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평전』

2014. 9. 1. 11:47책 · 펌글 · 자료/문학

 

 

 

 

 

 

백석을 흠모하던 시인 안도현, 백석의 삶을 복원해내다!

시대를 막론하고 절대적이고 폭넓은 영향을 끼친 백석의 생애를 담은『백석 평전』. 스무 살 무렵부터 백석을 짝사랑하고, 어떻게든 ‘백석을 베끼고 싶었다’고 고백하는 안도현 시인이 백석을 직접 만나는 방식으로서 그의 생애를 복원해냈다. 백석의 어투, 시어는 물론 시를 전개하고 마무리 짓는 방식과 세계에 반응하는 시인으로서의 태도까지 닮아보려고 했다는 안도현 시은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백석의 생애와 관련된 사실들을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재구성한다.

책에는 백석이 어떤 계기로 시를 쓰게 되었는지, 그가 일본에서 유학하며 습작할 때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등 유년의 시절부터 장학생으로 떠난 일본 생활, 백석의 생을 관통한 사랑이야기까지 백석의 전 생을 보여준다. 마치 소설처럼, 혹은 작품세계에 대한 분석적 연구처럼 백석의 생으로 끌어들이며, 안도현 특유의 시인적 직관과 통찰, 품격 높은 상상력이 고스란히 살아난다. 더불어 백석의 시와 산문에 드러나 있는 내용과 그의 실제 행적을 비교하여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으며, 지나치게 과장되었거나 풍문으로만 떠돌던 백석의 연애담과 결혼생활과 관련된 사실까지 정리했다. 저자가 직접 작성한 백석 연보, 백석이 일생동안 기차를 이용해 다녔던 길들을 보여준 지도 등을 통해 이해를 더했다.

[교보문고 제공]

 

 

 

 

백석 평전

 

 

 

 

 

 

 

 

 

 

 

 

1

 

계간 《시인세계》는 2012년 문학평론가 75명이 뽑은 한국 대표 시집 순위를 공개하였다.

평론가 75명이 10개씩 추천한 시집을 집계한 결과,

1위는 63명이 선택한 김소월의 『진달래꽃』,

2위는 60명이 지지한 서정주의 『화사집』,

3위는 59표를 얻은 백석의 『사슴』이었다.

4위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 (56명),

5위는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48명),

6위는 정지용의 『정지용시집』 (45명),

그리고 이상의 『이상선집』, 김수영의 『달나라의 장난』, 임화의 『현해탄』, 이육사의 『육사시집』이 그 뒤를 이었다.

 

 

 

 

 

 

 

2

 

불쑥 펼쳐진 1937년 봄은 잔혹했다.

백석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통영의 박경련과 그의 절친했던 친구 신현중이 결혼했다는 소식이 함흥으로 날아들었다.

신현중은 4월 7일에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약혼녀였던 김준연의 딸 자옥과 파혼하고 통영의 경련을 아내로 맞아들인 것이다.

백석이 그녀를 난으로 부르며 그토록 마음을 두고 있었다는 것을 잘 아는 신현중이었다.

백석은 열렬히 흠모했던 처녀를 빼앗긴 동시에 친구까지 잃어버렸다.

 

 

 

밖은 봄철날 따디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두 많이 나서 흥성흥성 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단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것만 나는 하이얀 자리 우에서 마른 팔뚝의

새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러 단닐 것과

내 손에는 新刊書 하나도 없는 것과

그리고 그 <아서라 世上事>라도 들을

류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 백석,「내가 생각하는 것은」(1938년)『여성 4월호』

 

 

 

 

 

 

 

 

3

 

아카시아들이 언제 힌 두레방석을 깔었나

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 백석, 「비」全文

 

 

 

 

 

 

 

4

 

한국문학사에 하나의 큰 획을 긋게 되는 시집『사슴』은 1936년 1월 20일 드디어 세상에 선을 보였다.

경성의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출간된 것이었다.

시집의 정가는 2원이었다. 1년 전에 나온 정지용의 『정지용 시집』이 1원 20전이었고,

1년 후에 나온 오장환의『城壁』이 1원, 3년 뒤에 나온 신석정의 『촛불』이 1원 20전이었다.

