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朝鮮史』

2016. 10. 1. 19:28책 · 펌글 · 자료/역사

 

 

 

 

두 얼굴의 조선사 

2016. 7

 

 

 

도덕정치로 위장한 계급정치의 나라 조선 지배층의 민낯
권력자들의 끝없는 실정과 수탈, 비리와 부패를 자연법인 양 여기고 살아가는 가난한 인민들…….
양반 지배층의 탐욕과 위선으로 얼룩진 조선사회는
어떻게 500년을 존속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학자적 관료 중심의 지배세력 구성이 가능했는가?
조선 지배층의 통치 이념과 지배의 논리는 무엇이었는가?
그 이데올로기적 구상은 어떤 방식으로 추진되고 작동했는가?
조선 지배층은 피지배자의 사고와 행위를 어떻게 규정해나갔는가?

고른 인재 등용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무엇보다 집안과 인맥과 뇌물을 중시했던 과거제도, 공명정대한 대의를 내세우지만 신분에 따라 철저히 다르게 적용되는 법제도, 못 가진 이들을 더욱 한계까지 쥐어짜는 군역과 조세제도……. ‘군자가 다스린 나라’ 조선에서 사회의 가치와 규범 전체에 스며든 유교 윤리는 철저히 조선의 신분 차별과 지배층의 권력 재생산을 위해 작동했다. 유학 경전 읽기를 업으로 삼고 그 가르침과 윤리에 충성했던 조선의 지배층은, 수백 년에 걸쳐 조선을 어떤 사회로 만들어나갔을까? 지식 권력자이자 권력 기술자였던 조선의 사림, 그 잔혹한 통치의 실상에 다가가보자.

무역선이 동서로 오가며 세계가 자본의 시대로 접어들던 시대, 네덜란드의 한 인문학자는 먼 동쪽에 철학자가 다스리는 이상국가가 있다고 말했다. 플라톤이 그렸던 유토피아처럼, 덕과 지혜를 갖춘 철인왕이 통치하는 나라가 있다고. 그곳이 조선이었다. 조선은 세계사에 유례가 드문 장기 존속 왕조로, 지혜와 덕을 논하며 학문을 업으로 삼은 선비들이 다스린 나라다. 그러나 그 실상은 어떠했을까. 양반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과 제도, 관료의 부패와 뇌물의 일상화, 참혹한 가난에 빠진 농민들과 군역을 피해 차라리 노비가 되기를 택하는 양인들……. “철학자의 나라” 조선에는 착취하는 이와 착취당하는 이, 두 계층만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착취의 정치가 500년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조선의 선비를 ‘권력기술자’로서 조명함으로써, 이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저자 조윤민

방송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하며 역사 탐구와 저술에도 힘을 쏟고 있다. 「KBS 일요 스페셜」(KBS), 「700년 전의 약속」(MBC), 「시베리아, 잃어버린 한국의 야생동물을 찾아서」(EBS), 「역사 속으로의 여행」(EBS) 등의 다큐멘터리를 구성하고 글을 썼다. 「세상의 중심」(KBS), 「고서古書 - 지혜의 문」(Q채널), 「하늘에 새긴 역사」(Q채널) 등의 프로그램 제작을 총괄했다. 미국 사회의 빈민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인문학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한 「가난한 자들의 철학자, 얼 쇼리스의 희망수업」(KBS)은 국내에 노숙자를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는 계기가 됐다. 세계 여러 나라의 전인교육 현장을 담아낸 「이것이 미래교육이다」(Q채널)는 2005년 방송위원회 대상(우수 프로그램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2013년에는 북한산성이라는 역사의 창을 통해 한국사 2000년을 재조명한 『성城과 왕국』을 출간해 공간의 정치도구화라는 평소의 관심을 천착했다. 지금 이 시대가 전통시대의 지배담론과 그 음험한 권력의 지배 전략이 남긴 파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고 여긴다. 지식과 권력의 관계, 권력과 지배 전략, 욕망과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을 화 두로 역사를 되짚어 차별화된 인간과 위계화된 사회의 실상을 드러내고 그 배경을 밝혀내는 글쓰기 작업을 계속할 생각이다.

