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8. 19:20ㆍ미술/미술 이야기 (책)
2015. 10.10
한국 미술사의 큰 흐름을 이룬 단색화의 세계!
『단색화 미학을 말하다』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 사조로 재조명을 받고 있는 ‘단색화’에 대해 다룬 책이다. 단색화 붐이 일고 있는 국내 미술시장에 대한 분석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 단색화가 태동하고 전개된 시대적 배경과 미술계 상황, 그리고 단색화가 국제화되고 담론을 형성해온 과정을 다루었다.
미술시장, 특히 경매시장에서 단색화의 붐을 이끌고 있는 주요 작가인 박서보, 윤형근, 정상화, 정창섭, 하종현 등 5명에 대한 작가론으로 구성하였다. 작가별 인생 역정, 예술을 향한 투혼, 작품의 특성을 비평과 철학적 시각에서 접근한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이 책은 비평 없는 전시, 평론 없는 세계화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담았으며, 평론가와 전문가의 시각을 바탕으로 국내외에서 단색화를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개념을 두루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저자 : 서진수
저자 서진수는 서경대학교 경제학과 졸업(경제학사),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고전학파 공황론에 관한 연구’로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영국 글래스고 대학 연구교수를 역임하였다. 2002~2006년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쿠바레브(Vladmir Kubarev) 박사와 함께 러시아와 몽골의 알타이 암각화를 탐사하였고, 일본, 중국, 대만 아트페어에서 한국과 아시아 미술시장에 대한 특강을 하였다. 『고전경제학파연구』(1999년 문광부 우수학술도서), 『애덤 스미스의 법학강의』(상하권 번역서, 자유기업원), 『문화경제의 이해』(강남대출판부) 등의 저서와 고전학파 경제학과 미술시장 관련 논문을 다수 발표하였다. 현재 강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미술시장연구소 소장, 아시아 미술시장 연구 연맹 공동 대표, 세계 에스페란토 협회(UEA) 한국 수석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 : 윤진섭
저자 윤진섭은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호주 웨스턴 시드니 대학에서 미술사와 미술비평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1회, 3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 제3회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 전시총감독, 상파울루 비엔날레 커미셔너, 국립현대미술관 주최 ≪한국의 단색화展≫ (2012)과 국제갤러리 주최 ≪단색화의 예술展≫(2014) 초빙 큐레이터, 타이페이 현대미술관(MOCA) 주최 ≪K-P.O.P/ Progress/ Otherness/ Play展≫의 총감독,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부회장, AICA KOREA 2014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로 있으며, 『몸의 언어』, 『한국 모더니즘 미술연구』, 『행위예술의 이론과 현장』 외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저자 : 정연심
저자 정연심은 뉴욕대학교에서 예술행정과 근현대미술사, 비평이론을 공부했으며, 뉴욕대학교 인스티튜트 오브 파인 아츠(Institute of Fine Arts/미술사학과, New York University)에서 미술사 박사학위(Ph.D.)를 취득했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개최된 ≪백남준≫ 회고전의 리서처(Researcher)로 일했으며, 프랫 인스티튜트, 와그너 칼리지, 뉴저지 몽클레어 주립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고, 뉴욕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의 미술사학과에서 조교수를 역임했다. 『비평가 이일 앤솔로지』(편저, 2013, 미진사), 『현대공간과 설치미술』(2014, A&C) 등 다수의 저서와 번역서를 출판했고 2014년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협력큐레이터를 역임했다. 미디어 아트와 한국설치미술에 대한 글을 집필 중이며,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 부교수다.
