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에드워드 호퍼

2018. 8. 25. 09:07미술/미술 이야기 (책)

 

 

 

 


                         <철학으로의 여행>Excursion into Philosophy, 1959, 유화, 76.2x101.6 cm, 개인 소장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철학으로의 여행(Excursion into Philosophy)'과 '밤새우는 사람들 (Nighthawks)'을 접한 뒤로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는 창가에서 바깥 보기와 밤의 불빛 아래의 사람 관찰하기를 좋아하고, 계단과 복도, 북쪽 채광창, 석탄이 타는 벽난로, 남쪽을 향한 창, 텅 빈 마루 등을 즐겨 그렸다. 쉴 때는 폴 발레리 평전이나 보들레르 시집을 되풀이해서 읽었다.

호퍼는 호텔방, 극장, 기차 칸, 주유소, 이른 일요일 아침, 펜실베이니아의 새벽, 정오, 여름 저녁, 감리교회, 중국인 식당, 뉴욕의 방, 철로변 호텔, 4차선 도로, 웨스턴 모텔, 좌석 열차 같은 그림을 드라마 속 장면처럼 그려냈다. 그에게서 미국의 개인주의 성향과 청교도주의의 영향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빛의 양감(量感) 속 인물은 삶의 중압감에 눌려 나른한 권태와 음울함에 빠진 듯하고, 멜랑콜리를 자극한다. 도시 속 삶이 메마르고 고독하다는 인식은 피할 수 없지만, 그는 빛의 은총으로 일상을 감싸며 반짝이는 풍경으로 바꿔 놓는다.     

 

 

호퍼는 1882년 뉴욕주 나약의 네덜란드계 이민자인 침례교도 가족에서 태어나 자랐다. 철도가 놓이고 뉴욕주에 막 전기가 들어올 무렵 그는 산업화로 빠르게 변하는 세계를 온몸의 감각을 열어 빨아들이며 감수성을 키웠다. 금발에 건강한 체구로 자란 청년 호퍼는 뉴욕 미술학교에서 그림을 전공했다. 대학 동문으로 화가인 아내와는 평생을 다투고 사랑과 연민으로 감싸며 살았다. 1967년 5월 15일, 85세 생일을 이틀 앞둔 호퍼는 워싱턴 스퀘어 스튜디오에서 사망한다. 그는 '예술가 중 90%는 사망한 지 10분 안에 잊힌다'고 했다. 하지만 도시의 사적인 비밀과 수수께끼를 꿰뚫고 빛과 그늘 이미지로 가득 찬 시(詩)로 빚은 호퍼의 그림은 영화· 드라마· 광고· 포스터· 티셔츠· 레코드 재킷· 잡지 표지 등으로 널리 퍼지며 사랑을 받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22/2018082203774.html

 

 

 

 

이렇게 짧은 문장 속에 에드워드 호퍼 작품의 엑기스를!  

 

 

 

 

 

 

 

 

 

 

 

 

 

 

 

 

art-home | 조회 46 |추천 0 | 2004.01.18.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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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의 작품 스타일과 주제 선택의 괄목 할 만한 일관성을 고려할 때 , 그가 연구를 계속 하였던 주제 속에서 그의 성숙된 예술성을 연구하는 일은 뜻깊은 일이라 하겠다.
이들 주제는 작가의 개인적인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호퍼의 개성의 특성을 고찰할 때 우리는 그의 예술이 지닌 내용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호퍼는 뉴욕의 니약 (Nyack) 출신의 미국 화가이며, 그는 로버트 헨리 (Robert Henri) 의 제자였다, 그의 첫 번째 작품은 아모리 쇼 (Armoury Show) 에서 발표 되었으나 1920년대 까지 작가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생계유지를 위하여 작품 제작을 중단하고 삽화로서의 일을 시작 하였다. 그리고 현대미술 박물관의 설립 의사들은 첫 번째 개인 전시회의 하나로 그를 지목 하였다.
그 이후 길고 꾸준한 경력을 통해 그는 많은 유파의 화가들로부터 대단한 존경을 받았다.
호퍼는 예술적 성숙기에 접어들어 감에 따라 자기에게 흥미가 없어진 주제들은 던져 버리게 되었다. 그의 수습 시대와 그후 몇 년 동안 그는 인물화에 대한 흥미는 없어지고 “죠 (Jo) ”외에는 다른 인물을 그리지 않았다. 그는 혀성기에 죤 슬론 (John Sloan)처럼 작은 인물들을 제거하여 도시 풍경을 활성화 시켰다. 도시 장면에서 인물을 전적으로 점차 제거 함으로써 호퍼는 풍경속에 어떤 분위기를 투입시켜 공허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호퍼는 그의 작품, 특히 주유소, 호텔, 로비, 사무실 등 에서와 같이 당시에는 독특 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할 지라도 예술의 역사상 색다른 주제를 개발 하였다.
그러므로 본 논문 에서는 호퍼의 예술에 있어서 핵심적인 의의를 찾기위해 그의 마음을 사로 잡았던 작품의 특성에 관하여 고찰해 보고자 한다.


