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단칭,『낯선경험』- 아직도 새로운 그림 이야기

2018. 8. 27. 08:11미술/미술 이야기 (책)

 

 

 

 

낯선 경험 

 

2018. 5. 9

 

 

 

중국의 젊은 엘리트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는 비판적 지식인 천단칭의
지극히 개인적인 낯선 경험으로서의 명화 읽기

 


이 책의 제목인 ‘낯선 경험’은 원서의 제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제목만 보아서는 화가와 미술 작품을 다루는 대중적인 교양서가 곧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원서의 제목이 ‘낯선경험-아직도 새로운 그림이야기’이 된 것도, 한국어로 번역해 출간하면서 오랜 고민 끝에 원서 제목을 따르기로 결정한 데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 책은 그야말로 낯선 경험 그 자체이며, 저자에게 그러했듯 책을 읽을 한국 독자에게도 이 책은 낯선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천단칭(陳丹?)은 중국의 유명 화가이자 작가이며, 날카로운 평론과 거침없는 발언으로 중국의 젊은 엘리트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는 비판적 지식인이다. 중국 현대화가 가운데 작품 가격이 가장 높은 작가군에 속하는 그는 많은 독자를 거느린 베스트셀러 수필가이기도 하다.

천단칭의 글쓰기는 미술, 음악, 문화, 역사, 인물론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든다. 그런데 천단칭의 여러 저작 가운데 전문적으로 미술을 다룬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수필집에 간혹 화가나 그림을 주제로 쓴 글이 포함된 적은 있어도 이 책처럼 주제부터 미술 작품 감상인 책은 한 권도 없었다.


예술이란 창작이든 감상이든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다. 그래서 천단칭은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평가하는 것은 마음 맞는 친구 두어 명과 사적으로 교류하는 자리에 어울리는 주제라고 여긴다. 미술 교육이라는 것에 회의를 품고 대학 교수직을 때려치운 적도 있는 그는 ‘그림을 이렇게 보아라’라고 가르치는 일을 싫어하고, 세상이 다 아는 지식을 재삼 떠벌이는 것도 거절한다.


천단칭에게는 친구들과 수다로 풀던 미술 감상론을 불특정다수의 독자에게 펼쳐 보인다는 것부터 낯선 일인데, 이 책은 출간을 목적으로 쓴 것도 아니었다. 천단칭은 2015년 출판사가 기획한 인터넷 영상 강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프로그램은 천단칭이 출연하여 직접 쓴 강연 원고를 천천히 읽는 동안, 언급되는 미술 작품이나 사진 자료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책은 프로그램을 위해 작성한 원고를 나중에 묶어낸 것이다.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글을 써야 하는 상황에 천단칭은 몹시 낯선 느낌을 받았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든 것이 다 새롭게 보였다.


이런 낯선 경험 속에서 천단칭이 찾아낸 해법은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과 눈높이로 선정한 화가와 작품만 다루며, 가르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좋아하는지’를 들려주는 데 집중한다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그림들은 오로지 천단칭의 시선, 관심, 선택에 따른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이 책은 독자들에게도 낯선 경험으로 다가가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화가가 아니라 두 번째 정도로 중요한 화가의 걸작, 혹은 매우 유명한
화가의 조금 덜 유명한 작품을 읽는 독특한 명작 감상기


이 책에 나오는 사람과 그림은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화가나 그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 아니다. 천단칭은 미술사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여러 차례 떠들어댄 유명한 이야기는 가볍게 훑고 지나간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 누구도 알지 못했던 숨은 천재와 걸작을 발굴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의 시선은 가장 중요한 화가가 아니라 두 번째 정도로 중요한 화가의 걸작, 혹은 매우 유명한 화가의 조금 덜 유명한 작품에 머문다.


천단칭은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검색 한번 하면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다. 이 책이 표방하는 것은 ‘가장 중요하지는 않은 정보’다. 그런 정보는 중요하지는 않아도 아름다움을 능동적으로 감상하게 한다.


