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16. 20:00ㆍ내 그림/내 유화 작품
이렇게 두 개나 그리면서도 아무런 느낌이 안 왔던 것은,
당시의 내 실력이 베끼기에도 급급하던 때라서?
..........
..........
‘모딜리아니의 눈동자’에 대해서는,
나와 아주 똑같은 생각을 가진 분의 글이 있길래 아주 오래 전에 캡쳐해 놨었는데,
그대로 옮깁니다.
- 前略 -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생각해보라구!,, 모딜리아니가 너의 초상화를 그린다면... 겁나는 일이지.
당장 네 눈에 손가락을 넣어 눈동자를 빼어놓고 그림을 그릴거란 말이지.
모딜리아니의 그림에서 여자들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것은
그 내면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더 적절했다는 평도 있었지만
어쩌면 대상은 그림에 녹아들어 그 실체성을 잃은 것은 아닐까?
눈동자가 없는 초상이란,,,
단지 여자라는 ─ 누구라는 확정된 사실이 아닌, 어떤 여자라도 괜찮다는 ─
개인성, 고유성이 없이 보편성만을 지닌 것으로만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모딜리아니의 개인적인 생활도 보면 여성편력이 심했지.)
아님... 눈동자를 그림으로써 자신의 현존을 외치고 자신의 권리를 요구할까바
겁이 난 것은 아닐까?
그런 남자를 사랑한 여자는 어땠을까?*
한 남자... 아니, 사랑하는 남자가 죽었다고,
임신 8개월의 몸으로... 생명을 품고 있는 여자가 죽을 생각을 했다는 것,
내게는 너무나 모순된 일이라고 여겨지네?
여자가 임신 8개월이라면 벌써 태동을 느끼고 발길질을 느낀다는 건데...
어떤 의미로는 죽은 남자의 생명을 이어나갈 수도 있을 아기까지 희생하면서
죽음을 선택한 여자의 슬픔은 어땠을까? 세상의 끝이었을까?
많은 의문을 가지게 하는 화가...
그런데 이 그림... 기막히게 아름답더라!
글. Rosa
펌글 2)))
Amadeo Modigliani (아마데오 모딜리아니) 1884 - 1920
Jeanne Hebuterne(쟌 에뷔데른) 1898-1920
- 14살 차이 -
모딜리아니는 1884년 7월 12일 이탈리아에서 태어 났습니다.
모딜리아니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의 작품을 보면,
유난히 긴 목을 가진 여인들을 많이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림 뿐만이 아니고, 그의 조각 작품에서도 목이 긴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보티첼리의 비너스 영향을 받아서라고 합니다.
비너스의 목도 길고, 얼굴과 목의 각도가 조금 어긋나 있습니다.
그리고 긴 얼굴은 아프리카 원시 조각상의 영향이라고 합니다.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목이 긴 여인의 초상화,
관능적인 자태로 누운 여자 누드,
어디를 응시하는 지 모르게 선명하지 않은 눈동자
그러면서도 강렬한 감정이 품어 나오고,
그의 길고 왜곡된 인물상에서 보면 볼수록 묘한 매력을 발휘합니다.
그의 그림은 오래된 포도주처럼 서서히 감미롭게 취하기도 하고,
마음의 피로를 녹여주며,
천천히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만드는 서글픈 존재감에,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수에 젖게 하면서 그만의 슬픈 친밀감을 느끼게 합니다.
짙게 배인 인생의 애환과 애수에 젖은 고독감.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 파리에서 활동했던 시인, 문학가, 예술인 친구들,
어려서부터 잦은 병고와 알콜과 약물 중독,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마지막 연인이자 아내였던 쟌 에뷔테른(1898-1920)이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은 파리 몽파르나스의 카페 ‘로통드’입니다.
카페 ‘로통드’는 당대의 철학가, 시인,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곳이었습니다.
쟌은 학교 수업 후 가끔 들르던 그 카페에서,
어느날 깔끔한 코듀로이 재킷에 붉은 스카프를 두른 잘생긴 화가 모딜리아니와 마주칩니다.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저녁을 흥정하고 있던 젊은 화가 모딜리아니를 바라보던
도도한 젊은 화가 지망생 쟌이 웨이터에게 말합니다.
“저 남자한테 저녁과 포도주를 주세요. 저녁값은 내가 내겠어요”.
그 당시 쟌은 화가를 꿈꾸던 미술 학교 학생으로,
옷과 장신구를 직접 디자인 할 만큼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모딜리아니는 가난하고 이미 결핵성 늑막염으로 병고에 시달리던 시절이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친절하고 매너가 좋아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술집 여인을 비롯해 많은 여인들이 돈을 받지 않고 그의 누드 모델이 돼 주었다고 합니다.
반항기 있는 묘한 눈빛의 18세 소녀와, 32세의 모딜리아니는 서로 매료 되었고,
곧 둘이 동거에 들어갔습니다.
둘이 같이 사는 동안에 항상 가난했고, 겨울에 난로에 장작을 넣을 수도 없이 춥게 살았는데,
그런 생활에도 모딜리아니는 그림을 쉬지않고 그리니 춥지 않다 했고,
그런 모딜리아니를 바라보며 모델을 해 주던 쟌은 옷을 입고 있지 않아도 춥지 않다 했습니다.
잘 때는 화기 없는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 둘은 꼭 끌어안고 잤습니다.