2. 호퍼 작품의 정신적 배경

에드워드 호퍼는 제 1차 세계대전이 치열했던 세대에 속한다. 그당시의 예술, 문학, 문화의 선도자들은 미국 생활의 특성에 있어서 다소의 결점을 보충하는 장점들을 발견 하였으며, 1920년대 초까지 국가의 과거 역사와 현재 국가의 지표에 대하여 지탄을 해왔다. 미국 생활의 몇 가지 측면은 그것들이 정당하건 혹은 그렇지 못하건 유연한 비난에서부터 “위대한 예술은 한 세대의 표현이며, 바로 그 세대 자체는 위대 했었음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우리의 세대는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표현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라는 하롤드 스턴즈 (Harold Stearns) 의 대대적인 비난에 이르기 까지, 그러한 혹평을 수용하지 않았다. 소설, 기사, 수필, 역사적 비평에서 스턴즈는 브룩스 (Van Wyck Brooks) , 후랭크 (Waldo Frank) , 크러취 ( Joseph Wood Krutch) , 레비스 (Sinclair Lewis) ,멘켄 (H.L.Mencken) , 멈포드 (Lewis Mumford) 와 그리고 그밖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국가의 청교도적이고 빅토리아적인 유산, 도덕과 정신의 나약성, 예술적 결핍과 지적 무지로 인해 침해받고 현시대의 위협적인 많은 국면을 포함하고 있는 미국 생활에 있어서의 사실상 모든 것 즉 메카미즘 (Mechanism) 의 영향으로 무력해진 서민들을 비난 하였다.
약 1920년경 미국인 특히 도시인들은 복합적인 특성을갖고 있었다. 즉 대부분의 개개인은 야만인은 아니였지만 문화를 뒷받침 할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표정하며 , 그들은 그들 개개인의 삶을 위해서 살아 간다기 보다는 오히려 집단의 일원 으로서 그들의 일생을 보낸 것이다. 결국 개인적 개성은 완전히 질식된 상태라고 할수 있다. 개성의 힘이 미약할 경우에는 어떤 목적을 달성 하는데 효력이 없는 것이다. “인간이 인식하고 있는 것은 어디서든지 인간이 원하는 것과 항상 대치하고 있다.”라는 크러취의 말은 오늘날에 와서는 우리의 마음에 열망을 불러 일으키기 보다는 호히려 체념과 무기력 함을 유도할 뿐 이다. 크러취는 개인의 존재가 점점 그중요성을 잃어가게 되기 때문에 “인간은 그가 속한 우주에서 더욱더 고독하고 외롭게 홀로 남는다. ‘라고 애석해 하며 관찰한 결과를 언급 하였다. 신비학 . 종교, 철학 혹은 전통도 인간의경험을 적절히 해석 하는데 도움을 주지는 못하였다. 그러므로 불안정한 세계를 이끌어갈 주축을 잃어버린 서민들은 정신적 , 정서적 무감각 상태로 빠져 들어가고 말았다. 미래에 대한 전망은 밝은 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1900년 이래 호퍼가 자주 하였던 뉴욕 이라는 도시는 활기있고 생기있고 도시 이었지만 이에 비례하여 서민 개개인의 생활이 반드시 생기있는 생활이었다고 단정 지을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문명의 발전을설명한 후랭크는 뉴욕사람들은 ”저속한 매춘녀요 그들의 발걸음은 바쁘게 움직이고, 그들의눈은 빛을 잃었다.“ 라고 말하였다. 1920년대의 리프만(Walter Lippman)과 1970년의 토플러(Alvin Toffer)가 공언한 것처럼 후랭크는 아와같이 특성이 발생된 것은 도시생활의 시각 및 청각적인 충격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 하였따. ”도시는 급격히 고조되고 도시의 맥박은 너무 빨리 뛴다. 또 신경과 정신세포 섬유는 그런 긴장 속에서 흥분된다.“ 다시 말하면 후랭트는 1919년에 미래의 충격이라 물리우는 조건을 묘사하는 일종의 감각 기관의 과로를 진단 하였다.
그 당시 도시인들은 그들의 욕망을 발산할 출구와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극복할 수 없는 과거 관습과 현재의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 억압에 대한 출구를 거의 찿을 수가 없었다. 성적(性的)출구 역시 막혔다. 그러나 성적 관습이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변화하기 시작 하였고, 그리고 그린위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와 같은 곳이 다소 자유스러운 성의 천국으로 평판을 얻었을 지라도 작가들은 미국 사람들이 전 세대에서 보다 성적으로 덜 좌절되고 억압 받았다는 사실을 별로 발견 할 수 없었다. 1913년 초기에 골드먼(Emma Goldan)과 같은 몇몇 용감한 사람들은 성교육에 대한 공공연한 강연을 했던 것으로 추측이 되지만 본질적인 대다수의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육체의 욕망은 은밀히 감추어진 생활 일부가 되어 왔다. 휘쩨럴드(E. Scoff Fitzgerald)의 <낙원의 이면 세계(This Side of Pardise)>와 같은 1920suseod 초기의 중요한 소설에서 오히려 사모하고 총애하는 문제로 인식되어 버렸다.
이와같이 널리 퍼진 심리적 억압과 성적 좌절은 기계 시대에 관련된 일종의 부산물 이었다. 기계-그리고 기계시대는 산업기술의 발달 수준과 동일한 것으로 표시 되어왔다. 멈포드는 기계 시대로 향한 태도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우리는 산업도시를 인간에게 적응 시키거나 혹은 사람들을 비인간화 시키는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결국 우리는 이제까지 인간을 비인간화 시켜온 것이다.
그 당시 비평의 눈에 새로운 가치를 발전시킬 필요성에 속하고 있던 범인들은 자신의 현 존재를 대처해 나갈 수가 없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비평가들은 파생되어 나오는 인간의 고립이 새로운 인간의 자유(추상 표현주의자들에 의하여 성공적으로 이용된 관념)를 줄 수 있다고 인식하기보다는 오히려 대중에 의해서 어려움을 겪은 심리학 혹은 문화적 발달에 중점을 두었다. 여기에서 이들은 정신력이 결핍된 국민의 국가는 건강한 인간관계를 발전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 하였다.
그러한 정신적, 성적, 심리적으로 저하되는 병은 호퍼가 묘사한 인물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시각적인 매개의적절한 방법으로 버치훨드(Charles Burchfield), 데무스(charles Demuth).쉴러(Charles Sheeler) 및 호퍼와 같은 예술가들은 또한 그 당시 사회에 대한 그들의 불만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의 염세주의적이고 불안에 지배받는 특질적인 양태에 굳게 뿌리를 내린 그들의 예술은 이전 세대의 특질적인 양태에 굳게 뿌리를 내린 그들의 예술은 이전 세대의 사실주의자와 현대주의자의 작품에 스며있는 인간의 열정과 삶의 윤택함이 크게 결여 되어 있었다.
한가지 중요하게 연구된 과제는 바로 세계에 있어서는 개인의 고립화 현상 이었다. 많은 예술가들은 현대 생활의 저주스럽고 유해한 동시대의부산물을 환기 시키는 이미지를 창조 하였다. 그는 1920년대의 가장 뛰어난 예술가들과 그들의 문학적 대상 사이에서 직접적인 우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찾으러 하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다. 특히 호퍼 자신이 “모든 예술가의 재능에 따라그의 작품이 형성되는 핵은 바로 즉, 자신 즉 자아주의, 개성이며 - 혹은 무엇으로 불리워 지든간에 - 이런 것은 날때부터 죽을때까지 변화되지 읺는다.” 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 시켰을 때 위와같은 관계를 찾으러 하는 것이 더욱더 무의미하다. 이런한 모든 것은 세월이 표류속에 포함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호퍼는 우리에게 1919년의 공통적인 태도에 대해서 이러한 관찰과 그 시대를 넘어선 현대인간의 조건 그 자체에 대한 복잡된
통찰력을 제공하여 주었다. 그의 작품에서 나타난 본질적인 태도는 우리 시대와 같은 시대의 태도이고, 현대 생활의 일반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화가로서 그는 우리에게 슬픈 이야기를 말해주고 있다.

호퍼는 명백한 입체적 묘사와 밝고 맑은 세계로써 평범한 양식을 형성 하였으며, 그의 로맨티시즘(Romanticism)은 형식 보다도 주제 속에서 더욱 명확히 나타나 있다. 그것은 일정한 정신적인 태도하기 보다는 특정의 경험과 장소의 예술인 것이다.
호퍼는 종종 작품속에 단지 한 삶만을 등장 시킨다. 만일 더 많은 사람을 등장 시킨다면 그들은 정적이고, 무엇인가를 응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걷거나 움직일때 그들의 행동은 불가해 하며 기계적이다. 그들의 모습은 때때로 그들이 앞으로 혹은 뒤로 걸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호퍼가 인물은 마치 정신 분열증의 징후(徵候)를 나타내는 것처럼 가끔 움추린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떤 인물들은 거의 긴장병(緊張病)환자와 같은 몽환(夢幻)의 경지로 몰입한다. 그들의 투쟁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것이다. 호퍼는 그들에게 에버구드(Philip Evergood)가 부여한 환상의 세계라든지, 슬론(John Sloan)이나 마쉬(Reginald Marsh)가 부여된 물질적인 충만함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소이어(Soyer) 형제들의 슬픈 모습과는 달리 호퍼가 표현한 인물들은 슬픔을 (혹은 행복, 즐거움 절망) 전하지 않는다. 그들은 관찰자나 다른 인물들과 그들의 경헌을 공유하지 않는다. 가장 순진한 관계는 어떤 면에서 그들을 압도한다. 그들의 자세와 태도는 관계를 맺는 것 보다 맺지 않는 편이 더 좋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호퍼는 그의 작품에서 가끔 인물보다 건물에 한층 더 뚜렷한 개성을 부여한다. 건물들은 고립되어 있고, 자유로우며 무한한 반면에 인물들은 건물의 실내라든지 혹은 건물의 외벽에 의하여 변함없이 둘려싸여 있다. 사실, 그가 묘사한 건물과 실내의 정경은 우리들의 주의( 注意)의 외위(外圍)로 밀려난 인물들보다 가끔 시각적으로 더욱 흥미로운 사실을 우리에게 부각시켜 준다.
호퍼의 능숙한 색채 처리는 역시 그의 그림에 분위기를 한층 j 부여한다. 그의 색채는 밝으나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따스함을 느끼게 하지는 않는다. 건물과 사람들은 시각적 주시를 위한 대상물로 남아 있으며 색채는 그것들의 상호 원거리를 유지 시키고 있다.
호퍼 예술에 있어서 무언의 함정으로 빨려드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는 그의 구성을 들을 수 있다. 때때로 호퍼의 인물들은 질서정연한 구성속에서 차라리 제거되는 편이 좋을 듯한 부수적인 상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보통 그 인물들은 너무나도 면밀하게 구성속에 융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 구성은 그들 없이는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다. 호퍼의 인물들은 군상화(群像畫)에게 제작기, 그리고 단일 인물화에서 관찰자와의 상호작용으로 그들을 고립 시키는 구성적인 틀에 고착된다. 호퍼의 인물들은 어떤 방향으로도 동요되지 않으며 동요될 수도 없다. 그들은 무리적, 심리적으로 움직일 수 없고, 헤어날 수 없는 2차원적인 구성의 일부인 것이다. 호퍼는 마치 그들의 무기력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처럼 가끔 비생명체와비교하여 3차원적인 세계를 강조하나, 그들이 공간속을 운동하도록 그것을 이용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좀 더 커다란 크기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다른 형태들로부터 분화 시키는 조직상의 풍요를 그들에게 부여하지 않는다. 그의 통제는 매우 와녑ㄱ하며 또한 아주 중압적인이다. 그러므로 생명력이 없는데 상물로 축소되어 나타난다.
호퍼가 주제에 부과하는 통제를 생각해 보건데 사실적인 양식을 위한 신호는 그가 노력하였던 통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의 화가들은 통제의 분리를 형식적인 관계와 현대 과학 기술의 산물에 근거한 기술을 이용함으로써 실증적인 방향으로 바꾸어 버렸다. 호퍼는 현대 미술의 형식적인 문제들을 왜곡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을 택하였다.