당시에 쌀 한 가마에 13원, 양복 한 벌에 30~40원 하던 시대였다.

 

 

 

 

 

 

 

5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에 나오는 나타샤가 실제 인물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일은 부질없어 보인다. 여기의 나타샤가 통영의 박경련이라는 추측은 근거가 전혀 없는 억측일 뿐이다. 신현중과 이미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그녀에게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며 매달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신 살구를 잘도 먹드니 눈 오는 아츰

나어린 안해는 첫아들을 낳었다

- 적경(寂境)

 

 

 

 

눈이 오는데

토방에서는 질화로 우에 곱돌탕관에 약이 끓는다

- 탕약

 

 

 

 

 

 

 

6

 

그대는 벌써 지원하였는가

- 특별 지원병을 -

내알 지원하려는가

- 특별 지원병을 -

공부야 언제나 못하리

다른 일이야 이따가도 하지마는

전쟁은 당장이로세

만사는 승리를 얻은 다음 날 일

 

-이광수, 「조선의 학도여」 중에서

 

 

 

 

나라의 부름 받고 가실 때에는

빨간 댕기를 드리겠어요

몸에 지니고 싸우시면

총알이 날아와도 맞지 않아요

 

- 주요한, 「댕기」중에서

 

 

 

 

반도의 아우야, 아들아 나오라!

님께서 부르신다. 동아 백만의 천 배의

용감한 전위의 한 부대로 너를 부르신다.

이마에 별 붙이고, 빛나는 별 붙이고 나가라

 

- 김기진,「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중에서

 

 

 

 

고운 피 고운 뼈에

한번 새겨진 나라의 언약

아름다운 이김에 빛나리니

적의 숨을 끊을 때까지

사막이나 열대나

솟아솟아 날아가라

 

- 모윤숙,「어린 날개」중에서

 

 

 

 

남아면 군복에 총을 메고

나라 위해 전장에 나감이 소원이리니

이 영광의 날

나도 사나이였다면 나도 사나이였다면

귀한 부르심 입는 것을 -

 

- 노천명,「님의 부리심을 받들고서」중에서

 

 

 

 

  

 

 

7

 

2009년 개정 교과서에 따라 개발된 중 · 고등학교 국어 관련 교과서에 백석은 김수영과 함께 가장 많은 시가 수록되어 있다. 백석의 시를 수록하고 있는 교과서를 보면 「고향」이 세 군데로 가장 많고,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과 「여우난골족」 「수라」가 두 군데, 「국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모닥불」 「박각시 오는 저녁」 「통영-남행시초」 「흰 바람벽이 있어」 「멧새소리」 「백화」 「팔원」이 각각 한 군데에 실려 있다. 동화시 「준치 가시」도 한 군데 교과서에 실려 있다.

백석과 관련된 단행본, 학위논문, 평론, 에세이 등의 연구물이 800개가 넘는다고 한다.

 

 

 

 

 

 

 

8

 

1962년은 북한에서 시인으로서 백석의 역할이 끝나는 해였다. 삼수군 협동농장에 내려가 있으면서도 백석은 상반기까지 꾸준히 시와 산문을 발표했다. 「조국의 바다」와 「나루터」에서 "서로 껴안으러, 우리 그렇게 껴안으리라"고 다짐했음에도, "아버지 원수님의 / 그 어린 시절에 영광"을 돌린다고 찬양했음에도 북한에서 더 이상 시를 발표할 수 없는 시인이 되었다.

 

 

 

 

조국의 바다여

 

                                백석

 

 

물'결이 온다

흥분해 떠는 힌 물'결이

기슭에 찰석궁 물을 던진다

 

 

울릉도 먼 섬에서 오누란다

섬에선 사람들 굶어 죽는단다

섬에는 배도 다 깨어졌단다.

 

 

물'결이 온다

격분으로 숨 가뿐 푸른 물'결이

기슭을 와락 그러안는다

 

 

인천, 군산 항구에서 오누란다

항구를 끊임없이 원쑤들이 들어온단다

항구에선 겨레들이 팔려 간단다.

 

 

밤이고 낮이고 물'결이 온다

조국의 남녘 바다 원한에 찬 물'결이

그리워 그리운 북으로 온다.