 

 

 

 

책머리에


도덕의 가면을 쓴 조선 지배층의 두 얼굴

 

조선은 무엇보다 '위계의 나라'였습니다. 도덕정치로 위장한 철저한 계급정치가 관철되는 '위선의 나라'였습니다. 지배층의 이익 확보와 욕망 추구를 理와 道 같은 사상 개념으로 포장해 정당화하고 신분질서와 사회의 위계구조를 영속시키고자 했습니다.

조선은 518년을 존속했습니다. 세게 역사상 이러한 예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중국의 경우 최초의 통일왕조인 진나라 이래의 수십 개 나라 중에서 200년 넘게 존속한 나라는 다섯 나라 뿐이며 300년을 넘긴 왕조는 하나도 없습니다.

'조선왕조 500여년 존속'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학자적 관료 중심의 지배세력 구성이 가능했는가? 지배층의 통치 이념과 지배 논리는 무엇인가? 그 이데올로기적 구상은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었는가? 그 정치권력은 피지배자의 사고와 행위를 어떻게 규정해나갔는가?

 

 


1장 |프롤로그| 조선에 대한 세 개의 초상


철학자가 다스리는 나라 | 이사크 포시위스
그들의 나라, 당신들의 천국 | 윤휴와 송시열
사람고기의 나라 | 장길산


1부 조선 지배층, 그들은 누구인가?


|에피소드|

 


조선 지배층의 정치 이념
조선 예학의 대가,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다
자연과 삶을 노래한 시인, 노비를 죽이다


2장 양반과 왕


살아 있는 정조, 죽은 송시열을 드높이다
왕권이냐, 신권이냐
왕과 양반관료, 공생하다

 

 

 

왕과 신하의 공생(共生), 君臣통치에서 왕과 신하는 서로의 무엇을 차지하고 무엇을 주고 받는가? 왕은 최고권력자로서 지상에서 행해지는 모든 권력의 근거이자 정통성을 보장하는 상징적 위상을 갖는다. 이를 위해 '왕의 권력은 하늘이 내리ㅏㄴ 것'이라는 天命사상이 동원되고 거기에 신성함과 함께 지고의 가치를 부여받는다.

이러한 권력은 실제로 입법권 · 사법권 · 군사권 · 재정권 · 외교권이란 명목으로 행사되는데, 양반관료가 왕권을 근거로 하여 사회에서 이 권력을 휘두른다. 대개 정책 수행이나 행정업무라는 이름을 달고 집행되는 현실의 권력이다. 이렇게 해서 왕은 권력의 구심이자 최고의 명령자가 되며, 양반관료는 왕의 권력을 현실화하는 권력의 대행자가 된다.

이 과정에서 왕은 왕권의 순조로운 집행을 위해 양반관료에게 특권을 허용한다. 신분 유지를 위해 토지와 노비를 내리고, 관직과 교육의 독점을 선언한다. 이에 양반관료는 왕을 지지하고 왕위를 지키며, 때로는 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현실의 권력을 능동적으로 집행한다. 이들은 조세를 거두고 부역으로 노동력을 징발하는데 힘을 쏟는다. 때론 양반의 이익 추구가 왕도와 성인의 덕이란 후광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이럴 때 왕은 양반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 나라의 우두머리로 나타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왕권은 더욱 공고해지고, 王家는 대를 잇는 영구한 미래를 보장받는다. 이와 함께 양반관료 또한 지배계급으로서의 안정과 내일을 약속받는다.

왕과 양반이 지배하는 사화가 유지되고 그들의 안락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흔들리지 않는 한 그즐에게 세상은 평화로운 곳으로 남았다. 무척 살만한 세상이었다. 거기에 더해 그들은 자신들을 지식과 지혜를 탐구하는 계층으로 만들어 나갔다. 사물과 우주에 대한 이치, 삶과 사회에 대한 도리를 밝힐 수 있는 유일한 부류로 스스로를 규정했다. 물질에서 정신까지, 세상살이와 우주의 궁극까지....... 조선은 왕과 연합해 왕과 공생한 양반관료의 세상이었다.

