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첫째날 - 휘주 역사박물관

2017. 7. 2. 11:18중국

 

 

 

 

인천공항에, 언제부터 이런 행렬을 했었디야?

난 츰 보네?

 

 

 

 

 

 

 

저 98,000원은 기내 면세점에서의 가격인데,,

 

중국 현지에서 5만원대 이상으로 파는 술은 정상적인 명주랍니다. 출하량이 정해져 있다네요.

1위가 모태주, 2위가 오량액, 3위가 수정방, ,또 하나가 뭐라드라?

전문적인 술꾼이 아니고서는 어드런 게 명주인지를 모른답지요.

 

 

 

 

 

 

 

 

 

 

 

 

휘주(徽州) 역사박물관

 

 

 

 

 

 

 

 

 

 

 

 

 

 

 

 

조선족 연변 출신 가이드인데 함경도 사투리를 원단으로 씁디다.

양구, 정선, 속초, 강원도 사투리가 알고보니 함경도 사투립디다.

"냅(냈)따가리!" "썩어지게!"

 

 

 

 

 

 

 

 

 

 

 

 

 

 

 

 

 

 

 

 

 

 

 

이름이 김태윤 ─ 7월 8월은 황산이 비수기고 백두산이 성수기랍니다. 그리로 간다네요.

무위산도 여기서 멀지 않은데, 무위산은 비오는 날에 와야만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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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듣다 보니 그럽디다 -「徽州商人」????

아, 그 휘주상인 말이구나!

 

 

 

 

 

 

 

 

 

 

 

 

 

 

 

 

 

