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디아 코마네치, 비하인드 스토리 아세요?

2013. 10. 15. 20:05발칸반도

 

 

 

 

 

 

코마네치는 1961년 11월12일 루마니아 오네슈티에서 노동자인 어머니,금속노동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까지는 평범한 소녀로 자랐지만 여섯 살 때 벨라 카롤리 코치의 눈에 띄어 체조에 입문하게 되었다.

1975년 세계대회에서 4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획득하면서 1위에 올랐다.

열네 살에 코마네치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출전했다.

거기서 이단 평행봉 연기로 사상 최초의 10점 만점을 받아 전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더니,

10점 만점을 여섯 차례나 더 기록하며 결국 금메달 셋, 은메달 하나, 동메달 하나을 획득했는데,

이는 신이 아니고서는 10점 만점의 완벽한 플레이를 할 수 없다는 체조계의 불문율에 비춰볼 때 충격적인 결과였다.

즉 심판들이 앞으로 ‘이보다 더 뛰어난 플레이는 없다’는 뜻에서 만점을 준 것이다.

공산독재국가였던 루마니아의 국민적 영웅이 되어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1976년 이후... (중략) ... 루마니아체조연맹은 카롤리 코치와 코마네치를 당분간 떼어놓은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그녀는 훈련을 하면서 대학 수업을 받기 이해 수도인 부쿠레슈티로 떠났다.

이후의 여섯달을 코마네치는 훗날 자신의 삶에서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회고한다.

사춘기인데다 과식까지 해서 살이 10kg나 찌고, 부모님도 삐걱거리더니 결국 두 분이 이혼하기로 한 것이다.

(중략) ... 1978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위에 그치는 부진함을 보였고, 언론은 그녀가 끝장났다고 평했다.

하지만 그녀는 불과 다섯달 뒤에 유럽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1980년 모스크바에서 올림픽에서는 평균대와 마루운동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개인종합 준우승을 하였다.

 

1984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스포츠 광장에서 은퇴하였으며, 그해 LA 올림픽에는 루마니아 코치로 참석하였다.

이후 1989년 미국으로 망명하였으며, 1996년 미국 체조선수 출신인 버트 코너와 결혼하였다.

현재 오클라호마주 노먼에서 남편과 함께 체조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모델과 자선활동을 하고 있다.

2006년 6월에 버트 코너와 나디아 코마네치는 그들의 아들, 다일렌 폴 코너를 탄생시켰다.

다일렌은 조숙아로, 태어날 당시 크기가 17.5인치였다. 그는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고 있다.

나디아와 버트는 버트 코너 기계체조 아카데미, 국제 기계체조 잡지사, TV 프로덕션 회사, 기계체조 장비 회사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자선 행위는 매우 방대하기로 유명하며 자선 행사를 위해 루마니아를 종종 방문한다.

 

(출처. 위키백과사전 발췌)

 

 

 

 

 

 

 

자, 다시 시작합시다.

 

 

독재자 차우세스쿠에게 망나니 아들이 있었답니다.

이름이 ‘니꾸(26세?)’라고.

차우세스쿠 내외에겐 아들 둘에 딸이 하나 있었는데 셋째놈입니다.

(* 장남은 꼴통식구들과는 멀리하며, 홀로 착실한 과학자 ·기술자의 길을 걸었답니다.

지금도 생존해서 활동하고 있고 국민들의 평판도 괜찮다더군요.)

그런데 니꾸는 어떤 놈이냐?

MBC 드라마『무신』에서 최우 아들 최항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 루마니아 민주혁명 뒤에 감방에 2년간 있다가 간암으로 죽습니다.)

 

 

니꾸가 코마네치에게 손을 댄 것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이후였던가 봅니다

세계인의 요정이자 루마니아 국민영웅인 그녀를 당장에 손대긴 어려웠을 겁니다.

여론이 잠잠해지자, 코마네치를 불러다 놓고는 온갖 악행을 다 저질렀답니다.  

예를 들자면, 체조선수들 평균대에서 배를 위로 향해 활처럼 휘는 동작이 있잖습니까?

코마네치에게 그렇게 시켜놓고 배에다 담배 재떨이를 얹어놓는답니다.

힘들어서 움직이면 담배를 계속 더 피우는...... 악질!

그렇게 시달리던 코마네치가 결국엔 불임 여성이 되고 말았죠.

