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 詩

2015. 11. 11. 10:18詩.

 

 

 

이외수의 詩는 처음 읽어봅니다. 형식은 갖추었으되 ‘詩人의 詩’이라는 프로페셔널한 냄새가 전혀 안 나는군요. 일부러 또는 관심이 엷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 어쩌면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에게도 꺼내보이고 싶지 않은, 들춰보고 싶지 않은, 떠올리기만 해도 도망가고 싶은, 그런 부끄러운 젊은 날의 과거가 몇 가지씩 있잖아요? (여러분은 없습니까? 저는 있습니다.) 시를 보니까 이외수에게도 있네요. 자꾸 회억(悔憶)하게 된다면 트라우마라 할 수 있겠죠. / 그건 때수건으로 박박 문질러도, 칼로 살쩜을 떼어내도 지워지지가 않아요. 얼굴이나 몸에 새긴 낙인(烙印)이나 문신이라면 수술해서 없앤다고나 하지, 마음 한복판에 아로새겨진 그것은 남의 손으로는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극복해야 할 일입니다. 말하자면 한 단계 올라선 求道구도와 解脫만이 치료방법인데, / 씻고, 갈고, 닦고, 참회하고, 속죄하고 할 것입니다만 그러나 아무리 노력을 하고, 변명을 하고, 최면을 걸어봐도 그마져 위선이고 은폐· 엄폐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으니 어쩝니까. 내 존재감 · 존중감도 내려놓고 끈을 놔버려야 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 사랑도, 그리움도, 관계도, 소통도, 다 내던져버리고 만다면 그건 인생이랄 것도 아니잖습니까? 이외수의 詩를 감상할 때에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서 읽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p.s 저는 텔레파시를 믿습니다. 念力(영혼의 힘)이 강한 사람끼리라면 더욱 잘 통하겠지요.

 

 

 

 

 

 

 

 

가을의 창문을 열면

                            

가을의 창문을 열면

어디쯤 오고 있을까

세월이 흐를수록

마음도

깊어지는 사람하나

단풍나무 불 붙어

몸살나는 그리움으로 사태질때

뭉게뭉게 개어가는 하늘이 예뻐

한참을 올려다 보니

그 곳에 당신의 얼굴이

환하게 웃고 계십니다

그대 모습

그대 생각에 머물면

난 자꾸 가슴이 뜁니다.

 

 

 

 

 

 

 

 

12월

    
떠도는 그대 영혼 더욱
쓸쓸하라고
눈이 내린다

닫혀 있는 거리
아직 예수님은 돌아오지 않고
종말처럼 날이 저문다

가난한 날에는
그리움도 죄가 되나니
그대 더욱 목메이라고
길이 막힌다

흑백 사진처럼 정지해 있는 시간
누군가 흐느끼고 있다
회개하라 회개라하 회개하라
폭석 속에 하늘이 무너지고 있다
이 한 해의 마지막 언덕길
지워지고 있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울지 말게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날마다 어둠 아래 누워 뒤척이다

아침이 오면,
개똥같은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문을 나서지
바람이 차다고
고단한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거라네
아차 하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망가지기 십상이지
화투판 끗발처럼 어쩌다 좋은 날도
있긴 하겠지만
그거야 그때 뿐이지
어느 날 큰 비가 올지
그 비에 뭐가 무너지고
뭐가 떠내려갈지 누가 알겠나
그래도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지
개똥같은 희망이라도
하나 품고 사는 건 행복한 거야
아무 것도 기다리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불쌍한가

자, 한잔 들게나
되는 게 없다고 이놈의 세상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술에 코 박고 우는 친구야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바람 부는 날에는
바람 부는 쪽으로 흔들리나니
꽃 피는 날이 있다면
어찌 꽃 지는 날이 없으랴

온 세상을 뒤집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밤에도
소망은 하늘로 가지를 뻗어
달빛을 건지리라