저자 : 변종필
저자 변종필은 경희대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와 동대학원 미술(서양화)과 졸업하고, 동대학원 사학과에서 ‘채용신초상화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8년 미술평론가협회 미술평론공모에 당선된 데 이어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 당선된 이후 미술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경희대, 삼육대, 인천대, 한남대, 홍익대, 충남대 등에서 강의하였고, 경희대 국제캠퍼스 객원교수를 엮임 했다. 앤씨(ANCI) 연구소 부소장, 박물관?미술관 국고사업평가위원, 한국무형문화재보존협회 연구위원, 한국미술품감정발전위원회 연구위원, 한국미술평론가협회편집위원, 미술과 비평 평론위원 등으로 활동하고,『손상기의 삶과 예술』,『한국현대미술가 100인』의 공저가 있다. 현재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관장으로 재직하며,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 : 장준석
저자 장준석은 중앙대,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졸업(문학박사)하였으며,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에 당선되었다. 『꿈과 멋을 지닌 한국의 화가들』, 『21세기 새로운 한국현대 미술의 단상』 등 10여권의 저서가 있다. 방글라데시 비엔날레 커미셔너, 대한민국 현대미술 1000인전 전시감독, 대한민국 국제 환경미술제 예술총감독(코엑스), 미술은행 작품 선정위원,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한국총회 사업분과위원장, 한국미술평론가협회 감사, 한국 예술학회 부회장 및 편집위원장, 마을미술프로젝(문화관광부) 운영위원,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아시아프(ASYAAF) 심사위원, 동대문운동장 디자인프라자 파크 미술 심의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미술평론가, 한국미술비평연구소장, 한국미술비평학회 운영위원장, 서울대, 홍익대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다채로운 단색화 미술시장, 경매? 화랑? 아트페어 - 서진수
경매시장에 이는 단색화 붐
화랑 전시가 쌓아온 단색화의 기반
1970~1980년대 소신파 화랑들의 단색화 소개전
1980년대 말~2005년 의리파 화랑들의 중단없는 전시
2006년 이후 투자파 화랑들의 기획특별전
단색화 작가의 국내외 아트페어 참가
단색화 붐과 미술시장의 확장
1970년대 한국 단색화의 태동과 전개 - 윤진섭
단색화와 미적 모더니티의 발현
앵포르멜의 쇠퇴와 A.G. 그룹의 대두
1970년대 단색화의 정착과 확산
단색화의 미적 특질과 구조
단색화의 정신적 가치
국제화, 담론화된 단색화 열풍 - 정연심
단색화의 현재
한국 단색화의 이야기 공간
단색화를 통해본 모더니즘의 이중성:
모더니스트 노스탤지어와 모더니스트 저항
박서보의 묘법세계: 자리이타自利利他적 수행의 길 -변 종필
묘법의 시기별 변화
묘법의 본성
묘법의 길-끝나지 않은 수행
윤형근: 캔버스에서 이루어진 한국의 조형 - 장준석
윤형근의 회화
인간 윤형근-예술가로서의 삶
작품에서 나타난 한국미
국제 감각을 지닌 한국의 회화
정상화의 회화: 동일성과 비非동일성의 대화 - 김병수
순수한 노동
모노크롬과 미니멀리즘 그리고 정상화
살flesh로서의 회화
불균등해도 회화적인
모노하와 정상화
작품에서 작업에로
방법으로써 회화
교차하는 정상화
새로운 전망
정창섭, 자연과 동행하는 회화 - 서성록
전후 시대상황과의 조우
수묵화를 닮은 추상
물성의 회화
한지송韓紙頌
전통미
마대작가 하종현의 비회화적 회화 - 이필
초기 실험기와 접합의 탄생
‘접합’의 개념과 미학적 특성
동시대 미술사조 속에서 본 <접합>의 독자성
<접합>의 의의: 회화개념의 변혁과 한국의 미적 모더니티
무념의 철학
연표 김달진
미주
참고문헌
1
단색화 경매시장은 15년간 박서보와 정상화 쌍두마차가 선두에 서서 달리고, 윤형근 하종현 정창섭이 함께 그룹을 지어 달렸으며, 최근에는 권영우 김기린 이동엽 등이 뒤를 따르고 있다.
