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 8. 20:48ㆍ미술/미술 이야기 (책)
피에로 만초니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의 표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예술가의 똥, 정량 30그램, 신선하게 보존 됨, 1961년 5월에 생산되어 저장됨.
1961년, 만초니는 한 달여 기간 동안 이런 통조림 90개를 제작해 각각 에디션 넘버를 붙인 뒤 진품임을 보증하는 서명을 남겼다. 그리고 모노그램으로 디자인한 라벨에는 4개의 다른 언어로 각각 상품명을 적어 시장에 내놓았다. 당시 이 통조림의 가격은 통조림과 같은 무게의 금값으로 책정되었으며,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사실 이 작품은 주요 미술관이 한 캔을 억 단위로 구매할 때마다 사람들 사이에 엄청난 논쟁을 일으키며 계속해서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모두 농담이라고 생각했다면 작가가 작품을 만든 의도의 반은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만초니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술가에 대한 컬렉터의 기대와 미술시장을 함께 조롱하려고 했다. 같은 해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 "컬렉터가 작가에게 친밀한 무언가, 정말 개인적인 무언가를 원한다면, 여기 예술가가 직접 싼 똥이 있다. 이 똥이야말로 진정한 작가의 것이다."
그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배설 행위를 포장, 마케팅하고 새롭게 브랜드화해 창의적인 활동으로 재탄생시켰다. 만초니는 예술작품으로서의 오브제가 소비주의와 상업주의의 메커니즘에 철저히 속박되었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정점에 미술작품이 있다고 여겨 예술품으로 만들어진 최종 결과물을 미화해 마치 고급 상품 다루듯 했다. 전례없이 작가 자신에게 초근접한 반초니의 똥은 독특함으로 무장한 진정한 작품이다. 그래서 우리 같은 일반인이 만들어낸 비루한 버전과는 구별된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항상 따라붙는 질문이 하나 있다. 정말 캔 속에는 똥이 들어있긴 할까? 하지만 내용물을 확인하자고 이렇게 비싼 작품을 함부로 훼손할 수도 없는 일이라 이런 불확실성이 작품에 아이러니한 요소를 한층 더 가미하고 있다. 캔 속에 뭔가가 있든 없든 그 사실을 안다고 과연 달라질 게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작품이 지닌 환영과 신비를 사들였다는 사실이다.
5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만초니의 <에술가의 똥>은 미술 시장의 본성과 부조리함을 재치 있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품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신선하게.
─ 출처. 안휘경, 제시카 체라시 共著, 『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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