더러는 인생에도 겨울이 찾아와
일기장 갈피마다
눈이 내리고
참담한 사랑마저 소식이 두절되더라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침묵으로
침묵으로 깊은 강을 건너가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겨울비 

  
모르겠어
과거로 돌아가는 터널이
어디 있는지
흐린 기억의 벌판 어디쯤
아직도 매장되지 않는 추억의 살점
한 조각 유기 되어 있는지
저물녘 행선지도 없이 떠도는 거리
늑골을 적시며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

 

모르겠어 돌아보면
폐쇄된 시간의 건널목
왜 그대 이름 아직도
날카로운 비수로 박히는지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저녁비가 내리면
시간의 지층이
허물어진다
허물어지는 시간의 지층을
한 겹씩 파내려 가면
먼 중생대 어디쯤
화석으로 남아 있는
내 전생을 만날 수 있을까

 

그 때도 나는
한 줌의 고사리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저무는 바다 쪽으로 흔들리면서
눈물보다 투명한 서정시를
꿈꾸고 있었을까

 

저녁비가 내리면
시간의 지층이
허물어진다
허물어지는 시간의 지층
멀리 있어 그리운 이름일수록
더욱 선명한 화석이 된다  

 

 

 

 



더 깊은 눈물 속으로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비로소 내 가슴에 박혀 있는
모난 돌들이 보인다.
결국 슬프고
외로운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라고
흩날리는 물보라에 날개 적시며
갈매기 한 마리
지워진다.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파도는 목놓아 울부짖는데
시간이 거대한 시체로
백사장에 누워 있다.
부끄럽다
나는 왜 하찮은 일에도
쓰라린 상처를 입고
막다른 골목에서
쓰러져 울고 있었던가.

그만 잊어야겠다.
지나간 날들은 비록 억울하고
비참했지만
이제 뒤돌아보지 말아야겠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저 거대한 바다에는 분명
내가 흘린 눈물도 몇방울
그때의 순순한 아픔 그대로
간직되어 있나니.
이런 날은 견딜 수 없는 몸살로
출렁거리나니.

그만 잊어야겠다.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우리들의 인연은 아직 다 하지 않았는데
죽은 시간이 해체되고 있다.
더 깊은 눈물 속으로
더 깊은 눈물 속으로
그대의 모습도 해체되고 있다.

 

 

 

 


봄날은 간다 

            
부끄러워라
내가 쓰는 글들은
아직 썩어 가는 세상의
방부제가 되지 못하고
내가 흘린 눈물은
아직 고통받는 이들의
진통제가 되지 못하네


돌아보면 오십 평생
파지만 가득하고
아뿔사
또 한 해
어느 새 유채꽃 한 바지게 짊어지고
저기 언덕 너머로 사라지는 봄날이여

 

 

 

 

 

봄밤의 회상 

  
밤 새도록 산문시 같은 빗소리를
한 페이지씩 넘기다가 새벽녘에
문득 봄이 떠나가고 있음을 깨달았네


내 생애 언제 한번
꿀벌들 날개짓소리 어지러운 햇빛 아래서
함박웃음 가득 베어물고
기념사진 한 장이라도 찍어 본 적이 있었던가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의 풍경들은 언제나 흐림
젊은날 만개한 벚꽃같이 눈부시던 사랑도 끝내는
종식되고 말았네


모든 기다림 끝에 푸르른 산들이 허물어지고
온 세상을 절망으로 범람하는 황사바람
그래도 나는 언제나 펄럭거리고 있었네


이제는 이마 위로 탄식처럼 깊어지는 주름살
한 사발 막걸리에도 휘청거리는 내리막
어허,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네


별로 기대할 추억조차 없는 나날 속에서
올해도 속절없이 봄은 떠나가는데
무슨 이유로 아직도 나는
밤새도록 혼자 펄럭거리고 있는지를

 

 

 

 



설야

        
사람들은 믿지 않으리
내가 홀로 깊은 밤에 시를 쓰며
눈이 내린다는 말 한마디

어디선가
나귀등에 몽상의 봇짐을 싣고
나그네 하나 떠나가는지
방울소리
들리는데
창을 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함박눈만 쌓여라
숨죽인 새벽 두 시

