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 2

2013. 2. 4. 14:46미술/서양화

 

 

 

마르크 샤갈 (Marc Chagall)

1887 - 1985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화가, 색채의 마법사

 

 

 

  

 

20세기 미술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화가의 한 사람인 샤갈의  환상적인 그림들은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동시대의 어떤 미술사조에도 몸담지 않은 가장 독창적이고 신비스러운 작품세계를 만들어왔다뛰어난 상상력과 탁월한 감각으로 색채의 마술사처럼 그가 그려낸 화려한 캔버스를 통해 작가는 "우리네 인생에서 삶과 예술에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은 바로 사랑의 색이다" 라고 말한다. 그가 일생을 통해 추구한 사랑의 메세지를 현란한 색채를 통해 만나게 된다. 사랑의 감정은 가장 독창적이고 신비스러운 작품세계로 다시 태어난다.

샤갈은 말한다. " 나의 작품은 내 추억들이다" 라고. 삶의 희로애락을 그려낸 서커스 풍경과 샤갈 예술의 걸작이라 일컫는 모스크바 유대인 극장 패널화, 그리고 고향 러시아를 회상하는 그림들이 그것이다.

 

 

 

 

 

검은 장갑을 낀 약혼녀 1909 캔버스에 유채 88 X 65.1cm

 

 

6년 후 샤갈의 아내가 될 벨라 로젠펠드를 그린 초상화이다.

이 해에 처음으로 벨라를 그때까지의 여자친구 테아의 소개에 의하여 알게 되어,

그의 영원한 반려자로의 한 여성상을 이 유태 여성으로부터 찾게 되고,

그 선택의 순간을 기념하기 한 초상화로 그려졌다.

 

"돌연 나는 느꼈다. 내가 살아나갈 길은 테아와 함께 라는 것을! 벨라만이 내 아내라는 것을."

샤갈은 바로 전년에 테아를 모델로 한 <빨간 나무>를 거친 표현주의적 묘법에 의하여 그린 것이 있었으나,

그것을 청산하고 이 작품에서는 엄격하고 부드러운 감정이 서로 융화하듯 한,

샤갈의 독자적인 여성미 표현에 있어 최초의 기념할 만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까만 배경 앞에 하얀 의상, 그리고 까만 장갑의 대조에서 기품 있는 화면을 느끼게 된다.

 

 

 

 

 

 

나와 마을 I and the Village. 1911. Oil on canvas. 191 x 150.5 cm. The Museum of Modern Arts, New York, NY, USA.

 

 

 

파리에 나온 샤갈이 처음엔 고갱의 원시적인 생명력에 감화를 받기도 하고,

 고호의 정적인 표현 특성에 영향 받기도 했으나, 곧 입체파적인 화면 분할기가 시작되어

이 작품을 그린 해부터 3년간 그런 작업 계속된다. 이 작품도 그의 마음 속에 깊이 꿈틀거리고 있은

 추상의 이미지를 원과 삼각, 사각형의 기하학적 구성을 통해서 평면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점은 그러한 화면 분할의 수법과, 나와 마을의 거리를

이렇게 친밀화시켜 보여주는 심정에 의한 또 다른 질서의 힘이다. 그 힘은

소와 나를 같은 원 속에 접근시켜 과거와 현의 나를 일체화시키며,

나의 얼굴빛을 푸른색으로 한 것은 후의 <일곱 손가락의 자화상>과 같이 물리적 중심과

 다른 중심을 가진 별세계에 상응하게 하기 위한 필연의 변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채를 든 신부 Bride with a Fan 1911

 

 

 

 

가축상인 The Cattle Dealer. 1912. Oil on canvas / 97 x 200.5 cm.

 

 

 

 



창가에서 본 파리Paris Through the Window 1913 캔버스에 유채 135.8 X 141.4cm 

 

 

파리의 에펠탑, 낙하산, 거꾸로 가는 열차, 누워 있는 2인의 보행자, 그리고 파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맨 앞 우측의 2개의 얼굴을 가진 인물은,

한편의 얼굴은 향수어린 눈으로 비테프스크를 향하고 있고, 또 다른 한편은 파리 쪽을 향하고 있다.

이 작품은 오르피즘(Orphism)의 색채 대비와 큐비즘을 결합시킨 동시주의적인 원을 상기시킨다.

 

 

 

 

 

 

탄생일 The Birthday. 1915. Oil on cardboard / 80.5 x 99.5 cm. The Museum of Modern Arts, New York, NY, USA.

 

 

 


 

 

불타는 집 Burning House 1913. Oil on canvas. 107 x 120.6 cm. 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NY,

 

 

불타는 집을  강렬한 빨강색으로 표현함으로써 빨강이 뿜어 내는 광기를 표현하고 있다.

활활 타오르는 하늘은 낮에 비유하고, 화면 오른쪽은 밤하늘이 지배한다.

양손을 치켜든 농부의 모습은 낮을 암시하며,

밤하늘 아래 서 있는 여자의  S형태의 팔은 밤을 상징한다.

광희에 찬 이 빨간 불꽃이야말로 초감각적인 기원을 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The Fiddler 1912-1913,  National Gallery of Art at Washington D.C, Oil on Canvas

 

샤갈은 그의 일생동안의 작품 속에 꽃다발, 말, 소, 닭,서커스, 바이올린이나, 첼로 등의 악기를 되풀이하여 등장시키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그가 고향에서 어릴 때부터 대하던 그의 생활 바로 그것이었다.

이 작품의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도 담뿍 흥에 겨워 그리움과 회상에서 그린 것일 게다.  

