 드러내었음으로, 주재현화가의 그림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거나, 분석이거나... 다 좋습니다.

의견이 있으시면 편하게..댓글형식으로든 답글형식으로든,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오늘 운을 띄우겠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저는 이 글의 주제에 대해, 주재현 그림에 대해 "썰"을 풀어볼 작정입니다. 함께 동참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재미있는 일이지요? 특히 그림을 소장하신 분 들 께서서는 소감 한 마디만 남겨주셔도, 그 의미들이 뭉쳐지면 뭔가

큰 의미의 틀이 설 수도 있겠지요. 큰 의미의 무엇인가가 없었다면, 이 글을 쓸 이유도 없겠지요.

 

이 전시의 평론을 쓰신 고충환선생님이 주재현 화가의 그림에 대하여.

<무의식적 욕망을 표상한 자화상>이라 명명하였는데, 참으로 적확한 언어이고, 예리한 판단임이 틀림없습니다. 고충환 선생의 평론을 읽고, 아.. 좋다. 라고 제가 무릎을 쳤지요.

<무의식적 욕망을 표상한 자화상>..... 화두 하나 기막히게 던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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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충환 선생이 쓴 평론은 아주 훌륭하지만, 스스로 토로하기를... 자료를 보고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하였습니다. 이 곳 카페그림을 주로 참조하였으니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무의식적 욕망>이라는 해석은 절반은 옳고 절반은 앞으로 해석되어야할 공간입니다.

무의식에 기반을 두고 그림을 그린 것은 맞으나, 혀를 내두를 정도로 치밀했던 주재현 화가의 성품을 옆에서 지켜본 저의 입장으로선, 오히려 의식적으로 행한 부분들이 또한 많으니까요.

 

// 주재현의 그림이 8절지가 대부분이어서, "삽화" 정도로 이해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이 부분은 결단코 오해입니다. 작가 스스로 8절지 크기를 그림의 수단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강익중화가가 손바닥보다 작은 그림들을 설치하였을 때, 뉴욕에서 큰 반응이 있었고, 세계적인 의미의 명성이랄까요? 발상의 신선함의 차원이든 일상생활의 일기 차원이든, 그 것 대단한 의미로 자리매김되었습니다.

20여년 전 그려온 주재현 8절지 그림을 설치하였을 때, 그 느낌은 어떤 것인가?

"삽화" 분명 아니지요. 8절지 그림 한 점 두고 연구해볼 이야깃 거리가 오히려 많습니다.

거의 같은 시기 서양경제학자 슈마허가 쓴 "작은 것이 아름답다"란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경제학자가 쓴 글이니 경제적으로 접근하였지만, 오히려 철학적인 의미로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지금도 그 분의 글은 유효하더군요. 주재현 그림은 그의 표현대로 그림일기 입니다. 8절지가 편했다는 것이지요.

손바닥만한 싯점으로 세계를 본다.. 이런 관점이 옳습니다. 제 키만한 큰 그림들은 일백점 넘게 따로 있습니다.

 

// 22일 전시회 오픈 날, 한영호선생님이 한 말씀이 제겐 의미가 아주 크게 다가왔습니다.

다양한 화풍의 형식을, 그 화풍의 선두주자인 서양화가와 대비시켜 말씀하였는데, 그림의 질적인 의미와 영역이 놀랍다는 요지였지요.

요즘 너무 개성을 따져묻습니다. 순수회화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식으로 생각하고,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아이디어적 상품화경향이 지나치다고 여겨집니니다. 이 삶에 대해 순수예술로 접근하면, 가벼울 수 없습니다. 주재현 그림 무겁다고 하시는 데, 무거울 정도만큼 무겁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외롭거나 유쾌한 명상> 이랄까요? 이 부분은 나중 따로 언급하겠습니다.

고흐의 그림을 예로 들어보지요. 고흐는 일본 목판화에서 영감을 받고 그의 그림의 자산으로 흡수하였습니다.

문화란 것은 교류이지요. 싹이 없는데 허공에서 뭘 찾겠습니까? 다만 그 문화의 개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개성화 시키는가가 중요하겠지요.

