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

2015. 11. 8. 17:13산행기 & 국내여행/여행정보 & 여행기 펌.

 

 

 

 

 

 

전국에 50개가 넘는 국립·도립·군립 산악공원 가운데 청량산(淸凉山·870m)만큼 얘깃거리가 많은 산은 드물 것이다. 통일신라 때 김생과 고운 최치원이 수학하고,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70여 일간이나 머물렀으며, 조선 때는 퇴계 이황을 비롯해 문사들이 지냈던 곳이다. 특히 퇴계는 청량산의 아름다움이 속인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걱정했을 만큼 청량산을 아끼어 스스로 청량산인(淸凉山人)이라 부르기도 했다. 수많은 문사가 청량산을 탐승하며 쓴 유람기만 해도 100여 편에 이르며 시 또한 600수가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월간산]축융산성에서 청량산을 바라본다. 장인봉(가장 높은 봉)에서 오른쪽으로 기암괴봉이 연이어지면서 산수화 같은 풍광을 자아낸다.
[월간산]축융산성에서 청량산을 바라본다. 장인봉(가장 높은 봉)에서 오른쪽으로 기암괴봉이 연이어지면서 산수화 같은 풍광을 자아낸다.

 

종교도 다양하다. 문수보살의 상주처(常住處)였다는 중국의 청량산을 이름삼은 이 산은 고려 때 암자가 27개나 들어서 있을 만큼 불가의 산이었고, 조선 때는 퇴계를 비롯해 수많은 유학자들이 기거하며 수학했던 유학의 성지였으며, 근세에는 토속신앙의 메카였다.

이렇게 청량산에 많은 얘기와 많은 종교·문화가 깃들 수 있었던 것은 신비감 넘치는 산세에서 비롯됐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게다. 6·6봉이라 불리는 12개 암봉 하나하나 신비로우면서도 독특한 형상으로 치솟고, 이 암봉들은 한데 어우러져 신선들이 기거하는 선계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산을 감아 돌며 흐르는 낙동강에서 피어난 물안개가 골골이 파고들 때면 선경이 따로 없다 싶을 만큼 신비감 넘치는 곳이 청량산이다.

 

 

[월간산]단풍으로 물든 청량산은 물안개가 파고들면서 더욱 신비감 넘친다.  /사진 봉화군 제공
[월간산]단풍으로 물든 청량산은 물안개가 파고들면서 더욱 신비감 넘친다. /사진 봉화군 제공

 

이러한 선경의 청량산은 사계절 독특한 풍광을 자아내며 산객을 불러 모은다. 특히 10월 20일 이후 약 10일간은 돌병풍과 기암괴봉이 오색 단풍으로 물들며 가장 화려한 청량산의 풍광을 자아낸다.

 

 

고려 공민왕의 숨결 흐르는 축융봉

[월간산]축융봉 정상 직전의 암봉에서 바라본 안동 일원. 낙동강이 젖줄을 이루고 있다.
[월간산]축융봉 정상 직전의 암봉에서 바라본 안동 일원. 낙동강이 젖줄을 이루고 있다.

 

 

“오늘 한 바퀴 다 도는 것은 어려워요. 축융봉에서 오마도터널까지는 능선길을 따르는 것보다는 산성 따라 입석으로 내려섰다가 도로 따라 가는 게 볼거리도 많아요. 시간 남으면 어풍대 코스도 답사하고요.”

봉화 청량산도립공원사무소에서 만난 김덕호 주사는 “11시가 다 돼가는 시각에 청량교에서 출발해 축융봉과 오마도터널~장인봉을 잇는 원점회귀 종주산행은 쉽지 않다”며 “오늘은 공민왕의 흔적을 좇는 산행에 만족하고 다음날 오마도터널 기점 청량산행을 하자”고 한다.

 

 

[월간산]청량교를 건너는 취재팀. 학소대와 축융봉 서릉이 눈에 들어온다.
[월간산]청량교를 건너는 취재팀. 학소대와 축융봉 서릉이 눈에 들어온다.

 

 

“축융봉은 산 곳곳에 공민왕의 흔적이 남아 있어요. 홍건적의 난을 피해 70여 일 머문 곳이 바로 이 산이에요.”

