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이별

2013. 5. 8. 12:59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셋

 

 

 

 

 

이거 조화 아녀. 이래봬도 생화여. 냄새도 잘 나.

어버이날이라고 큰놈 작은놈이 와서 같이 달아주데?

이따가 헬스 갈 때도 달고 가서 자랑해야지. ㅋㅋ

‘부모님 은혜’ 노래도 시킬까?

 

 

 

 

 

 

울동네에 며칠 전에 미국에 사시는 할머니가 한 분 오셨는데, 

(십 몇년 전에 큰아들네 따라가서 워싱턴에 사신다데.)

자식들도 볼 겸해서라곤 하는데… 백내장 수술하러 오셨다더군.

오셔서 서울에 사는 작은아들네집서 보름여간 머물다가 대전 딸네집엘 오신 건데,

들어보니 서울 사는 아들네도 살기가 넉넉지 않은 모양인데, 대전 딸네도 많이 어렵거든.

대전 딸네 형편은 이웃이니까 내가 잘 알지.

그러니 양쪽집 모두 대접이 변변치 않을 수밖에.

서울 아들네랑은 식당 가서 꽃게탕을 잡수셨다는데 꽃게가 달랑 한 마리만 들었더라나?

그 얘길 들으니 ㅠㅠ.

할머니가 나처럼 꽃게를 좋아하신다데. 사실 우리 서해안 꽃게 같은 건 흔치 않긴 하지.

할머니가 이번에 고국엘 처음으로 와보셨다니깐, 미국 사는 아들네도 생활이...... 미용사라는 것 같던데.

백내장 수술件이 아니었다면 다녀갈 맘을 먹지도 못했을 거야.

그러니 오랫만에 왔다해도 이집 저집에다 선물꾸러미 돌릴만한 처지도 못 되셨을테고.

암튼 대전에서 한 열흘간 묵고 가셨지. 그러고는 서울로 되돌아가서 사나흘 더 있다 가신다더군.

그제 저녁이 되나? 그러니까 떠나기 전날 밤이지. 모녀가 함께 붙잡고 많이 울었다네.

당연하지. 할머니가 팔순이시니, …  마지막이지…  이런게 바로 생이별이란 거지. 

손자 손녀 애들까지도 덩달아 엉엉 울었다더군. …  거참.

작년 속초 누님이 한 달여간 어머니 간병하다가 돌아가던 때가 생각나네.

누님도 그때 소리 죽이며 꽤 울었지. 의식 없는 어머니 양 손을 붙잡고서 말이야.

그러니 외국 만리타향에 떨어져서 사는 사람들의 맘은 어떻겠어.

내 아는 사람 하나가

 

 

즐겁지도 않은 얘기, 그만 합시다.

 

 

 

 

 

 

그런데 이 카네이션은 언제까지 달고 있어야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