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15. 09:55ㆍ詩.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셈하면서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에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졸라매어 지고 가나
화려한 꽃상여에 만인이 울며 가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속에 가기만 하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쌀쌀한 바람 불 때,
누가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 휘파람 불 때 뉘우친들 무엇하리
- 정철, 장진주사」
마지막 귀절, “원숭이 휘파람”이라는 표현은 아주 못마땅하다.
송강은 원숭이를 본 일이 없을 뿐더러 동시대 독자인들 그런 이국 짐승을 알 리 만무한데 왜,
그것도 마지막 귀절에 넣었는가?
만약에 ‘송장메뚜기 뛰놀 때’라고 했으면 확연히 그 의미가 살아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여기서 송강과 송강시대 지식인들의 한 단면을 본다.
모든 것을 자기 정서에 내맡기지 못하는 불안감,
뭔가 남 모를 유식한 끼가 있어야 차원이 높아 보이고,
이국적인 냄새도 약간 풍겨야 촌스러움을 벗어날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나는 자신감의 상실증인 것이다.
나는 송강의 이 허구성을 우리 시대의 민족문학, 민족예술에서도 수없이 보아왔다.
평론, 시, 그림, 음악, 연극 모든 분야에서 부질없이 유식한 체하기도 하고
모더니즘 냄새를 풍기고 인용하지 않아도 좋을 명저의 귀절을 인용하는…….
지금 내 처신과 글 속엔 그런 ‘원숭이 정서’는 없는가 스스로 되물으며 섬뜩해 하곤 한다.
※
1989년 가을, 나는 명옥헌을 처음 찾아가보았다. 이렇게 훌륭한 원림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서.
내 친구 황지우가 명옥헌 연못가에 농가로 이사해서 헛간을 개조해 집필실로 삼고 있다기에 그를 만나러 간 것이었다.
황지우, 그는 다른 복은 몰라도 眼福은 많은 시인이다.
그의 시에 회화성이 강한 것도 나는 그의 안복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 보고 즐기는 데 대한 욕심도 많다.
그 덕에 그는 지금 사실상의 명옥헌 주인, 최소한 사용자가 된 것이다.
나는 황지우의 모든 것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간혹 그에게도 정철의 원숭이 정서가 삐져나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미술평론을 쓰는 걸 보면 김경주와 신경호의 예술을 논하면서 그 화가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매개로 해서 자신의 미학을 말하는 사나운 개인주의적 욕심이 지나치다.
지금 명옥헌에 마련한 자신의 작업실 바깥 유리창을 통유리로 끼워넣고서
주변을 끝까지 점유하려는 모습도 올바른 작태가 아니다.
이 낭만의 명소에서 그는 과연 어떤 시를 쓸 것인가. 그것이 나는 자못 궁금했다.
仙境 같은 곳에 묻혀 시상에 변동이 일지 않을까 걱정도 해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여기에서 스스로도 명작이라 자부하는 「화엄광주」를 썼다.
‘그때에 온 사찰과 교회와 성당과 무당에서
다 함께 종이 울리고
집집마다 들고 나온 연등에서도 빛의
긴 번종소리 따라 울리리라…
땅에서 환호성, 하늘에서는
비밀한 불꽃 빛 천둥 음악
마침내 망월로 가는 골목 산수에는
기쁜 눈으로 세상 보는 보리수 꽃들
푸르른 억만 송이, 작은 귓속말 속삭이고…’
아니, 무에야? 그럼 명옥헌 입구에 있는 그 볼썽 사나운 집이 황지우 꺼였단 게야!
아니, 이런 황당무계한 일이 있을 수 있나?
'
'
어???? 아닌 것 같은데?
입구에 그 집이 아닌데?… 연못가에 이런 집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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