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5. 19:05ㆍ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셋
등짐을 지고 설산에 오르는 네팔 사내들. / 김남희 촬영
"여행이 첫째고요,
두 번째는 글 쓰는 것,
사진은 세 번째예요.
부끄러움이 앞서지만 용기를 내 사진전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2004년 11월 2일부터 15일까지 북촌미술관에서
'길 그리고 여행(女行)' 사진전을 연 김남희씨의 첫 마디는 수줍음이었다.
2001년부터 국토종단을 비롯해 세계 30여 개 나라를 여행한 그의 직업은 '도보여행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언어가 아닌 다른 것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요.
사진도 그 중 하나"라고 말하는 그에게 가장 마음이 끌리는 작품을 물으니,
하얀 산을 배경으로 커다란 등짐을 나르는 포터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꼽았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걷는 자신이 산에 비친 것 같은 모습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물을 긷던 한 네팔 여인이 넋을 놓고 안나푸르나를 바라보고 있다. ⓒ 송성영 2016.06.20
- 란드룩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에게 안나푸르나는 생활이다 -
이른 아침부터 수돗가에서 아낙네가 양동이에 물을 긷다 말고 안나푸르나를 넋놓고 바라보고 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안나푸르나를 평생 동안 바라보고 살아왔을 아낙네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 같은 배낭객들은 평생 한두 번 볼까말까 하는 저 안나푸르나에서 벗어나
화려한 도시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어젯밤 남편과 대판 싸우고 신세 한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가슴이 아파온다. 아니다. 나는 불경한 생각들을 접어둔다.
저 아낙네는 신처럼 변함없는 저 안나푸르나를 향해 마음속으로 행복한 뭔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올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온갖 상상을 해가며 좀 더 마을 아래로 내려섰다.
- 송 성영, <네팔 안나푸르나에 산다는 것> (2016.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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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인 아줌마가 칼과 나무토막을 들고 와 선반을 만든다며 퉁탕, 스슥거리며 작업을 하고 있어.
저 큰 칼과 도끼를 자유롭게 다루는 이곳 여자들을 보노라면,
가끔 내 자신이 육체적으로 참 무력하게 느껴지곤 해.
도시에서 살아온 대가로 내가 잃은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육체적 능력’인 것 같아.
이곳 여자들의 삶이 힘들고 고되기는 하지만,
‘남자들의 일’이라고 아무 의심 없이 믿어져 온 일들을 당당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면 존경심이 절로 일어.
참 서글픈 건, 가난하게 살아가는 곳일수록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훨씬 더 많은 일을 한다는 거야.
남자들에게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는 게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걸 떠나서 생각해봐도,
이곳 남자들이 거리에서 빈둥거릴 때에도 여자들은 끊임없이 크고 작은 일을 해내고 있는 것 같아.
집안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나무를 베어 오고,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뜨개질을 하거나 물레를 돌려 기념품을 만들어 팔고, 물을 길어오고….
마을길을 보수하거나 집을 짓는 공사장에서도 남자들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여자들의 모습을 종종 보게 돼.
내가 자연을 사랑하고 산을 좋아한다고, 인간은 도시를 떠나 살아야 된다고 입바르게 떠들어대고는 있지만,
과연 이곳에서 이곳 여자들의 삶의 수준과 똑같이 살아야 한다면,
이 고단한 삶을 견디어낼 힘이 내게 있을 지 의문이야.
그때 내 삶을 끌어가고, 일상의 팍팍함을 견디게 해주는 동력은 무엇이 될지,
내가 그것을 찾아낼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워.
- 김남희, <네팔 랑탕 트래킹 3> 중에서 (2004.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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