평생 에스파냐 왕가를 위해 일한 화가 벨라스케스(Vel?zquez)는 예순이 되어서야 겨우 총관 직위를 얻었다. 벨라스케스는 기쁜 나머지 총관의 정복을 차려 입은 자신을 그림 속에 표현했다. 고촐리(Gozzoli) 역시 자기 자신을 그림 속에 슬쩍 집어넣었다. 그는 손가락 네 개를 들어서 보여주고 있다. 그림 값으로 400플로린이라는 거금을 받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자랑하고 대대손손 알리려고 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서 그들의 그림을 보면 느낌이 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 벨라스케스의 열쇠꾸러미를, 고촐리의 치켜세운 네 손가락을 떠올리면 그들이 이웃집 친구처럼 느껴진다.


예술사는 종종 속물적이고 세속적인 시선으로 예술을 바라본다. 하나의 시대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 가장 유명한 사람만 기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 시대를 단순화하는 것은 일종의 오류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어느 텔레비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1등부터 3등까지 뽑았다고 해서 이 세 사람이 우리 시대의 노래 실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떠받드는 예술사란 그것을 집필한 사람이 시대별로 역사에 붙여준 라벨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불리는 만리장성, 피라미드 등의 거대한 건축물을 한 눈에 보겠다고 미니어처로 살펴보는 격이다. 전체란 종종 부분보다 믿기 어렵다.

 

이 책은 그렇게 예술사의 작은 부분들, 두 번째로 중요한 그림과 화가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이 책은 정통 예술사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따라 간다. 왕희맹(王希孟)의 〈천리강산도(千里江山圖)〉, 부팔마코(Buffalmacco)의 〈죽음의 승리〉, 장자오허(蔣兆和)의 〈유민도(流民圖)〉를 비롯해 바지유(Bazille)의 인물화, 발라동(Valadon) 모자의 그림, 청나라 때의 궁정 화가가 그린 〈강희남순도(康熙南巡圖)〉와 〈건륭남순도(乾隆南巡圖)〉, 베네치아의 화가 카르파초(Carpaccio), 러시아의 화가 수리코프(Surikov), 피렌체의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페르가몬 지역의 석조군 등, 거의 다 예술사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생소한 얼굴들이다.

 

천단칭은 이런 낯선 얼굴을 우리에게 소개하면서 직접 그림을 그리는 사람다운 예술가적 열정과 안목, 개인적인 감상과 깨달음이 융화된,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에서 다루는 유명한 화가는 고흐 정도다. 그러나 고흐의 유명한 걸작들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고흐의 초기작 중 제목도 붙지 않은 습작품이나 소묘 작품에 관심을 갖는다. 천단칭은 그런 그림을 통해 고흐의 어리석을 만큼 우직한 성격적 특질을 깊이 있게 논하면서 그런 성격이 드러난 그림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를 말한다.
천단칭은 고흐의 초기 습작품을 ‘못 그렸다’고 말하면서도 ‘보기 좋다’고 한다. 그 이유를 말로는 설명하지 않으면서 독자들에게 자신의 눈으로 보고 또 보면서 느껴보라고 충동질한다. 그는 미술 감상법을 가르치지도 않고, 자신의 감상 기준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꿈틀대는 생명체로서의 작품이 최초로 발생한 토양 속으로 들어가 살펴보는 한편,
도서고금을 넘나들어 비교하다


이 책은 열여섯 꼭지로 구성되는데, 꼭지마다 화가 한 명, 작품 하나를 선정해 깊이 파고들어 가는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화가와 작품에만 집중하는 책은 아니다. 이 책에서 천단칭은 특히 ‘미완성’이라는 개념에 천착한다. 완성하지 않은 그림도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림이 완성되었다고 말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캔버스를 다 칠하면 완성인가? 미완성 작품이 있다면 과도하게 완성한 작품은 없을까? 이런 신선한 질문의 해답을 찾아 여러 화가와 작품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는 대목은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이고 매력적인 부분이다.


사실 주제로 삼은 화가가 따로 있어도 화가 한 명, 작품 하나만 오롯이 논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는 끊임없이 비교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하려 한다. 천단칭은 작품을 살아 꿈틀대는 생명체로 보며, 그 생명이 최초로 발생한 토양 속으로 들어가서 살펴보려고 한다. 곧이어 작품이 발생한 토양에서도 빠져나와 동서고금을 넘나들면서 다른 작품들과 비교한다.