축융봉(祝融峰·845m)은 몽골의 원나라에 대항해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패퇴하다가 압록강 건너 고려를 침범한 홍건적에 의해 안동까지 밀려내려 온 고려 공민왕(恭愍王 : 1330~1374, 재위 1351~1374)이 70여 일간 지냈다고 전하는 곳이다. 공민왕산성과 공민왕당 등이 그 흔적이다.

 

 

 

[월간산]밀성루의 망중한. 선계의 신선이 되는 꿈을 꿀 수밖에 없는 곳이다.
[월간산]밀성루의 망중한. 선계의 신선이 되는 꿈을 꿀 수밖에 없는 곳이다.

 

탐방안내소에서 출렁다리를 건너 된비알 산길로 접어들어 퇴계사색길 갈림목과 예던길 8코스 갈림목을 거쳐 산등성이 학소대 전망대에 올라선다. 남쪽으로 안동을 향해 흘러내리는 낙동강 물줄기가 바닥까지 투명하게 바라보이고 서쪽 낙동강 건너 산등성이의 마을들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이 지역 사람들은 낙동강 상류를 도천에서 두 물줄기가 만난다고 하여 이나리강이라 불러요. ‘나리’는 내 천(川)자를 의미해요. 물이 맑기도 하지만 여름철 래프팅 명소예요. 압권은 역시 청량산이에요. 저기 우뚝 솟은 봉이 장인봉이에요, 청량산 최고봉이죠. 경관이 정말 신비롭지 않나요?”

 

 

 

[월간산]숲속에 자리한 공민왕당과 광감전.
[월간산]숲속에 자리한 공민왕당과 광감전.

 

 

김덕호씨와 동행한 김정순 봉화 문화관광해설사는 “청량산 기암괴봉을 6·6 12개봉이라 하지만 안동 땅까지 치면 36개쯤 된다”고 자랑한다.

학소대 전망대를 지나자 호젓한 숲길이 계속되고 된비알을 거슬러 오르는 산객의 등줄기는 땀에 흠뻑 젖는다. 하지만 능선 위로 올라서자 능선 뒤편에 숨어 있던 갈바람에 땀은 곧 숨어버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풀벌레가 울어 대면서 가을 산길로 바뀐다.

 

 

[월간산]청량풍혈. 한여름엔 시원한 바람, 한겨울엔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
[월간산]청량풍혈. 한여름엔 시원한 바람, 한겨울엔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

 

 

청량산의 옛 이름은 ‘수산(水山)’이다. 김덕호씨는 “물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물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라며 “퇴계 선생이 청량산에 서원을 지으려다 물이 귀해 포기했다”고 한다.

정상을 얼마 남겨놓고 촛대처럼 치솟은 무명암봉에 올라선다. 부처손이 군락을 이룬 바위를 거슬러 암봉 꼭대기에 서자 발아래 낙동강이 옥빛 물줄기를 부드럽게 흘리며 반긴다. 이제 기암괴봉 여럿이 어깨를 맞댄 채 줄지어선 청량산은 선계처럼 신비스런 자태를 드러낸다.

 

 

 

[월간산]축융산성은 인위적인 성과 자연성이 이어져 있다.
[월간산]축융산성은 인위적인 성과 자연성이 이어져 있다.

 

 

여기가 이럴 정도면 축융봉 정상은 얼마나 대단하랴 싶어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다. 입이 벌어질 만큼 가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6·6봉은 어깨를 맞댄 채 기암병풍을 펼치고 그 오른쪽 멀리 영양 일월산이 벌떡 일어서 있고 그 뒤로 낙동정맥이 장대한 산줄기를 뻗어나가고 있다.

“저기 청량산 중턱에 응진전 보이죠? 공민왕의 왕비인 노국공주가 기도하던 곳이었대요. 공민왕과 관련된 곳은 공민왕당 한 곳이지만 노국공주와 관련된 곳은 여럿이에요. 공주당, 엄마당이 노국공주를 모시는 당이고, 안동놋다리밟기는 고려 공민왕 일행이 안동으로 몽진해 소야천(솟밤다리)에 다다랐을 때 다리가 없는 큰 내를 만났는데, 부녀자들이 허리를 굽혀 왕후인 노국공주를 태워 강을 건너게 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해요.”