지붕 위에 선 인물은 초자연적인 크기로 그려져

지구를 딛고 선 남자 천사처럼 눈이 내린 지구 저쪽의 마을을 배경으로 흥겹게 선율을 자아내고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나무 위 아래에 몇 마리의 새들이 그 소리를 즐기고 있고,

왼편에는 화환을 들고 세 사람의 남매가 소리나는 곳을 찾아 모여 들고 있다.

명확한 흑백 대조의 화면 속에 그의 유년기의 회상을 듣는 듯하다.

 

 

 

 

 

 

 7개의 손가락 자화상, Self-Portrait with Seven Fingers 1913

 

 

이 작품의 부분적으로나마 처음으로 파리에 자신이 살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작품이다.

 왼쪽 창밖에 거리와 에펠탑이 그려진 현실로의 파리와, 오른쪽 벽에는 회상으로서의 비테부스크를 나타내어

그의 내면과 외면 그리고 현재와 과거를 결합시키고 있다.  

그가 그린 얼굴은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괴신(怪神)의 것으로,

그 현실성은 일곱 개의 손가락과 함께 조화되고 있다.

"나무가 뜻밖에 엉뚱한 것으로 하고, 별안간 자신의 오른손은 다섯 손가락인데

왼손이 일곱 손가락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세계를 나는 극히 의적으로 구성하고 싶습니다."(E. Roditi와의 대화)

하지만 이 일곱 손가락은 누르고 있는 화포(畵布)속에 그려진 그림의 세계와 조화되며

다시 배경의 벽에 그려진 헤브라이 문자에 속하는  신기한 문명의 비밀과 조화되고 있다.

 

 

 

 

 

전원의 창 Window in the Country. 1915. Oil on canvas. 100 x 80.5 cm The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아늑한 녹색 정원을 창밖에 둔 신혼의 보금자리다.

선명한 초록 화면의 한 중간에 하얀 간이 커튼이 걷어 올려져 있다.

밤에는 커다란 창을 반만 가릴 수 있도록 된 커튼의 백색이, 깨끗한 그들의 신혼의 감정처럼 청결하다.

사랑이 넘쳐 만물을 모두 같은 아름다움으로 찬미하려는 심정의 행복함이 숨김 없이 나타나고 있다.

그 심정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창의 오른편에 쌓아 올려놓은 듯

 두 개의 옆 얼굴로 샤갈과 부인 벨라가 그려져 있다.

 

창 밖의 무성한 자작나무의 풍경은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새로운 세계로서 보는 감동을

갈색의 항아리와 빨간 과일을 자연에 바치는 물건으로 창을 통해서 생명이 일고 그 생명 다하도록

온갖 곳에 사랑의 중심이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이 이 화면을 꽉 메운다.

 

 

 

 

 

 

 

도시 위에서 1914~18 캔버스에 유채 141 X 198cm

 


샤갈이 벨라와 결혼한 직후 제작한 작품들 중의 하나이다.
비테프스크의 다른 화가들이 추상을 시도하고 있을 때, 그는 신혼의 행복을 전하기 위해

오히려 아주 전통적인 회화형식으로 돌아갔다.

혁명의 소요 한복판에 있었음에도 샤갈은 마치 주변 상황에 무관심해 보인다.

(이 그림은 1917년에 발발한 러시아 혁명을 전후한 1914 ~ 1918년에 제작되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이후 다른 작품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핵심적인 두 주제,

비테프스크와 연인을 결합시키고 있다.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고 세련된 색채가 보는 이의 눈길을 끌고,

특히 회색 배경 위로 초록색, 분홍색, 파랑색이 아주 미묘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산책 The Promenade 1917-18. Oil on canvas. 169.6 x 163.4 cm. State Russian Museum, St.Petersburg, Russia.

 

  

1917년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러시아는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1917년 페트로 그라드의 미하이로스키 극장에 집결한 시인, 화가, 배우들이 

미래의 문화성의 초석을 위하여 샤갈을 미술국장에 추대하였으나, 

그는 정치적 위험을 피하여 비테부스크의 벨라 집으로 돌아와 화업에 전심, 사태를 관망했다. 

 

이때 그린 작품 <술잔을 높이 쳐든 이중 초상>이나 <산책>은 이 시기의 사랑에의 찬가이다.

드디어 약탈과 파괴에 멍든 고향의 산하에서 첫딸을 얻은 아내를 넓은 우주 공간에 휘돌리는 이 작품은

매우 대범하게 처리 한 그의 동화적 표현에 의하여 매혹적이다.

그리고 빨강과 초록의 두 계통의 색채로써 그 농담의 변화를 주면서 맑고 커다란 화면을 이루고 있다

  

 

 

 

 

 

비테프스크 위에서Over Vitebsk, 1915-20 (after a painting of 1914). Oil on canvas 67 x 92.7 cm

 

 

보따리를 메고 회색빛 도시 비테프스크 위를 날아가는 유대인 방랑자의 아픔을 그린 작품으로,

 비테프스크는 유대계 벨로루시인이었던 샤갈의 고향이며

김춘수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의 모티브가 된 작품으로 유명.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 빛으로 물이 들고
밤의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흰 칼라의 벨라 Bella with White Collar 1917

 

 

 

 

The Blue House 1917. Oil on canvas. 66 x 96.8 cm  Musée des Beaux-Arts, Liège, France

 

 

 

 

 

Interior with Flowers. 1918. Tempera on paper mounted on cardboard. 46.5 x 61cm

 Museum-Apartment of Isaak Brodsky, St. Petersburg, Russia

 

 

 

 

 

달을 그리는 화가 The Painter: To the Moon. 1917.

Gouache and water-color on paper / 32 x 30 cm. Private collection. 

