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느림과 미움의 미학』

2014. 7. 9. 19:31책 · 펌글 · 자료/인문 · 철학 · 과학

 

 

 

p53~

추억은 잉여의 삶, 여분의 삶이다.

노인들이 추억에 매달리는 것은 삶을 다 탕진하고 오직 그것밖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이 상승의 기운을 탈 때는 추억의 가치는 줄어든다.

추억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견딜 만하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활력이 넘치고 삶이 빛나기 때문이다.

추억은 식은 밥같이 현재라는 생동감이 빠진 삶이다.

추억은 아무리 화려해도 추억일 뿐이다. 추억은 통용되지 않는 구화폐다.

진화하지 않는 추억은 기억의 밑층에서 화석으로 변한다.

 

 

 

 

 

p81

배로 강을 건너는데, 빈 배가 떠내려오다가 그 배에 부딪쳤다.

사공이 성질이 급한 사람이지만 그 배가 빈 것을 알고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런데 떠내려온 배에 사람이 타고 있으면 당장 화를 내며 소리쳤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그를 해롭게 하겠는가?

-『장자』「산목」

채운 것은 채움으로 시끄럽고 비운 것은 비움으로 고요하다.

채우면 채울수록 비움이 견디기 어렵고, 비우면 비울수록 채우는 일의 하찮음을 깨닫게 된다.

채우는 자는 그 채움에 매이게 되고, 비우는 자는 비움으로 인해 자유로워진다.

'‘만족할 줄 알면 모욕을 당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 오래 갈 수 있다.’ (도덕경)

 

 

 

 

 

p96

천지를 화사함으로 뒤덮는 꽃철도 한때다. 꽃들은 피어나며 벌써 질 때를 가늠한다.

조지훈은 「낙화」라는 시에서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고 노래한다.

꽃잎이 떨어지는 것은 바람의 심술 때문이 아니다.

져야 할 때를 알고 지는 게 꽃의 숙명이니 바람은 꽃이 혼자 떨어지는 수고를 덜어줬을 뿐이다.

세상만물은 천지의 시각과 그 본성으로 움직인다. 그게 자연의 순리다.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더라’고 했던 시인의 마음에 공감한다.

 

 

 

 

 

p168~

두 사람은 양을 치다가 양을 잃어버렸다.

그 까닭을 묻자 은 양을 칠 때 책을 읽고 있었다고 했으며, 은 양을 칠 때 놀음판에서 놀고 있었다고 했다.

이 두 사람이 한 짓은 달라지만 양을 잃러버렸다는 점에서는 같다.

백이는 수양산 아래서 이름을 위해 죽었고, 도척은 태산 위에서 이익을 위해 죽었다.

두 사람이 죽은 것은 달라도 생명을 해치고 천성을 상하게 한 점은 같다.

왜 백이는 옳고 도척은 그르다고 하는가?

장자는 "도척과 백이는 다 같으며 거짓되고 치우친 것이다" 라고 말한다. (「변무」)

본성을 버리고 인의를 따르는 사람은 자기 귀로 듣지 않고 남들의 귀로 듣고,

자기의 눈으로 보지 않고 남들의 눈으로 본다. 스스로 보지 않고 남들의 눈으로 보고,

스스로 만족하지 않고 남으로 만족하는 이들은 결국 남들이 가는 곳으로 갈 뿐 자기의 길을 가지 못한다.

인의는 관념과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관념과 생각은 개념을 낳고, 개념은 통념을 세운다.

그러나 본성은 관념과 생각 이전에 생명에서 비롯하는 '마음속 마음'의 활동이다.

 

 

 

 

p210

"쓸모 없음을 알아야 쓸모 있음을 말할 수 있지. 땅은 한없이 넓지만 사람에게 쓸모 있는 땅은 발이 닿는 만큼 뿐일세.

그렇다고 발이 닿는 부분만 남겨두고 그 둘레를 모두 없애면 그 쓸모 있는 땅이 그래도 정말 쓸모있는 것일 수 있겠는가?"

(「외물」)

흙으로 빚은 그릇도 안이 비어 있어서 그릇으로 쓸 수가 있고, 방도 비어 있으니 방으로 용도가 되는 것이다.

있음은 이로움의 바탕이 되고 없음은 쓸모의 바탕이 된다. (도덕경_)

쓸모없음이란 그 대상의 쓸모가 아직 발견되지 못한 것, 그래서 쓸모가 확정되지 않음을 말한다.

 

 

 

 

 

p247~

여자가 고독을 향유하지 못하는 것은 고독을 재앙이라고 여기는 까닭이다.

간혹 무리에서 떨어져나온 여자는 고독이 아니라 우울과 자기연민 속에 스스로를 가둔다.

고독은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안락의자가 아니다. 고독은 실존의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울함은 나태한 순간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다.

고독은 범용한 영혼이 꿈꿀 수 없는 비상한 철학이며 형이상학적 도취다.

정말 고독한 자는 타인에 대해 너그럽고 자신에게는 엄격하다.

많은 남자들도 삶의 무게와 욕망에 짓눌려 타고난 내면의 형질이 뭉개진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만자들은 졸렬할 뿐이다.

졸렬한 자들은 애써 고독을 외면하고 주색과 도락 속에 제 영혼을 담근다.

강한 남자만이 고독을 추종하고 고독을 품에 안는다.

 

 

 

 

 

p280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원하지만 정작 행복한 사람은 드물다.

왜 그럴까?

행복을 이루는 원소들을 쓸데없는 걱정과 두려움과 우울증과 스트레스에게 뺏겨버리기 때문이다.

누구나 살면서 겪는 기쁨과 괴로움의 총량은 엇비슷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햇빛만 비추고 어떤 사람에게는 비만 내리는 경우는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을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불행하다. 불행한 사람은 그냥 불행한 것이 아니라 몹시 불행하다,

그들은 행복을 꽉 틀어쥐어 제 것으로 붙잡지 못하고 흘려보낸다.

그런 사람들은 행복이 팡파레를 울리며 거찬하게 다가오는 줄만 안다.

행복을 쉽게 놓치는 사람들은 걱정거리들이 어디로 도망갈까 두려운듯 꽉 움켜쥐고 놓지 않는다.

요컨대 행복은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이고 느낄 줄 아는 능력의 문제다.

 

 

 

 

 

 

 

 

전에는 책을 옮겨적는 이유가, 잊어버릴까봐서, 훗날 인용할 일이 있겠다 싶어서, 였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옮겨 적는 순간이 행복해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