 

 

 

[월간산]자소봉에서 축융봉을 바라본다.
[월간산]자소봉에서 축융봉을 바라본다.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는 원나라 황족인 위왕의 딸로서 공민왕과 결혼한 이후 고려의 관습을 따르고 공민왕의 개혁을 밀어 주었으나 8년 만에 가진 아기를 낳다가 난산으로 운명한 비운의 왕비로 전해지고 있다.

공민왕 얘기가 더해지자 청량산은 더욱 신비감 넘치고, 10월 말 단풍절기를 맞으면 기암절벽에 오색 단풍빛이 더해지면 불이 활활 타오르는 듯할 것이리라 싶었고,  그 생각이 들자 축융봉은 그 아름다운 단풍이 산 안을 벗어나지 나가지 못하게 막아 주는 역할을 하리라 여겨졌다. 그래서 불의 화신인 축융을 이름 삼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월간산]청량산 명물 하늘다리.
[월간산]청량산 명물 하늘다리.

 

 

축융봉은 숲길과 조망만 좋은 게 아니었다. 산 아래로 이어지는 산길은 가을빛이 너무도 고왔다. 성질 급한 억새는 벌써 은빛으로 이삭이 패어가고, 싸리나무는 보랏빛 꽃을 피우고, 풀벌레가 잔잔하게 울어대며 가을을 불러냈다.

능선 길을 따르다 산성 갈림목에서 오른쪽 널찍한 길로 내려서다가 고목 숲속으로 접어들었다. 공민왕당은 공민왕신을 모신 광감전(曠感殿)과 함께 괴목 숲속에 옹색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래도 층층나무,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드릅나무 등 가을빛 고운 나무들이 숲을 이뤄 가을 깊숙이 접어들면 아름다운 숲으로 변신해 공민왕의 넋을 달래 주리라 싶어진다.

 

 

 

[월간산]하늘다리에서 기암 사이로 바라본 낙동강. 주민들은 이나리강이라 부른다.
[월간산]하늘다리에서 기암 사이로 바라본 낙동강. 주민들은 이나리강이라 부른다.

 

 

“신하들에게 죽임을 당한 공민왕이 이곳에 머물 때 보살핌을 받은 주민들이 당을 짓고 매년 제를 올렸대요. 그림도 잘 그리고 글씨도 명필이었지만 그러면 뭐해요. 왕비도 죽고 자식 한 명 없었으니.”

공민왕당 주변에는 부인당, 어머니당, 딸당 등 여러 당이 있었으나 가족단위의 당이 인근 마을로 옮겨졌고, 산성마을 주민들은 공민왕을 동신(洞神)으로 받들고 매년 정월 보름(음력 1월 15일)과 칠월백중(음력 7월 15일)에 공민왕당에서 동제를 지내고 있다.

 

 

 

[월간산]오마도터널.
[월간산]오마도터널.

 

다시 산길을 따르다 민가 두 채를 지나 산성 길로 접어들어 밀성루(密城樓)에 올라선다. 누각 아래 바위는 공민왕이 민가에 내려가 밥을 훔쳐 먹는 등 군율을 어긴 병사들을 밀어 떨어뜨려 처형했다는 가슴 아픈 얘기가 전하는 곳이다. 저 앞 청량산 6·6봉이 군사를 처형하며 남모르게 슬퍼했을 공민왕을 지켜보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른 아침, 오마도터널에 올라서자 축융봉 산행에서 못 느꼈던 또다른 풍광이 산객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산 안은 청량산과 축융봉이 기암을 도열한 채 선경을 자아내고, 산 밖으로는 영양의 수많은 산릉과 산봉이 일월산을 향해 파도치듯 일렁이고 있었다. 게다가 옅은 안개가 골골이 들어차 신비롭기까지 했다.

 

 

[월간산]청량산을 30여 년간 가꿔온 김덕호 주사.
[월간산]청량산을 30여 년간 가꿔온 김덕호 주사.

 

“오마도재는 공민왕이 오마도산성과 진지를 구축하기 위해 다니던 고개였대요. 공민왕을 태운 말 다섯 마리가 끄는 마차가 다니던 길이라 해서 오마도(五馬道)란 이름을 얻은 거죠. 그런데 축융봉 오를 때 얘기한 대로 보이는 게 없죠? 그렇지만 호젓하기로는 최곱니다. 아~ 공기 좋다. 봉화는 정말 살기 좋은 곳이랍니다.”

