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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홍콩 미술품경매시장에서 한국화가의 작품이 고가에 팔렸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이제 생각하니〈마릴린 먼로 vs 마오〉란 작품의 제목이 기억납니다.
당시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을텐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제대로 못 찾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아, 바로 이 양반이었군요. 반갑네요, 목원대학교는 제가 사는 곳에서 가깝습니다.
아직 다 읽은 것은 아니고 이제 겨우 몇 장 넘겨보는 중인데, 자서전으로 쓴 책입니다.
그런데 화가가 직접 쓰진 않은 모양입니다. 문장이 얼음판 미끄러지듯 매끄러운 게 전문 글쟁이 솜씹니다.
어쩐지 엮은이가 따로 있군요. 문예창작과 출신 프리랜서 작가랍니다. 이름은 김선희.
암튼 책은 잘 썼고요, 그리고 책을 예쁘게 잘 만들었습니다. 미술가의 책다웁습니다.
다 읽었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갤러리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선생님, <꽃과 여인>이란 작품을 기억하시죠?”
2000년도에 논산 작업실에서 작업했던 작품이었다.
“그 작품이 시장에 나왔다는데, 알고 계셨어요?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도 있어서 흥정 중이라던데요.”
그 작품이라면 대학 동창이 논산의 작업실로 나를 여러번 찾아와 조르고 졸라서 구매해간 작품이었다.
그림을 팔 마음도 없는 나를 지극정성으로 설득해서 가져간 것이었다.
그런데 무슨 연유로 그 그림을 팔려고 내놨을까?
팔려던 사연보다도 <꽃과 여인>만큼은 다른 누구에게 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못 판다고, 내가 사겠다고 했다.
그 그림은 내가 반드시 돌려받을 것이고, 얼마가 됐든 간에 무조건 사겠다고 말했다.
결국 나는 번잡한 과정을 거쳐 거금의 돈을 주고 내가 그린 <꽃과 여인>을 되찾게 되었다.
<꽃과 여인> 2000. 캔버스에 아크릴 162.2 x 130.3 cm 화가 본인 소장
1990년대에 나는 다양한 기법을 시도하며 나만의 스타일을 구축해나갔다.
여러 작업을 하다가 찾게 된 스타일은 무심하고 무정한 느낌의 점과 도형을 반복하여
어느 형상을 캔버스에 그려내는 작업이었다.
수많은 점들이 모여 안중근 열사가 되기도 하고 여인의 모습으로 탄생하기도 하였다.
이런 작업은 꾸준한 집중력과 노동력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이런 반복의 고단함을 캔버스에 옮겨놓고 지친 눈으로 밖을 쳐다보면
창밖의 나비는 바람을 가르며 날았고, 꽃들은 땅에 단단히 뿌리 박고 춤을 추듯 한들거렸다.
멍하니 응시하던 나는 무심한 점들과 도형에서 벗어나 자연의 생동함을 화폭에 담고 싶어졌다.
진짜로 살아 숨 쉬는, 호흡하며 제멋대로 살아가는 자연을 그려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리기 시작한 작품이 <꽃과 여인>이었다.
<꽃과 여인>은 내 작업과정 중에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그 작품을 시작으로 이미지의 결합을 무생물에서 자연의 소재로 대체하게 된 것이다.
<꽃과 여인> 2003. 캔버스에 아크릴 162x112cm.
변화도 없고 늘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그 일을 견뎌내며 나도 모르게 진보하는 것,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의 진화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
이런 과정 속에서 예술가는 성장하고 제 길을 찾아 제 뜻대로 살게 되는 것이다.
다른 이에게는 나의 작업이 점에서 꽃으로 변화를 하든 말든 의미 없는 것이겠지만,
나에게는 놀라운 진보였고, 그랬기에 <꽃과 여인>은 내게 돌아올 운명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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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그림으로써 생각과 이미지를 전달해야 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왜 저렇게 그린 것이냐?” “어떤 의미를 지니느냐?” “기법이 뭐냐?”
“저런 화풍은 언제부터냐?” “어떤 계기가 있느냐?” 라고도 물어온다.
그러면 어찌 대답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얗게 될 때가 많다.
요즘에는 이런 질문을 골백번도 더 듣다보니 늘 같은 답으로 복습하듯 말하지만
여전히 내겐 어려운 말하기다.
어려서부터 언어가 아닌 사진처럼 이미지를 캡쳐해 기억했고,
그것들은 캔버스에 투사해 보여주기를 반복한 탓에 그럴 것이다.
내가 ‘이중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마릴린 먼로와 케네디의 염문설을 상상해서 그리셨나요?”,
“그럼, 마오쩌둥과 마릴린 먼로는 어떤 관계죠?” 하는 것들이다.
사실 나는 이들의 뒤에 숨겨진 열애설과 인연에는 별 관심이 없다.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가 동료이자 적이 되었던 관계에도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내 그림 속 인물들의 히스토리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마릴린 먼로와 오드리 햅번을 그리는 것은 그들이 하나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내 그림에는 정서나 역사는 없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인물과 인물의 이미지가 겹쳐져서 발하는 일종의 시너지다.
무미건조한 형상들이 오버랩되는 이미지의 창출이다.
나는 그들이 출연한 영화에 열광하는 팬도 아니고 그들이 나온 영화를 전부 본 것도 아니다.
마릴린 먼로의 그림은 이미 오래 전에 앤디 워홀이 작품화시킨 바 있다.
그 이미지는 이미 ‘사용되어진’ 것이다.
한번 상품화된 이미지를 내 것으로 작품화한다는 건,
설사 전혀 다른 기법의 또 다른 작품이라 하더라도 위험할 수 있다.
독창성과 창의력을 의심받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나는 시도하기로 했다.
내 나름의 다른 방식을 입히자 의외로 작업 속에서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비평이란 것도 그렇다.
내가 작품을 전시하고 내 그림에 대한 가치가 공개되면 될수록 많은 견해들이 산을 이룬다.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지 아닌지, 수없이 많은 잣대들이 나에게 드리워진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평가 앞에 화가는 초연해질 필요가 있다.
온갖 루머와 평가에 매달려 나를 잃어서는 안된다.
화가는 그림으로 말해야 한다.
400페이지 되는 책입니다만, 그림이 많고 편집을 잘해서 금방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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