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종가 여행

2013. 2. 8. 20:39책 · 펌글 · 자료/예술.여행.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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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41차 무심재클럽 여행 .
      안동의 종가와 사찰건축 고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한국인의 가슴속에 어김없이 떠오르는 집 한 채가 있다. 마을 한 복판에 늠름한 모습으로 앉아서 크고 작은 집들을 거느리고 있는 기와집 한 채. 높고 긴 담장과 웅장한 자태의 솟을대문, 그 속에선 금방이라도 카랑카랑한 기침소리가 들려올 것 같다. 이런 집을 우리는 종가라 부른다. 씨족집단으로 이루어진 동족마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마을의 구심점이 되어온 이 집은 공동의 조상을 둔 자손들로 이루어진 문중의 맏이가 대를 이어 살아가는 살림집이다. 오랜 세월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을 지탱해온 공동체 의식에는 수평적인 구조의 사회통합을 이루어준 지역주의와 수직적인 형태의 사회통합을 이루어준 혈연주의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 공동체 의식 저변에는 모두 초월적인 존재가 있는데 수평적 통합구조의 구심점은 마을의 수호신인 산신당이나 서낭당, 당산나무, 장승, 솟대 등이 해냈고 수직적 통합구조의 구심점은 혈연의식의 근간이 되었던 조상신이었다. 집안의 사당에는 으레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살아생전의 모습처럼 공경했으며 현실에서의 길흉화복 또한 조상님의 음덕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문중의 대소사는 모두 이런 조상님 모시기 의례로 이루어졌는데 그 중심에는 언제나 종가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종가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전체 부계친족집단을 가리키는 대종가와 4대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소종가, 그리고 대종가와 소종가 사이에 집단적인 동질성을 가지는 파종가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종가를 따지는 역사는 사실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 중기부터 장자중심의 상속제도가 정착되면서 종가가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 받고 또 친족집단을 통합하는 구심점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부분 이런 종가들은 학문이 깊고 벼슬이 높았던 큰 인물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소문난 종가들이 모두 뛰어난 인물들의 고택이거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사대부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우리가 찾아가 볼 수 있는 종가는 전국에 약 50여 곳 정도가 있다.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모두가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양반가의 면모이며 그 속에 담긴 건축적 특성은 전통적인 지리관인 풍수설에 의한 명당터 잡기와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비롯한 유교적인 가치관과 사상을 담고 있다. 특히 우리 전통건축에서 종가는 가부장적 가족제도에 바탕을 둔 유교적 세계관을 건축의 구성원리로 하고 있다. 그 구조는 사랑채 안채 사당 행랑채가 기본이 되고 정자나 별당이 갖추어져 있기도 하다. 이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사대부 집의 구성이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유교적 가치관과 신분사회의 성격을 구현하기 위한 건축적 논리가 반영되어 있다. 먼저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하여 남녀의 생활공간을 나누는 것은 유교적인 내외법에 의한 것이며 행랑채와 사랑채와 안채의 모습은 건물의 생김새와 위치에서 엄격한 신분제 사회의 위계질서를 보여준다. 사랑채에서도 큰 사랑과 작은 사랑을 구별하여 부권의 계승자로서 장자의 지위를 확인시켜 준다. 이름난 종가의 사랑채일수록 대청마루가 크고 넓은데 이는 종가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맞이하여 정성껏 대접하는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에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문중의 대소사를 논의하는 회의도 종가의 대청마루에서 이루어졌다. 또 종가에서 가장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공간은 조상의 신위를 모신 사당으로 주택의 입지에서 가장 신성하고 양명하고 조용한 분위기의 장소에 자리 잡고 있다. 종가에 따라서는 여러 채의 사당이 존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큰 공을 세웠거나 가문을 빛낸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불천위(不遷位) 사당이 있기 때문이다. 불천위는 나라에서 정해주거나 지역의 유림이 결정했는데 이는 가문의 영광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종가는 대개 가문의 영달을 과시적으로 표현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크고 화려한 주거를 지향하고 있으며 대부분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기후나 자연환경, 문벌 귀족들이 집단을 이루고 경쟁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사회적인 환경에 따라서 지역적인 차별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중에서 눈에 띄게 집단적 종가문화의 원형이 살아있는 곳은 경북 안동이다.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수도임을 자처하는 안동지역의 종가들은 그 분위기가 자못 엄숙하고 권위적이다. 조선왕조 5백년의 역사에서 학문의 주류를 형성했던 영남학파의 근거지로 대학자나 세력가를 배출한 고장답게 그 인물만큼이나 위엄을 갖춘 종가들이 많다. 하회마을 풍산유씨 대종가인 양진당, 서애선생의 후손들이 사는 충효당. 천전마을의 의성김씨 대종가, 퇴계종택, 학봉종택, 두류종택, 가일종택, 무실종택 가슴뜨거워지는 독립운동의 사연을 간직한 고성이씨 종택 임청각 등등 그 어느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문화적 깊이와 아름다움이 이들 종가에는 보존되어 있다. 그렇지만 안동의 종가들도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변화에 직면해 있다. 생활기반이 도시로 옮겨가면서 대를 이어 종가를 지켜갈 종손들이 없다.. 제례와 음식 등 생활문화 속의 전통을 이어갈 종부들의 후보자는 찾아볼 수도 없다. 노종손들이 마지막 혼불처럼 종가를 지켜가고 있지만 이제 그분들 마저 떠나버리고 나면 종가는 황량한 빈집에 불과할 것이다. 삶이 떠나버린 곳에는 금방 담장이 무너지고 잡초가 무성해진다. 경제적으로 곤궁해진 집안은 그 큰 집을 건사하기에 힘들고 평범한 촌부로 전락한 후손들이 지켜가기에는 그 역사의 무게가 너무 버겁다. 머지 않아 종가도 서원이나 향교처럼 사람의 인정과 온기를 잃어버리고 문화재 전문 건축업자들에 의해 수리와 보수를 반복해 가며 연명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정신문화 속에서 듬직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종가, 그 고풍스러운 종가의 위엄과 품격, 의젓한 아름다움이 빛을 바랜다고 하니 왠지 모르게 가슴 한켠이 서늘해진다. 그리운 것들이 많아진 시대 사라져가는 우리 시대이 마지막 풍경을 찾아서 다시 안동으로 길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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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지:
      봉정사와 영산암, 천전리 의성김씨 종가마을 고택과 정자, 고성이씨 종가 임청각, 두류종택, 학봉종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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