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 4. 23:26ㆍ미술/ 러시아 회화 &
파벨 미하일로비치 트레티야코프는 모스크바의 상인이자 산업자본가였다. 러시아 회화만을 모은 미술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구입한 소장품을 모스크바시에 기증하여 시립 미술관인「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을 설립한다. 그는 늘 ‘러시아 회화를 총체적으로 개관하는데 필요한 것인가’를 염두에 두면서 작품을 구매했다. 즉 그는 구입한 컬렉션은 당연히 사유물이어서는 안되며 러시아 민중에 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860년대부터 동생 세르게이와 함께 수집한 1287점의 러시아 회화작품 등을 1892년 기증해서 설립한 ‘파벨과 세르게이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최초 명칭)은 기증자의 뜻에 따라 무료관람 방침을 정했다.
미술관 개관 이후부터 사망하던 해까지 트레티야코프는 이 미술관의 종신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초기 컬렉션의 향방을 결정 짓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시의회에서 할당받은예산 외에 사재를 들여 꾸준히 컬렉션을 늘렸다. 러시아혁명 직후인 1918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은 국립미술관으로 격상되어 소비에트 러시아 정부의 미술품 문화재, 국유화 집중화 작업에 따라 급격히 몸집이 불렸다. 2006년 현재 5만여점의 현대미술품을 포함하여 13만여 점의 미술작품을 갖춘 초대형 컬렉션으로 성장했다.
트레티야코프가 이처럼 러시아 미술사에 큰 획을 긋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단순히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남다른 예술적 안목과 포용성, 당대 주요 예술가들과의 돈독한 인맥관계로 깊이 있고 체계적인 컬렉션 활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뿐 아니라 컬렉션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작가의 작품이라면 비평가들의 낮은 평가나 자신의 기호와도 상관 없이 적극적으로 구입했다. 19세기 후반 러시아미술사의 핵심유파인 이동파를 트레티야코프 파라고 부르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화가들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했다. 그의 이러한 정확한 판단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글 출처. 이주헌,《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미술》에서 발췌함.
언제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엘 가게 되면 이 양반한테 보드카 한잔 붜 드리고 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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