 

조선의 신권(臣權)은 자신들의 이익과 이상에 반하는 군주를 내쫒을 순 있지만 왕조체제 자체를 없애려고 하지는 않았다. 왕권을 제압하는 양반관료의 권력행사라도 기존 지배질서의 근간을 흔들지 않는 선에서 행사됐던 것이다. 양반은 관직과 교육 독점, 토지 보유와 군역 면제 등의 사회적 특권이 보장된다면 기존 왕조체제를 기꺼이 유지하려 했다. 즉 외양은 왕을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식의 권력구조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양반관료가 왕을 내세워 지배질서를 강화해나가는 시스템이었다.

 

 

 

 


왕과 양반관료, 대립하고 격돌하다
조선 지배층은 지식권력자다


3장 양반, 혹은 사림의 시대


고려 문벌가문의 후예들, 조선 개국공신이 되다
신흥사대부는 조선 개국의 주역이 아니다

 

 

던컨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고려 후기를 이끈 22개 가문(家門) 중 16개 가문이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유력한 지배가문으로 존속했다. 고려말의 문벌귀족 가운데 조선 건국과 함께 몰락한 가문으 겨우 3개 가문에 불과했다. 태조가 책봉한 개국 일등공신 17명 중에 정도전, 배극렴, 남재 만이 신흥 사대부 요건을 갖추었다. 조선의 지배층은 문벌귀족에서 양반, 사족, 사류, 사림으로 그 이름만 변했을 뿐이다. 조선 초에 들어서도 고려말의 유력가문은 대규모 토지를 소유했으며 많은 노비를 거느렸다.

 

 

 


16세기 사림은 향촌 중소지주층이 아니다
사림, 민생을 외면하고 분열하고 싸우다
백성을 위한 사림의 나라는 없다


4장 지배자의 가면


능지처사陵遲處死와 왕도王道
탐욕과 수탈7

 

 

여러가지 개혁에도 불구하고 조선에는 착취하는 사람들과 착취당하는 사람들, 이렇게 두 계층만 존재한다. 전자는 허가받은 흡혈귀라 할 수 있는 양반 계층으로 구성된 관리들이고, 후자는 전체 인구의 5분의 4를 차지하고 있는 하층민들로서 하층민의 존재 이유는 흡혈귀들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다.

 

 


국가를 위한 가문은 없다

 

 

조선 지배층의 작태는 결국 조선의 마지막 날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1910년 8월 22일. 일본정부는 병합늑약을 그달 25일에 발표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대한제국 정부에서 조약의 공포를 나흘 뒤인 29일로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28일에 있을 '대한제국 뢍제 즉위 4주년 축하기념식'과 연회를 치른 뒤에 발표하기로 정한 것이다.

 

"이날(28일) 대연회에 신하들이 몰려들어 평상시처럼 즐겼으며, 일본 통감 역시 외국 사신의 예에 따라 그 사이에서 축하하고 기뻐했다. 세계 각국의 무릇 혈기 있는 자들은 대한제국 군신들의 달관한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

 

 


공론, 그들만의 성城
위선과 이중성
진짜 사림과 가짜 사림

 



2부 그들은 어떻게 500년 최장기 지배자가 되었나?


|에피소드|

 


선물과 연줄
연대와 유교화


5장 귀천 차별을 엄격히 하라 | 신분제


조선의 양반, 아주 특별한 존재
노비를 통제하라

 

 

15세기 후반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이맹현은 750여 명의 노비를 보유했다. 이들 노비는 한양과 경기도 뿐만 아니라 함경도와 전라도 등 전국의 군현에 거주했다. 퇴계 이황의 장남은 360여 명의 노비를 거느렸고, 윤선도 집안에는 700여 명의 노비가 있었다. 15세기에서 17세기에 고위관료를 지낸 양반의 경우 대체로 500~600명의 노비를 보유했으며, 중앙의 하급관직 이력을 가진 양반도 최소한 200~300명의 노비를 둘 정도였다. 16, 17세기에 지방에 거주하는 양반의 경우는 적어도 60~80명의 노비를 두어야 유력 양반으로 행세할 수 있었다.

세종의 아들 영웅대군은 무려 1만여 명의 노비를 두었다고 하며, 선조의 맏아들인 임해군은 전국에 걸쳐 수천 명의 노비를 거느렸다.