휘주상인


중국 역사상 10대 상방(商帮) 중 하나이다. 명대(明代)에 강남에는 신안(新安)이 있고,
강북에는 산우(山右), 즉 산서(山西)가 있다라고 하여 휘주 상인의 활동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청대(淸代)에 휘상은 10대 상방 중 으뜸이
되어 소위 ‘무휘불성진(無徽不成鎭)’이라는 말이 생겨났다.</P>
<P class="desc_section">휘주 상인은 혹은 신안상인(新安商人)이라고 하는데, 명 · 청(明淸) 시기 휘주부(徽州府)에 속해
있던 흡현(翕縣) · 휴녕(休寧) · 이현(黟縣) · 적계(績溪) · 무원(務源) 6현 출신자들로 남송(南宋) 시기에 흥기한 이후, 명 · 청
시기를 거쳐 청 말 쇠퇴에 이르기까지 전형적인 ‘봉건성’과 향토의식을 바탕으로 상업경영을 영위했던 상방을 지칭한다.</P>
<P class="desc_section">휘주 상인은 특이한 배경과 조건하에서 출현했다. 즉 휘주부는 산악지대에 위치하여 산이 많고 경작할
토지가 적은 지역이었고,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기에 중원의 전란을 피해 많은 인구가 휘주 지역으로 유입하여 생존환경이 더욱 악화되었다.
따라서 생존을 위해 휘주인들은 외지로 나가 상업활동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황산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담을 보면, “휘주에서 태어나
13~14세가 되면 외지로 나간다.”고 하여 경상이 휘주인의 전통적 풍습이 되었다.</P>
<P class="desc_section">또한 휘주 지역은 산악 지역이었기 때문에 차 · 목재 · 약초 등 토산품들이 매우 풍부했을 뿐만
아니라, 산구(山區) 경제와 관련된 수공업, 즉 도자기 · 휘묵(徽墨) · 칠기 · 흡연(歙砚) 등도 풍부했다. 휘주 상인은 이러한 물품을
외지로 나가 판매하고, 대신 자신들의 생활에 필요한 식량, 기름, 소금 등을 구입하여 생활을 영위했다. 한편, 남송이 강남의 임안(臨安)으로
천도한 것이 휘주 상인 출현의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휘주는 신안강(新安江)이라는 편리한 운송로를 이용하여 상품을 운반한 것이 또 하나의
조건이 되었다.</P>
<P class="desc_section">휘주 상인이 취급한 물품은 여러 종류였지만, 그중에서도 소금, 차, 목재 그리고 전당업이 가장
대표적인 업종이었다. 예를 들어, 염상(鹽商)은 송 · 원 시대에 시작하여 명 중엽에 ‘개중법(開中法)’이 시행된 이후 휘주인들이 대거 염업에
종사하면서 휘주 상인의 주력 업종이 되었다.</P>
<P class="desc_section">휘주 상인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소위 관고유(官賈儒)의 삼위일체, 즉
‘고유(賈儒)’였다[‘賈而好儒’]. 전통시대에 상업경쟁이 날로 치열해지자, 경상자에게 일정한 관리와 조직능력이 요구되었다. 바로 휘주 상인의
유교에 대한 문화적 소양이 경상활동 중 직업도덕[商德]과 상업 신용을 중시하는 경영방식으로 표출되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질서 중
최말단에 위치한 상인으로서 휘상은 상고(商賈)와 사(仕)의 결합을 통해 관리와 결탁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업환경을 구축했다. 어떤 자는 상업을
통해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관리가 되기도 했는데, 바로 적계인(績溪人) 호설암(胡雪巖)이 ‘홍정상인(紅頂商人)’으로서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휘상은 또한 동향 · 동족 출신의 관리를 이용하여 자신들을 위한 정치적 대변인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휘상은 사회적 지위를
제고시켰다.</P>
<P class="desc_section">또한 휘주 상인은 종족과 향리를 유대로 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명 · 청 시기, 휘주 상방은 동족
혹은 동향 의식을 바탕으로 성장했는데, 북경 · 양주(揚州) · 무한(武漢) 등 허다한 성시(城市)에 휘주 출신 상인들을 위한 회관을
설립하거나, 휘상 자제를 교육하기 위한 학관(學館)을 설립했다. 회관은 동향의식을 바탕으로 상업정보의 교류, 상업이익의 유지, 내부 분규의
조정이나 여타 상방과의 경쟁력 확보 등의 역할을 하면서 휘상의 형성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P>
<P class="desc_section">속어에 ‘무휘불성진(無徽不成镇)’이란 말은 휘상의 성세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한 시진(市鎭)에서
만약 휘상이 활동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시진이랄 수 없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휘상의 성세와 쇠락에 따라 시진의 경제도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P>
<P class="desc_section">산서상방(山西商帮)과 휘주상방(徽州商帮)은 명대(明代)에 가장 큰 양대 상방이었지만, 명대 후기
양회염업(兩淮鹽業)에서 산서상방은 쇠락하고 휘주상방은 더욱 발전했다. 그 원인은 산서 상인은 독서를 중시하지 않은 반면, 휘주 상인은 평소에
유학을 문화적 소양으로서 체득했기 때문이다. 산서 상인은 자제 중 능력이 뛰어난 자는 상업에 종사시키고, 중간 이하인 자는 독서를 통해 과거에
응시하도록 했는데, 바로 이러한 차이가 상업경영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휘주 상인은 자제에 대한 교육을 중시하여 교육기관으로서
사학(社學)을 설치했다.</P>
<P class="desc_section">그러나 ‘화무백일홍(花無百日紅)’이라 했듯이, 휘주 상인도 청대 중기 이후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 원인은 주로 도광(道光) 연간 회염(淮鹽)의 폐단을 제거하기 위해 표법(票法)을 실행하면서 휘주 염상의 이익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함풍(咸豊) 연간에 초법(鈔法) 시행(試行)의 실패로 전장(錢莊)을 경영하던 휘상이 큰 타격을 받았다. 후에 청 정부에서 전당(典當)
상인에 대해 고리대를 금지시키고 전당세를 증가했으며 ‘이금(釐金)’정책을 실시했는데, 이것이 전당업과 장거리 물자유통에 종사하는 휘주 상인에게
타격을 가했다.</P>
<P class="desc_section">아편전쟁 이후 서양 열강의 근대적 기계제 생산품이 염가로 중국 내지에 판매되면서 휘상이 경영하는
수공업 생산품의 경쟁력이 하락했다. 그리고 함풍 연간에 휘주 지역도 태평천국 난의 피해를 당하여 인력 · 물력 · 재력이 모두 파괴당했다.
이러한 원인들 때문에 휘주 상인은 청말 민초(淸末民初)에 쇠락하여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P></DIV>

[Daum백과] 휘주 상인 – 역사용어사전, 서울대학교 역사연구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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