4.작품의 분기

1)인간색
호퍼의 인물은 어디에서든지 볼수 있는 사무원, 실업가, 중년부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그러한 인물들의 성격과 감정은 그들의 행동하는 태도를 통하여 가장 선명하게 표현되고 있다. 그들은 혹은 허리를 구부리며, 머리를 숙으리고, 혹은 서간을 신경질 적으로 손에 쥐고 있기도 한다. 호퍼의 인물은 물질 문명의 횔폭함을 반영하는 것과 같은 건축물을 배경에 등장 시켰다. 그러나 그는 건축물을 상징적으로 이용하지는 않았다.
호퍼의 그림중에는 인물만이 포허가 베풀려고 하는 제한이 없는 정신적인 위안에 대하여 무감동적 이다.

(1) 고독한 모습
호퍼가 그린 여러 배경, 특히 실내에 있는 외로운 인간의 모습은 가장 개성적 이라고 할수 있다.<여름실내(Summer Interior),1909>에 나타나 있는 여자 누드의 모습은 이러한 주제를 표명한 작품가운데 가장 초기의 것으로서 특질상, 그 고독한 인물은 마치 호퍼 자신의 내성적인 기질을 투사 한것처럼 사색에 잠겨 있다. 때때로 그러한 인물은<재봉틀 핱의 소녀(Girl at a Sewing Machine),1921>에서처럼 혹은<펜실베니아 탄광촌(Pennsyvania Coal Town),1947>에서 낙엽을 긁어 모으는 사람처럼, 일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또 다른 때에는 <이발소(The Barber Shop),1931>에서 미조사가 일하는 동안 독서하는 사람으로, 혹은<일요일(Sunday),1926><프랑스의 6일의 자전거 선수(French Six-Day Bicycle Rider),1937>,<여름(Summertime),1943>에서처럼 기다리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발소> 혹은<프랑스 6일의 자전거 선수>에서처럼 또 다른 인물들이 등장 하더라도 중심 인물은 심리적으로 멀리 독자적인 꿈과 사색의 공간에 존재 한다. 젊은 자전거 선수에 대한 호퍼의 관심은 아마 자기 자신이 자전거 타던 시절의 자기 재현을 어느정도 나타낸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독한 모습을 표현한 호퍼의 여러 작품가운데 이따금 누드로 혹은 평상복을 입은 상태로 창문앞에 있거나 혹은 문 앞에서 기다리는 외로운 여인의 모습으로 묘사된 것이 있다. 예를 들면<오전11시(Eleven A.M),1926>, <정오(High Noon), 1949>,그리고<아침해(Morning Sun),1952>등을 들수 있다.
전반적으로 비평가들은 이러한 고독한 인물들을 호퍼의 정적과 고독에 대한 개인적인 선호로 이해 하였다기 보다는 종종 외로움의 상징으로 오해하여 왔다.
(2) 커플
호퍼는 가끔 자신들의 불안, 혹은 실망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 서로 해후하는 두 사람에 초점을 맞추었다.
호퍼의 정서적 상호 작용에 관한 관심은 -종종 그것의 결핍은 나타내지만 - 그의 많은 커플 묘사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주제는 이미 1909년의 <뉴욕의 방 (Room in New York)>에서는 한남자가 함께 있는 여인에게는 별 관심을 두지도 않은채 신문만 보고 있다. 이에 반하여 여인은 내키지 않는 듯한 마음으로 피아노 앞에 돌아 앉아 한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고 있는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커뮤니케이션 (Communication)의 부재가 드러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947년 작품인 <여름 저녁 (Summer Evening)> 에서는 한쌍의 젊은 남녀가 현관의 난간에 거북스럽게 기대어 긴장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부신 전등불 아래 묘사되어 있는데 이러한 소원의 관념은 호퍼에게 여러 해에 걸쳐 증가를 보인 것 같다. 또 하나의 실례로서 1949녕 작품인 <도시의 여름 (summer in the City)>에서는 팔을 부자연 스럽게 움츠리고 좁은 침대에 앉아 있는 한여인과 그 침대 한쪽에서 누우ㅏ 자고 있는 한남자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현저하게 불안한 여인의 모습을 감지 할수 있다. 그리고 <바다 관망자들 (Seawatcher) , 1952> 에서는 햇빛 아래서 한쌍의 남녀가 아름답고 망막한 푸른 바다를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 인물들의 권태와 실의는 이 작품의 어두 침침한 분위기를 시사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널리 미치는 불안감에 대한 호퍼의 관심은 그의 작품 < 철학으로의 회유, 1959>에서 함축되어 있다. 한 남자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딱딱한 침대의 가장자리에서 쉬고 있는 반면 한 여인은 그 남자로부터 돌아 누워서 잠을 자고 있다. 그 남자는 막 책을 읽었다.“ 라고 언급 하였다. 호퍼는 ”그는 말년에 다소 플라톤의 책을 읽었다.“ 라고 언급 하였다. 호퍼는 말년에 비관론자 였는냐는 질문을 받았을때 그는 ” 비관론자? 그러할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내 나이가 되어 보시오 . 당신도 그렇게 될테니까.‘ 라고 대답하였다.

