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24. 16:19ㆍ책 · 펌글 · 자료/인문 · 철학 · 과학
Chapter 1 초대
이황, 이이 그리고 유학
Chapter 2 만남
1. 사단칠정 논쟁
이황의 사단칠정
이이의 사단칠정 비판
사단칠정의 철학적 의미
2. 리의 자발성
이황의 리동설
이황의 리무위설
철학적 의미
3. 인심도심론
이황의 인심 도심설
이황의 인심 도심설
인심 도심설의 철학적 논점
경 공부
4. 이황과 이이의 정치적 입장
5. 퇴계학파와 율곡학파
역사적 전개
퇴계학파
율곡학파
Chapter 3 대화
이황과 이이의 가상 대화
Chapter 4 이슈
주리?주기론에 대한 비판적 분석
양주음왕에 대한 비판적 분석
지금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나 윤리 교과서를 보면 퇴계학파는 주리론, 율곡학파는 주기론으로 분류한다. 그런데 이 주리 · 주기론이 일제시대 일본인 학자 다카하시 도루(1878~1967)에게서 나왔다고 하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일합병 이전부터 일본은 ‘조선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조선을 연구했다. 다카하시는 그 첫 세대를 대표한다. 역설적이게도 그를 불러들인 것은 대한제국이었다. 1903년 대한제국 초청으로 관립중학교 교사에 부임하면서 다카하시는 처음으로 조선 땅을 밟았다. 이후 일본 패망 때까지 조선에 남았다.
한일합병 직후, 조선총독부의 ‘촉탁 학자’로 활동했던 그가 삼남지방 유생들의 동향을 살피다 한국 성리학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총독부의 명을 받아 의병운동에 뛰어든 유생들을 ‘살폈던’ 다카하시는 영남 의병들의 책상 위에 한결같이 <퇴계집>이 놓여있는 것을 보고 ‘학문적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조선학’에 대한 방대한 연구는 그가 한글 철자법 제정에 참여한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다카하시는 1912년과 1921년, 두 차례에 걸쳐 한글 철자법 위원으로 참여했다. 1913년에는 위암 장지연과 ‘공자교와 유학’이라는 주제로 지상(紙上)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조선 유학에 대한 그의 연구는 <조선유학대관>(1925)과 <이조유학사에 있어서 주리파·주기파의 발달>(1929) 등의 논문으로 대표된다. <조선유학대관>은 통사적 가치가 높고 <…주리파·주기파의 발달>은 조선 유학의 근대적 구분법을 정초한 저술이다. 이밖에도 조선의 고문서와 규장각 도서를 정리한 <조선도서해제>(1911), 조선 불교사를 집대성한 <이조불교(李朝佛敎)>(1929) 등도 썼다.
일본으로 건너간 뒤에도 대학에서 한국 사상사를 강의했고, 1950년에는 ‘조선학회’를 만들었다. 국내에는 그의 주요 논문을 모아 펴낸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유학사>(예문서원·2001년), <조선의 유학>(소나무·1999년) 등의 책이 나와 있다.
◇ 다카하시 도오루 연표
1878년 일본 니가타현 출생
1902년 일본 동경제국대 한문학과 졸업. 조선학 전공
1903년 대한제국 관립중학교 교사로 초빙
1910년 조선총독부 종교조사촉탁에 임명
1911년 조선총독부 조선도서조사촉탁에 임명. 경성고등보통학교 교수
1912년 조선연구회 초대 평의원. 조선총독부 한글철자법 위원
1916년 대구고등보통학교 교장
1919년 동경제국대에서 <조선의 교화와 교정>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
1921년 조선 총독부 시학관에 임명
1923년 경성제국대 창립위원회 간사
1926년 경성제국대 법문학부 교수. 조선어문학 1강좌(조선유학사) 담당
1939년 경성제국대 정년퇴임
1940년 경성사립혜화전문학교 교장. 조선문화공로훈장 수상
1944년 조선유도(儒道)연합회 부회장
1945년 일본 귀환
1950년 일본 텐리대 교수. 한국사상사 등 강의. 조선학회 부회장 취임.
1967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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