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구경 한번 해봐얄텐데.....

2013. 2. 6. 10:18책 · 펌글 · 자료/예술.여행.문화...

 

 

 

제239차 무심재클럽 여행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바다로 가는 눈꽃 열차

 

 

눈이 내리는 날이면 기차를 타고 순백의 설원을 달리는 상념에 젖는다.

그런 날이면 폭설의 산야를 헤매는 '닥터 지바고'가 생각나고

눈 속에 갇힌 산협의 마을을 찾아가는 '설국'이 그리워진다.

또 눈 내리는 밤 사랑하는 여인 나타샤와 함께

흰 당나귀를 타고 깊은 산골로 들어가

세상을 잊고 살자던 백석의 시가 읊조려 진다.

눈이 내려서 강원도 산골로 가는 길들이 끊기고

고립무원의 오지마을 겨울살이가 뉴스를 장식할 때

우리의 마음속 간절한 바램은 훌쩍

기차를 타고 겨울 나그네가 되어 떠나고 싶은 것이다.

그때 우리의 손에 쥐어지는 익숙한 도시의 이름이 태백이다.

청량리 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를 지나고

원주 치악산을 감돌아 산촌 풍경으로 접어든 후

영월을 지나면서부터는 하늘도 세평 땅도 세평이라는 강원도의 깊은 산골로 스며든다.

태백으로 가는 기차는 대지를 질주하며 달리는 것이 아니다.

덜컹거리며 하나의 풍경이 되어 적막한 산골마을에 이웃처럼 스며든다.

꼬랑지가 둘둘 말릴 정도로 굽잇길이 많아질 때면

처마 밑에 옥수수 몇 단 매달린 외딴집에 인사를 건네고

바쁠 것도 느릴 것도 없이 뉘엿뉘엿 산 그림자를 타고 넘는다.

그해 겨울, 광부들의 보금자리였던 사북과 고한을 지나

해발 1,573미터의 함백산 터널을 통과하자 태백은 순백의 눈꽃이 피어난 별천지였다.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자 거짓말처럼 눈이 퍼붓기 시작하여

객차 안은 탄성과 함께 환희에 젖던 설국이었다.

이 땅의 산줄기와 물줄기가 시작하는 태백은

석탄 산업이 호황기를 누리던 시절 만들어진 도시이지만 지금은 많이 쓸쓸해 졌다.

동쪽으로는 백병산 토산령, 북쪽으로는 천의봉 삼수령,

서쪽으로는 함백산 태백산, 남쪽으로는 문수봉 박월산,

고원의 도시답게 태백은 산이 푸짐하다.

어느 한곳 뚫린 곳 없이 산이 에워싸고 있어

겨울이면 눈의 고장이 되어 여행자를 불러들인다.

태백산 주목군락지의 눈꽃을 찾는 등산객을 내려주고

기차는 동해나 강릉으로 가는 여행객 몇을 싣고 산맥을 넘는다.

통리나 도계 나한정 역을 지날 때 기차는 숨을 헐떡이는 노인네처럼

멈칫거리며 버려진 목탄차들의 스러져 가는 풍경을 어루만져주기도 한다.

잠시 눈이 그친 사이, 산맥을 넘어 온 기차는

인생의 신산고초를 다 겪은 사람처럼 호젓해진다.

오십천이 절벽에 부딛혀 감도는 신리 역을 지나면서부터

어느새 바다와 벗하며 어부들의 마을을 지난다.

창 너머에는 쪽물 든 깃발 한 장이 펼쳐 있고

그 바다의 끝자락에 비명같은 수평선이 그어져 있다.

바다와 하늘 그 광활한 공허 속으로 바퀴도 레일도 없이 기차는 달려가는 듯하다.

덜컹거리며 덜컹거리며 내 삶의 기차는 어디 쯤 지나가는 것일까.

막막한 질문 하나를 겨울바다에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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