(3) 여행자
호퍼는 항상 뉴욕에서 살면서 그곳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때때로 불안정하여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와 같은 감정을 극복하기 위하여 죠와 함께 여행을 하였다. 그들은 유명한 관광지 뿐만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곳까지 여행을 하였다. 평범한 곳의 주위 환경 속에서 호퍼는 시각적으로 매우 흥미있는 주제를 발견 할 수가 있었다. 비록 그가 1910년 이후에 유럽으로 다시 돌아 가지는 않았지만, 그는 죠와 함께 여러차례 멕시코를 방문 하였고 , 그들은 뉴 잉글랜드에서 남부와 멀리 서부까지 여행을 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호퍼는 호텔, 모텔, 기차간, 고속도로, 주유소 등에서 여행자의 심리와 주위 환경에 몰두 하게 되었다.
호퍼는 니약에서 어린시절부터 기차를 소재로 자주 스케치를 해왔으므로 기차에 대한 그의 관심은 대단 하였다. 그러나 그는 기차 그 자체 보다는 오히려 기차역이나 기차를 타고 있을때 볼수 있는 광경에 더 많은 흥미를 느꼈다. 삽화와 엣칭에서 호퍼는 기차 내부에 관한 주제를 탐구 하였으며 그후에도 그는 이 주제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음으로 1938년에 <293번 차의 C 객실 > 이라는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다. 그림의 주체는 독서에 열중하고 있ㄴ느 의로운 여인이며 반면에 창밖을 스쳐 지나가는 정경은 그림을 보는 사람 외에는 관찰되지 않는다. 전반적인 녹색의 음조와 눈부신 전등불은 이 그림에 적막함과 조용한 분위기를 흐트러뜨리는 양상을 드러내 주고 있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그의 마지막 작품인 <(의자가 1인용인) 특별차 ,1965>에서 보다 더 강렬하게 표현 되어 있다. 그것은 매우 야릇한 셋팅이다. 높은 천장, 완전히 차창밖의 세계를 불 명료하게 만들어 주는 창문을 투과해서 쨍쨍 내리 쬐는 햇빛 그리고 좌석처럼 보이는 의자들은 과도하게 크게 그려져 있으며 맞은편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여인을 쳐다보고 있는 좌측에 위치한 여인의 기묘한 눈초리는 아마 호퍼가 열차 안에서 체험한 사실을 묘사한 것 같다.
죠와 더불어 여러 곳의 여행 목적지에 도착한 호퍼는 호텔 객실이나 로비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발견 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을 표현한 최초이며 최대의 걸작은 아마 <호텔 객실> 이다. 이 작품은 수직의 면과 대각선 쪽의 색채의 띠아 날카로운 전기불의 그림자로 밤의 간결하고도 치밀한 드라마를 엮어내고 있다. 그리고 키가 크고 호리한 몸매의 사색적인 여인이 고개를 밑으로 숙인채 방금 읽은 편지를 생각하면서 침대 위에 앉아 있다. 호퍼는 그녀의 옷이 방에 흩어져 있음을 나타냄으로써 편지의 내용의로 인하여 그녀가 당황하고 있음을 시사하여 주고 있다.
호퍼의 인물에 대한심리적인 관심은 그의 작품 <호텔로비(Hotrl Lobby),1943>와 면가지 습작을 비교함녀 알수 있다. 그림속의 한 노신사는 그의 부인으로 보이는 여인에게 근접하여 서있다. 그러나 그녀를 바라보거나 그녀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고 막연히 앞쪽만을 응시하고 있을뿐이다. 방 건너편에는 매력적인 한 젊은 남자가 젊은 여인의 자리에 대신앉아 있다. 그는 책을 읽지 않고 다만 생각없이 방 건너편을 바라다 볼 뿐이다. 그는 노신사와 부인의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노신사는 부인에게 다가서며 그녀가 앉아 있는 의자의 등에 손을 얹는다. 또 다른 여자 인물이 이들 두사람 가 까이에 앉는다. 그림을 시작하여 완성하는 과정에서 호퍼는 분명히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를 강조하고 감정적 교류의 부재를 통렬하게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이작품은 그가 실제로 로비에서 관찰한 인물을 반영한 것 같으며 드라마를 창조하기 위한 변화를 뜻한다.
이와 같은<호텔로비>의 심리적 드라마는 1952년의 <철도 옆의 호텔(Hotel by a Railroad)>이라는 작품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다만 좀더 친근감이 있는 배경 -노부부의 침실-이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여기서도 나타나 있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부재이다. 부인은 책을 읽고 있는 반면에 남자는 무엇인가를 그리워 하는 듯이 창 너머의 철도를 내려다 보고 있다. 침울하고 무엇인가를 동경하는 듯한 그는 초조하게 출발을 기다리며 이곳이 아닌 다른곳에 있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비슷한 창너머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갈망과 기다림은 <호텔창가(Hotel Window),1956)와 <서부 모텔(Western Window),1957>에서도 잘 묘사되어 있다. <서부모텔>에 나타나 있는 여인 역시-앞쪽에 짐을 놓아두고, 창너머로 보이는 차를 타고 떠나기를 기다리는- 갈망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호퍼가 <호텔창가>를 위한 습작에서 그가 처음에는 여자의 맞은편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생각했다는 점이다. -또 다시 커뮤니케이션의 부재가 나타남-영감을 얻기 위하여 호퍼는 드라이브 특히 뉴 잉글래드를 드라이브 하는 것을 좋아 하였다. -죠는 그가 운전하는 일이 불만이었다.- 이런 연유로 고속도로와 주유소 등이 그의 그림의 소재가 된 것이. 그는 분명히 조용한 시골길의 쓸쓸함을 좋아 하였다. 그의 1956년의 <6개의 좁은길(Four Lane Road)>에서 주유소 직우너을 보고 소리치고 있느 s여자의 모습은 아마 죠의 수다스러운 성격에 자극된 것이라고 할수 있다.
호퍼의 가장 인상적인 고속도로 그림인 1940년의 <주유소(Gas)>은 누구나 시골길에서 밤이 다가올때 느낄수 있는 고독의 정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전반적인 그림에서도 볼수 있듯이 여기에서도 실제의 장면은 나타나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가 여러곳에서 스케치를 하고 화실에 돌아 와서 이걸을 합성하고 창작 했음을 시사 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 호퍼가 1920년대 이후에는 화실에서 떨어진 먼 곳에서는 유화 작품을 제작하는일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미루어 볼때 이에 대한 보다 선명한 입증이 될 수 있다.

2).풍경
(1)도시 풍경
호퍼는 그가 전에 한번 묘사해 본 경험이 있는 품위 있는 도시 파리로부터 현란한 뉴욕까지 그러한 도시들에 매혹되고 있다.
뉴욕은 그의 고향으로써 그 주위의 환경은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 호퍼는 중소 도시의 고정된 생활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뉴욕에서 살았으며 뉴욕의 모든 것이 그의 작품의 주제가 되었다.
1935년 말엽에 호퍼는 한 평론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한 때 자기 주변의 일상 생활을 그리도록 학생들에게 권하였던 헨리의 제자였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호퍼의 초기 작품에서는 도시 풍경이 자주 타나난다. 그러나 이들 회색의 어두운 풍경은 1916년 이후 전반적으로 밝아진다. 호퍼는 강가의 건물이나 다리를 좋아 하였으며 그위에 빛의 효과를 나타내는 것을 좋아 하였다. <이스트 리버(East River),1920-23>에서 떠오르는 찬란한 햇짗은 그 주변 공장 및 주거 건물을 다른 세계로 보이게 한다.
성숙기에 호퍼가 묘사란 도시 풍경에는 인간의 모습이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한 장면은 행동의 부재와 황폐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다만 도시 풍경에 인물이 있을 때에는 그 인물은 거대한 건물이 들어선 환경에는 별 관련성이 없는 사소한 것들이다. 즉 호퍼의 <맨하단 브릿지 루프(Mahattan Bridge Loop),1928>에서는 작은 사람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져 가느 풍경이 담겨 있다. 이 그림에 대하여 호퍼는 말하기를 “나는 그 그림을 시작하기 전에 매우 조심스럽게 계획하였다. 그러나 실재를 그대로 스케치한 약간의 습작 외에는 나는 별다른 구체적인 자료가 없었으며 다만 그 주제를 때때로 바라보며 기억을 되살렸을 뿐이다. 색채, 구성, 그리고 형체 들을 모두 의도적으로 상당히 단순화 시켰다.”라고 하였다.
이같은 통찰력의 개념화 과정에 대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보통 내가 그리기 좋아하는 주제를 찾기 까지 여러날을 보낸다. 그리고 가능한 한 내가 원하느 srn성이 이루어질때 까지 화면의 비례에 오랜 시간을 소비 한다. <맨하탄 브릿지 루프>의 긴 수평의 모습은 커다란 평행선의 감동을 묘사하려는 나의 노력이었다. 그림의 끝부분 까지 아무런 방해 없이 수평선을 유지하는 구도는 이와같은 사상을 실행에 옮겨서 장면 그 자체의 한계를 넘어선 요소와 공간을 인식시키기 위한 것 이었다.”
호퍼의 가장 유명한 도시 풍경은 분명히 1930년의 <일요일의 이른 아침(Early Sunday Morning)>이며, 그는 후에 이에 관하여 “그것은 7번가를 문자 그대로 옮긴것이다.”라고 언급하였다. 실제로 그는 본래의 작품 제목을 7번가의 상점이라고 하였고 그후에 그는 “꼭 일요일이 아니라고 해도 좋다. 그 말은 다른 사람이 붙인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그 “다른 사람”이라는 말은 이 그림의 삭막한 침묵을 한층 인상깊게 전해주고 있다. <일요일의 ldfms 아침>에서는 햇빛에 의하여 투사된 그림자가 효과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줄지은 상점들은 화폭을 벗어나 연장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야의 한계를 벗어나게끔 해준다.
호퍼가 도시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도시 속의 건물 뿐만 아니라 창문을 통하여 볼수 있는 여러 가지 풍경, 즉 음식점, 사무실, 극장 등의 내부 생활때문 이었다.