 

 

이런 상황을 루마니아 체조관계자들이 왜 몰랐겠습니까. 

코마네치를 키워준 카롤리 코치가 미국 국가대표 코치에게 전후사정을 알려주면서,구해달라고 SOS를 쳤답니다.

미국인 코치는 정부기관에 은밀히 보고를 하지요.

미국 정보기관 담당자들이 회의를 거듭한 끝에 코마네치를 빼오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CIA 요원 세 명을 급파견하기로─.

당시 루마니아는 북한과 같은 5호담당제의 철통감시 체제였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죠.

농부로 변장을 하고 헝가리 국경을 통해서 들어갔답니다.

 

용케 코마네치를 탈취해서는, 낮엔 산 속에 숨어 있다가 밤에 걷고, ..... ,

그렇게 한 달여간을 걸어서 탈출에 성공합니다.

마지막엔 헝가리 국경에 대기시켜 놓은 헬기를 타고...... 비밀리에 캐나다를 거쳐서 미국으로.

그리고 망명 사실을 "한참 뒤늦게", "은근슬쩍", "슬며시", 그리고 "미국이 당사국이 아니라는" 식으로 발표했죠.

세계언론도 조용했습니다. 협조를 한 거였죠.

 (돌이켜 보세요, 당시에 떠벌린 언론이 없었잖아요.)

.

 

그런데 코마네치의 비극은 여기서가 끝이 아닙니다.

 

물론 탈출시킨 미국정부에서 코마네치에게 정착금이야 주었겠죠.

허나, 코마네치 부모님과 벨라 카롤리 코치는 루마니아에 그대로 남아 있잖습니까.

온전했겠습니까? 

코마네치가 온통 그 생각으로.... 점차 마약에 빠져들게 됐다는군요.

그런데 이 대목이 좀 이해가 안되긴 합니다.

코마네치 주위에 돌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단 얘기잖아요.

 

 

어쨌든 혼자라고 치고 ─,

마약 살 돈이 떨어지자 처음에는 서커스에 기웃거렸답니다. 

허나, 다 망가진 몸으로 서커스인들 제대로 했겠습니까? 얼마를 못 버티고 쫒겨났지요.

그리고는 이류에서 삼류 무대로, ............ ,

나중에는 저질스런 나이트클럽까지 전전했다는군요.

바로 그 시절,, 그걸 우연히 미국의 동년배 체조선수가 발견한 거였습니다. 

- 이름이 버트 코너

- 국제대회에서 코마네치를 먼발치서 짝사랑했었다는.

 

 

버트 코너는 코마네치의 그런 모습을 보고도 연정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넌 반드시 재기할 수 있어!” 라며 끈질기게 설득했다는군요.

마침내 버트 코너의 진정성이 받아들여지고......, 

마약을 끊고, 기나긴 악몽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곤 피나는 재활 노력 끝에 국가대표 코치겸 선수가 되었습니다.

미국이 갑자기 여자 체조강국이 된 배경입니다.

 

 

해피엔딩이죠?

아닙니다. 해피엔딩도 여기서가 끝이 아닙니다.

돈을 벌기 시작합니다.

광고에 코마네치 얼굴만 떴다 하면 다 대박이 났답니다.

얼마 걸리지 않아서 금방 돈방석에 앉았죠.

코마네치, 버트 코너, 그리고 사업가 한 명,, 본격적으로 동업으로 사업을 벌립니다.

당연히 코마네치를 얼굴마담으로 하는 스포츠 관련 사업입니다. 승승장구하죠.

“어? 이러다 코마네치 놓치는 거 아녀?”

맘이 급해진 버트 코너가 마침내 코마네치에게 청혼을 합니다.

코마네치는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죠. 

조건을 답니다. “결혼식은 꼭 차우세스쿠 궁전에서 해야겠다.” 

복수하겠단 거죠.

 

드디어 그 날이 찾아옵니다.

1989년 루마니아 민주시민혁명이 성공을 거둡니다.

차우세스쿠가 총살당해 죽죠.

완공이 덜 된 차우세스쿠 궁전에서, 루마니아 국민들의 축복을 받으며,

성대하게 결혼식을 올렸답니다.

 

 

해피엔딩이 또 하나 더 있습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라던 코마네치가 아들을 낳았다는군요.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답니다.

코마네치는 버는 돈, 거의 전부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쓴다고 합니다. 