 

 

 

 

 

  

초록 바이얼리니스트(Green Violinist) 1923-24 

 유대인 극장 패널화- 음악 

 

 

바이올린이 유대인들에게 남다를 의미가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림 속의 바이올린 연주자는 중심에 있을 뿐 아니라 크게 확대하여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얼굴은 왜 초록색일까.그는 그림 속에서 종종 중심에 있는,

주제가 되는 인물 얼굴을 초록색으로 표현함을 알 수 있는데

사실상 초록색은 빨,주,노,초,파,남,보 색의 중심에 있으면서 중심에 있기에

권위적이기보다 중용의 정신을 갖는,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종교의 의미를 상징하는 것이다.

자신의 신앙심을 잃지 않으면서 추억과 고향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농부의 삶 : 러시아 마을1925 캔버스에 유채  101 X 80cm  Albright-Knox Art Gallery, Buffalo, NY, USA.

 

 

이 작품은 1925년의 여름을 몽쇼베에서 지내면서 아름다운 그 풍광에

자신도 모르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 것이리라.

말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농부와 말의 정다운 관계,

그리고 멀리 보이는 주막, 그 주막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담소하는 사람들,

마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 춤을 추는 남녀 등,

꿈결 같은 그리움이 맑게 흐르는 기억의 샘물같이 그려져 있다.

 

 

 

 

 

 

Bella in Mourillon  1926. Oil on canvas. 47 x 65 cm  Private collection

 

 

 

 

 

창문 The Window  1924. Oil on canvas. 99 x 73 cm Kunsthaus, Zurich, Switzerland

 

 

 

 

 

창문에서 본 비테프스크View from a Window. Vitebsk.

Gouache on cardboard. 49 x 36.3 The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아기의 목욕 Bathing of a Baby. Tempera on paper mounted on cardboard.. 53 x 44 cm

State Historic and Architectural Museum, Pskov, Russia.

 

 

 

 

 

세 명의 곡예사The Three Acrobats, 1926,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연인과 꽃Lovers with Flowers, 1927, oil on canvas, The Israel Museum, Jerusalem

 

 

 

 

 

국화 Chrysanthemums, 1926,  oil on canvas, Perls Galleries, New York

 

 

 

 

 

 

꽃과 과일 Fruits and Flowers  1929.  Oil on canvas / 100 x 80.9cm / Private collection.

 

 

 

 


 

 The Woman the Roses 1929

 

 

 

 

 

라일락 속의 연인들Lovers in the Lilacs, 1930, oil on canvas, Richard S. Zeisler Collection, New York

 

 

 

 

 

여자 곡예사 Equestrienne 1931. Oil on canvas / 100 x 80.8cm

Stedelijk Museum, Amsterdam, Netherlands.

 

 

 

 

 

 

고독 Solitude, 1933, oil on canvas, The Tel-Aviv Museum

 

 

고독의 주제는 처음이 아니다.

10년전 그려진 <푸른 유태인 (또는 교부)>도 홀로 수심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이 그림은 토라를 안은 교부 곁에 위로하는 기호(바이올린)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또 교부는 그것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에수가 깃들어 있다. 

배경은 비태프스크의 집들인데,

그 후에는 성서의 세계와 향리가 샤갈의 작품 중에서 슬픔과 사랑의 이중주를 연주하게 될것이다.

이 고독자의 자세는 2,500년전의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의 자세이다.

 

 

 

 

 

 

세 개의 촛불The Three Candles. 1938-40.

Oil on canvas / 127.5 x 96.5 cm / Private collection

 
 
 1938년부터 그리기 시작해 1940년에 완성한 그림이다. 
결혼한 신랑신부가 죽음으로 상징되는 세 개의 촛불을 보며 공포와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경계심을 품은 모습은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떠나는 샤갈의 심정과 교차한다.  
이 작품은 천상의 아름다운 꿈, 지상의 행복한 사람들의 일상을 한 순간에 공포로 몰아넣는
 전쟁이라도 그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승화시키는 샤갈의 재치를 엿보게 한다.
샤갈이 직접적인 불안과 공포의 대상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격동의 시대성을 완숙하게 반영해내는 것은 바로
그가 상징적인 기법을 자주 활용하기 때문이다.
 
 
 
 
 
 
Bride with Blue Face. 1932-1960. Oil on canvas /100 x 81cm / Private collection.
 

 

 

 

 

 

한밤중 /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시간적 배경은 밤이지만 전체적인 분의기는 밝다. 한밤중에 사랑하는 연인이 서로 끌어안고 춤을 추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으며 웃고 있다.

2차 대전 발발 이전에 화가의 행복했던 추억이 그림의 소재로 그 행복한 느낌이 전해온다.

                         

 

                          

 

 첼로 연주가 1939

 

 

드디어 샤갈은 이 작품을 통해서 또 한 번의 변용을 가져온다.

이 시기에 나타나는 샤갈의 작품 속의 연인들이 아주 몽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일관된 환상 속에 이제는 어떤 괴기적 요소가 섞이기 시작한 것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비테부스크는 첼로를 켜는 인물 뒤에서 황량한 눈이 덮인 고장으로 되고,

혹은 다른 작품 <초록 눈의 집>에서는 건물이 눈을 번쩍거리기도 한다.

인간은 동물로 동물은 어떤 괴물로 각각 변모한다.

이 작품에서는 첼로가 샤갈 자신이 되고,

바이올린을 켜는 벨라는 조그만 송아지로 변하여 있다.

그들 자신이 화면에서 곡예를 하며 또한 다음 곡예를 예고하기도 한다.

특히 하늘이나 길에 전율을 느끼게 하는 마티에르, 얼룩지듯 엮어간 화면의 질감은

앞서 제작한 판화집을 통한 기법에서 온 것이다.