1)음식점
호퍼는 어린시절부터 음식점 안의 광경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삽화가로 일할 당시 음식점과 카페를 도해 한 바 있었다. 그리하여 그느 sgn에 빛과 구성 그리고 인물을 통하여 다양한 분위기를 창출 해낸 이 주제를 발전시킬수 있었다.
1909년 파리에서 돌아온 직후에 호퍼는 세느 강변의 카페에 앉아 있느 sgkszjvnf의 추억을 담은 작품 <작품(Le Bistro),1922>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정오에 뉴욕 음식점의 혼잡스럽고 화려한 면을 시각적으로 명확하고 정확하게 나타내려는 의도였다. 나는 보다 알기 쉬운 의도의뜻이 들어 있기를 바란다.”
여기서 호퍼는 인간 상호 관계의 감정, 즉 그가 항상 중요하게 여겨 왔던 무실체의 문제에 대한 참된 관심사를 나타낸 것이다.
호퍼는 헨리의 써클 특히 죤 슬론과 윌리암 글라켄즈와 함께 이러한 주제를 위하여 친분을 나누었다. 그리고 인상파 작가로는 특히 드가, 마네, 르느와르가 일찍이 카페와 음식점의 고재를 탐구해 왔었다. 그러나 호퍼가 묘사한 음식점은 그가 선호하는 내성적인 인물을 위한 배경이었다.
1927년의 <자급 식당>에서 호퍼는 젊은 여인이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그녀의 일생을 생각하고 있는 듯한 또 하나의 고독한 인물을 창출해 냈었다. 여기서는 <푸른 저녁>에서 도화된 관점과 동일하게 한 여인이 둥근 테이블 옆에 앉아 있다. 그리고 호퍼는 초기 작품에 나타난 의자의 관점을 회상하여 빈 의자를 그렸다. 환등 대신 전등빛의 구사와 수평 및 수직선의 강조는 매우 유사하다.
< 간이 음식점, 1929>에서 관찰자의 주의는 조용히 대화에 몰두하고 있는 두 여인의 모습으로 끌리고 있다. 그러나 화면 전체는 빛의 띠와 색체의 상호 작용에 의하여 독특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숙녀를 위한 테이블 ,1930>은 마치 개인적인 사고의 세계에 잠겨 있는 듯한 시녀와 현금 출납인을 묘사 하였다. 호퍼는 보는 사람의 관점을 이용하여 음식점의 품목에 비상한 주의를 두었다. 배경의 공간에는 그늘 속에서 한 커플이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그들의 커뮤니 케이션은 전경에 나타난 두 여인의 고독한 모습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 카페테리아 안의 햇살, 1958>에서 호퍼는 여인과 남성간의 긴장을 나타내려고 음식점을 배경으로 사용하였다. 즉 여기에서는 남녀가 서로를 의식하며 상호 훔쳐 보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단지 창문 밖을 통하여 그 너머 거리를 쳐다보고 있는 듯이 그녀가 있는 쪽을 응시하고 있는 반면에 그녀응 그와 같은 상황을 수줍게 생각하듯 그녀의 커피를 마시는데 주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입구의 벽과 비슴듬히 엇갈리게 비추어진 햇빛에 의하여 전체 화면은 활기차 있으며 그 각본 속에 몰입하도록우리의 주의를 집중시키게 한다.

2)극장
극적인 특색을 나타내기 위한 호퍼의 취향은 극장과 영화에서 형성 되었다. 그의 극장에 대한 열광은 유년시절 니약에서 부터이며 그의 스승인 로버트 헨리에 고무 되었다.
입센 (Henrik Ibsen)의 연극에 대한 호퍼의 매혹은 헨리의 저서 “The Art of Spirit"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연관으로 정신적인 실체로써 개인적인 문제에 관계된 입센을 등장시킨 삽화와 풍자화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극작가와 화가 양쪽 모두 외관상 사실주의의 범주안에서 상징적 가치를 고려하였다.
입센에 대한 호퍼의 존경은 1933년 현대 미술 박물관에서 열렸던 그의 전시회 카다로그에 그가 쓴 글에서 또한 나타나 있다.
파리에서 호퍼는 연극에 대한 열망을 추구하였고, 그리고 똑같이 연극에 열렬한 팬인 어머니에게 그가 보였던 것에 관하여 고향으로 편지를 썼다. 그는 세익스피어 작 “쥴리어스 시저 (Julius Ceasar)" 라는 오페라를 관람하였으며 그는 그 작품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나는 지라노 드 브르제락 (Gyrano de Bregerac) 정복자를 보았다. 매우 감명 깊었다.”
호퍼는 그의 작품<푸른 저녁 (Soir Bleu)>(도판 36)에서 나타난 미카렘 (Mi-Careme)카니발을 회상하면서 프랑스의 야외극을 즐겼다.
1924년 호퍼는 죠와 결혼할 때 그녀는 동료 화가일 뿐 아니라 극장을 존경하는 여배우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자주 연극과 영화를 감상하였고, 그러한 것들이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극장에 관한 주제에 있어서 호퍼의 첫번째 중요한 작품인 <좌석 사이의 통로에 있는 두 사람 (Two on the Aisle), 1927>(도판 40)은 연극이 시작되기 전 무대 바로 앞에 있는 그들의 객석을 잡으려고 하고 있는 고상한 옷을 입은 커플을 나타내 주고 있다.
객석이 많이 비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이 일찍 도착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그들의 우측에 인접해 있는 박스(Box)에서 한 여인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읽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는 특정적인 요소가 나타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마치 극장에 방금 도착한 듯이 그리고 발코니의 우리의 객석을 잡는 것처럼 이 장면을 내려다 보게 되는 것이다.
1951년에 제작된 <첫째 줄의 주악석 (First Row Orchestra)>(도판 41)은 이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또 다른 쇼가 시작되기 전 그 커플은 무대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같은 처리는 호퍼의 초기 잡지 삽화를 연상케 한다.
호퍼의 극장 및 영화관 내부 장식의 묘사는 매우 훌륭하며, 예술가의 특색을 살렸다. 1937년 작품인 <쉐라톤 극장 (The Sheridan Theatre)>(도판 42)에서 호퍼는 한 여인이 난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장면을 나타내었다. 그는 스케치에서 많은 자료를 마련 하였고. 그림에 있어 자세와 예술적 전광을 일치 시켰다.
호퍼는 넓은 실내 공간을 자극적인 빛으로 촉진케하여 극적인 분위기를 창조하였다.
호퍼의 가장 훌륭한 작품 중의 하나는 1941년에 제작된 <걸리 쇼(Girlie Show)>(도판 43)이다. 그것은 거의 나체로 춤추는 댄서를 나타낸 것으로써 매우 유혹적으로 묘사되었다.
스커트를 뒤로 휘날려 거의 나체로 보이는 무희는 주악석 위 무대에서 요염한 자태를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은 명백한 성적 매력의 표현은 호퍼만이 구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호퍼의 극장에 관한 주제의 의미는 그가 죽기 전에 제작한 마지막 4개의 작품 가운데 <막간 (Intermission), 1963>(도판 44)과 <두 코메디언 (Two Comedians),1965>(도판 45)에서 강조 된다. 작품 <막간>에서는 한 여인이 고독하게 자리에 앉아 다음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을 제작한 이후 2년 뒤에 호퍼는 <두 코메디언 >을 제작하였는데 그것은 어두운 무대와 두 사람의 작은 모양의 판토마인으로 나타나 있다. 그것은 관객들을 웃기고 즐겁게 해준 다음 인사를 하면서 물러나는 두 남녀의 코메디언을 묘사한 것이다.
호퍼는 병석에 누워 2년후 세상을 떠났다.
호퍼는 극장을 인생에 대한 암유(喑喩)로 보아 왔고 그 자신이 무대 감독인양 구사하였다.
무대 장치 기술자가 드라마를 창조하듯이 그는 조명 (빛)의 사용에 관해서 연구를 꾸준히 해왔다. 비록 그의 드라마는 상상적인 것이 있으나 그의 묘사는 매우 열정적 이었다.
호퍼는 영화를 즐겨 관람하는 열렬한 팬이었다. 그는 일찍이 친구들에게 “나는 그림을 그리다 실감이 나지 않으면 영화 감상을 하러 간다.” 라고 말하였으며 1962년 후반에 호퍼는 “미국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알고 싶으면 <미개인의 눈 (The Savage Eye)>이란 영화를 감상하라”고 말하였다.
현대 영화의 촬영 기사들은 호퍼가 구사하였던 구성에서 얻은 영감을 그들의 영화에 구사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호퍼가 지난날 영화로부터 착상을 얻은 것과 같은 경우이다. 예를들면, 호퍼의 “Office in a Small City of 1935”는 1936년 William Whyler 감독의 영화 “Dodsworth"의 첫 장면을 상기시켜 준다.
영화 “Days of Heven (1978)”은 첫 장면에 있어서 호퍼의 작품 “Honse by the Railroad"를 상기시켜 준다.
Alfred Hitchcock가 감독한 “Psycho(1960)"에 등장하는 집은 또한 이 그림에 등장한 집과 유사하다.

