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수『고향의 봄』 / 최순애 『오빠생각』

2015. 3. 8. 20:25음악/음악 이야기

 

 

 

고향의 봄

 

(이원수 작시 / 홍난파 작곡)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 노래는 시인 이원수(1911-1981) 선생의 동시고향의 봄에 홍난파 선생이 곡을 붙인 노래입니다.

이원수 선생이 경남 마산에서 살던 14~5세 때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마산에서 소년회 활동을 하던 이원수는 어린이 운동의 선구자인 소파 방정환 선생을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소파 선생이 발행하던 잡지 어린이에 원고를 보냈는데

그 중 고향의 봄1926 4월호에 입선되어 실리면서 그의 이름을 처음 알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원수 선생이 1911년생이니까 잡지에 실릴 때의 나이는 15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향의 봄에 처음 곡을 붙인 이는 초등학교 교사였던 동요작곡가 이일래 선생이었다고 합니다.

산토끼의 작사 작곡가로 잘 알려진 이일래 선생의 고향의 봄은 당시 마산 등 일부에서만 불려 지다가

1929년에 홍난파선생이 곡을 붙인 후부터 지금의 노래가 전국적으로 널리 불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원수 선생의 부인은 동요 오빠생각의 작사자인 최순애(1914-1998) 선생입니다.

이 역시 최순애 선생이 11살 어린 소녀 시절에 쓴 동시라고 합니다.  

소파 선생의 어린이 잡지에 오빠생각이 실린 것은 고향의 봄보다 다섯 달 먼저인 1925 11월이었다고 합니다.

오빠생각도 홍난파가 고향의 봄과 같은 해인 1929년에 곡을 붙였지만

그 후 박태준(1900~1986)씨가 곡을 붙여 지금의 오빠생각이 탄생되었다고 합니다. 

고향의 봄이 발표된 후로 소년 이원수는 어린이 잡지에 계속 작품을 보내어 자주 발표가 되었고,

일간 신문에도 부지런히 발표를 했다고 합니다.

소년 이원수는 동요쓰기를 좋아하는 전국 각지방의 친구들과 사귀어 편지 왕래가 잦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편지를 주고 받던 낯 모르는 친구들 가운데에

자신보다 먼저 오빠생각이란 시를 어린이 잡지에 실었던 최순애란 여학생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산소년 이원수와 수원소녀 최순애는 펜팔친구가 되었고 서로 얼굴도 모르면서 결혼약속까지 했답니다.

펜팔한지 7년 후에 수원역에서 만나기로 하였는데, 7년 후에 이원수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원수는 독서회를 통해 불온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일경에 구속되어 1년간 감옥에 있었던 것입니다.

최순애의 집에서는 이런 예비사위가 못마땅해 다른 혼처를 알아보고 권해 보았건만 최순애는 완강히 거부를 하다

1년후에 이원수가 풀려나 최순애의 집으로 달려 오면서........ 곧바로 결혼식을 치르고

슬하에 3 3녀를 두면서 행복하게 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알 살았답니다.  

 

 

((펌글. <세종경제신문>에 실렸던 글입니다.))

 

 

 

 

 

 

 

 

 

 

오빠생각

 

(작사 최순애 / 작곡 박태준 / 노래 이선희)

 

 

 

뜸북 뜸북 뜸북 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청낭한 어린아이 목소리로 듣고 싶은데, 검색창엔 이선희 노래밖에 없네요.

이나마 간신히 찾았습니다. ^^*

 

 

 

 

 

 

'음악 > 음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0) 2015.10.27
『더 클래식』-문학수  (0) 2015.07.07
「흔들리지 않게」원곡  (0) 2014.06.06
내가 왜 이걸 숨겨놨었을까?   (0) 2014.05.29
『음악가의 생활사』  (0) 2014.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