 

 

 

 

 

 

흰 십자가 White Crucifixion. 1938. Oil on canvas /  155 x 140 cm.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IL, USA.

 

 

 

 

피안 없는 시간  1939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유태인이었던 샤갈이 느낄 수 밖에 없었던 비극과 고난의 시간 속에서 
 완성된 그의 대표작이다.

피를 흘리는 새는 바이올린으로 슬픈 운명을 연주하는 듯 하며.

또한 어둡고 우울한 세상 속에서 그 새는 쉴 곳이 없어 보인다.

 

 

 

 

 

 

Scene design for the Finale of the Ballet "Aleko". 1942. Gouache on paper / 38 x 57.1.

The Museum of Modern Arts, New York, NY, USA.

 

 

 

  

 

화촉 The Wedding Candles Private collection.

 

벨라의 죽음은 샤갈에서 있어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그 불행과 고독을 이겨내는 9개월간 그는 붓을 들지 못했고 온갖 그림들을 벽을 향해 돌려놓았다. 

드디어 화가(畵架) 앞에 앉을 기력을 회복하여 처음으로 그가 손에 잡은 그림이 

12년 전 그가 사랑에 잠겨 살 때 그린 <아르르 캉> 이었다.

 

시집가는 신부를 거의 중앙에 그리고, 주위에는 여러 형상과 인물이 여기저기 그려져 있는 작품으로,

이 오른쪽 반쪽의 테마로서는 <화촉>이라는 이 작품을, 왼쪽 반으로서 앞에 소개한 <그녀의 주변>이라는 작품을 그렸다. 

벨라를 잃은 후 한 동안 샤갈의 화면은 깊은 푸른색이 지배한다.

후에 이 푸른색은 정제되고 단련되어서 가히 "샤갈의 푸른 색"이라 할 맑고 환상적인 색채에 이르게 됐다. 

 

 

 

   

 썰매와 마돈나 1947

  

벨라가 죽고 난 이후 몇 점의 작품에서 샤갈의 색채가 얼마나 투명하며 깊이 있고,

아름답게 발색하고 있는가를 우리는 깨닫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은 그의 내면 속에 깊이 깔린 슬픔을 그가 얼마나 알뜰하게 소화하며,

정화시키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이 작품에 있어서도 화면의 부분을 메운 투명한 푸른색 속에 몇 가지 드러낸 강렬한 대비색이 너무나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샤갈이 돌연 화면에 매를 그리게 된 것은 어느 친구의 '천야일야(千夜一夜)'의 삽화를 경험에서라 한다.

어쨌든 그의 즐겨 쓰는 나선구에 의하여 두 갈래로 갈라진 모자의 하강과 썰매와 말의 상승운동을 통하여

어떤 리얼리티와 결합한 점에서, 이 작품은 깊은 의미를 지닌다.

 

썰매를 타고 가던 마돈나는 상승하는 썰매에서 떨어져 땅에 떨어지고 있다.

 그래도 그녀의 품안에 예수는 안전해 보인다.

 

 

 

 

 


수탉의 사랑 The Rooster in Love, 1947-50.

  

 

 

 

 

 

천사의 추락 The Falling Angel, 1923-47, oil on canvas, Kunstmuseum, Basel

 

 

 

 

 바바를 위하여 1955 종이에 구아슈  64 X48cm

 

 

"이제야 제2의 청춘이 열렸다."라고 결혼식장을 나오면서 老畵家 (65세)는 부르짖었다.

25세 연하의 검은 눈의 어여쁜 러시아 여성 바바위하여 이 그림이 그려져, 그녀에 의하여 보존되고 있다.

샤갈의 바바에 대한 헌신의 정도는 감동적인 이야기 거리가 될 정도로서,

같은 제목의 작품을 남기고 있다.

깨끗한 이미지의 여인 곁에 있는 노란 말은 샤갈 자신을 뜻한다.

두 인물의 크고 맑은 눈이 인상적이다.

 

 

 

 

 

 

신랑 신부 1927-35 캔버스에 유채 X 148  80.8cm 

  

 

러시아에서 태어난 그는 유태인이었고,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미국에서 꽃을 피웠다.

어쩌면 그의 혈통이나 현상이 그의 그림 모두에서 그런 동과 서, 몽환과 현실들이 뒤섞여

꽃을 피운 멀티 컬쳐리즘의 현학성을 보여주는 이유일지도.

 

 

 

 

 


 

 

 


 

 

 

 

 



연인들 Les Armoureaux de Vence

 

배경으로 그의 고향이 보이고, 샤갈이 벨라에게 청혼 하는 모습이다.

벨라는 배우가 되고자 모스크바에서 배우 수업를 받고  있었으나 결혼하면서 그녀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샤갈의 반려자, 모델로서 평생을 같이.

 

 

 

 

 

  여름밤의 꿈 - 1939

 


"이 조인(鳥人)은 전적인 주역이다.

파우스트극의 메피스트처럼 무대로 뛰어나온 모습이다.

무대는 서커스의 원형 스타디움을 닮았다.

 

배심원 같은 관객에 둘러싸인 공간에는 텔레비전에라도 비치는 것처럼

이스바와 말을 탄 소녀가 음울한 빨간색 필터의 빛 너머로 부각되어 있다. "     

셰익스피어의 희극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것이며,

숲을 지배하는 요정의 왕 오베론과 왕비 티타니아의 부부싸움에서 시작된다.

 

잠깐의 다툼에 약이 오른 오베론은 티타니아를 골탕 먹이려고 요정 버크에게 마법의 꽃을 구해 오라고 명했다.

마법의 꽃인즉, 그 즙을 눈에 바르면 눈을 뜨고 나서 맨 처음으로 보는 대상을 사랑하게 되는 꽃이다.