박서보 등 주도적인 작가 5명의 경매 낙찰 결과를 보면 2001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옥션과 k옥션 오프라인 경매에서 팔린 총액이 59억2천7백만 원이었던 것이 2014년 한 해에만 49억 1천 3백만 원어치가 팔렸고, 2015년에는 7개월 동안 147억 9천 804만 원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2
한국의 단색화는 '마음의 예술'이다. 그것은 물감이란 물질을 매개로 화가의 마음이 캔버스에 스며들면서 이루어지는 시간 축적의 결과물이다. 그 과정에서 단색화 특유의 '발효의 미학'이 탄생한다. 한국 단색화 중에서도 특히 김기린 박서보 윤형근 이동엽 정상화 정창섭 최병소 등의 작품은 오랜 시간 동안 국물을 고는 가운데 특유의 맛을 자아내는 한국의 독특한 '탕湯' 문화를 연상시킨다.
박서보 작품
Ecriture No. 081007,’ by Park Seo-bo
Ecriture No. 100509
No. 050319
Ecriture No. 051128
펌))
지난 1월, 데이빗 즈워너 갤러리에서 윤형근의 전시를 오픈하던 날 토크가 있었다. 평론가 배리 슈왑스키가 관객을 이끌고 갤러리를 돌며 전시된 그림들과 윤형근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방식이었다. 슈왑스키는 토크 중 윤형근의 말을 인용했다. “나는 그림에 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무엇을 그려야 할지, 또 언제 그만 그려야 할지 잘 모르겠다. 거기서, 그 불확실함 가운데서 나는 그저 그린다. 마음 속에 정해놓은 목표는 없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그 무엇을 그리고자 한다. 그것이 나를 끝없이 나아가게 한다.” (슈왑스키의 인용구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영어 인용구는 이랬다. “I don’t think there can be an answer to painting. I have no idea as to what I should paint and at which point I should stop painting. There, in the midst of such uncertainty, I just paint. I don’t have a goal in mind. I want to paint that something which is nothing. That would inspire me endless to go on.”) 그러고는 이 말이 새무얼 베케트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한국어로 들었다면 그동안 흔히 들어온, 어느 단색화 화가라도 할 만한 얘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영어로 번역한 문구를 들으니 베케트의 부조리한 문장들이 연상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슈왑스키는 베케트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 지나갔지만 윤형근의 말이 베케트를 연상시킨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두 가지에서 볼 수 있다. 첫번 째는 윤형근의 말이 베케트와 조르쥬 뒤투이트가 주고 받은 서신의 일부를 발췌한 짧은 대화록 <세 가지 대화>의 내용을 연상시킨다는 사실이다. 이는 세 사람의 화가, 피에르 탈-코트, 앙드레 마송, 브람 반 벨데를 놓고 베케트와 뒤투이트가 주고 받은 대화를 기록한 것인데, 베케트는 이들을 논하는 듯하면서 창작에 관한 자기 자신의 고민을 드러낸다. 탈-코트에 대해 논하는 부분에서 그는 “표현할 것이 없는 상태, 표현할 재료도, 표현할 소재도, 표현할 힘도, 표현할 욕망도, 표현할 의무도 없는 상태를 표현하는 일”에 대해 말한다. 과거의 예술보다 더 잘 할 수 있다거나, 진실이나 아름다움을 표현하겠다는 야심찬 태도가 아닌, 표현할 것이 없는 상태가 출발점이고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두 번째는 베케트의 소설 삼부작(<몰로이>,< 말론 죽다>를 포함한)의 마지막 편인 <이름 붙일 수 없는 자> 는 “나는 계속할 수 없어. 나는 계속할 거야. I can’t go on, I’ll go on” 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데, 윤형근의 말이 이 유명한 문장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이 문장은 베케트 식 글쓰기의 전형을 예로 들때 자주 인용된다. 갈 수 없다고 해놓고는 바로 또 갈 거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들리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가 처한 역설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이 두 가지 예는, 즉 예술가의 ‘표현할 것 없음’을 선언했다는 점, 그리고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들리는 역설을 공공연하게 표현 방식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은 베케트가 남긴 문학적 족적을 잘 요약해준다.