 

 

밤이고 낮이고 물'결이 간다

조국의 북녘 바다 거센 물'결이

그리워 그리운 남으로 간다.

울릉도로 간다. 인천으로도 간다.

 

 

주리고 떠는 겨레들에겐

일어나라고 싸우라고

고무와 격려로 소리치며,

 

 

뼈대의 피맺힌 원쑤들에겐

몰아낸다고 삼켜 버린다고

증오와 저주로 번쩍이며,

 

 

해가 떠서도, 해가 져서도

남쪽 북쪽 조국의 하늘을

가고 오고, 오고 가는 심정들같이

남쪽 북쪽 조국의 바다를

오고 가고, 가고 오는 물'결들,

 

 

이 나라 그 어느 물'굽이에서도

또 그 어느 기슭에서도

쏴- 오누라고 치는 소리 속에

쏴- 가누라고 치는 소리 속에

물'결들아,

서로 껴안으러, 우리 그렇게 껴안으리라

서로 볼을 부비라, 우리 그렇게 볼을 비비리라

서로 굳게 손을 쥐라, 우리 그렇게 손을 쥐리라

서로 어깨 결으라, 우리 그렇게 결으리라

 

 

이 나라 남쪽 북쪽 한 피 나눈 겨레의

하나로 뭉친 절절한 마음들 물'결 되여 뛰노는

동쪽 바다, 서쪽 바다, 또 남쪽 바다여,

칼로도 총으로도 또 감옥으로도

갈라서 떼어 내진 못할 바다여,

더러운 원쑤들이

오직 하나 구원 없는 회한 속에서

처참한 멸망을 호곡하도록

너희들 노호하라, 온 땅을 뒤덮을 듯,

너희들 높이 솟으러. 하늘을 무너질 듯

 

 

그리하여 그 어느 하루 낮도, 하루 밤도

바다여 잠잠하지 말라, 잠자지 말라

세기의 죄악인 마귀인 미제,

간악과 진인의 상징인 일제

박정희 군사 파쑈 불한당들을

그 거센 물'결로 천리 밖, 만리 밖에 차던지리라.

 

 

 

X

 

 

 

 「조국의 바다여」는 백석이 북한에서 발표한 마지막 시였다. 아니, 그가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시였다. 평양에서 삼수군으로 쫒겨날 즈음 백석에게 시는 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시인으로 살아남느냐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느냐가 백석에게는 더 급했다.

 

2005년 7월 20일, 남쪽의 문인 100여명은 평양에서 열리는 민족작가대회에 참석했다.

"백석 시인 얘기 좀 해주세요. 남쪽에서 요즘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는 시인이 백석이예요."

"백석 시인은 말년에 전원생활을 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역시 똑같은 대답이었다.

 

 

 

 

 

 

 

 

 

 

 책을 다 읽고난 기분이 씁쓸하구먼.

 

 

 

 

 

 

 

 

 

 

 

목차

 

귀향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
오산학교 시절
소월과 백석
아오야마 학원으로 유학을 가다
일본에서의 문학수업
<조선일보>와의 인연
광화문의 3인방
실비 내리는 어느 날
시인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100부 한정판 시집 『사슴』
『사슴』은 문단에 던진 포탄
통영, 통영
진주에서 노래하고 술 마신 밤
함흥으로 떠나다
『사슴』을 보는 또 다른 눈
백석 시의 영향을 받은 시인들
함흥에서 만난 자야
친구 신현중의 놀라운 배신
중일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최정희와 노천명과 모윤숙, 그리고 사슴
삐걱거리는 함흥 시절
뛰어난 《여성》지 편집자
화가 정현웅
나는 만주로 떠나련다
북방에서
권태와 환멸
측량도 문서도 싫증이 나고
흰 바람벽이 있어
압록강이 가까운 안둥 세관에서
시의 잠적
해방된 평양에서
38선을 넘지 않은 이유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전쟁과 번역
동화시의 발견
공격적인 아동문학 평론
학령 전 아동문학 논쟁에 휘말리다
살아남기 위하여
붉은 편지를 받들고 관평의 양을 키우다
평양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삼지연 스키장 취재기
남으로 보내는 편지
그리하여 사라진 이름
시인의 죽음

[교보문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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