꽃의 즙이 눈에 닿은 요정여왕은 하필 못난 얼굴의 당나귀 인간인 바텀을 처음 바라보게 되고,

순식간에 사랑의 마법에 빠져든다.

 

 

 

 레지스탕스 1948 

 

유대인 박해를 목격한 샤갈이 독일과 이태리 그리고 러시아의 스탈린을 대항하는 의도로  10년 동안 제작한 작품이다.

수난당하는 구원자의 주변에 맴돌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강렬한 색채로 그렸다.

맨 아래 비테부스크 광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은 화가 자신을 뜻한다고 한다.

 

1937년에 샤갈이 유태인 박해의 현상을 보고, 또 독일과 이태리의 파시스트 대두,

조국 러시아에서는 스탈린에 의한 숙청이 정점에 달했을 때,

그의 젊은 피를 끓어 오르게 했던 10월 혁명을 상기시키는 대작을 계획,

<혁명>이란 제목의 에스키스를 남기고 있는데,

그로부터 10년간 그것이 세 개로 쪼개어져 가필되어 완성한 것이 이 <레지스탕스>와 <부활>, <개방>의 삼부작이다.

 

 이 작품에서는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하려는 의도는 없고,

제목과는 달리 공방하는 적대 관계도 없다.

단지 위대한 수난자의 둘레를 부유(浮遊)하는 민중의 각고가  있을 뿐이다.

<레지스탕스>는 여기서 항독 (抗獨) 운동이 아니라, 운명에 항거하는, 유동하는 영혼을 의미하는 것 같다.

   

 

 


푸른 서커스  1950

  

1924년부터 샤갈은 서커스를 통하여 많은 그의 심중을 이야기하려는데 열중해 왔다.

그는 그 주제를 때로는 많은 팟슈로, 혹은 아크와틴트의 판 형식으로, 또 유화로 많은 경험을 했고,

또한 서커스는 그의 화면 공간을 그만큼 자유롭게 설정하는데 성공적인 주제이기도 했다. 

 슬픈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소와 여인의 모습은 몽상적이면서도 안타까운 하나의 로맨스를 연상시킨다.

 

 

 

 

생젠의 태양 1949

 
남프랑스 생젠의 매력에 빠진 샤갈은 힘들었던 시간을 뒤로 한 채 밝고 생명력있는  작품을 완성했다.

<초록의 풍경> 이란 별명이 있는 이 작품은 샤갈 특유의 붉은 색과 초록색의 조화가 아름답다.

 남자의 얼굴 오른쪽에서 평화롭게 그를 안고 있는 여인은 그 남자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여신 같다.

 

 

 


 



흐린 햇빛 마을 Village au soleil sombre 1950 캔버스 위에 유화 /  73.5 x 69 cm  / 파리, 개인 소장  

 

 

 

 

 


마을의 마돈나 Madonna of the Village
 
 



오르페우스 Orpheus 1959
 

 


 

빨간 말 위의 여자기수Horsewoman on Red Horse. 1966. Oil on canvas / 100 x 120cm / Private collection.

 

 

 

 

 

비테프스크 위의 소 Cows over Vitebsk. 1966. Oil on canvas / 116 x 89 /  Private collection.

 

 

 

 

 

 

 

 The Sun of Poros 1968. Oil on canvas / 160 x 160 cm. Private collection.

 

 

 

 

 푸른 얼굴 The Blue Face 1967. Oil on canvas / 129.7 x 96.6 cm. Private collection.

  

샤갈이 많이 제작했던 스테인드 글라스 풍의 작품이다.

화폭을 좌우로 양분하여 

인생의 그늘과 양지를 표현하고 있다.

전쟁과 혁명으로 인해 상처받고 힘들었던 시간들과

자연과 사랑으로 인해 행복했던 기억들을 인생의 말년에 열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늘진 얼굴의 사람이 오른쪽 끝의 여인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

 

 

 

 

 

 Still Life with Vase of Flowers. Watercolor and Indian ink / 52 x 44 cm. Private collection.

 

 

 

 

 

 

서커스 The Circus, 1967년

 

 

 

 

 

 

서커스 The Circus, 1967년

 

"내게 서커스는 마술적인 쇼이다.

태어나고 다시 사라지는 세상과 유사하다"

하고 말한 샤갈은 서커스를 주제로 많이 그렸다.

 

 

 

 

 

마술사 The Magician (Le magicien). 1968년

 

 

 

 

 

 

연주가 The Players. 1968년

 

 

 

 

 

 

이젤 앞의 화가 Artist at Easel. 1959-68년

 

 

 

 

 

 

어부의 가족 Fisherman's Family. 1968년

 

 

 

 

 

 

Laid Table with View of Saint-Paul de Vance. 1968년

 

샤갈이 이주한 생폴드방스 풍경이 보이는 곳에 테이블 세팅을 해놓고 그린 그림이다

핑크빛 식탁보와 과일, 프랑스식 빵과 포도주... 여유롭고 행복한 삶이 보이는 듯 하다

 

 

 

 

 

 

다윗왕의 성채 King David's Tower. 1968-71년

 

샤갈은 1969년 남프랑스 니스의 바다해안에 '마르크 샤갈의 성서미술관'의 초석을 놓는다

성서미술관은 1973년에 개관을 하는데 이 작품도 그시기에 제작되었다

 

 

 

 

 

화가와 모델 Artist and His Model. 1970-75. Oil on canvas / 65 x 50 / Private collection.