3)사무실
비록 그림의 주제로써는 희귀하지만 호퍼는 도시 생활에서 관찰할 수 있는 부분으로서 사무실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였다.
그는 잡지사의 삽화가로서 많은 사무실들을 묘사 하여 왔으니, 특히그의 작품-<밤의 사무실(Office at Night),1940>에서 밀접한 여관을 드러내고 있다.
< 밤의 사무실>은 뉴욕행의 야간열차에서 얻은 영감을 소재로 한것으로써 가장 흥미로운 것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의삭울 허자 얺눈 상황에서 전싡거 신장속에 있는 모습이다. 호퍼는 워커 아트센터(Walker Art Center)의 요청 으로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을 서술하였으며, 워커 아크 센터에서는 그 작품을 매입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나의 의도는 나에게 명확한 의미를 부여해준 사무 기구들이 있는 고립되고, 외로운 사무실 내부를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2)지방 풍경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여행을 하는 것이다. 여행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아시겠죠.”
호퍼는 지방 풍경을 종종 수채화로 제작 할 때 그는 보통 여행자가 보는 것과는 달리 비상한 대상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항상 그는 개성적인 시각으로 여러 곳에서 받은 그의 느낌을 표현하였다.

1)글로세스터(Gloucester)
호퍼는 메사추세스(Masachusetts)에 있는 글로세스터의 튜 잉글랜드 해안의 그림같은 촌락에서 그가 좋아하는 강한 햇빛 속에서 야릇한 건축물의 양태에 매혹되었어. 그는 1912년 여름기간 동안 그곳에서 친구 레온 크롤(Leon Kroll)과 함께 작품 생활을 하였다. 배들이 가득찬 항구에 매혹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 <이탈리아 지역, 글로세스터(Italian Quarter, Gloucester),1912>에 나타난 바와 같이 촌락의 건물에 비치는 햇빛의 효과에 또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호퍼는 1923년 글로세스터로 돌아 와서는 거의 인물을 제거하고 빛과 건축물에 주의를 집중시킨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1924년 여름 글로세스터의 밀월여행동안에 그는 <하스켈의 집(Haskell's House)>을 제작하여, 햇빛을 받아 그림자가 드리워진 화려한 건축물의 모습을 그의 그림에 창출하였다.
호퍼는 “글로세스터에서 모두가 배나 부두를 그릴때 나는 집들을 구경하며 다녔다. 매우견실해 보이는 마을이다. 지붕은 두드러지고 쇠사리 장식은 더욱 그러하다. 지붕창에는 그림자가 뚜렷하게 투사되어 있다. 선장에 의해 움직이는 함대라고나 할까”라고 회상 하였다.
2)케이프 코드(Cape Cod)
호퍼는 케이프 코드에 있는 트루로 남부(Souht Truro)에서 많은 여름을 보냈다. 그곳은 그에게 친근한 지역으로 받아 들여 졌다. 그는 단순한 건물들과 길, 그리고 자연 풍경을 묘사 하였다. 햇빛의 효과에 촛점을 맞추면서 그는 관찰한 장면들을 평범한 곳으로부터 끌어 내어 드라마를 연출 하였다. 케이프 코트를 주제로 한 그의 초기 작품가운데 <남부트루로교회(South Truro Church)>, <콘힐(Corn Hill)>, <남부 트루로 언덕(Hill, South Truro)>은 모두 1930년 그가 케이프 코트에서 맞이한 첫 번째 여름에 제작되었다.
호퍼 부부는 콥(A.B.Cobb)의 집을 빌렸는데 그들은 그 집을 비, 바람, 그리고 동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기 때문에 “작은 새집(Bird Cage Cottage)"라고 부렀다. 그후 1933년 비오는 여름에 그들은 그들이 작품을 제작할 수 있기에 충분한 공간을 가진 집을 마련하였다.