생각나느니 그리운 이여
나는 무슨 이유로
전생의 어느 호젓한 길섶에
그대를 두고 떠나왔던가

오늘밤엔 기다리며 기다리며
간직해 둔 그대 말씀
자욱한 눈송이로 내리는데
이제 사람들은 믿지 않으리
내가 홀로 깊은 밤에 시를 쓰면
울고 싶다는 말 한마디
이미 세상은 내게서 등을 돌리고
살아온 한 생애가 부질없구나

하지만 이 시간 누구든 홀로
깨어있음으로 소중한 이여
보라 그대 외롭고 그립다던 나날 속에
저리도 자욱히 내리는 눈
아무도 걷지 않은 순백의 길 하나
그대 전생까지 닿아 있음을

 

 

 

 



외로운 세상  

       
힘들고 눈물겨운 세상
나는 오늘도 방황 하나로 저물녘에 닿았다
거짓말처럼 나는 혼자였다
만날사람이 없었다
보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 사람만 그리워졌다
사람들속에서 걷고 이야기하고 작별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코 섞여지지 않았다
그것을 잘 알면서도 나는 왜 자꾸만
사람이 그립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결국
내가 더 사랑한다고 느낄 때
외로움을 느낀다

 

 

 

 



함께 있는 때 

        
세상에 神의 사랑 가득한 줄은
풀을 보고 알 것인가
꽃을 보고 알 것인가

눈을 감아라 보이리니
척박한 땅에 자라난
그대 스스로 한 그루 나무
실낱같은 뿌리에
또 뿌리의 끝

하나님의 눈은 보이지 않고
다만 존재할 뿐
사람이여
정답다 우리
함께 있는 때

 

 

 

 


6월

   
바람 부는 날은 백양나무 숲으로 가면 청명한 날에도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귀를 막아도 들립니다
저무는 서쪽 하늘 걸음마다 주름살이 깊어가는
지천명 내 인생은 아직도 공사 중입니다
보행에 불편을 드리지는 않았는지요
오래 전부터 그대에게 엽서를 씁니다
서랍을 열어도 온 천지에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한평생 그리움은 불치병입니다

 

 

 

 


가을빛

 
밥이 보다 요긴했던 시대
밥 때문에 상처받던 시대
사랑도 밥 앞에서는
맥 못 쓰던
그런 날에도.
흰쌀밥으로만 보이던
원고지 빈 칸
뜯어먹으며 쓴 말
  
밤마다 푸른 잉크로
살아온 날만큼
사랑이라 적으면
눈시울 젖은 채로 죽고 싶어라

 

 

 

 


걸인의 노래 

    
삶은 계란
반으로 잘랐더니
그 속에
보름달이
두 개나 숨어 있었네
세상이 이토록 눈부신 뜻
내장만 비우고도 알 수 있는 일

 

 

 

 


기다림

   
어느 날은 속삭이듯
배꽃나무 그늘로
스미고 싶다던 그대여.
스며 그에게로
가닿을 수 있다면.
터진 꽃망울의 속살로
피어날 수 있다면.
한 꽃나무에서 다른 꽃나무로
흐를 수만 있다면

 

 

 

 





안개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그가 말했다.
수은등 밑에 서성이는
안개는
더욱 슬프다고
미농지처럼 구겨져
울고 있었다.
젖은 기적 소리가
멀리서 왔다.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인간은 누구나 소유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대상을 완전무결한
자기 소유로 삼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요

아예 그것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내 꺼는 없어, 라는
말을 대부분이 진리처럼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오늘 제가 어떤 대상이든지
영원한 내 꺼로 만드는
비결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그 대상이 그대가 존재하는 현실
속에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세요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순간 그 대상은
영원한 내 꺼로 등재됩니다

비록 그것이 언젠가는 사라져버린다
하더라도 이미 그것은 그대의
영혼 속에 함유되어 있습니다

다시 새로운 한 날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많은 것들을 소유하는 삶보다
많은 것들에 함유되는
삶이 되시기를 빌겠습니다

 

 

 

 


노을 

     
허공에 새 한 마리
그려 넣으면
남은 여백 모두가 하늘이어라
너무 쓸쓸하여
점하나를 찍노니
세상사는 이치가
한 점안에 있구나.