여성 편력이 심했던 그는 쟌과 함께 지내는 동안에도 다른 여인들을 작업실로 끌어 들였으나,
쟌은 그런 모딜리아니를 이애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한 그의 생활과 작품세계와의 관계가 예술적 영감을 표현하는 데 불가피한 것이기 때문에,
쟌은 오히려 그런 과정을 거쳐서라도 모딜리아니가 더 많이 알려 지기를 바랬습니다.
두사람의 사랑과 서로에 대한 믿음이 강했기 때문에,
쟌은 그런 모딜리아니의 생활에 불안해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모딜리아니는 그의 작품에서 얼굴을 길게 늘여 놓기도 하고, 불균형적이기도 하고,
눈을 도려내기도 하고, 눈동자에 색깔을 강조하지 않고 회색으로 그리거나 아예 그리지 않았습니다.
눈동자 없는 두 눈이 서로 완전 다른 색깔로 칠해져 있는 것도 있습니다.
쟌이 묻습니다. “왜 눈동자를 그려주지 않죠? 모디?”
그는 말합니다. “당신의 영혼을 그릴 수 있을때 당신의 눈동자를 그릴 수 있을거야”
눈은 마음의 창입니다.
슬픔. 기쁨, 분노, 고통이 나타나는 눈동자를 통해서 모딜리아니는그 영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수많은 창녀들과 여인들의 자화상및 누드를 그렸지만
그는 그녀들에게 눈동자를 그려주지 않았습니다.
눈동자 없는 그녀들의 그의 그림에서 쟌은 위안을 얻었던 것일까.
그런 모딜리아니가 그린 쟌느의 모습, ─
갓 목욕을 하고 나온 듯한, 약간 상기 된 두 뺨에 가슴을 한 손으로 가린 쟌느,
모딜리아니는 드디어 눈동자를 그려 주었습니다.
“이제야 당신의 영혼을 그릴 수 있어” 라고 그는 말합니다.
눈동자가 그려 있는 쟌느
자아가 강했던 쟌은 방탕한 생활에 젖어 있던 나약한 모딜리아니를 위해
모델, 아내, 정신적 후원자가 되어 주었고,
모딜리아니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만약 모딜리아니에게 쟌이 없었더라면
그의 천재성은 빛을 보기도 전에 방탕한 생활에 시들어버렸을 것입니다.
두사람은 1917년에 만나 몽파르나스 작업실에서 2년여간 생활하다
결핵을 앓던 모딜리아니의 병세가 악화되자 니스 해변가로 옮겨
그 곳에서 본격적으로 둘만의 시간을 가지며 많은 작품들을 남깁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고 생활고에 쪼들리게 되자
모딜리아니는 다시 방탕한 생활에 빠져들고 점점 괴팍한 성격으로 변해갑니다.
결국 파리로 돌아왔지만,
이미 모딜리아니의 건강은 악화되어 있었고,
그의 불안과 분노는 쟌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도 이들이 니스에서 함께했던 2년이 채 안되는 시간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초상화 작품을 가장 많이 그린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리로 돌아온 후,
부유했던 쟌의 가족들은 더이상 쟌과 모딜리아니와의 만남을 가져서는 안되겠다 생각해서
쟌을 그녀 어머니집으로 데리고 와 감금해 버립니다.
둘사이의 아이도 모딜리아니에게 보여주는 것을 엄격히 통제하였기에,
모딜리아니는 쟌의 집 앞에까지 여러번 와서 계단에 앉아 있다가 못 만나고 그냥 돌아 갔다 합니다.
그 당시의 쟌은 그들의 둘째 아이를 갖고 있었습니다.
쟌의 어머니가 얼마나 모딜리아니를 싫어했는 지는 유명할 정도 였습니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감금 된 쟌은 여러번이나 도망쳐
모딜리아니의 춥고 가난한 그의 공간으로 만나러 가곤 했습니다.
점점 병색이 짙어지는 남편을 보면서,
쟌은 그의 죽음을 준비하여
“자살(Suicide)” 라는 작품과
아파하는 모딜리아니의 모습을 그린 드로잉을 완성합니다.
쟌이 그린 병으로 아파하는 모딜리아니. .
병색이 짙은 모습을 그림으로 담았어도 사슴과 같이 아름다운 모습의 모딜리아니의 모습으로 그려 주었다.
쟌이 그린 "자살". .
남편인 모딜리아니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그가 떠난 후에 얼마나 괴로울 지를 미리 그린 그림이다.
결국 모딜리아니는 그의 지병으로 1920 1월 24일, 서른 여섯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그 소식을 듣고 쟌은 임신 8개월의 몸으로 그가 눈을 감은 날로 부터 이틀 후,
그녀의 어머니 아파트 에서 뛰어 내려 투신 자살하고 맙니다.
"천국에서도 당신의 모델이 되겠어요." 라는 말을 남긴 채.
그 없이 사는 그리움과 외로움을 참고 살아가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것보다
그의 곁으로 가는 것을 택한 것이죠.
그 둘은 쟌느의 마지막 소망이기도 했고,
파리의 묘소에 나란히 묘비가 세워져 있고, 함께 묻혔습니다.
죽어서까지 모디와 함께 하고 싶어했던 쟌.
모딜리아니와 쟌느의 사랑은 영화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Andy Garcia 주연의 영화 “Modigli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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