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월룡 - 우리가 잃어버린 화가 (1)

2016. 3. 31. 11:44미술/ 러시아 회화 &






 (서울=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변월룡의 차남 펜 세르게이(왼쪽), 장녀 펜 올가 씨가 2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변월룡의 차남 펜 세르게이(왼쪽), 장녀 펜 올가 씨가 2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展示에 도움을 주신 遺族 펜 세르게이님, 펜 올가님, 문영대 박사님,

러시아 예술아카데미 관계자, 러시아 미술관 관계자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국립현대미술관장 바르토메우 마리 -

 


 






여태 전시회를 다녔어도 제가 도록이란 걸 사본 역사가 없었는데 어제 처음으로 사봤습니다.^^*


사진을 맘껏 찍을 수 있게 해주길래 하도 신기해서 물어봤어요. 

"이게 웬일이래요?"  ─ 유가족이 허용해줬답니다.

그리고 얼핏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

유가족이 지방 순회전시를 더 했으면 한다는......

정말로 그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도슨트도 말합디만 아주 '진귀한 작품' '전시회'입니다.

거기에다 변월룡 선생의 인생유전을 생각하니 눈물이 다 글썽여집디다.

유가족 입장에서도 말할 수 없이 감개무량해 할 것입니다.

회고전을 러시아에서도 북한에서도 열어본 적이 없다잖아요.

(생전에 개인전이야 구 소련에서 많이 열었겠지만요(?).)

이번에 덕수궁미술관에서의 전시가  매우 잘 되어서,

유가족 위로도 되고, 대한민국 面도 서고......

매우 흡족한 전시회였습니다. 그것도 오늘 꽁짜로다. ^^*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관람료 13,000원을 꼼짝없이 냈는데 여기선 꽁짜.

마지막 수요일, 문화의 날입니다. 은근히 도움이 많이 됩니다.





 마침 문지기 교대식을 합디다. 이제보니 안켠에서 나오더군요.




 



 





전시실이 모두 네 개입니다.

전시물이 많습니다. 유족들이 보관하고 있던 작품들 같은데......




 



 






백년의 신화 : 한국근대미술 거장전

변월룡 1916~1990


변월룡은 연해주에서 태어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그 곳에서 화가이자 교육자로 일생을 보낸 고려인이다. 그의 삶과 예술은 일제강점, 분단, 전쟁, 이념 대립 등 한국 근현대사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혁명, 제2차 세계대전, 전체주의,냉전, 개혁과 개방을 겪은 러시아 근현대사를 관통한다.

그는 국권을 상실한 조국의 국경 밖에서 태어나 이주의 땅에도 보호받지 못하는 소수자 였지만, 인간의 존엄에 대한 믿음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운명은 인간의 의자와 상반되게 삶을 밀고 가는 불가항력적인 힘이지만, 변월룡은 이에 굴하지 않고 역사의 증인이자 경제에 선자로서 세상과 자기 내면을 향한 시선을 화폭에 담았다.

변월룡에 대한 연구는 이제 시작이다. 지금 여기에 변월룡이란 낯선 화가를 소환하는 일은 서양과 서양을 지향한 근대일본을 기준 삼아 한국 근대미술의 후진성을 비난하거나, 혹은 디아스포라를 포용하여 서양의 기준에 부합하는 선진성을 우리 속에서 발견해내려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변월룡의 첫 회고전인 이번 전시가 작가의 삶과 에술은 물론 한국 근현대미술에 내포된 다층의 컨텍스트를 발견하고 또 새로이 생성하는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북한 미술이 토대를 구축하는데 귀한 자양분이 되었던 그의 존재는, 통일을 실현해야 하는 현세대에 역사적 상상력과 책임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킬 것이다.





 

 


  

 

 

 

 

 

 

 


1. 레닌그라드 파노라마

 

 

변월룡이 졸업하고 교수를 지낸 ‘일리야 레핀레닌그라드 회화, 조각, 건축 아케디미’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1764년 설립) 러시아 최고의 미술교육기관으로, 스탈린 통치 시절 (1922~53)에는 시각예술분야에서 이뤄진 엄격한 중앙통제의 모체였다.

냉전의 종말을 보지못하고 생을 마감한 변월룡의 예술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서는, 그 토대가 된 러시아 아카데미즘과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예술가들에게 당성, 대중성, 이념성이라는 획일적인 목표를 제시하면서 지도자와 노동자, 조국의 발전, 혇명적 투쟁과 승리를 찬미할 것을 요구했다. 아카데미 교수였던 변월룡은 이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냉전을 거치면서 고착된 소련 미술에 대한 정치적, 미학적 선입견을 버리고 그의 작품을 감상한다면,형식과 내용, 진실과 거짓, 개인과 집단, 기억과 망각, 현실과 이상 등이 복잡하게 얽힌 복수의 의미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견실한 수련이 토대가 된 뛰어난 기교와 표현력, 그리고 진정성에 진한 감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조선의 모내기> 습작



 

<조선의 모내기>  1955년  115 x 200 cm  캔버스에 유채


 

 

 

 

 

 

 

<해방>을 그리기 위한 습작


 

 


 

 


 

 

<우리시대의 사람들>


 


 

<레닌께서 우리마을에 오셨다>

 



 



 

<6.25 전쟁의 비극>

 



 

<조선분단의 비극>

 


 


 

<스몰니를 향하여>

 



 

<베트남>

 


 

 

<극동공장 돌격작업반원 샤벨라 마쉬코브스키의 초상>


 


<세바스티아노브의 초상>

 



<철공 솔로브요브의 초상>

 







 


찍어온 작품 사진이 많아서 게시물을 둘이나 셋으로 나눠야겠네요.

도록을 사왔으니까 천천히 시간을 두고 설명을 붙이겠습니다.





 



 

 

 

 

 

 

 

2.  영혼을 담은 초상

 

 

변월룡은 공공장소에서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전제로 하는 공식미술과는 별도로 자기 자신만의 창작영역을 구축했다.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초상화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초상화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공적으로 주문받은 초상화 이외에 아카데미의 동료교수와 제자,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학술원 멤버, 가족과 이웃 등 가까운 사람들의 내밀한 관계를 담은 초상화를 다수 남겼다.

그려진 인물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과 관심, 존경이 베어있는 이들 초상화에는 소수로 구성된 아카데미 사회에대한 강한 소속감을 였볼 수 있다. 때로는 아카데미즘이 추구하는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때로는 그의 초상화는 거칠고 생생한 몇 번의 붓질만으로 마무리된 그의 초상화는 대상의 개성을 잡아내는 뛰어난 직관과 관찰력, 이를 캔버스에 옮기는 대담함과 정확함, 그리고 놀랄 만큼 풍부한 색채가 인상적이다.

 

 

 

 

 



 

<자화상> 1963년  75 x 63cm  

수많은 초상화를 남긴 변월룡이지만 자신의 자화상은 미완의 이 작품이 유일하다.

 


 


 






 




 





<미술사학자 미하일 알파토프의 초상>                                                                                                      <화가 표트르포민의 초상>

 

 


 

 

<화가 알렉산드르 푸시닌의 초상>

 


 


 

<화가 올레그 예레메예프 초상>

 


 


 

<화가 표트르 벨로소프 초상>

 


 


 

<조각가 보리스 플료킨의 초상>

 


 


 

<예맨인 학생의 초상>

 


 


 

<토고인 제자 델라케나의 초상>


 



 

<발레리나 이리나 콜파코바의 초상>

 


 


 

<외과의사 표도르 우글로브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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