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15. 08:29ㆍ미술/한국화 현대그림
출처
까치밥 / 송수권
고향이 고향인 줄도 모르면서
긴 장대 휘둘러 까치밥 따는
서울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남도의 빈 겨울 하늘만 남으면
우리 마음 얼마나 허전할까
살아온 이 세상 어느 물굽이
소용돌이치고 휩쓸려 배 주릴 때도
공중을 오가는 날짐승에게 길을 내어주는
그것은 따뜻한 등불이었으니
철없는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사랑방 말쿠지에 짚신 몇 죽 걸어놓고
할아버지는 무덤 속을 걸어가시지 않았느냐
그 짚신 더러는 외로운 길손의 길보시가 되고
한밤중 동네 개 컹컹 짖어 그 짚신 짊어지고
아버지는 다시 새벽 두만강 국경을 넘기도 하였느니
아이들아, 수많은 기다림의 세월
그러니 서러워하지도 말아라
눈 속에 익은 까치밥 몇 개가
겨울 하늘에 떠서
아직도 너희들이 가야 할 머나먼 길
이렇게 등 따숩게 비춰주고 있지 않으냐.
[고미석의 詩로 여는 주말]송수권 ‘까치밥’
소년의 고향에서는 시골집 안뜰뒤뜰은 물론이고 동네 어디서든 오래된 감나무를 볼 수 있었다. 너나없이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들일 나간 부모님 대신 돈과 바꿀 수 있는 감을 수확하는 일거리는 아이들 차지였다. 빨갛게 물든 감잎이 땅을 덮으면 감나무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전날 저녁에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이튿날 동트기 전부터 “일어나라” 재촉하는 어머니의 성화는 더 심해졌다.
형제들 가운데 제일 부지런하고 착실했던 소년은 그때마다 팬티 차림으로 뛰어나갔다.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감나무부터 찾아 행여 생채기라도 날까 노심초사하면서 따고 주운 감들이 소쿠리에 쌓여갔다. 그렇게 모아온 감을 어머니는 옹기 항아리에 담고 끓인 소금물을 부은 뒤 이불로 둘둘 말아 절절 끓는 아랫목에 밤새 잠을 재웠다. 마법처럼 땡감이 단감으로 변신하면 모자는 새벽 첫차에 몸을 싣고 시장에 갔다.
“감 사세요”라고 크게 외치는 엄마를 따라 아들도 입을 벌렸으나 정작 그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감 따던 소년은 자라서 화가가 됐다. 붓 대신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오치균 씨다.
그는 “멀리멀리 고향땅을 벗어나 다른 일로 돈벌이 투쟁할 때 그 지겨운 고향땅이 그리움으로 변했다”고 말한다. 유년 시절의 감나무가 지긋지긋한 노동의 대상이었다면 지금은 감을 ‘사치스럽게’ 화폭에 담는 처지가 됐다. 캔버스에 알차게 영근 감마다 ‘몸으로 비벼낸 자취’와 애틋한 추억이 배어 있다.
그제 서울 보광동을 지나는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어느 집 마당에 서 있는 감나무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꽃보다 화사한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감나무는 주홍빛 알전구로 장식한 때 이른 트리인 양 멀리서도 눈부셨다. 가을은 빠르게 물러가고 어느새 자투리 시간만 남았다. 시인의 눈길이 감 수확을 다 끝낸 시점을 향하고 있다. 아무리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아도 감 몇 개는 따지 않고 까치밥으로 남겨둔 사람들. 그 넉넉한 마음자리를 나누던 시절이 그립다.
[작가 오치균의 글 중에서]
내 고향 집 앞마당 가운데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다.
우리 형제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주워 먹는 감이 아닌 돈을 마련하는 감을 모아야 했다.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감을 곱게 닦고 광주리에 담아 새벽 첫 차에 몸을 싣고 엄마는 그 감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가서 감을 팔 때면 엄마가 “감 사세요”를 외쳤는데, 이상하게도 내 소리는 정작 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했던 시골 생활, 내 인생의 목표로 제발 여기 고향 땅만 벗어나고자 매달린 건 공부였다. 대학에 들어가 드디어 멀리 멀리 고향 땅을 벗어나 다른 일로 돈 벌이 투쟁할 때, 그때부터는 그 지겨운 고향 땅이 그리움으로 변했고 빨갛게 떨어진 감 잎은 그 어느 시(時)보다도 강렬하게 내 귀 속에 바삭거린다. 그렇게 지겨웠던 감나무와의 투쟁이 아직도 계속됐다면 난 감을 먹지도 않을테고 감히 사치스럽게 그것을 화폭에 담을 수도 없었을 거다.
오치균의 감을 사유하다
정영목(서울대 교수)
I.