 

 

돌병풍 속에서 ‘신재와 퇴계의 길’ 따르다

[월간산]장인봉에서 금강대로 향하는 사이 낙동강 옥빛 물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금강대 코스는 계단이 1,800개나 놓일 만큼 가파르지만 절벽, 협곡 사이로 바라보이는 풍광은 가경이 아닐 수 없다.
[월간산]장인봉에서 금강대로 향하는 사이 낙동강 옥빛 물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금강대 코스는 계단이 1,800개나 놓일 만큼 가파르지만 절벽, 협곡 사이로 바라보이는 풍광은 가경이 아닐 수 없다.

 

 

산릉은 그냥 능선이 아니었다. 능선 양옆으로 토성이 계속 이어졌다. 동행한 송경임 문화관광해설사는 “이 오마도산성은 청량산성과 함께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경계를 이루어 전투의 승패에 따라 주인이 바뀌었던 역사의 현장”이라고 했다.

“신라와 고려 때는 불교 성지였어요. 청량은 문수보살이 오랫동안 머물렀다는 중국 산의 이름이에요. 그런 산이었기에 그 옛날 암자가 27개나 들어설 수 있었던 거겠죠.”

 

 

 

[월간산]
[월간산]

 

 

자그마한 산 안에 암자가 27개나 있었을까 싶지만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 : 1495~1554)의 <유청량산록(遊淸凉山錄)> 등 여러 선인들의 ‘청량산 유람기’를 보면 금탑봉에서 자소봉으로 이어지는 산릉 기슭에 수많은 암자를 순례한 기록이 나와 있다. 그중 청량산 첫 사찰로 여겨지는 연대사가 맨아래쪽 청량골에, 퇴계 이황이 어린 시절을 보냈고 사적기를 지은 백운암이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청량산은 신라 때 불교식으로 이름 지은 봉우리가 많았어요. 장인봉은 의상봉, 자소봉은 보살봉이라는 원래 이름이 있어요. 조선시대 억불정책을 펼치고 유교문화가 번창하면서 특히 주세붕이 탐승하면서 이름을 바꾼 거예요.”

 

 

[월간산]
[월간산]

 

 

김덕호 주사의 설명을 들으며 철쭉 숲 터널을 지나자 갈림목(자소봉 0.8km, 경일봉 0.4km, 오마도터널 2.6km). 왼쪽으로 400m쯤 떨어진 경일봉(擎日峰)은 ‘아침 해를 맞는 봉’이라는 이름을 지녔지만 숲 무성하고 밋밋한 어깻죽지에 위치해 조망은 그저 그렇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줄곧 오르막이었지만 이제부턴 살랑살랑 걷는 길이에요. 룰루랄라 하면서요.”

 

 

 

[월간산]1 입석. 2 응진전. 3 청량사 오층석탑. 4 유리보전. 5 단풍에 물든 청량사.  6 김생굴. 7 청량정사 옆에 자리한 산꾼의 집.
[월간산]1 입석. 2 응진전. 3 청량사 오층석탑. 4 유리보전. 5 단풍에 물든 청량사. 6 김생굴. 7 청량정사 옆에 자리한 산꾼의 집.

 

송경임 해설사는 조금만 가파른 능선길만 나오면 속도가 반 이하로 떨어지곤 했는데 완경사 능선에 들어서자 표정이 밝아지고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이제 구절초는 가느다란 허리 위에 하얀 꽃 피운 채 파란 하늘을 즐기고, 갈바람은 더욱 흥겹게 흔들어댄다. 그 뒤에 자소봉이 우뚝 솟구치자 산객들의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철계단 타고 가파른 바윗길을 올라서자 자소봉(紫霄峰·845m) 정상 아래 전망대. 보살봉(菩薩峯)으로 불렸는데 주세붕이 현재 이름으로 고쳤다는 자소봉은 청량산에서는 장인봉과 축융봉에 이어 세 번째 고봉이지만 9개 봉우리로 이루어진 내산(內山)에서는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9층 층암을 이루고 있는 자소봉에는 11개 암자가 각 층마다 나열되어 있었다고 전한다.

조선 중기의 유학자 박종(朴琮· 1735~1793)은 <청량산유람록>에서 자소봉은 내산의 종산(宗山)으로 꼽았다. 그만큼 청량산의 중앙에 우뚝 솟은 산이다. 그럴 만했다.