4 . 빛과 시간
호퍼는 여름 햇살이 특히나 강열한 케이프에서 햇빛에 대한 그의 열망을 충족시켰다.
햇빛을 표현한 그림에 대한 그의 관심은 그가 잘 아는 파리의 인상주의 그림에서 비롯 되었다. _<햇빛이 내리쬐는 생 끌루 공원의 숲, 1907>
빛에 대한 그의 신중한 시도는 그의 작품 <바닷가의 방 , 1951> 에 귀착 되었다. 이 작품은 사실상 사구 저 너머 아래 케이프에 있는 그의 집에서부터 광대하게 펼쳐진 바다 저 멀리 까지의 장엄한 광경에서 비롯 되었다.
호퍼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은 매체의 조작이나 표면의 창조가 아니라 빛의 기록이다. 그는 눈 앞의 형태나 모습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빛이라는 언어를 사용하였다.
호퍼는 그의 많은 작품들에서 빛에 의한 다양한 효과로 분위기를 강조하는 특정한 시간을 재현 시켰다. 그는 종종 그의 작품에 시간과 관계있는 명칭을 붙였는데 그는 그가 선택한 시간과 확고한 연과을 맺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호퍼 그가 표현한 “저녁” “방” “아침” 그리고 “ 정오”에서 잠재의식적으로 상징적인 내용을 표명하였는데 이것은 그가 시간을 표현한 시들에 대해 흥미를 가졌다는 사실에서 한층 더 입증된다. 예컨대 여러 경우에 있어서 “ 저녁”은 그가 폴 발레리의 시 “하얀 달”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호퍼는 또한 괴테의 시 “ 방랑자의 밤의 찬가”를 즐겨 인용하였고, 그것을 “ 비상한 시각적 영상” 으로 묘사해 냈다.
호퍼는 특히 로버트 프로스트를 격찬 하였으며, 그의 시 “ 컴 인 (Come in) '을 보다 더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그것을 어스름한 분위기를 환가시키는 그림으로 창조해 냈다.
저녁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 호퍼는 때때로 신비적인 느낌 , 즉 황혼을 연상시키는 발레리 , 괴테, 프로스트 등의 마력을 나타내 주었다. 이러한 것은 특히 <푸른 저녁>, < 해질저녁의 철로 ,1929> ,< 해질 무렵의 집, 1935>, <황혼을 바라보고 있는 세익스피어 동상, 1935>에서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프로스트의 시에서처럼 <케이프 코드의 저녁>에서 , 숲은 “매우 어둡고 깊이 ”가 있으며 불가해 하다. 저녁 무렵 미약해진 햇빛은 이미 땅거미가 밀려와 어둠이 휩싸인 울창한 숲과 뚜렷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호퍼의 암시적인 표현은 _시간에 관계하는 한-그가 헨리의 제자일 당시 처음 접하게된 프랑스 상징주의 시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는 <푸른 저녁> 과 같은 작품에서 특정한 연관성은 없었다 할지라도 상징주의 시를 마음속에 상기 시켰다. 예를 들어 그러한 시의 하나인 랭보의 “감각”은 “Par les soirs bleus d'ete........"( 푸른 여름 저녁에....”)로 시작 되었으며 , 호퍼의 작품은 _ 공허한 마음으로 말없이 무엇인가를 응시하고 있는 인물에서 조차 _
그러한 분위기를 구체화 시킨 것처럼 보인다: “je ne parlerai pas , je ne penserai rien..." ( "나는 말하자 않을 것이며 , 상념을 떨쳐 버릴것이다.”) 또한 < 해질녘의 철도>에 묘사된 신비스럽고 몽환적인 하늘의 형상은 샤를르 보들레르의 “ 저녁의 하모니” 와 같은 시의 이미지를 부각 시킨다.
호퍼는 마찬가지로 밤의 시간에 매혹되었으며, 그러한 것이 그의 작품 <밤의 창문 >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은 같은 제목을 가진 존 슬론의 에칭에서 처럼, 호퍼는 관찰자를 염탄꾼으로 변화 시켰으나 그의 그성은 좀 더 미묘하고 감각적이다. 호퍼의 초점은 보다 근접되어 있고 보다 더 밀착되어 있다.
또한 염원의 감정은 호퍼에게 있어 아침과의 면밀한 관계속에서 나타나는데 , 특히 의자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한 나부가 묘사된 <오전 11시> (도판 8)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은 같은 제목을 가진 죤 슬론의 엣칭(1910)에서 처럼, 호퍼는 관찰자를 염탄꾼으로 변화시켰으나 그의 구성은 좀더 미묘하고 감각적이다. 호퍼의 초점은 보다 근접되어 있고 보다 더 밀착되어 있다.
또한 염원의 감정은 호퍼에서 있어 아침과의 면밀한 관계속에서 나타나는데, 특히 의자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한 나부가 묘사된 <오전 11시>(도판 8),창밖을 바라보며 서 있는 한 나부가 묘사된 <도시의 아침>(도판 9), 그리고 붉은 드레스를 입고 퇴창에 기대어 창밖을 내다보는 한 여인이 묘사된 <케이프 코드의 아침>(도판 59)등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오전 5시 ,1937>(도판 60)에서 호퍼는 관찰된 사실의 한계를 넘어선 그의 사고와 감정을 형상화 시켰다.

5.
호퍼는 우리들의 시야 속에서 가장 개성적으로 로맨틱 리얼리즘의 정신을 표현하는데 성공한 화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전형적인 아메리카적 주제 속에 깊이와 강력성을 주입 시켰는데 그것은 오히려 주제가 그의 내면 속에서 솟아오르게 한 감정이라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게 그를 형언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는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참된 지방주의의 제창자이며 그가 즐겨서 그린 아메리카 정경 가운데서 반은 지방적이고 나머지 반은 세계적 인생을 발견한 까닭이다.
사실주의자인 호퍼는 호머의 객관적인 시각에 흡사한 명백한 입체적 묘사와 밝고 맑은 색체로써 평범한 양식을 형성하였다. 그의 낭만성은 형식보다도 주제 위에 나타나 있다. 그것은 일정한 정신적 태도라기보다는 특정의 경험과 장소의 예술인 것이다. 그의 작품의 대부분은 호머와 같은 객관적 묘사를 보여 준다. 그러나 호퍼는 인간의 일상 생활의 속 깊이 감추어진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과 고독감이 인간의 정신 가운데 불어 넣는 가지가지의 표현키 어려운 감정 등을 흡수할 만큼의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 있었다.
그는 그림을 통하여 모든 사실로부터 다시 묶인 메아리를 내보내는 듯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확인하였다.
호퍼의 예술은 대상이 주제가 되고 주제가 대상이 되는 - 비생명체에 생기를 불어 넣고 비생명체화 하는 - 반전을 구체적으로 나타내었다. 회화를 통해서 그 자신의 주체성을 입증할 필요성이 요구되는 이와 같은 사상은 호퍼 그 자신이 회화를 중단하고 다시 시작하는 일종의 실용주의적인 열망인 것이다.
호퍼는 비평가들에 의하여 20세기 미국 현실주의자의 주류이자 미국의 위대한 화가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되었으며, 특히 그의 현실주의적인 성격은 호평을 받았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 여행은 어떻게 예술(Art)이 되는가?|

 

Hyun,Ho-seop | 조회 352 |추천 0 | 2008.11.24. 13:46

알랭 드 보통  / 이레 펴냄

나의 평가
꽤 괜찮아요 꽤 괜찮아요 꽤 괜찮아요 꽤 괜찮아요 꽤 괜찮아요

 

 

 

 

나의 서재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책들을 둘러보면, 책 하나하나에 깃든 추억들이 있다. 대개, 그것을 훑어보면 그 책 한 권 한 권이 현재 내 방에 온 사연들이 다 있는 것 같다. 그 사연들을 돌아보면  어느 책 하나 버릴 게 없다.  나는 책을 빌려주거나 빌려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책이란 빌려주면 받기가 어려울 뿐더러 되돌려받지 못하는 책을 빌려줄 때면 언제나,  그 책과 내 사이에 자리잡은 과거의 어느 시간들 모두를 내 삶에서 도려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다.  책을 빌려보지 않는 이유는 다 읽고 난 이후 내 손때가 묻고 체온이 닿아 이미 내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물건을 떠나보낼 수 없는 안타까움 같은게 있어서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한번 내 서재에 입성한 책은 내 서재를 떠나보내지 않고,  읽고 싶고 읽어야 할 책은 어떻게든 사보고야 만다. 이것은 책을 대하는 나의 자세 혹은 둘 사이의 `의리'라 해도 좋겠다.

 