오치균이 감(나무)을 그리기 시작한 때도 이제는 꽤 오래 되었다. 1998년경으로 오랜 미국생활을 마치고, 한국의 시골 풍경을 접하면서부터였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골의 풍광이 자신의 본능적 감성의 원천이 되었다는 깨달음”을 피부로 느끼면서, 가을의 감이 달린 감나무의 풍경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물론, 화가가 제일 먼저 떠올린 기억의 단상은 어릴 적 그가 겪었던 감과의 투쟁(?)이었다.
배고픔의 어린 시절을 경험한 세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과의 추억 같은 투쟁들--하나, 둘쯤은 누구나 간직하고 있으리라. 오치균의 감과의 투쟁은 적어도 필자보다는 더욱 심했던 듯싶다. “그렇게 지겨웠던 감나무와의 투쟁이 아직도 계속됐다면, 난 감을 먹지도 않았을 테고 감히 사치스럽게 그것을 화폭에 담을 수도 없었을” 정도로 그에게 감은 어린 시절의 가난을 떠올리는 아이콘(icon) 같은 것이었다.
그러더라도, 가난과 동시에 “청명한 가을하늘을 이고 있는 단풍든 가을 감나무”의 정겨움은 화가의 뇌리에 깊이 박혀 한국의 시골 풍경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굳혀져 있었다. 더 이상 말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감(나무)은 한국인의 가을 마음과 같다. 감(나무)의 서정성의 백미는 늦가을인데, 그것도 잎새가 다 떨어진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진홍빛 감. 물론, 그것의 배경은 파란 가을 하늘이 제 격이다. 가을내내 울쿼 먹고 홍시는 따먹다가, 남으면 독에 쟁여놓고, 겨울내내 얼려서 퍼먹던 유일한 우리네 겨울의 과일--그것이 감이었다.
그것은 요즈음의 젊은 세대들이 갖지 못한, 아니 가질래야 가질 수도 없는 정서였다. 외래종의 과일이 판을 치면서 누가 감을 먹어? 바나나나 먹지. 계절과 과일이 일치하지 않는 요즈음의 세상에 ‘가을과 감’?--이제, 감은 우리의 정서와 기억에서 밀려나간 대표적인 과일이 되었다.
II.
그렇다 하더라도, 오치균의 최근 감 그림을 사유해보자. 2003년 9월, 화가는 ‘감 그림’만 모아 개인전을 한 번 열었다. 그 때의 작품들은 대부분 ‘감이 있는 풍경’들이었다. 예를 들어, 집 앞(뒤)의 감나무, 골목에서 바라본 시골 담장과 감나무, 곶감을 만들려고 처마에 매달아 놓은 풍경 등, 감이 주제였지만 그것은 풍경의 한 부속품 같은 느낌이었다. 당연히, 풍경을 위한 원근의 공간이 깊이감도 가졌었고, 풍경을 바라보는 시점도 갖추었다. 여전히, 오치균 특유의 두터운 임파스토의 물감층들이 화면의 밀도감을 높여 주었다.
이번 전시의 감(나무) 작품은 그동안의 오치균의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사뭇 다른 느낌이 있다. 이것은 분명 ‘감을 그리는’ 스타일이 변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거의 감이 ‘풍경의 감’이었다면 그래서 더욱 ‘서정적’이었던 반면에, 지금의 감은 오히려 ‘관념의 감’에 가깝다. 유화이지만 물씬 동양화의 느낌도 든다. 오치균 답지 않은 웬 동도서기(東道西器)? 아니면 서도동기(西道東器)?
의아스럽지만 그렇게 의아할 일도 아니다. 왜냐하면, 오치균의 대학시절, 그의 미술대학 회화과는 지금처럼 동, 서양화의 구분이 교육적으로 그렇게 심화되지 않았었다. 회화과 학생이면 누구나 동, 서양화의 기본은 갖추고 졸업했다. 때문에, 지금의 화가의 작품에서 동양화의 ‘아우라’가 있다 해도 새삼스러울 일이 아니며, 매우 자연스러운 변화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작품을 들여다보자. 무엇이 동양화의 분위기를 자아내는지.
1) 우선, 캔버스의 조합이 우리의 병풍을 연상시킨다.
물론 서양의 전통에도 두 폭, 세 폭의 제단화, 또는 그것들이 변형된 조합들도 있지만, 단아한 청색의 배경에 제멋대로 뻗은 감나무의 가지와 진홍빛의 감들이 보다 장식적인 ‘병풍그림’의 느낌을 준다.
2) 작품의 화면에서 ‘가상공간’의 깊이가 없어지면서, 오히려 평면의 조건을 즐긴 것 같은 작가의 ‘유희적인’ 태도가 깃들여 있다. 이것은 마치 옛 선비들이 흥과 여기로 즐겨 그리던 ‘매난국죽(梅蘭菊竹)’을 다루듯 그런 세심함과, 그러나 무언가 흥이 있어야 붓이 절로 따라오는 그런 즉흥성 같은 것이 느껴진다.
