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월룡 - 우리가 잃어버린 화가 (3)

2016. 3. 31. 19:12미술/ 러시아 회화 &

 

 

 

3.  평양 기행

 

 

1953년 7월 변월룡은 소련 문화성의 명령에 따라 북한에 파견되어, 러시아 예술아카데미 시스템과 교과과정을 모범삼아 전쟁으로 파괴된 평양미술대학을 재건하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전수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당시만 해도 미술창작에 대한 김일성의 구체적인 지침이나 민족적 형식의 교시가 없었기 때문에 북한의 예술가들은 소련의 문예이론과 실천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고, 변월룡은 그 매개였다.

15개월 남짓 북한에 머무르는 동안 그는 자신의 업무를 충실히 이행하면서, 해방 이후 우리에게 오랫동안 잊혀진 북한의 예술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했고, 처음으로 밝은 조국 산천의 풍경과 북한 주민들의 소박한 삶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그의 존재는 분단 후 반쪽이 되어버린 현대 미술사에 귀한 연결고리를 제공 한다.

귀국 후 변월룡은 정치적인 이유로 북한으로부터 입국을 금지 당한다. 북한을 주제로한 에칭 대부분은 레닌그라드로 돌아온 변월룡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조국을 그리워하며 제작한 것이다.

 

 

 

 

 

 

 

 



 



 



 



 



 



 



 



 



 




 



 


 



 



 




 

 

 



 



 



 



 




 



 



 



 



 



 



 



 




 

 

4. 디아스포라의 풍경

 

변월룡의 풍경화는 초상화에 비해 덜 주목 받았지만, 작가의 개성과 미묘한 내면세계를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장르다. 전쟁의 공포와 비극을 극복하고 다시 일상을 즐기게된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삶, 화려한 도시의 풍경, 교회나 성채 등 러시아의 전통적인 건축물, 설경, 생명력 가득한 광활한 초원과 강 등을 그린 풍경화는 소련인이자 고려인인 작가가 지닌 이중의 정체성을 내포하고 있다.

당시 풍경화는 영혼의 언어를 갖지 않고 이데올로기적으로 모호하다는 이유로 중시되지 않았지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조국의 풍경과 근대공업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풍경은 허용되었다. 레닌그라드에서 멀리 떨어진 극동 지역을 자주 찾은 변월룡의 풍경화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보인다.

북한을 다녀온 후 그는 특히 구불하게 뒤틀린 소나무를 주로 그렸다.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재현된 그의 소나무 이미지에는 디아스포라의 향수와 내적긴장, 고독 등 사적이고 내밀한 정성적 울림이 배어있다. 그래서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비현실적인 심리적 풍경을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