안개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그가 말했다.
수은등 밑에 서성이는
안개는
더욱 슬프다고
미농지처럼 구겨져
울고 있었다.

 

 

 

 





이 세상에 저물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누군가가 그림자 지는 풍경 속에
배 한 척을 띄우고
복받치는 울음을 삼키며
뼈 가루를 뿌리고 있다

살아 있는 날들은
무엇을 증오하고 무엇을 사랑하랴


나도 언젠가는 서산머리 불타는 놀 속에
영혼을 눕히리니
가슴에 못다한 말들이 남아 있어
더러는 저녁 강에 잘디잔 물 비늘로
되살아나서
안타까이 그대 이름 불러도
알지 못하리


걸음마다 이별이 기다리고
이별 끝에 저 하늘도 놀이 지나니
이 세상에 저물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만추

      
영혼이 없는 육체를 보았습니까.
그는 영혼을 호주머니 속에 넣어둡니다.


마른 풀씨 처럼
불을 붙이면
연기도 없이 지워질 몸은,
차곡차곡 접어서
서랍 속 흰 빨래 옆에 가지런히 놓아둡니다.


가끔은 주머니를 털고
술잔 속에
담배연기 속에
우리들 손등 위에 가만히
그의 영혼을 옮겨 놓습니다.


그리고는 말없이 서랍 속으로 들어가
이 세상과 분리됩니다.
우리가 그를 만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 영혼이 죽은 채로 술병 속에
썩고 있을 때
잠들어 이대로 죽고 싶다
울고 있을 때
그대 무심히 초겨울 바람 속을 걸어와
별이 되었다

오늘은 서울에 찾아와 하늘을 보니
하늘에는 자욱한 문명의 먼지
내 별이 교신하는 소리 들리지 않고
나는 다만 마음에 점 하나만 찍어 두노니
어느 날 하늘 맑은 땅이 있어
문득 하늘을 보면
그 점도 별이 되어 빛날 것이다

 

 

 

 


봄눈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뜨고요
영혼들만
새벽 안개등으로 빛나는 날
샘밭에 가면
강물처럼 흐르는 축축한
혼들의 행렬이 보이지요
안개는 슬픈 사람들의 넋이야
배추밭 뚝에서 젖은 채
흐느끼는 그대를
만나는 날이 많았습니다.

 

 

 

 



수변 
    

벽 속에도
벽 밖에도
담장에도 굴뚝에도
달마만 보였다.
구들장에도 서까래에도
하늘에도 땅에도
그리운 별은 또 어떻고.
버혀도 버혀도
달마는
비처럼 내렸다.

話頭를 놓았다.
달마도 벽도
간 곳이 없다.

 

 

 

 


여름 

   
샘밭에 가면
남루한 옷차림의
노을이,
남루한 사랑이
펼쳐진다. 공복인 그대가
어루만지던 원고지의
빈칸처럼.
그리움도 사랑도 시든 지
오래.
옛사랑은 노래가 되지 않는다.