15세기 들어 노비 규모가 급격히 늘어난 까닭은 부모 중의 하나가 노비이면 자식이 노비가 되는 노비세습제(一賤卽賤)에 있었다.

 

 

 


정당한 지배 | 지식의 지배도구화
지배-피지배의 완충지대를 확보하라


6장 생산과 부를 통제하고 아량을 베풀어라 | 토지와 경제


토지를 양반에게 집중시켜라
조세 특권을 유지하라
군역을 조세화하고 평민에게 짐 지우라
아량을 베풀고 복종을 유도하라
상공업을 억제하고 백성을 가난하게 하라


7장 관직을 독점하라 | 관료제도


사림관료가 다스리는 나라
관료제도의 그늘 | 비리와 부정부패
관직쟁탈전 | 매관매직, 가문 경쟁, 당쟁
관료사회에 젊은 피를 공급하라 | 과거제도
과거제도의 그늘 | 독점과 특권


8장 차등적 법질서를 정당화하라 | 법제도


신분에 따라 처벌하다
예치와 법치
무엇을 위한 법치인가? | 법과 유교질서
누구를 위한 법치인가? | 법과 지배세력
강한 자의 형벌, 약한 자의 형벌
형벌 그리고 반유교의 나라


9장 큰 나라를 섬겨라 | 사대외교


조선은 독립국인가, 속국인가?
사대의 예도 변모한다
중국과 조선, 군신이자 부자의 관계
심화되는 대명의리 | 임진전쟁과 사대
멸망한 명나라의 황제를 살려내다 | 대보단과 만동묘
조선 지배층은 왜 명나라 황제의 제사를 지냈나?
나는 명나라의 유민遺民이다

 
10장 훈육하고 통제하라 | 학교와 교육


학교는 국가의 원기元氣다 | 성균관, 사부학당, 향교
서원의 탄생
서원과 사림 지배체제
정치 기구로서의 교육기관 | 서원
주민 지배기구로서의 교육기관 | 서당


11장 유교 가치를 삶에 스며들게 하라 | 유교화


유교화 시대를 열어가다
적장자 중심의 가부장적 가족제도에 이르다
조선의 유교화, 유교의 조선화
제사, 신분제 사회의 가부장제 수호의례
열녀와 기생


12장 |에필로그| 조선 지배층에 대한 세 개의 이미지


한자·이두·한글 | 조선의 문자 분리정책
계해정변인가 인조반정인가?
미국 대통령의 딸, 앨리스 환대 사건 | 소국의 환몽幻夢

 




참고문헌

 

 

 

 

 

 

 

 

 

 

 

 

 

 

 

 

 

 

 

 

 

 

월간 이밥차

재료(1인분)

필수 재료

콩나물(1줌=80g), 대파(5cm), 밀가루(1컵)

육수 재료

국물용 멸치(10마리), 다시마(1장=10X10cm)

양념

소금(0.4), 다진 마늘(0.3), 고춧가루(약간)

1. 콩나물은 손질한 뒤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고, 

2. 대파는 송송 썰고,

3. 밀가루(1컵)에 소금(0.1)을 섞은 물(1/2컵)을 조금씩 넣어가며 손에 묻지 않을 정도로 치대 반죽한 뒤 마르지 않게 비닐팩에 넣고,

4. 냄비에 물(3컵)과육수 재료를 넣고 중간 불에서 끓어오르면 다시마를 건진 뒤 10분 정도 더 끓여 멸치를 건지고,

[국물용 멸치(10마리), 다시마(1장=10X10cm)]

5. 육수에 소금(0.3)으로 간을 한 뒤 수제비를 얇게 떼어 넣고 중간 불에서 끓이고,

6. 수제비가 반쯤 익었을 때 콩나물과 다진 마늘(0.3)을 넣어 끓이고,

*Tip.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맞춰요.

7. 수제비가 다 익으면 그릇에 담아 대파와 고춧가루를 얹어 마무리.

 

 

 

*Tip.

 

달걀을 곁들여도 좋아요. 

김가루를 섞어 먹어도 맛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