 

비록 최정상을 이룬 독립봉을 오를 순 없지만 망원경까지 갖춘 조망대에서 바라뵈는 조망은 그야말로 일망무제. 남쪽으로 축융봉은 양쪽으로 능선을 활짝 펼친 채 장벽처럼 우뚝 솟아 있고, 북쪽 문명산(894m) 뒤쪽 멀리로는 소백산에서 태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과 통고산에서 백암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이 하나의 장벽을 이룬 채 활개를 치고 있다. 그런 웅대한 자연 속에서 청량산과 문명산 사이의 뒤실마을과 한티마을은 가을 하늘 아래 평화로움을 구가하고 있다. 

 

“탁필봉은 뿌리가 다 금갔어요. 우리 세대에야 뭔 일 있을까 싶지만 다음 세대엔 무너져 내릴지도 몰라요.”

김덕호 주사는 청량산의 아름다움이 오래도록 지켜지기를 원하는 이다. 김 주사는 청량산이 198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몇 해 뒤부터 시작해 30년 가까이 공원 관리에 애써 왔고, 그로 인해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한 곳도 없을 정도고, 개통하자마자 인기를 끈 하늘다리와 학소대 인공폭포 역시 그의 아이디어였다는 게 공원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자소봉을 내려서다 기암들이 줄을 잇는다. 붓을 세워놓은 듯한 형상의 탁필봉을 거쳐 먹을 가는 연적을 연상케 하는 연적봉(846.2m)에 올라서자 앞으로 펼쳐진 장인봉 기암능선과 뒤쪽의 탁필봉~자소봉 능선은 수묵화 속 기암처럼 느껴진다.

 

옛날 청량산 북쪽 뒤실마을 주민들이 청량사 불공을 위해 넘나들었다는 뒤실고개 갈림목(자소봉 0.7km, 청량사 0.8km, 하늘다리 0.5km)을 지나 숲길을 빠져나가자 절벽 협곡을 가로지른 현수교가 나타난다. 청량산 명물 하늘다리다. 해발 800m대의 자란봉(紫鸞峰)과 선학봉(仙鶴峰)을 연결한 하늘다리는 길이 90m, 높이 70m, 폭 1.2m 규모로 국내에서 가장 길고 높은 곳에 위치한 현수교로 꼽힌다.

 

“2008년 하늘다리가 생긴 뒤 청량산 탐승 패턴이 변했어요. 입석이나 청량사에서 자소봉에 올라선 다음 능선 타고 뒤실고개를 거쳐 청량사로 내려가거나 장인봉까지 종주한 다음 두들마을로 내려서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하늘다리 탄생 이후 청량사에서 곧바로 뒤실고개로 올라붙거나 두들마을에서 선학봉에 올라선 다음 하늘다리를 올라타요. 그러다보니 청량산 풍광의 백미인 자소봉~연적봉 구간이 생략돼요. 진짜배기를 안 보고 돌아가는 셈이죠.”

 

하늘다리는 역시 인기 있는 명물이었다. 평일임에도 탐승객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건너는 모습이 수시로 보였다. 등산객이라기보다는 대부분 평상복 차림의 탐승객들이었다.

 

 

다시 그리워지는 청량산 선경

 

다리 직전 공터에서 간식을 먹으며 갈바람 맞으며 풍광을 즐긴 일행은 하늘다리를 건너 장인봉으로 향했다.

“어휴 더워, 최정상에 서면 멋진 풍광이 터질 줄 알았는데 한여름 땡볕이네 땡볕.”
김생의 글자를 조합해 표기한 ‘淸凉山 丈人峯’ 각자가 새겨진 정상석이 선 장인봉 정상은 숲에 싸여 조망은 제로. 땡볕에 쫓겨 곧바로 금강대 길로 접어든다.

 

“1,800계단 길이에요. 그래서 2.7km밖에 안 되는 하산 길이지만 한 시간 반은 잡아야 해요. 그래도 최고의 조망이 기다리는 길이에요.”

무릎이 시릴 만큼 급경사 계단길을 내려서고 굴곡 심한 능선길을 오르내리다 길에서 살짝 벗어난 전망대에 올라서자 과연 김덕호 주사가 극찬했던 청량산경이 펼쳐졌다. 장안봉에서 선학봉을 거쳐 금탑봉으로 이어지는 산봉과 그 아래 깊숙이 파인 청량골, 그 오른쪽 축융봉은 한데 어우러져 신선경을 그리고 있었다.