 

 

 

 



연꽃 

   
흐린 세상을 욕하지 마라

진흙탕에 온 가슴을
적시면서
대낮에도 밝아 있는
저 등불 하나

 

 

 

 


초저녁 강가에서

   
헤어진 사랑
땅에서는 바위틈에 피어나는
한 무더기 꽃
하늘에서는 달이 되고 별이 되고
또 더러는 내 소중한 이의 귀밑머리
거기에 무심히 닿는 바람소리

 

 

 

 



풀꽃

    
세상길 오다가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도 법문 같은 개소리
몇 마디쯤 던질 줄은 알지만
낯선 시골길
한가로이 걷다 만나는 풀꽃 한 송이
너만 보면 절로 말문이 막혀 버린다
그렇다면 내 공부는 아직도 멀었다는 뜻

 

 

 

 


한세상 산다는 것 

      
한세상 산다는 것도
물에 비친 뜬구름 같도다

가슴이 있는 자
부디 그 가슴에
빗장을 채우지 말라

살아있을 때는 모름지기
연약한 풀꽃 하나라도
못 견디게 사랑하고 볼 일이다

 

 

 

 


강이 흐르리

      
이승은 언제나 쓰라린 겨울이어라
바람에 베이는 살갗
홀로 걷는 꿈이어라

다가오는 겨울에는 아름답다
그대 기다린 뜻도

우리가 전생으로 돌아가는 마음 하나로
아무도 없는 한적한 길
눈을 맞으며 걸으리니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마다
겨울이 끝나는 봄녘 햇빛이 되고
오스스 떨며 나서는 거미의 여린 실낱
맺힌 이슬이 되고
그 이슬에 비치는 민들레가 되리라

살아있어 소생하는 모든 것에도
죽어서 멎어 있는 모든 것에도
우리가 불어 넣은 말 한 마디

사랑한다고
비로소 얼음이 풀리면서
건너가는 나룻배
저승에서 이승으로 강이 흐르리

 

 

 

 




  
버리고 일어서라.
시간의 감옥
눈 먼 등대 아래서
살해당한 바다곁에서
누군가
진눈깨비에 뼈를 적시며
울고 있지만
아무리 깊은 어둠
부러진 날개
참혹하여도
버리고 일어서라.

버리고 일어서라.

이 세상 모든 길들은
내게서 떠나가는 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게로 돌아오는 자를 위해서
영원토록
잠들지 않나니... 

 

 

 

   
여름 엽서

    
오늘 같은 날은
문득 사는 일이 별스럽지 않구나
우리는 까닭도 없이
싸우고만 살아왔네
그 동안 하늘 가득 별들이 깔리고
물소리 저만 혼자 자욱한 밤
깊이 생가지 앓아도 나는
외롭거니 그믐밤에는 더욱 외롭거니
우리가 비록 물 마른 개울가에
달맞이꽃으로 혼자 피어도
사실은 혼자이지 않았음을
오늘 같은 날은 알겠구나

낮잠에서 깨어나
그대 엽서 한 장을 나는 읽노라
사랑이란
저울로도 자로도 잴 수 없는
손바닥만한 엽서 한 장
그 속에 보고 싶다는
말 한 마디
말 한 마디만으로도
내 뼛속 가득
떠오르는 해

 

 

 

 


조각잠

      
겨울 강바람이
산발치로
산길 몇 개를 틀어 올리면.
사람이 그리워
내려오는
산길로 들자.
무엇을 더 끊어야 하리.
세상 밖에 나와서
세상을 보는
저 깊은
적멸.

 

 

 

 


흐린 세상 건너기

        
비는 예감을 동반한다.

오늘쯤은 그대를
거리에서라도 우연히
만날는지 모른다는 예감.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엽서 한 장쯤은
받을지 모른다는 예감.

그리운 사람은 그리워하기 때문에
더욱 그리워진다는
사실을 비는 알게 한다.

이것은 낭만이 아니라 아픔이다.

 

 

 

 

 

Ernesto Cortazar

- 1940년 멕시코의 유명한 음악가 집안 태생으로 18세부터 작곡가로 활동
- 전세계 25개국 이상에서 연주활동을 벌이는 최고의 피아니스트
- MP3.com 최고의 아티스트로 최고의 다운로드(800만) 및 최고 수입(30만불) 기록 보유
- MP3.com에 17개 국어로 된 4개의 사이트 보유
- 500편이 넘는 영화음악과 25편의 드라마 음악을 작곡하여 30여장의 앨범 발표
- 최우수 라틴 아메리카 영화음악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