베케트가 그의 작품 세계를 이루게 된 경위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베케트가 파리의 한 대학에서 강사로 일할 때 제임스 조이스를 만났고 조이스와의 만남은 베케트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베케트는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의 집필을 위한 리서치를 돕기도 하며 오랜 세월 그와 가깝게 지내게 된다. 그러던 중 베케트가 잠시 더블린에 다니러 갔을 때 그는 그의 엄마의 방에서 갑작스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후 집필한 그의 소설 몰로이Molloy의 도입 부분은 엄마의 방이 배경이 된다.) 이런 식으로 계속 한다면 그는 평생 조이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이제 조이스와는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고 깨달은 것이다. 즉, 조이스가 ‘더 많이 아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언제나 뭔가를 ‘더하는’ 식의 작업을 하고 있다면 자신은 그 반대, 즉 자신의 무지와 무능을 인정하고 ‘모른다’라는 사실을 큰 전제로, 더하기가 아닌 빼기 식의 가난한 작업을 자신의 과업으로 삼아야 한다고 느낀 것이다. 그동안 서구의 의식 속에서는 용납되지 않던 ‘모른다’는 전제를 의식적인 하나의 방법론이자 태도로 삼은 것이다. 그는 또한 영어가 모국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어로 글을 썼는데, 불어로 써야 스타일이 없는 문체로 쓰기가 용이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그릴지 모르고, 목표가 없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그린다는 윤형근의 말도 하나의 방법론이었을까. 어디선가 접점이 있는 듯 보이는 베케트와 윤형근의 정신 세계는 비교가 가능한 것일까.
노자는 <도덕경>의 첫째 장에서 “도가 말해질 수 있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고,/ 이름이 개념화될 수 있으면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 무는 이 세계의 시작을 가리키고,/ 유는 모든 만물을 통칭하여 가리킨다. 언제나 무를 가지고는 세계의 오묘한 영역을 나타내려 하고,/ 언제나 유를 가지고는 구체적으로 보이는 영역을 나타내려 한다…….” 고 했다. 노자는 도를 ‘무엇’이라고 정의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무와 유의 대비를 통해, 그 대비되는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가 있으면 무가 있는데 그 관계 속에서 세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베케트가 자신의 방법론을 깨닫고 정립한 것도 ‘더 알고자’하는 세상을 향한, 그 반대편의 존재를 알리는 선언이었다. 노자의 ‘무’가 서양 철학에서 말하는 ‘절대무’의 상태가 아니라 유에 상대하는 ‘비어있는’ 상태에 가까운 것처럼, 베케트의 ‘모른다’는 언명 또한 그가 실제로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른다’는 태도를 통해 경험하는 세계의 ‘오묘함’을 전하고, 궁극적으로는 그 반대편의 세상과 만남을 꾀한 것이었다. 윤형근의 전시 토크에서 누군가 그런 질문을 했다. 아무 것도 의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가 가능하냐고. 윤형근이 ‘의도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의도 자체가 전혀 없는 ‘절대무’의 상태라기 보다, ‘비어있는’ 상태에서 그림에 접근하겠다는 말과 같을 것이다. 이는 윤형근 뿐 아니라 다른 단색화 작가들의 접근 방식이기도 했다.
대학원 시절 한국의 단색화에 대한 긴 에세이를 쓴 적이 있다. 그 이유는 흔히 단색화라고 묶여지는 일군의 작가들의 작업에서 한국의 전통 미술이 서양의 동시대 미술과 대등하게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 미술이 비로소 국지성과 보편성을 모두 획득하게 된 지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 나는 단색화의 특징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했다. 반복적 액션과 물성의 희박화가 그것이다. 그 중 반복적 액션에 대해 말하려면 한국의 선비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의 정신 세계는 주로 유불선 (물론 샤머니즘도 빼놓을 수 없다)의 영향이 고루 섞여진 형태로 나타나는데(시대마다 주된 사상은 달라지지만) 이 세 종교에서 모두 자기 수양(수신, 몰아, 무위)이 매우 중요한 가치이자, 방법론, 그리고 궁극의 목표가 된다. 한국의 선비들은 매일 글을 읽고 쓰는 일을 되풀이했는데, 그 목표는 단순한 지식의 축적보다는 유불선에서 최고로 치는 경지에 도달하기 위함이었다. 한국의 선비들은 일찌기 지식을 쌓으면 이를 버릴 줄 알아야 하고 소유와 동시에 무소유를 생각했고 자신을 잊는 행위를 통해 명징한 정신 세계에 도달하려 했다.