 

천단칭은 미술관들이 왜 어마어마한 자본을 들여서 작품이 처음 탄생했을 때의 원래 환경에 가깝게 배치하려 하는지 설명하고, 서양에 존재하는 죽음의 예술과 죽음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는 중국의 예술을 비교하며, 서양의 투시법이 사진 촬영의 기술에 미친 계몽적 영향을 분석하는 동시에 중국에서 발달한 전경(全景)을 보는 참신한 시각이 결국 두루마리 그림에 그치고 만 이유를 고민한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꼭지는 남성용 소변기를 미술 작품으로 전시했던 뒤샹(Duchamp)에 대한 이야기가 장식했다. 이 꼭지에서는 뒤샹이 ‘회화를 포기하겠다’고 결정한 것에 집중한다. 천단칭은 뒤샹이 회화를 포기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회화의 시대는 끝났다’는 주장을 언급한다. 회화의 시대는 정말로 끝났을까? 해답 없이, 수많은 질문을 던지면서 천단칭은 회화의 시대를 종결한 뒤샹의 이야기로 이 책을 종결한다.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예술사가 아니라 예술가이며 예술 그 자체다. 이런 다양한 의미에서 이 책은 독자들에게 낯선 경험이 된다. 그림을 해설하는 책이 서점에 많이 나와 있지만, 예술 그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는 책이 또 있을까? 유명한 그림이 아니라 천단칭이라는 한 화가의 개인적인 취향과 선택으로 고른 그림을 살펴보겠다는 취지도 낯설고, 그렇게 고른 그림이 오랫동안 ‘이것이야말로 중요한 그림’이라고 배웠던 예술사의 선택을 배제한 두 번째로 중요한 화가와 작품이라는 점도 낯설다. 이 책은 이렇듯 저자와 독자의 여러 낯선 경험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세상의 낯선 그림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느껴지고, 우리가 예술에 한 발짝 더 다가섰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목차

한국어판 저자 서문

 

미술사 전문가는 지식이 깊고 논리적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직접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 강의하는 것과 직접 그 일을 하는 것은 어쨌든 다르기 마련입니다. 미술사가의 훌륭한 강연이 결국은 '옷 위로 가려운 데를 긁기' 같은 일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직접 내 손으로 그림을 그렸던 경험이 예술에 대해 미묘하고 복잡하며, 그래서 더욱 구체적이고 진실항 감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런 감각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지식이 부족한 대신 그림을 그린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미술사론을 배운 적이 없지만 그림을 보는 안목을 가졌지요. 경험과 안목만으로 책을 쓰거나 학설을 세울 수는 없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는 그것이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오랫동안 차곡차곡 쌓인 경험과 안목은 점점 구체적으로 영글고 잡다해집니다.

 


천리강산도
죽음의 승리
인민의 승리
습작품
파리의 청년
누가 예술가를 먹여 살리는가? _미완성 작품(상)
회화의 방임 _미완성 작품(중)
‘비정식’의 매력 _미완성 작품(하)
발라동 모자(母子)
중화민국 시기의 여성 화가들
궁정화가 서양의 공로
정보와 화면
억울한 러시아
산마르코 수도원
거인들의 싸움
뒤샹의 결정
저자 후기
작품 목록

 

 

 

 

 

 

 

 

 

순~ 구라구만,,

미술사에 등장하는 작품 하나 하나에 이르기까지, 

공부를 무지하게 해놓고서는

자기는 그림쟁이일뿐 미술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에라이~!

 

 

 

 

 

 

 

 

《건륭남순도》 (乾隆南巡图)
명청시기 (1751년)
처음으로 그림은, 긴1988.6cm,넓은68.6cm
 
 
 

《건륭남순도》는 기원 1751년에 청고종 건륭황제가 최초로 강소와 절강을 순찰하는 장면을 담은 거폭의 역사적 그림이다. 이 남방 순찰은112일을 거쳤으며 여정이 5800여리에 달한다.

그림은 궁궐 화사 서양이 명령을 받들고 “어제시의위도”에 의거하여 그렸으며 모두 12권으로 구성되었다. 그림 내용에는 각각 수도로부터 출발하다, 덕주를 지나다, 황하를 건느다, 황회하 공사를 시찰하다, 금산으로부터 배를 타고 초산으로 향하다, 고소(소주)에서 숙박하다, 절강 경내에 진입하여 가흥 연우루에 도착하다, 항주에서 숙박하다, 소흥에서 대우 묘에서 제사지내다, 강녕 병사 검열, 순주 집이주 등륙과 자금성으로 돌아오다로 구성되었다.