 

 

 

 

 

마을 Village. 1970-75년

 

초점을 전경의 꽃과 잎사귀에 맞추어 뚜렷하게 그리고, 포옹한 사람의 뒤를 

멀찍이 흐리게 그리고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뉘앙스로서의 터치, 정감이 깃든 인물의 두터운 마티에르... 이 스타일의 발견은

 매우 중요한 것이며, <부인 기수(騎手)> 에서 완전한 포옹의 기호화(記號化)는 

그 정점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야곱의 사닥다리 Jacob's Ladder. 1973. Oil on canvas / 73 x 92 cm / Private collection.

 

 

 

 

 

비테프스크 위의 화가 Artist over Vitebsk. 1977-78.  Oil on canvas / 65 x 92cm / Private collection.

 

 

   

 

 

 

샤갈

 

1887. 7. 7 러시아 비테프스크 출생 ~ 1985. 3. 28 프랑스 알프마리팀 생폴 사망 

러시아 태생의 화가· 판화 제작자· 디자이너.

 

 

회화 이론을 기준으로 하기보다는 내면의 시적 호소력을 이용하여 상징적이고 미학적인 형식 요소들과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이미지를 결합한 작품들을 많이 그렸다. 나와 마을 I and the Village〉(1911)과 같이 초현실주의 이전에 나온 그의 초기 작품들은 현대 미술에서 처음으로 정신의 실체를 나타낸 것들이었다. 다양한 표현 수단을 사용한 그의 작품들 가운데는 연극과 발레 무대장치, 성서를 삽화로 그린 동판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예를 들면 〈미국의 창문들 The American Windows 1977) 등이 있다.

 

 

 

샤갈은 폴란드의 국경에서 멀지 않은 러시아 서부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에게는 형제가 8명이 있었으며 식구들은 모두 독실한 유대교도였다. 그의 가족은 비테프스크에 사는 2만여 명의 유대인들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초라하게 살았으나 가난에 시달리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청어 도매상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생선·밀가루·설탕·양념 등을 파는 가게를 경영했다. 어린 샤갈은 유대인의 초등학교에 다닌 뒤 러시아어로 가르치는 지방공립학교에 들어갔다. 그는 유대 교회당에서 성서를 읽었고 노래를 불렀으며, 정통 합리주의를 반대하는 신비주의적 경향의 유대교파인 하시드파의 사상을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 학교에서 데생의 초보를 배운 뒤 그 지방 출신의 사실주의 화가인 제후다 펜의 작업실에 들어가 회화를 공부했으며, 1907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 그곳에서 3년 동안 간헐적으로 공부하다 마침내 그무렵 무대장치가로서 눈부신 활동을 하고 있던 레온 바크스트 밑으로 들어갔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그림 속에 이미 지붕 위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이 나오는 악몽 같은 분위기의 죽은 남자 The Dead Man〉와, 검은색과 흰색의 배합을 실험한 초상화 검은 장갑을 낀 나의 약혼녀 My Fiancée with Black Gloves〉가 있다.

 

1910년 샤갈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후원자가 제공한 생활비를 가지고 파리로 갔다. 몽파르나스에서 하숙생활을 하며 1년 6개월을 보낸 뒤, 자유분방한 미술가들이 모여 사는 라뤼슈(벌집)라는 초라한 마을의 끝에 있는 작업실로 이사했다. 그는 그곳에서 표현주의 화가인 수틴과 색채추상화가인 로베르 들로네, 입체파 화가인 알베르 글레즈, 장 메칭저, 페르낭 레제, 앙드레 로트 등뿐만 아니라 아방가르드 시인인 블레즈 상드라르, 막스 자코브, 기욤 아폴리네르 등을 만났다.

 

그 집단에서는 거의 모든 종류의 대담한 회화를 장려했으며, 샤갈은 그러한 자극에 영향을 받아 러시아에 있을 때 드러내기 시작한 시적이고, 겉보기에는 비합리적인 경향들을 빨리 발전시켜나갔다. 그와 동시에 파리의 미술관들과 화랑들에서 본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및 야수파 화가들의 그림들에 영향을 받아, 그가 고향에 있을 때 사용했던 대체로 칙칙한 색채는 더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가 처음으로 파리에 머물렀던 이 4년의 기간은 때때로 그의 전성기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손가락이 7개인 자화상 Self-Portrait with Seven Fingers〉·〈나와 마을〉·〈아폴리네르에게 바치는 경의 Hommage à Apollinaire〉·〈갈보리 언덕 Calvary〉·〈바이올린 연주자 The Fiddler〉·〈창문을 통해 본 파리 Paris Through the Window〉 등이 있다. 이 그림들에서 이미 샤갈은 본질적으로 그뒤 60년 동안 변하지 않은 양식을 개발했다. 그의 색채는 때때로 엷은 경우도 있었지만 결국 복잡한 특성과 반향을 띠어갔다. 종종 거꾸로 된 묘한 형상들을 캔버스에 아무렇게나 배치했는데, 이것들은 때때로 필름 몽타주와 비슷하면서 명백히 의도한 것 같은 내면의 환상세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디시어(語)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의 농담이나 러시아의 전래설화, 또는 보드빌을 떠오르게 한다. 주로 등장하는 인물은 로맨틱하게 잘생기고 곱슬머리에 약간 동양적으로 보이는 젊은 시절의 화가 자신인 경우가 많다. 어린시절과 비테프스크에 대한 추억들이 이미 표현의 주요원천이 되고 있다.

