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품설명 (2) 러시아 풍속화 두 점

2019. 6. 5. 18:26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셋



레쉐니코프, "A 'Two' Again"

  

 

Low Marks Again (1952)  by Fedor Reshetnikov

 

 

 

 Reshetnikov "A 'Two' Again"

  

 

In this picture we see a bad pupil who has got a "two".

In the foreground(前景) we see the boy.

He has just come home from school.

He is standing in the middle of the room with his bag in his hand.

He is very sad and ashamed.

He cannot look his mother in the face.


His mother is looking at him with reproach(비난, 치욕).

Evidently(분명히) it is not the first "two".

She is sorry to have such a son.


His little brother is smiling.

He is too little and does not understand that his mother is sorry.

But he knows that it is bad to get "twos".

He is glad he does not get them.


In the background we see the boy's sister.

She is standing at the table.

She is putting her books and exercise-books on the table.

Evidently she. is going to do her homework.

She is also looking at her brother with reproach.


Only the dog is glad to see the boy.

But the boy does not pay attention to the dog.


He is too sad.

He would like to have a "five" in his record-book(생활기록부, 성적표) instead of "two"!

The picture shows how bad it is to get "twos".











 구술시험



 

                       [N. 보그다노프-벨스키(1868-1945)의 <구술 시험, S.A.라친스키 인민학교에서>(1895), 캔버스, 유화, 107.4x79]


 

 

러시아의 화가 N.P. 보그다노프-벨스키는 자신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고 또 후원해주었던 S.A. 라친스키에 대해

 “그는 나를 정도로 이끌었으며, 인생의 스승이고,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을 빚졌다”라고 자주 말했다.

그래서 라친스키의 초상을 여러 그림들에 표현하였다. 

스몰렌스크 현에서 태어난 천한 날품팔이 여인의 사생아였던 보그다노프-벨스키는

세례 받을 때 '보그-단'이란 이름을 받게 되었고,

후에 자신의 고향 이름인 벨스키를 성에 붙여 근본 없이 태어난 자신의 성(姓)을 스스로 만들었다.


그는 모스크바 대학교 교수였던 세르게이 라친스키가 세운 자선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소질을 드러냈다. 

라친스키는 그를 ‘모스크바 회화, 건축, 조각 아카데미’에 보내서

폴레노프, 마코프스키 등 유명한 화가들에게 수학하게 하였고,

그 이후엔 페테르부르크의 ‘예술아카데미’에서 공부할 수 있게 도왔다.

1890년에 그는 콘스탄티노플과 아폰을 여행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19세였던 보그다노프-벨스키는 성상화에 전념하고 있던 17세의 F.A.말랴빈(1868-1940)을 만났다.

말랴빈은 그의 스케치들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전한다.


보그다노프-벨스키는 1896년에 그린 <구술 시험, S.A.라친스키 인민학교에서>(1896)와

<<학교 대문 앞에서>>(1897)이란 그림부터 유명해지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엔 귀족들을 위한 리체이나 김나지움이 학교 교육의 전부였지만,

라친스키는 평민들을 위한 학교를 열어 교육 후원 사업을 했고 그 모습을 그렸다. 


라친스키가 수학자였기 때문에 칠판에 수학 문제가 쓰여져 있다.

러시아의 전통적 루바쉬카(남성용 윗도리)를 입고 짚신을 신은 학생들의 모습이 다양하다.

문제를 풀어 선생님께 귀띔을 하는 학생,

머리를 긁적이는 학생,

곰곰이 생각에 잠긴 학생,

칠판 주위에 모여 웅성거리는 모습등 제각각이다.

재미있는 것은 수학시험도 구술시험으로 본다는 사실이다.


러시아에서는 모든 시험이 구술시험과 필기시험으로 치러진다. 


1914년 보그다노프-벨스키는 46세에 예술아카데미 회원으로 추대되었다.

1917년 혁명이후 좌파 화가들에 밀려

М. 네스테로프, В. 바스네초프, В. 폴레노프 등의 리얼리즘 계열 화가들의 생활이 힘들게 되자

그도 라트비아의 리가로 망명(1921)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파리에서 개인전(1921,1922,1923,1936,1940)을 열었고,

동으로 마젤란 (1921), 뉴욕(Grand Central Palace, 1924), 프라하 (1928), 암스테르담 (1930), 베를린 (1930), 벨그라드 (1930)에서 전시회를 개최함으로 화가로서의 명성을 날렸다. 


라친스키와 같은 스승이 없었다면 화가 보그다노프-벨스키는 없었을 것이다.

모스크바 대학교수였지만 라친스키는 평생을 불우한 아이들의 교육에 힘썼다. 


러시아의 교육 체계는 11학년제 의무교육(2008년 이전에는 9학년제)이다.

취학 전 과정은 유아원과 유치원이 있다.

1살에서 1살 반이면 유아원에 보낼 수 있다.

유치원은 3세부터 보낸다. 드문 경우에는 유아원에서 생후 2개월부터 받기도 한다. 


대부분의 유치원은 국가, 시, 관청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다.

현재 수많은 사립과 반(半)사립 유치원들이 생겨났지만 아직은 전체의 8%미만 수준이다.

그리고 시립 유치원들에서도 부모들에게 원비의 10-15%를 부담시키는 경향이다.

종일반, 반일반, 반주일반, 등등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6세부터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4년간 공부한다. 

일부 명문 초등학교에서는 러시아어와 수학 능력 시험으로 입학시험을 치르기도 한다.

초등학교의 기본 과목은

러시아어(문자/서체), 러시아어 읽기, 수학, “우리 주변 세계”, 체육, 음악, 지리, 노동, 미술 등이고,

2학년부터 외국어 교육(영어)이 시작된다.

일부 학교에서는 영어 외에도 제 2외국어 독어, 불어, 스페인어 등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2학년부터 컴퓨터 교육도 실시할 계획이다. 

1학년은 1주에 20시간 까지, 4학년은 30시간까지 수업을 한다.


5점제 성적 산출 방식을 취하는 러시아에서

1학년에서는 점수를 매기지 않고,

5점은 ‘별’, 4점은 ‘네모’, 3점은 ‘삼각형’이지만 보통은 말로 ‘좋다’, ‘잘함’, ‘아주 잘함’ 등으로 나타낸다.

4학년 말에 성적표를 받아 1년을 유급해서 더 공부하거나 5학년으로 올라가거나,

중학교 교육 과정인 리체이, 김나지움이나 5년제 공립학교로 옮긴다.

그러나 보통 공립학교가 11학년제이므로 계속 그 학교에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9년의 중등교육을 마치면 기술학교, 콜리지, 다른 직업 교육기관을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며,

11학년의 중등학교나 김나지움이나 리체이(이 두 종류의 학교는 엘리트 학교라는 인식이 있음) 졸업생들은

대학교 등의 고등 교육 기관에 들어갈 수 있다.

러시아란 나라가 강국의 반열에 다시 올라선 것도 라친스키와 같이 후학양성에 앞장섰던,

평생을 회상하며 빚졌다고 고백할 수 있는 스승들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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