3) 때문에, 색감보다는 선의 운용이 더욱 두드러진 평면 공간임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어딘가 동양화의 정서를 풍미하는데--예를 들어, 전혀 대칭적이지 않은 멋대로 뻗은 감나무의 가지와 거기에 매달린 감이--마치, 가지의 선을 따라가다 보면 감을 저절로 만나는 것 같은, 즉 선(線)의 기운이 부각된 화면이다. 아마도 화가는 나무가지 그리고 난 후에 감을 그렸을 것이다. 일필휘지(一筆揮之)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상, 난을 치듯 선으로 가지를 운용하고, 거기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기분으로 꽃처럼 감을 찍었다. 매화가지에 매화를 찍듯이.
4) 감과 가지의, 즉 대상의 ‘즉물성’이 두드러지는데 이로 인해 더욱 촉각적인 느낌이 강렬하다. 청색의 배경을 평면처럼 단순하게 처리한 바탕에, 마치 실제의 가지를 화면에 붙인 것 같은 두터운 물감층이 입체감을 형성하면서 내는 효과이다.
이와 같은 요소들이 오치균의 이번 작품에 나타난 변화들이다. ‘감’을 그린 여러 형태들의 그림들이 있지만, 동양화와 서양화의 전통적인 맥락에서의 어느 접점쯤에서, 화가는 그가 구사했던 기존의 ‘재현’의 주관성을 넘어 보다 객관적인 태도로서의 ‘관념적인 감’을 그려냈다. 이것이 오치균의 이번 전시의 성과다.
2011.08.
서양화가
1986 ~ 1988 브루클린공예대학대학원 석사
1976 ~ 1980 서울대학교 회화 학사
충남고등학교
오치균 홈페이지
【서울=뉴시스】유상우 기자 = 서양화가 오치균(55)에게 감은 고향 땅의 그리움이자 추억이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고향집 앞마당에 있던 커다란 감나무는 작가에게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한 일거리였다. 어릴 적 가을은 곧 노동의 계절이었던 셈이다.
"가을이 오면 모든 작물을 수확해 돈과 양식으로 바꿔야 했는데 비교적 손질하기가 수월했던 감 수확은 집안의 노동력이 많을수록 좋았다"며 "특히 아이들의 일거리였다"고 옛 기억을 끄집어냈다.
감잎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할 무렵, 이른 새벽 엄마의 잠 깨우는 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형제들 중 제일 모범생이고 부지런했던 나는 눈을 비비며 팬티 차림으로 바구니를 들고 우리 집에서 가장 멀리 있는 감나무 밑부터 뒤지기 시작해 떨어진 감을 한아름 소쿠리에 주워 왔다"며 "혹시라도 꾸무럭거리다 다른 집 애들이 먼저 감을 주워 갈 때면 몇날며칠 밥상머리에서 엄마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열심히 따고 주워 잘 닦은 감은 어머니와 함께 새벽 첫차를 타고 시장에 나가 팔았다. "시장에서 감을 팔 때면 엄마가 '감 사세요'를 외치고 나도 따라서 '감 사세요'라고 외쳤다. 엄마를 따라 큰소리로 '감 사세요'를 외쳤는데 이상하게도 내 소리는 밖으로 나오지 않아 거의 들리지 않았다"며 웃는다.
오씨는 "당시 시골 생활은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고 털어놓았다. 고향 땅을 벗어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공부에 매달린 이유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 멀리멀리 고향 땅을 벗어나 다른 일로 돈벌이 투쟁할 때, 그때부터는 그 지겨운 고향 땅이 그리움으로 변했다"며 "빨갛게 떨어진 감잎은 그 어느 시보다도 강렬하게 내 귀 속에서 바삭거린다"고 그리워했다.
"그렇게 지겨웠던 감나무와의 투쟁이 아직도 계속됐다면 난 감을 먹지도 않을 테고 감히 사치스럽게 그것을 화폭에 담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에 다양한 시간을 담은 감 작품 10점을 24일부터 선보인다. 2009년부터 올해까지 작업한 4년 만의 신작 '감' 시리즈다. 작품의 풍경 속에 감나무를 종종 담아왔지만 감이 주제가 되는 시리즈는 처음이다.
정겹던 옛 시절이 떠오르게 하는 감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작품 속 붉은 감은 가을을 흠뻑 머금고 있다. 감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역동적이다. 다양한 리듬으로 감기고 뻗어나가는 가지와 불타오르는 것만 같은 감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빛을 발한다.
새벽 동트는 찰나를 만나는 감, 한낮의 햇빛을 머금은 감, 넝쿨 위로 감겨 올라간 감나무 등이 생명체로 제 각각 꿈틀거린다.
first ave
empire statell 1993 /pastel drawing
east village 1993 /pastel drawing
신촌길
세종로/종이 위에 파스텔
무제/캔버스에 아크릴릭 1998
독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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