 

샤갈은 파리에서 해마다 열리는 '독립미술가전람회'와 '가을 살롱전'에 작품을 전시한 뒤, 1914년 현대 미술 잡지인 〈슈트름 Der Sturm〉을 발간한 베를린의 화랑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가져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다. 그 전시회에 들른 뒤 그는 비테프스크에 갔다가 그곳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맞이했다. 그는 그 시기에 비교적 사실주의적인 양식으로 그 지방의 풍경을 담은 유화와 노인들을 주제로 한 일련의 스케치를 그렸는데, 노인을 주제로 한 연작으로는 〈기도하고 있는 유대인 The Praying Jew〉·〈풀밭의 유대인 Jew in Green〉 등이 있다. 1915년에 그는 비테프스크의 부유한 상인의 딸인 벨라 로젠펠트와 혼인하여 이때부터 그녀를 자신의 그림들에 많이 등장시켰는데, 그러한 것으로는 날아다니는 연인을 그린 〈생일 Birthday〉과 활기차고 곡예를 하는 듯한 〈술잔을 들고 있는 이중 초상 Double Portrait with a Glass of Wine〉 등이 있다.

 

1917년 10월혁명이 일어나자 샤갈은 처음에는 이것에 몰두했다. 그는 비테프스크 지역의 예술위원이 되어 지방 아카데미와 박물관을 위한 야심적인 사업들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2년 6개월 동안 열심히 활동했는데도 미학과 정치를 둘러싼 싸움들이 점점 심해지자 활동을 그만두고 모스크바로 옮겼다. 그곳에서 그는 한동안 무대미술에 관심을 기울여 유대인 작가인 숄렘 알레이헴의 작품들을 위한 무대장치·의상이나 카메르니 극장을 위한 벽화들을 만들었다. 1922년 그는 영원히 러시아를 떠나 처음에 베를린으로 갔는데, 거기에서 그가 1914년에 남겨놓았던 그림들의 상당수가 없어졌다는 것을 발견한 뒤 1923년 아내와 딸과 함께 다시 파리로 가서 정착했다.

 

샤갈은 베를린에 있는 동안 판화기법을 배웠다. 친구인 상드라르의 소개로 파리의 미술상인인 앙브루아즈 볼라르를 만난 뒤 곧 니콜라이 고골리의 소설인 죽은 영혼들 Dead Souls〉의 특별판에 삽화로 넣을 동판화 연작을 의뢰받았으며 그뒤 오랫동안 판화제작자로도 활동하게 되었다. 그뒤 3년 동안 그는 고골리의 책을 위하여 107점의 전면 판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무렵 볼라르는 이미 또다른 계획(라퐁텐의 〈우화집 Fables에 18세기의 판화들과 비슷한 채색 삽화들을 넣은 개정판을 제작하는 일)을 세워놓고 있었다. 샤갈은 복제용으로 100점의 구아슈 그림을 준비했지만, 그의 색들은 너무 복잡하여 계획된 인쇄 과정에는 적합하지 않았으므로 곧 흑백 동판화로 바꿔 1931년 그 판화들을 완성했다. 이무렵 볼라르는 성서에 삽화로 넣을 동판화를 제작해 달라는 또다른 제안을 내놓았다. 1939년까지 샤갈은 66점의 판화를 완성했지만, 그해에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볼라르가 죽자 그 계획은 중단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다시 그 일을 시작하여 모두 105점을 완성했다. 파리의 출판업자인 E. 테리아드는 볼라르가 남기고 간 많은 사업들을 다시 시작하여 1948년에 〈죽은 영혼들〉(각 장의 표제용으로 11점의 동판화를 더 만들어 모두 118점으로 이루어짐)을, 1952년에 라퐁텐의 〈우화집〉(표지용으로 2점의 동판화를 더 만들어 모두 102점으로 이루어짐)을, 1956년에 성서를 발간했다. 샤갈은 이렇게 늦어진 대작업들뿐만 아니라 그보다 규모가 작은 판화집들과 낱장의 판화 작품 및 채색 석판화와 모노타이프를 많이 제작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초에 그의 그림은 대작이 줄어들었으며 많은 비평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질도 떨어졌지만, 어쨌든 더욱 뚜렷이 시적인 성향을 띠었으며 더욱 인기를 얻었다. 그러한 작품으로는 에펠탑 앞의 신랑과 신부 Bride and Groom with Eiffel Tower〉·〈서커스 The Circus〉가 있다. 그러나 아돌프 히틀러가 부상하면서 새로운 세계대전의 위험이 증대하자 샤갈은 인상적인 그림인 흰 십자가 White Crucifixion〉에 반영되어 있듯이 매우 다른 종류의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제1·2차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에 그는 널리 여행을 다녔는데 1924년에는 브르타뉴에서, 1926년에는 프랑스 남부에서, 1931년에는 성서의 동판화를 준비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에서, 그리고 1932~37년에는 네덜란드·스페인·폴란드·이탈리아 등지에서 활동했다. 1931년 그는 자신이 예전에 러시아어로 썼던 〈나의 생애 My Life〉를 프랑스어로 번안하여 출판했다. 1933년 스위스의 바젤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1939년 카네기상을 타면서 누구나 인정하는 현대의 대가로서 확고한 명성을 얻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프랑스의 루아르 지방으로 이주했으며, 그뒤 유럽의 모든 유대인들에 대한 나치의 위협이 차츰 심해지자 더 남쪽으로 피해갔고, 마침내 1941년 7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멕시코에서 여름을 보낸 것을 제외하고는 그뒤 몇 년 간 뉴욕 시나 그 근처에서 대부분을 보냈다. 1942년 뉴욕 시의 '발레 시어터'를 위해 발레 〈알레코 Aleko〉의 무대장치와 의상을 만들었다. 샤갈을 비롯해 모두 러시아인의 작품으로 구성된 이 창작물은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집시들 The Gypsies〉이라는 시에서 줄거리를 따왔고 음악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의 〈가단조 3중주 Trio in A Minor〉에 기초했으며 역시 러시아의 레오니드 마신이 안무를 맡았다. 샤갈은 한동안 예전에 프랑스에서 다루었던 주제들을 그림에서 계속 표현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노란 십자가 Yellow Crucifixion〉·〈깃털과 꽃들 The Feathers and the Flowers〉이 있다. 그러나 1944년 아내 벨라가 죽자 그녀에 대한 추억들을 종종 비테프스크를 배경으로 다루었다. 〈그녀 Around Her〉(1945, 파리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그녀를 울고 있는 아내이자 유령의 신부로 그리고 있으며, 화촉 The Wedding Candles〉(1945, 프랑스 개인 소장)·〈야상곡 Nocturne〉(1947, 개인 소장)에서도 다시 그녀를 신부로 그리고 있다.

