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30. 11:46ㆍ詩.
치마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 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 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문정희(文貞姬,, 1947~ 전남 보성)
동국대 국문과 학사/석사, 서울여대 문학박사. 동국대 고려대 교수 역임.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시인 등단. 진명여고 재학시절에 펴 낸 첫시집 <꽃숨> 이후 많은 시집 및 수필집 발간.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동국문학상 천상병문학상 등 수상.
팬티 - 문정희의 '치마'를 읽다가 -
임 보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신전
남자들은 황홀한 밀교의 광신들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
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
그 남성 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가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
천 번의 경배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곤욕이 무슨 소용이리
때가 되면 목숨을 걸고 모천으로 기어오르는 연어들처럼
남자들도 그들이 태어났던 모천의 성지를 찾아
때가 되면 밤마다 깃발을 세우고 순교를 꿈꾼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 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하던가!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보라
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 봐
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
남자들의 팬티를!
임 보(본명 姜洪基, 1940~전남 순천)
서울대 문리대 국문학과 졸업. 성균관대 문학박사. 충북대 국문과 교수 역임. 1962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시인 등단. 1974년 첫시집 <임보의 시들> 이후 2011년 <눈부신 귀향> 등 14권의 시집 및 많은 동인지와 시론집 펴냄. 필명 임보(林步)는 프랑스
(((( 寸評 ))))
문정희 시보다 임보의 시에 살짝 점수를 더 얹어줍니다.
1) <치마>에서의 ‘관광객’이나
2) <팬티>에서,
‘갯벌의 궁전’ <- 갯벌은 참 적절한 표현인데, 갯벌의 ‘궁전’이라니까 좀 어색하고,
‘남성 금지 구역’이란 표현도 시어로서는 너무 나이브하지 않나......
그리고 <팬티> 끝 부분은 이렇게 바꾸는 게 낫겠습니다.
보라
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 봐
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 팬티!
장난기가 앞서다보니 급히 쓰느라 그랬을 겁니다.
암튼, 두 분의 끼와, 우정과, 文才가 부럽습니다.
둘 다 100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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