인기가 짱이죠. 정치권에서 연신 러브콜을 보내는데 

정치는 절대로 안하겠다고 선언했답니다.

 

 

 

 

 

 

 

 

 

 

 

 

 

 

 

「차우세스쿠 궁전」입니다.

단일 건물로서는 미국 펜타곤 다음으로 세계에서 큰 건물이라더군요.

현재는 국회의사당으로 쓰고 있습니다.

지상 84미터의 언덕에 위에 지은 12층 건물입니다.

건물 앞면이 270미터, 세로면이 245미터입니다.

놀라운 점은 불과 5년인만에 지은 거라는 거죠. 20만명이 매달려서 3교대 했다는군요.

안에는 온통 흰 대리석이랍니다.

공사비가 1조 5천억원 가량. (지금으로 치면 5조원이 넘는다는....)

그리고 지하 92미터 밑에 핵 벙커 시설을 만들고,

거기서 다시 굴을 파서 10 km가 넘는 거리의 공항까지,

아무도 모르는 지하 터널을 만들었습니다.

북한 인부들이 땅굴작업을 했답니다.

김일성과 차우세스코는 의형제간입니다. 물론 김일성이 형이죠.

 

 

 

 

 

 

 

 

 

 

 

차우세스쿠 궁전 옆에 있는 이 건물은,

마누라 에레나 차유세스쿠가 수장으로 있던 과학원 건물입디다.

에레나 차우세스쿠는 필리핀의 이멜다 마르코스 같은 여잡니다.

사치와 허영, 간교함과 표독스러움,, 남편 차우세스쿠를 쥐고 흔들었다네요.

내외가 평양의 김일성 궁전을 보고 만든 거랍니다. 물론 마누라 에레나가 떼를 쓴 거죠.

루마니아 재정형편으론 큰 무리였습니다. 차우세스쿠는 망설였답니다.

민주화의 열망보다도 이 공사로 인한 경제 파탄으로 망한 겁니다.

당시 루마니아 국민소득이 7,000불이었는데,

이걸 짓느라 모든 곡물을 내다 팔다 보니 빵 품귀현상이 일어났답니다.

루마니아는 풍족한 농업국가입니다. 

 

 

 

 

 

 

 

 

 

 

 

 

 

 

아직 관광객에게 개방을 안합니다. 그래서 들어가보지는 못했는데,

방이 총 1,100개랍니다.

아직 가구를 다 들여놓지 않아서 텅 빈 방이 대부분이라네요.

차우세스쿠가 89%의 공정 상태에서 죽은 겁니다.

잠을 자보지는 못했지만 국제회의를 한 번은 열었었다더군요.

 

가장 큰 방은 700 평이나 된다는데, 그 방에는,

500kg 짜리 금사 은사로 짠 커튼이  두 개가 걸려 있고, 

카펫은 무게가 3톤이나 돼서 현장에서 제작을 하였답니다.

그리고 천정을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개폐식으로 만들어 놓아서

방에서 곧바로 헬기를 타고 나갈 수가 있답니다

 

전면의 커다란 발코니 보이십니까?

올라가서 보면 무지하게  넓답니다.

거기에 마이클 잭슨이 올라서서  "헬로 부다페스트!" 라고 외쳤다가 망신을 당했다네요.

그리고 이 광장에서 파바로티가 공연을 했었는데,

관객이 없어 이유를 물으니, 돈이 없어서 전부 건물 속에서 본다는 듣고는

파바로티가 자비로 관람료를 대신 물어줬답니다.

 

 

 

 

 

 

 

 

 

궁전 앞에는 큰 도로와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넓은 광장이 있고,

광장 전면에는 이와 같은 큰 건물이 좌우로 있는데,

그것은 차우세스쿠의 충성스런 똘만이들을 위해서 지어준 것입니다.

현재는 관공서로 쓰이고 있습니다.

여기엔 원래 수많은 집들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종교 등의 중요한 유적이 많아서

모든 사람들이 뜯어말렸는데도 차우세스쿠가 싹 밀어버리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이 널찍한 도로는 프랑스 샹제리제 거리를 본떠서 만든 것입니다.

복판에 분수가 40개라나 400개라나.

똑같이 만든 개선문도 있구요.

여기도 그렇지만 부쿠레슈티에는 녹지와 공원이 아주 많습니다.

루마니아를 공원 중심의 문화라고 한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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