 

또다시 이어지는 계단길을 따르다 절벽을 삐집고 나온 금강대 전망대에 올라서자 이번에는 이나리강 옥빛 물줄기와 그 뒤로 봉화와 안동의 산봉들이 가을 하늘 아래 잔잔한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금강대 벼랑길은 간담 서늘케 하면서도 멋스럽고 신비한 풍광에 감탄케 했다.

그러다가 숲으로 들어서자 언제 그런 신비경이 있었냐는 듯 잔잔해지면서 이제 긴 산행이 끝을 맺는가 싶어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지만 청량지문(淸凉之門) 앞에 내려서서 청량산 안을 바라보자 순간 장인봉 정상석 뒷면에 새겨진 시(詩)가 떠오르며 청량산 신선경이 그리워지고 퇴계가 스스로 ‘청량산인’이라 이름 지은 이유를 깨닫게 된다.

 

我登淸凉頂(아등청량정) : 청량산 꼭대기에 올라
兩手擎靑天(양수경청천) : 두 손으로 푸른 하늘을 떠받치니
白日正臨頭(백일정임두) : 햇빛은 머리 위에 비추고
銀漢流耳邊(은한유이변) : 별빛은 귓전에 흐르네.
俯視大瀛海(부시대영해) : 아래로 구름바다를 굽어보니
有懷何綿綿(유회하면면) : 감회가 끝이 없구나.
更思駕黃鶴(갱사가황학) : 다시 황학을 타고
遊向三山嶺(유향삼산령) : 신선세계로 가고 싶네.


                   ‘登淸凉頂(청량산 정상에 올라)’ - 주세붕

 

 

산행 길잡이

 

축융봉 산행기점은 낙동강을 가로지른 청량교 건너 관문(청량지문) 부근 안내소다. 안내소 뒤쪽 현수교를 건너면 바로 능선으로 올라붙어 퇴계사색길, 예던길 갈림목과 전망대를 지나 축융봉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에서 산성길로 하산하려면 계단 아래에서 왼쪽 안부로 내려선 다음 능선길 대신 왼쪽 널찍한 길로 내려선다. 이 길은 곧 두 갈래로 나뉘는데 곧장 뻗은 길은 산성 길 따라 밀성대로 이어진다. 공민왕당에 들르려면 오른쪽 임도를 따르다가 첫 번째 민가를 지나 갈림목에서 왼쪽 숲길로 올라서야 한다.

공민왕당에서 을밀대로 가려면 다시 임도로 내려선 다음 두 번째 민가를 지나 갈림목에서 왼쪽 길로 접어든다. 산성길은 을밀루를 거쳐 데크 길로 접어든 다음 다시 임도로 접어든 다음 풍혈을 거쳐 산성 입구 도로로 내려선다.

 

산성 입구에서 오마도터널까지는 약 2km 거리로 아스팔트도로가 나 있다. 터널을 빠져나간 다음 오른쪽 계단길을 따르면 터널 위 능선에 올라선다. 오도재터널 상부는 해발 약 530m, 자소봉은 845m 높이로 표고차가 315m밖에 차이나지 않고 3.4km 길이의 능선을 사이에 두고 있어 큰 오르막 없이 다가설 수 있다. 자소봉~탁필봉~연적봉~하늘다리를 거쳐 장인봉으로 가는 사이 자소봉, 뒤실고개, 선학봉 갈림목 등지에서 김생굴, 청량사, 두들마을로 내려서는 길이 있으므로 체력이 약한 사람은 이용하도록 한다.

장인봉에서 청량교 부근 관문까지 이어지는 금강대 길은 2.6km 거리에 불과하지만 급경사 계단 구간이 자주 나타나 체력이나 고도감에 약한 사람은 애 먹을 수밖에 없다.


축융봉 종주는 약 6.9km 거리에 4시간, 오마도터널~자소봉~장인봉~관문 종주는 약 8.2km 거리에 5시간 정도 걸린다. 산행 도중 식수를 구할 만한 샘은 없다. 

 

 

 

 

교통

 

봉화→청량산

공용버스터미널에서 06:20(청량산 출발 07:00), 09:40(10:25), 13:30(14:30), 17:40(18:20) 출발. 40분 소요, 1,200원. 문의 054-673-4400.
안동→청량산

교보생명 앞 버스정류장에서 05:50(06:50), 08:50(10:20), 11:50(13:20), 14:50(16:20), 17:50(18:40) 출발. 50분~1시간 소요, 1,200원. 문의 경안여객 054-821-4071.

