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4. 19:51ㆍ산행기 & 국내여행
군산에 있는「근대 역사 박물관」이 아니라 『군산 근대 역사 박물관』입니다.
전주도 그렇고, 군산도 그렇고, 전라도를 가보면 뭔가를 해보려는 노력이 눈에 보입니다.
外地人을 불러들일 나름의 꺼리 만들어서 돈을 얼마래도 벌어보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단 거죠.
그런데 충청도 · 대전은 영 아닙니다.
특히 제가 사는 대전은 보여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민망해요. 외려 있는 것도 못 써먹어요.
대전 엑스포장 흉물 돼버린 거 아시지요?
전국 어디에도 대전 엑스포장 만한 좋은 입지조건을 갖춘 곳은 없을 겁니다.
한강(漢江) 못지 않은 갑천(甲川)을 끼고 있지,
대전 시민 뿐만 아니라 전국의 어디에서도 접근성이 용이하지,
기본 인프라 돼 있겠다, 금싸라기 땅임에도 시유지겠다, 수만 평으로 공간 널널하겠다,,
그런데도 10년 넘게 팽개쳐놓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중입니다.
대전은 공무원이나 시민이나, 줘도 못 먹습니다.
반면에 전라도 고창 청보리밭이나 함평 나비축제장, 전주 한옥마을 등등 보십시요.
전라북도 지자체장과 도민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물류유통 중심지였던 군산의 과거를 확인 하고, 이를 통해 군산의 현재와 미래를 통찰하는 공간입니다.
해양물류역사관은 ‘국제무역항 군산’, ‘삶과 문화’, ‘해상유통의 중심’, ‘해상유통의 전성기’, ‘근현대의 무역’, ‘바다와 문화’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연출공간에 관련 유물과 영상을 배치하여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그물 추
▲ 기증자전시실
↑ 이삼만 선생 글씨
(베낀글)
추사 김정희가 유배가던 길에 있었던 일로 두가지 전설이 전해진다.
하나는 전주를 지날 때 그곳의 이름난 서가 창암 이삼만을 만난 얘기다.
창암은 전형적인 시골 서생으로 요즘으로 치면 지방 작가였다.
원교의 글씨를 본뜬 창암의 글씨는 속칭 ‘유수체’라 하여 그 유연성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그 흐름이 도도하지 못하여 영락없이 시골 개울물 같은 면이 있었다.
그래서 꾸밈없고 스스럼없는 천진스러움의 진국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런 창암이 완당에게 글씨를 보여주며 평을 부탁한 것이다.
완당은 이때까지만 해도 최고의 붓과 종이로 글씨를 쓴 '스타일리스트'였기 때문에
창암의 개꼬리를 훑어내어 만든 붓으로 쓴 글씨를 보고 일순 당황했을 성 싶다.
그때 창암은 완당보다 열여섯이 더 많은 71세의 노인이었다.
현장엔 그의 제자들이 쭉 배석해 있었다.
창암의 글씨를 보면서 완당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윽고 완당이 입을 열었다.
"노인장께선 지방에서 글씨로 밥은 먹겠습니다."
창암은 완당이 삽짝을 닫고 나가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한다.
"저사람이 글씨는 잘 아는지 모르지만 조선 붓의 헤지는 멋과 조선 종이의 스미는 맛은 잘 모르는 것 같더라."
전주를 떠난 완당은 해남 대둔사로 향했다.
절마당에서 대웅전을 바라보니 '대웅보전(大雄寶殿)' 네글자가 원교의 글씨였다.
완당은 초의선사를 만난 자리에서
"원교의 현판을 떼어 내리게! 글씨를 안다는 사람이 어떻게 저런 것을 걸고 있는가!" 하고
지필묵을 가져오게 해 힘지고 윤기나며 멋스러운 글씨로 ‘대웅보전’ 네 글자를 써주며 나무에 새겨 걸라고 했다.
완당은 붓을 잡은 참에 '무량수각'이라는 현판 횡액을 하나 더 써주었다.
이 두가지 전설은 완당 자신만이 최고라는 생각을 갖고 원교의 글씨를 낮추어보는데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 동안 누렸던 특권층의 삶과는 거리가 먼 척박하고 고독한 유배생활 8년3개월을 보내면서
예스러운 멋과 회화적 조형미를 동시에 보여주는 '입고출신(入古出新)'의 세계를 갖추게 된다.
해배되어 돌아가는 길에 완당은 대둔사에 다시 들러 떼어내리게 했던 원교의 대웅보전 현판을 다시 걸게 했으며,
전주에 들러 창암 이삼만을 찾았으나 그때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일제의 강압적 통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치열한 삶을 살았던 군산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한 공간입니다.
근대생활관은 ‘도시의 역사’, ‘수탈의 현장’, ‘서민들의 삶’, ‘저항과 삶’, ‘근대건축물’, ‘탁본체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연출공간에는 1930년대 군산의 모습을 재현하여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만경평야, 김제평야, 논산평야에서 나오는 쌀은 강경·익산 경유해서 군산으로.....
탁본 뜨는 거
막노동꾼 중에 일본인이 30%나 되었다더군요.
이거 의미심장한 통계입니다. 그만큼 한·일 간에 밀착된 관계였었단 얘깁니다.
셀프 촬영하는 겁니다.
여기에 자기 이메일 주소 적고 안에 들어가서 자세 잡고 스위치 누르면 됩니다.
1930-40년대 군산시 배경으로 찍힙니다.
옛날 극장 모습들은 다 똑같았나 봐요?
우리 집에 있는 것은 가운데 꺼. 유성기라고도 했습니다.
아이스케키 통 안에는 결국 스티로폼인데, 건축자재로 쓴 건 못봤거든요.
지금 생각하니 희한하네요?
저는 왕자파스보다 지구 크레파스를 더 썼습니다.
로리타, 잘 지내고 있겠지. 입 엄청 간질거릴 거인디.....
이제 밖에 나온 겁니다.
해양박물관이 옆에 또 있습니다.
군산에는 일제시대 건물이 꽤 남아 있습니다.
군산은 하루 여행 꺼리로 괜찮은 곳입니다. 먹거리도 훌륭하고요.
군산에서 10여분만 가면 서천 국립 생태식물원이 있습니다. 가깝죠.
서천으로 돌아오는데, 차가 꽉 막힙디다. 거기 가는 차들일겁니다.
서천 생태식물원을 먼저 보고 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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