 

1945년 그는 뉴욕 시에서 상연된 이고리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The Firebird〉를 위하여 배경막과 발레 의상을 제작했다. 그의 작품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던 미국의 미술평론가들과 수집가들은 1946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과 그로부터 몇 달 뒤 시카고 미술연구소에서 열린 회고전을 보고 그들의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1947년 시카고대학교 출판부가 발행한 〈마음을 그린 작품 The Works of the Mind〉에 들어 있는 한 강연에서 그는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입체파 화가들에게 그림은 어떤 질서를 갖춘 형태들로 뒤덮인 표면이었다. 나에게 그림은 논리와 설명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어떤 질서를 갖춘 것들(물체·동물·인간)의 묘사로 뒤덮인 표면이다. 구도의 시각적 효과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나는 '환상'과 '상징'이라는 말들을 싫어한다. 우리의 모든 정신세계는 곧 현실이다. 그것은 아마 겉으로 보이는 세계보다 훨씬 더 진실할 것이다."

 

1948년 그는 이미 프랑스를 2차례 방문한 데 이어 다시 프랑스로 이주했는데, 처음에는 파리 교외에서 살다가 결국은 코트다쥐르의 방스와 그 옆의 생폴에서 살았다. 1952년 바바 브로드스키와 재혼하고 65세의 나이에 친숙하고 시적이며 추억에서 따온 모티프들이 계속 작품에 나오긴 하지만, 거의 새롭다고 할 만한 활동을 재개했다. 고대 코트다쥐르의 도기 제조 중심지들에 가까이 살았던 것에 영향을 받아 그는 실험적으로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3차원적 형태에 대한 경험을 기초로 하여 조각을 하기 시작했다. 1953~56년에는 고향인 비테프스크를 잊지 못하면서도 파리에 대한 애정으로 일련의 그림들을 그렸다. 1958년에는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상연한 모리스 라벨의 발레인 〈다프니스와 클로에 Daphnis et Chloé〉의 연출을 위하여 무대장치와 의상을 제작했다. 1958년 이후에는 많은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들을 설계했는데, 첫 작품은 메스 성당과 예루살렘에 있는 '하다사헤브루대학 의료 센터'의 예배당을 위한 것이었다.

 

1964년에는 뉴욕 풀턴에 있는 교회의 창문을 완성했고 파리 오페라 극장의 새 천장을 완성했으며, 그로부터 2년 뒤 링컨 센터에 있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새 건물을 위하여 2점의 커다란 벽화인 〈음악의 샘 The Sources of Music〉·〈음악의 승리 The Triumph of Music〉를 완성했다. 1967년에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상연한 모차르트의 〈마적 Magic Flute〉을 위하여 무대장치와 의상을 제작했다. 1973년 프랑스 니스에 '마르크 샤갈 성서 메시지 미술관'이 문을 열었으며, 1977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그에게 레종도뇌르 최고훈장을 주고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회고전을 열어 그를 예우했다. 1977년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제와 시카고의 전임 시장인 리처드 J. 데일리를 기념하여 만든 샤갈의 〈미국의 창문들〉이 '시카고 미술연구소'에서 공개되었다.

 

큰 꽃다발과 우울한 어릿광대, 날아다니는 연인들, 환상적인 동물들, 성서의 예언자들, 지붕 위의 바이올린 연주자 등의 이미지들을 묘사한 민속적인 작품들로 말미암아 샤갈은 20세기 파리파의 중요한 전위미술가들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이 환상적인 주제를 화려한 색과 특유의 능란한 붓질로 묘사했는데, 그의 양식은 표현주의나 입체파, 추상미술과 같은 1914년 이전의 운동들을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변함없이 개인적인 성향을 띠었다. 비평가들은 때때로 그의 작품 대부분에는 가벼운 감상이 깃들어 있고 작품의 질이 고르지 않으며 모티프가 지나치게 되풀이된다고 비판하지만, 특히 걸작들은 현대의 작품들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시각적 은유의 수준에 이르렀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한다.

 

 

 

러시아 비테프스크 9형제 중 맏이로 출생 (1887. 7. 7)
상트페테르부르크 왕실 예술학교 등록 (1907)
앵데팡당전과 살롱도톤에 첫 출품 (1912)
베를린에서 제1회 샤갈 개인전 개최 (1914)
벨라 로젠펠트와 결혼 (1915. 7. 25)
비테프스크 미술가연맹 위원과 미술학교장 임명 (1918)
모스크바 국립유대극장의 벽화장식 담당 (1920)
자서전 <나의 삶> 쓰기 시작 (1921)
카르네지상 수상 (1939)
뉴욕 현대미술관의 초청 (1941)
아내 벨라가 세상을 떠남 (1944)
베니스 비엔날래에서 판화 부문 인터내셔널상 수상 (1948)
바바 브로드스키와 재혼 (1952)
1966년에 끝나는 <성서 이야기> 연작을 시작 (1955)
레지옹도뇌르 최고 훈장을 수여 (1977)
98세로 생폴드방스에서 사망 (1985. 3. 28)

 

 샤갈과 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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