주재현 그림은 철저하게 개성적입니다. 너무 개성적이라서...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2500여점의 그림중 제목있는 그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그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런데, 서양화가 몇 분류의 잣대를 거론하며, 마치 그 형식을 도둑질 한 것 아니냐? 하는 식의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글쎄요.... 관점을 달리보면 달리보이는 데.... 잣대를 그런 쪽으로 맞추어 보며 그림을 해석해야하는가. 개인적으론 의아합니다.

작가의 입장에서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가 1차적 문제이고... 그 그림이 의미있다면, 어떤 형식을 차용했는가?를 2차적으로 질문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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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현 그림에 대하여 일단 세가지 부분의 제 생각을 글로 남겼습니다.

저는 직업이 화가인지라, 다소 딱딱하게 말을 하였습니다만, 감상자의 편한 입장이 오히려 소중할 수가 있습니다. 분석보다 한 줄의 소감이 더 정확하고 소중할 수 있으니까요.

많은 분들의 댓글, 답글..릴레이로 이어지길 소망합니다.

귀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갤러리 쿤스트독 기획초대

주 재 현 그 림 나 눔 전


그림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 강원대학교 미술과 同門諸位, 화가 주재현을 기억하는 분들께 주재현유작그림나눔전 추진소식을 전하며 이에 동참을 소망하는 서신을 전합니다.

 

주재현(朱宰賢)은 1961년에 태어나 1994년 불의의 사고로 요절하기까지 젊은 시절 화업의 한 길로만 정진한 열정적인 화가였습니다. 1981년 강원대학교에 입학, 1988년 졸업 후 오로지 미술에만 전념하기로 뜻을 굳힌 의지에 따라 전업화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짧은 화업의 여정이었지만 그 만의 독특한 개성과 작품성이 살아있는 그림 2500여점을 세상에 남겨두었습니다. 2500여점의 방대한 분량의 유작들은 일정한 흐름과 완성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무명화가의 그림과 삶의 여정이 도중에 멈추어선 것이 아니라, 일정한 삶의 한 귀결점을 의미 있는 완성의 세계로 드러내 보인다고 우리는 여기고 있습니다. 화업초기의 그림부터 다량의 미발표 작품 중 300여점을 선별 전시하여 그의 작품세계를 함께 공유하고자합니다.

작품전의 의미를 더하기 위해 후원인이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나눔의 장을 마련합니다.

동문제위와 주재현을 기억하는 분들의 애정 어린 동참이 어우러지는 과정을 통해서 이 전시가 뜻 깊은 의미로 확장되리라 믿습니다. 이에 마음과 물질적 성원을 요청 드립니다.

2006년 11월. 주재현유작전추진모임드림


전시일정/ 2007년 2월 2일(금)- 2월 11일(일)

전시장소/ 갤러리 쿤스트독(http://www.kunstdoc.com)
후원/ 강원대학교미술과총동창회. 미술포털 아트다 (
http://www.artda.co.kr)

후원금입금계좌/ (농협. 219-01-280701. 예금주/ 백중기. 010-9372-4398)

후원금접수마감/ 2006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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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장 안내

-후원인 모두에게 전시도록을 드립니다.

-다음카페에 가입 후 전시작품 300여점을 미리 볼 수 있습니다.

-카페에서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방법을 자세히 안내합니다.

-후원인중 20만원이상을 기부하신 분께 전시작품에 한하여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권한을 드립니다. 이는 후원인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자 나눔의 의미를 뜻있게 하고자 함입니다.

-카페에 게시된 그림을 직접보고 소장을 희망하는 그림을 바로 선택할 수 있으며, 후원금납부 확인 후, 그 즉시 개인 소장품으로 인정하여 카페게시판에 공지합니다.

-개인소장품으로 인정된 그림은 액자에 넣어 소장자를 명시하고 작품전에 전시됩니다.

-판매된 그림으로 얻어진 수익은 전액 작품도록을 제작하는 데 쓰입니다.

카페/http://cafe.daum.net/wogldjsl. 카페검색/ 다음카페 검색창에 <그림장군> 입력.


주재현유작전추진모임
   -자문위원/ 황효창. 유진규. 한영호. 이영섭
   -실행위원/ 강원대 미술과 81학번 동기모임- 김기화. 권명선. 김봉환. 김윤선. 백중기

              주재현을 기리는 사람들 모임- 권광무. 이승민. 신명덕. 이재성. 김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