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씩 엉뚱하게

2012. 12. 18. 13:39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셋

 

 

이렇게 뜬금없이 갑자기 백석의 시가 땡길 때도 있고,

불현듯 러시아 음악이 듣고 싶어질 때도 있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출출이 : 뱁새

마가리 : 깊은 산골

 

 

 

 

 

백석 책이 나왔구만요. 금년 9월 5일에 발간됐었네요. 출판사 이름이 흰당나귀.^__^

 

 

  

,

 

이 백석의 시를 보면 거의가 기행문이나 소소한 일상의 모습이나 느낌들을 썼어요.

딱히 모양 갖춰서 이건 ‘시입네!’ 하고 쓴 것도 아니고,

뭔 거창한 주제를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어찌 보면 제 블로그에 ‘내 얘기’ 쓰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어요.^^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가 이 백석의 시라는군요.

백석의 시가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작위적이 않다는 데서 오는 편안함이 아닐까 합니다.

그때그때의 삶과 지닌 생각들을 치장이나 여과없이 옮겨적은 것일 뿐이거든요.

억지로 ‘만든’ 시가 아니란 말이지요.

 

한번 정지용 시랑 비교해서 볼까요?

 

 

  

 

 

 

고향(故鄕) 

                             백석 

 

나는 북관(北關)에 앓어 누어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醫員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들이워서

먼 녯적 어늬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도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드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平安道 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氏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氏를 아느냐 한즉

醫員은 빙긋이 웃음을 띄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醫員은 또 다시 넌즛이 웃고

말없이 팔을 잡어 맥을 보는데

손길은 다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구장로(球場路)

                                  백석 

 

삼리 밖 강 쟁변엔 자갯돌에서

비멀이한 옷을 부숭부숭 말려 입고 오는 길인데

산 모롱고지 하나 도는 동안에 옷은 또 함북 젖었다

 

한 이십리 가면 거리라든데

한겻 남아 걸어도 거리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어느 외진 산길에서 만난 새악시가 곱기도 하든 것과

어느메 강물 속에 들여다보이던 쏘가리가 한자나 되게 크던 것을 생각하며

산비에 젖었다는 말랐다 하며 오는 길이다

 

이젠 배도 출출히 고팠는데

어서 그 옹기장사가 온다는 거리로 들어가면

무엇보다도 먼저‘酒類販賣業주류판매업’이라고 써붙인 집으로 들어가자

 

그 뜨수한 구들에서

따끈한 삼십오도 소주나 한 잔 마시고

그리고, 그 시래기국에 소피를 넣고 두부를 두고 끓인 구수한 술국을 뜨근히

몇 사발이고 왕사발로 몇 사발이고 먹자

 

 

 

 

 

향수(鄕 愁)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활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지고 이삭 줏던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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