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19. 18:56ㆍ책 · 펌글 · 자료/인문 · 철학 · 과학
자기계발 신화 '노오력' 혐오와 분노를 낳다
거짓말을 읽어드립니다<1>
2016.06.19.
그럴듯한 거짓말은 언제나 달콤하게 다가와 공기처럼 전염되고 확산된다. 단순히 사실을 왜곡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알아야 할 사실을 의도적으로 은폐하거나 외면하는 방식으로 은밀하게 이루어지곤 한다. 그러한 거짓말은 음식이 되어 식탁에 오르고, 사진으로 눈앞에 제시되거나, 자기계발서라는 이름을 달고 읽어주기를 청한다. 그러니까 먹고, 보고, 읽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에도 널리 퍼진 여러 거짓들이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사유를 가로막고, 삶을 망가지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거짓말을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거짓말을 재생산하는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이 연재는 우리 시대의 음식과, 사진과, 자기계발서가 하는 ‘거짓말’을 읽어내려는 하나의 시도이다.
끊임없는 자기계발이라는 신화는 갑질사회를 낳았다. 자기계발이란 괴물에 맞설 때가 됐다.
자기계발서의 거짓말 읽어드립니다
자기계발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개인에게 요구되어 왔다. 그리고 모두가 알게 모르게 그에 동참해 왔다. 예컨대 우리는 초등교육 시절부터 음악과 구령에 맞추어 집단으로 (국민)체조를 했다. 어느 특정 학교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학교가, 중요한 의식처럼 그것을 제도화 했다. 그렇게 개인은 자연스럽게 국가가 원한다면 언제든 동원될 수 있는 신체를 계발해 왔다. 일제강점기 때도 조선의 학생들은 전쟁에 적합한 신체를 가진 국민이 되기 위해 운동장에서 체조를 했다.
특히 근대의 시작은 개인에게 자기계발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이 시기에는 카네기, 에디슨, 헬렌 켈러 등 우리가 아는 많은 위인들이 번역되었다. 그들이 보인 근면과 성실, 절제는 특히 청년 세대가 반드시 지녀야 할 덕목으로 권장되었다. 그런가 하면 잡지를 구독하면 ‘13덕표’나 ‘일기표’ 같은 것이 부록으로 따라오기도 했다. 1월 잡지에 다이어리나 플래너 같은 것이 붙어 나오듯, 그때도 그랬다. 개인에게 시간을 주관할 자격을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근대 시기에 이르러 개인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검열하고 관리하는 새로운 주체가 되어야만 했다. 자신을 규율화 하는 것, 그것이 곧 자기계발이며 또한 근대인이 되는 길이었다.
개인에게 계발할 자유가 있나
그런데 자기계발은 언제부터인가 권장을 넘어 생존의 문제로 모든 개인에게 닿기 시작했다. 이른바 “계발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자극적인 자기계발의 구호가 난무한다. 아침형 인간이 되어라, 아프니까 청춘이다, 부자 아빠가 되어야 한다, 미워할 용기를 가져라, 이러한 수사들이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무한한 자기계발의 방법론이 존재하고 개인은 그 주체로서 자율성을 획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계발의 자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얼마나 더 자신을 엄격하게 규율화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최대의 효율을 이끌어 내는가, 하는 서사 범위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한 물결에 휩쓸려, 개인은 마치 토너먼트와도 같은 경쟁의 장에 내몰린다. 거기에서 승리하거나 살아남기 위해 타인보다 더 ‘노오력’하기를 강요 받고, 또한 선택한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비주체적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자기계발의 전선은 살아남기 위한 개인들의 몸부림으로 언제나 치열하다. 누군가에게는 생존만으로도 버거운 사투의 현장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괴물’이 되어야 한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해지거나 위와 아래로 자격의 선을 긋는 버릇이 생긴다. 위로는 갑이 있고 아래로는 병이 있는 갑을사회에 익숙하다. 그런 것은 계발이나 진보가 아니며 오히려 퇴보하는 길이다. ‘땅콩 회항’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다양한 형태의 갑질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을 위시한 ‘힐링 파티’가 벌어졌던 것은, 그러한 개인들에게 위로가 필요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멘토를 자청한 이들은 특히 청년 세대를 대상으로 삼았다. 어디를 가든 멘토를 자처하는 이들이 넘쳐났다. 특히 청춘 콘서트, 청춘 열차, 청춘 캠프 등 청춘이라는 단어가 이처럼 관심을 받은 때가 있었나 싶을 만큼 성황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원래 힘들고 아픈 거야, 나처럼 노력하면 아프지 않을 수 있으니 힘내, 하는 식으로 말했다. 놀랍게도, 2010년의 청춘들은 고작 그것에 위로 받았다. 그동안 누구도 눈물을 닦아 준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프냐고 물어보는 이도, 아픈 것을 알아주는 이도 없었다.
