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15. 07:08ㆍ음악/쟈덜- f
얼굴이 많이 익어요. 영화도 한두 편 봤을 것 같은데....?
1939년, 밀바는 북부 이탈리아의 코오로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가난한 농촌마을에서 꿈 많은 소녀 시절을 보냈지요.
그녀가 오페라 가수의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나
RAI(이탈리아 국영방송국)에서 개최한
뉴 보이스 콩쿠르에 출전한 때는 그녀 나이 16살 때입니다.
이 콩쿠르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자
그녀는 칸초네 가수로 뜻을 바꾸어
그로부터 4년 후인 1959년,
에디트 피아프의 히트곡인 '미롤드'를 불러
대히트를 기록함으로써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되지요.
그리고 1961년, 처녀 출전한 산레모 가요제에서
'서랍 속의 바다'라는 곡으로 3위에 입상,
서서히 그녀의 매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촌티를 벗지 못한 22살의 시골 처녀가
'코오로의 암표범'이라는 애칭을 가진 대 스타가 되기까지는
이탈리아 귀족 출신의 멋쟁이 마우리치오 콜냐티와의
운명적인 만남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당시 41살의 초로에 접어든 콜냐티는
당시 이탈리아 국영 텔리비전의 연출자였는데
훗날 그녀의 남편이 되기까지
그녀에게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지요.
버릇없고 교양이 없는 야성의 처녀 밀바가
지적 내음이 물씬 풍기는 칸초네의 여왕이 되기까지는
한 남자의 헌신적인 사랑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었지요.
1961년부터 1969년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산레모 가요제에 출전해서
모두 입상을 하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비련(Nessuno Di Voi)'을 비롯한 수 많은 히트 곡으로
칸초네 제1의 여성 가수로써의 지위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연극에 대한 불꽃같은 집념은
남편 콜냐티와의 사이에 서서히 먹구름이 끼었고
특히 연극 '피터 와이즈'에서 공연한 30살의 무명 청년
마리오 피아베와의 떠들썩한 스캔들로
콜냐티와의 뜨겁던 사랑이 급속도로 냉각되어
8년간의 결혼 생활은 파경을 맞게 됩니다.
콜냐티의 품을 떠난 그녀는
마치 자신의 삶에 대한 드라마를 노래로 표현하듯
더욱 더 세련된 열창으로 팬들을 매료시키지요.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노래를 부를 수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한 그녀는
1972년, 내한 공연 때에도
그녀를 항상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미남 청년이 있었지요.
시골뜨기 소녀에서 ‘코오라의 암 표범’이 되기까지
그녀는 이렇게 변모했고
지금은 콜냐티와의 사이에서 난 딸
마르티나와 함께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출처. 미즈넷
Aria Di Festa(축제의 노래) / Milva
L'immensita (눈물 속에 피는 꽃)
아, 이 노래도 불렀었구나! ( ...... )
내, 나이가 들어 그런지, 가수도 젊은 시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보다 퍼질러앉아 부르는 소리가 듣기 편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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