여기에 전시된“전문거시도”는 《건륭남순도》 중 제1권 “수도로부터 출발하다” 중의 화면이다. 이 그림은 정월13일 건륭황제가 황태후 뉴호록씨를 모시고 건청문으로부터 출발한 후 정양문을 나오고 오른쪽 방향으로 돌아 서하와 거리를 따라 서쪽 방향으로 전진한다. 선무문을 지나고 광녕문, 즉, 오늘날의 광안문을 나온 후 완평현 공극성을 거쳐 노구교까지 이르고 다시 장신점을 지나 량향현 황신장 행궁으로 향하는 장면을 그렸다.

화면에서는 점포가 빼곡하고 도처에 패말이 달려 있으며 수많은 행인들이 오간다. 화가는 당시 북경성 상업의 번영을 중점적으로 그렸다. (작성자: 악진)

 
 

 

 

 

 

데이비드 호크니는 중국을 둘러본 뒤 책을 한 권 썼는데, 그 책에서 '두루마리 그림'을 특히 찬미하고 있습니다. 그는 두루마리 그림을 '르네상스의 투시법에 비할 만한 위대한 시각 문화'라고 표현하면서 '이동 시점'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바꿔 말하면 장소와 시점이 중첩되는 '산점(散點)투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산점투시에서 영감을 얻어 호크니가 발명한 것이 바로 하나의 풍경을 무수한 부분으로 나누어 사진을 찍은 뒤 다시 조합해 원래의 경치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호크니의 잔꾀에 불과하며, 서양식의 기계적 사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동 시점'이란 옛 중국인들이 그리ㅁ을 보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양손으로 두루마리 그림을 잡은 뒤 왼손으로는 두루마리를 천천히 펼치고 동시에 오른손으로는 두루마리를 도로 말면서 한 부분씩 한 부분씩 그림을 감상하는 것입니다. 감상의 형식미를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차근차근 단계별로 감상하려는 것이고, 그림 속의 경치가 바뀌는 데 따라 화가와 감상자의 시점이 이동합니다.

 

오늘날 중국이든 와국이든 미술관에서 두루마리 그림을 전시할 때는 그림 전부를 펼쳐놓고 관람하게 합니다. 기다란 유리 상자 안에 한눈에 그림이 들어오게 배치하면 아주 멋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완전히 틀린 방식이자 두루마리 그림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림의 의도가 전혀 살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황제이거나 조정대시느 또는 부자여야만 집에 두루마리 그림을 보유하고서 한가할 때 꺼내 볼 수 있습니다. 건륭제는 자금성에 두루마리 그림을 보기 위해 삼희단으라는 방을 따로 만들기도 했지요. 그는 진나라 당나라 송나라 원나라 때의 진귀한 두루마리 그림을 갖고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문인화의 발언권이 너무 세서 궁정화가는 거의 이름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중국 회화사의 변방에 위치하는 기능인이었을 뿐이었지요. 물론 이런 거대한 규모의 그림을 그리자면 많은 조수가 필요했을 겁니다.

 

황제의 행렬에 동행해서 그 과정을 전부 목격했다 해도 눈이 두 짝 뿐인 인간이 어떻게 일행의 시작부터 끄트머리까지 온전히 다 눈에 담을 수 있었을까요? 그가 날아다니며 살펴보았다 해도 몇 키로미터나 이어지는 행렬과 그들이 지나간 지역을 남김없이 기억한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오늘날처럼 디지털 지도가 있어서 검색만 하면 그 도시의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는 것도 아닌데ㅐ 말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었을까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밑그림을 충실히 그리고, 거기에 상상을 더해서 그렸던 것입니다. 또 다른 핵심은 '생활속에서 익힌다'는 창작의 원칙일 것입니다.

 

청나라 때의 회화는 과소평가되었습니다. 당나라와 송나라의 그림은 웅대하며 풍성하다고 하고, 원나라와 명나라의 그림은 우아하고 화려하다고들 합니다. 그에 비하면 청나라 그림은 오로지 유약하고 나른하다, 아름답지만 잡다하다는 식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유약하고 나른하다는 것도 회화에서는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요? 프랑스이 로코코 미술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