분노와 혐오의 시대 열리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가진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혹은 그러한 구조에 순응하기를 강요했다. 예컨대 멘토의 표상으로 떠오른 김난도는 중소기업의 현실이 열악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오로지 ‘개인의 선택’ 문제로 단순화 했다. “백수로 지내면서 간만 보는 것과 열악한 회사라도 들어가는 것 중 무엇이 덜 나쁜가” 하는 식이었다. 동시에 청춘을 특별한 존재로 규정해 나갔다. 꿈, 열정, 도전, 이러한 단어들이 마치 청춘의 전유물처럼 제시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예찬은 듣는 대상을 잠시 취하게 할 뿐 그 어떤 해결 방법이 되지 못한다. 마치 ‘환각제’를 먹여 다시 전쟁터로 내모는 일과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한동안 유행한 힐링 파티에서 지급된 것은 치료를 위한 약이 아니라 화려하게 포장된 환각제였다.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한 자기계발의 거짓말은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개인들을 자신을 둘러싼 구조와 마주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이 사회의 시스템이나 구조는 잘못되지 않았고 모든 문제는 승리하거나 살아남지 못하는 나약한 개인에게 있다는 자기계발의 논리, 이것은 패배한 다수의 개인에게 끊임없이 증식되는 자기혐오감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특히 문제적이다.
힐링을 대신해 ‘분노’와 ‘혐오’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속한 공간(한국)을 지옥에 비유하는 ‘헬조선’이나 타인이나 스스로에게 벌레를 뜻하는 접미사를 더하는 ‘-충’이라는 신조어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혐오의 시대’ 역시 느닷없이 개막되지 않았다. 꾸준히 임계를 향해 치닫던 감정들이 결국 최근에 이르러 그 실체를 드러냈을 뿐이다.
힐링이라는 단어의 소멸 이후, 개인들은 분노와 혐오의 감정을 놀랄 만큼 순차적으로 드러냈다. 더 섬세하게 살펴보자면 ‘N포 세대’로 대변되는 허무와 고독이 있었고, ‘노오력’이나 ‘헬조선’이라는 비아냥과 냉소도 있었다. 그것은 지역, 세대, 성별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발산되는 한편, 정확히 표적을 향하기도 했다.
유명 패션디자이너는 직원들에게 열정 페이를 강요해왔다는 이유로 사과문을 작성해야 했고, 유력 정치인은 의원 사무실에서 일할 무급 인턴 구인 공고를 내고는 지탄 받았고, 잘 알려진 ‘총각 CEO’는 수습 기간의 직원들에게 최저시급을 주는 것이 아깝다고 했다가 SNS에서 치욕을 당했다. 사실 그들은 황당했을 것이다. 그동안 아무 문제없이 해왔던 일이고 그래도 사람들은 박수를 쳐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해도 되기에 해온 일이었다.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과 마주하기
그럴듯한 거짓말은 언제나 달콤하게 다가와 공기처럼 전염되고 확산된다. 나중에는 모두가 그에 영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그렇게 개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괴물’이 된다. 자기계발의 거짓말이 만들어 낸, 정확히 표현하자면 우리 사회가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고 은폐하는 동안 탄생한 괴물은 우리 주변에 있다. 이 연재는 그러한 괴물과 마주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다.
얼마 전 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청년이 사고로 숨졌다. 누군가는 그가 매뉴얼을 잘 지키기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오히려 그에게 책임을 물으려 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붙은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한 장의 포스트잇은 그러한 거짓말에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우리 시대 개인의 자기 고백이며 선언이다. 그리고 괴물에서 인간으로 다시 되돌아가고자 하는 개인의 몸짓이고 몸부림이다. 우리는 그렇게 내 안의 괴물과 마주하고, 싸워나가야 한다. 이제는 그럴 때가 되었다.
김민섭 문화평론가
공동기획: 한국일보ㆍ인문학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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