 

봉화까지는 서울 동서울터미널(07:40~18:10 1일 6회, 2시간40분, 1만7,300원. 1688-5979,www.ti21.co.kr), 대구 북부터미널(07:00~20:55 1일 10회, 2시간30분, 1만1,500원, 1666-1851,www.gobus.co.kr) 등지에서 노선버스가 다닌다. 봉화 지역 교통은 봉화군 홈페이지(www.bonghwa.go.kr) 참조(생활복지→교통 클릭) 참조. 문의 봉화터미널 054-673-4400. 

 

안동까지는 서울 동서울터미널(06:00~23:00, 20~40분 간격 34회 운행, 2시간50분, 1만6,500원), 대구 북부터미널(06:20~22:10 1일 25회, 1시간10분, 6,900원, 1666-1851,www.gobus.co.kr). 서울 청량리역 06:40(10:00 도착), 08:25, 10:40, 13:05, 15:10, 19:07, 21:13발 무궁화호 열차 출발. 약 3시간20분, 1만5,500원. 문의 안동역 054-856-7788.

 

숙식 지역번호 054

 

공원 내에 폭포휴게소민박(762-1488), 산마을식당(674-0990), 청량산휴게소(672-1447), 들꽃피는펜션(010-6331-1477), 판타지아펜션(010-3303-0323). 등이 있고, 청량산오토캠핑장(010-2310-6657)과 나무네숲캠핑장(010-7144-4200)은 좋은 야영장소다.

청량산 입구 집단시설지구의 다래식당(673-9005)은 산나물 정식과 칼국수, 오시오식당(673-9012)은 봉성식 숯불구이, 까치소리식당(673-9777)은 더덕구이, 산채비빔밥, 칼국수를 주메뉴로 내놓는다.

청량산 가까이 봉성면소재지는 돼지고기 요리로 이름난 고을로, 가을철엔 송이 맛도 볼 수 있다. 청봉숯불구이(672-1116).

 

 

왕초보 추천 코스

 

입석~응진전~청량사~모정 허릿길

 

자소봉이나 하늘다리 연결하면 더욱 환상적

 

입석~응진전~청량사~모정 허릿길은 산허리 길을 따르지만, 청량산만의 독특하고 신비감 넘치는 산세와 더불어 어풍대와 김생굴 같은 산 안의 명소와 연꽃 속에 자리잡은 듯한 절집들을 탐방할 수 있는 코스다.

원효대사가 머물렀고 청량산에서 가장 경관이 수려하다는 응진전, 김생이 10년간 수학했다는 김생굴, 퇴계가 즐겨 머물고 수학했다는 오산당 등의 명소를 방문하고, 어풍대 등지에서 조망도 즐기고, 공민왕이 친필의 현판이 걸려 있고 관음보살을 모신 유리보전(琉璃寶殿)이 있는 청량사를 답사하고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란 간판이 붙어 있는 안심당(安心堂)에서 차 한 잔 마시며 갈바람과 갈 햇살을 누린 다음 입석으로 돌아와도 2시간이면 넉넉하다.

 

산행은 산성입구에서 관문 방향으로 약 400m 떨어진 입석(立石)에서 시작한다. 입석은 도로 한가운데 서 있는 기암이다.

체력에 좀 더 자신 있는 사람은 입석~자소봉~청량사 코스를 따르도록 한다.

청량산 최고의 조망대로 꼽히는 어풍대를 지나 청량사로 내려서지 말고,

신라 명필 김생이 10년간 수련했다는 김생굴을 거쳐 내청량 주봉 격인 자소봉에 올라 조망을 즐긴 다음,

탁필봉과 연적봉을 지나 뒤실고개에서 청량사로 내려서도록 한다.

청량사에서 뒤길고개로 곧장 올라선 다음 하늘다리를 거쳐 모정으로 내려서는 코스도 인기다 (약 3시간 소요).

하늘다리까지 잇는 산행을 하려면 한 시간쯤 더 잡아야 한다.

 


문의 도립공원사무소 054-679-6321(~2), 홈페이지 http://bonghwa.go.kr/potal/Mount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