그렇게 둘러보다 보면,  현재 내 서가의 책들은 하나같이 사연없는 책들이 없다.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은 10년 전 강원도 전방 철책 초소에서 가슴 조리며 읽은 책이다.  미우라 아야꼬의 <빙점>이나 그의 <길은 여기에>라는 수필집은 전방 막사의 상황실에서 새어나오는 형광들 불빛아래서,  주로 새벽 근무를 끝내고 책장을 넘긴 책이다.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는 내 20대를 흔들어놓은 책이며,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던 어느 저녁 나절의 가로등 불빛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은 아직도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 작품속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문구 즉,  "노란 가로등 불빛 속에 구토가 숨어 있다"라는 문장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소로우의 <월든>을 읽으면서 직장생활의 쳇바퀴 도는 생활에서 자유로워졌던 경험, 백수시절 이외수를 읽고 위안을 받던 날들, 그렇게 내가 가지고 있는 책들엔 나의 손때가 묻은 것과 동시에 모두 내 생의 추억이 촘촘히 깃들어 있다.  더불어 책과 함께한 시간들 모두는 하나도 버릴게 없고,  지금 내게 너무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어느 책이건, 그러나 시의 적절한 순간에 읽는다면 그 기억이란 더 오래가고 더 소중해 지는 것 같다. 얼마전 서울 덕수궁 미술관에 갔을 때, 나의 가방 속에는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The Art of the Travel>이 들어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여행도중 KTX에서, 카페에서, 고궁의 벤치에서, 읽어 내려갔다.  여행중에 읽은 책의 묘미는 참으로 새로웠다.  나는 가방속의 책을 읽기 위해 여정의 중간중간 일부러 시간을 냈다.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이나 새로운 풍경은 하나 나의 몰입을 방해하진 못했다.  그러면서 한가지 깨달은게 있다. 여행은 밖을 보는게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일일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관광과 여행을 착각하며 살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의 책에서 나는 그가 여행한 여행지를 안내받지 않았다. 이것은 나의 기대를 벗어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여행지에서 곧바로 역사와 인물로 옮겨가, 그의 내면의 풍경을 기술한다.  그는 이 책에서 수백년전 자신이 현재 걷는 길을 먼저 여행한 예술가들의 삶을 추적하고, 분석한다.  이것은 알랑 드 보통만의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예술가와 예술작품 그리고 그 여행지가 갖는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총체적인 여행 산문이라 부를 만 하다.

 

이 여행기 속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샤를 보들레르, 귀스타브 플로베르, 알렌산더 폰 훔볼트, 윌리엄 위즈워스, 빈센트 반 고흐 등이며, 그들은 문학과 그림, 그리고 철학의 중심에 놓여 있었던 예술가들이다.  그들의 여정을 단순히 추적하는 것에서 끝났다면 흥미가 반감되었을 것이나, 보통은 여행지가 그들에게 어떤 영감을 불어넣었는지, 그곳이 대체 그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생성했는지, 역사적인 문헌과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조밀하게 복원하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 책의 제목이 왜 여행의 기술(art)일까, 책장을 넘길 수록 알랭 드 보통의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기술은 예술(Art)로도 풀이할 수 있다. 여행은 관광이 될 수 없다. 관광이 유희나 시각적인 즐거움과 단순함을 추구한다면, 여행은 그 모두를 아우르면서도 여행자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총제적인 행위다.  그 둘은 전혀 다르다. 여행은 여행자의 지식과 내적 충만에 전적으로 비례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가 본 것은 그가 알고 있는 것만큼 딱 그 정도만 그에게 의미를 생성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행지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거나 또한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에 대한 어떤 지식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여행이 내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수도 있다.

 

이 책이 만약 여행지에 대한 정보와 여정만을 기술하고 있다면, 세계적으로 읽힐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종류의 책은 넘쳐나고, 또 너무 흔하며 여행 팜플렛의 가치밖에 없다. 이 책에 소개된 여행지란 영국이나 스페인 프랑스의 어느 낯선 도시, 혹은 어떤 사막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솜씨좋은 요리사가 하찮은 재료로 미식가의 입맛을 사로잡는 음식을 만들어 내듯, 작가는 흔하디 흔한 풍경속에 녹아 있는 익숙함을 통해서도, 의미심장한 메세지들을 역사와 인물을 통해 추려낸다. 또 알랭 드 보통은 이러한 낯선 여행지를 통해, 여행자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그것은 왜 여행을 하는가 ? 하는 기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예술가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를 주는가 ? 하는 생소한 의문까지를 포괄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퉁이는 예술가들이 그려주거나 글로 써준 뒤에야만 돌아보게 된다는 주장을 완벽하게 확인시켜주는 것처럼 보인다." p.288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이 책의 미덕이라 부를만한 요소는 아마도 책의 곳곳을 채우고 있는 흑백 사진들과 소개되는 예술가들의 작품들인 그림, 혹은 소설과 시와 산문 등에서 인용된 문장들이다.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나에게 알랭 드 보통의 글과 이 보조적인 자료들은 내 내면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특히, 여행자였던 내게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유화 그림들이 준 인상은 대단한 것이었다.  호퍼의 그림또한 여행중에 그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설명에 따르면 호퍼는 1925년 차를 구입해 이것을 몰고 뉴욕과 멕시코를 오가며, 매년 몇 달은 길 위에서 살면서 모텔 방이나 차 뒷자리, 식당등에서 스케치를 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 `로드드로잉'이라 부를만한 작품들과 알랭 드 보통의 그림 해설은 놀랍도록 세밀하고 알찬데, 그건 미술작품의 해석에 그의 직관력과 작가적 상상력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아마도 나는 KTX의 좁지만 안락한 접이식 의자에 앉아 읽어내려 갔는데, 나는 그때 마침 덕수궁 미술관으로 프리다 칼로의 그림들을 보러가는 길이었다. 이 책은 미술 작품과 그 감상에 문외한이었던 초보 관람객에게 그림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어디에 감상 포인트를 둬야 하는지, 시의적절한 힌트를 주고 있었다.

 


에드워드 호퍼, <자동 판매식 식당 Automat>, 1927년

 

 

"<자동 판매식 식당>은 슬픔에 대한 그림이지만 슬픈 그림은 아니다. 이 그림은 위대하고 우울한 음악 작품과 같은 위력이 있다. 실내 장식은 검박하지만, 장소 자체는 궁색해 보이지 않는다. 방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 역시 혼자일 수도 있다. 호퍼는 고립되어 있는 이 여자와 공감을 느껴보라고 우리에게 권유한다. 그녀는 위엄 있고 관대해 보인다. 어쩌면 지나친 듯싶게 남을 잘 믿고, 약간 순진할지도 모르겠다. (....) 24시간 식당, 역의 대합실, 모텔은 고귀한 이유로 일상 세계에서 가정을 찾지 못한 사람들 - 보들레르라면 시인이라는 경칭으로 명예를 베풀었을 사람들 - 을 위한 성소이다."  p.78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여행을 떠나면서 함께 넣어가는 한 권의 책은 이쯤되면, 그 여행의 의미를 기십프로는 잠식해 버릴 수 있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여행의 출발에 앞서,  모 작가의 소설 대신 알랭 드 보통의 책을 넣어갔고, 그 여행길에서 그의 방식대로 여행이 어떻게 기술(Art)로 혹은 예술(Art)로 끌어올려질 수 있을지, 고민하는 단계까지 갔다.  나는 낯선 사람들과 낯선 풍경속에 놓여 있었지만, 시각적인 요소가 여행의 주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에서 무엇을 느꼈는가? 로 여행의 의미에 대해, 내면 깊이 다르게 질문하는 법을 익힌 것이다.

 

세상은 거대한 책이다.  여행자는 그 세상을 읽는 독자와 같다.  그러나 문맹이라면 책을 읽을 수 없고 배경지식이 부족하면 책을 깊이 읽지 못하듯이, 여행자의 빈약한 내면은 그 여행또한 빈약하게 만든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여행이 단순한 놀이와 유희만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드 보통의 발길이 닿는 모든 여행지에는 예술가의 흔적과 그들의 작품이 있었다. 예술가의 흔적이나 그들이 남긴 위대한 예술작품들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풍경은 바뀌었지만, 예술가의 작품은 시간이 갈수록 농익고 있었다. 

 

여행은 어떻게 예술(Art)이 되는가?  그 질문은 삶과 여행이 결코 떼어놓을 수 없이 하나임을 전제한다. 그 둘은 화가의 작업실에 있는 붓과 팔레트와 같다. 붓과 팔렛트를 통해야만 화가는 하나의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다.  여행은 그러므로 덤이 아니라 삶의 필수 구성물이다. 질주를 본능으로 아는 삶의 아우토반은 여행이란 휴게소를 통해, 더욱 활력을 얻게 될 것이다.  내 마음을 움직였던 그림인 에드워드 호퍼의 <자동 판매기 식당>은 고속도로상에 위치한 어느 휴게소의 여인을 그린 것이다.  그녀는 알랭 드 보통이나 나처럼 여행중에 있었다.

 

 

 

 

 

2008.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