이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비들은 매일 반복해서 글을 읽고 또 썼다. 선비들의 글쓰기인 서예는 먹을 갈아 한지 위에 붓으로 글씨를 쓰는 행위를 말하는데, 선비들은 자신의 글 뿐 아니라 이미 있는 싯구나 문장을 썼다. 선비의 서예는 (서양의 글쓰기와 비교되는) 두가지 중요한 특징을 갖는다. 첫번 째는 글씨를 쓰는 행위 자체가 신체의 자세와 움직임에 그 중요한 근거를 두고 있어 어떤 자세로 어떻게 글을 쓰느냐가 서체를 낳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동양의 서예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쓰기와 그리기를 합친 형태로 볼 수 있는데, 서양의 쓰기는 물론 그리기와도 많은 차이가 있다. 서양의 전통적인 쓰기와 그리기에서는 애초부터 신체성이 대체로 배제된 반면 서예에서는 스타일 자체보다 어떤 몸과 마음 가짐으로 서예에 임하느냐가 훨씬 중요했다. 몸을 바로 하고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그리는 선의 결과가 서예인 것이다. 두번째는 선비의 글씨란 선비의 인격이, 그 수양의 정도가 시각적 스타일로 승화되는 지점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영어에서 인격을 뜻할 수 있는 말로 personality나 character같은 단어를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개인이 갖는 특질에 더 가깝지 한 개인이 성취할 수 있는 덕이나 품격의 정도를 나타내주지는 않는다. 바로 이 지점이 서양에서 윤형근의 회화나 단색화를 이해하기 힘들게 하는 측면이다. 베케트와 윤형근의 접점이 있다해도 아마도 이 부분에서 그 성격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윤형근은 반복해서 자신의 그림이 추사 김정희 글씨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짐작할 수 있듯이 윤형근의 이 말은 자신의 그림이 한국의 서예와 수묵화 전통에서 온 것이며, 그림을 그릴 때의 몸과 마음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한국에서 높은 인격을 갖는다는 것은 단순히 착한 마음으로 그 시대가 요구하는 도덕에 맞게 사는 것이 아니다. 고결한 인격의 성취는 몰아, 무위를 통한 마음의 평정 상태를 갖는 것을 바탕으로 한다. 명상을 할 때 생각을 없애고 자아를 잊어야 비로소 현재에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고결한 인격도 욕망과 의도와 집착과 취향을 모두 잊고 방 한가운데 정지한 촛불처럼 세상의 숨결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상태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하는 윤형근의 회화는 반복되는 액션을 통한 반복적 패턴을 낳는 방식보다는(박서보, 정상화 등의 회화에서 보이는) 반복적인 액션과 형태가 모두 감추어지는 방식을 택한다. 물감을 계속해서 덧칠하는 그의 액션은 물감이 더 깊고 어두운 색감으로 캔버스에 스미는 효과를 낳는다. 상반되는 두 개의 색(엄버와 울트라마린)으로 깊고 어두운 색을 만든 그의 화법 속에도 상반되는 관계 속에서 화면 위의 이치를 파악하려 한 그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그림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그림은 무엇인지 모른다고 했다. ‘모른다’라는 겸허한 선언을 통해 서양의 이원론을 극복하고 추사 김정희의 ‘독창적’ 스타일까지 뛰어넘는 ‘오묘한’ 경지에 이른 것이다.
출처: http://amazingthomas.tistory.com/55 [amazing tho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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