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30. 09:37ㆍ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셋
홀로 된다는 것
아주 덤덤한 얼굴로 나는 뒤돌아 섰지만 / 나의 허무한 마음은 가눌 길이 없네
아직 못다한 말들이 내게 남겨져 있지만 / 아픈 마음에 목이 메어와 아무말 못했네
지난 날들을 되새기며 수많은 추억을 헤이며 / 길고 긴 밤을 새워야지 나의 외로움 달래야지
이별은 두렵지 않아 눈물은 참을 수 있어 / 하지만 홀로 된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해
▒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었는데, 최순우였던가 오주석이었던가.
특별전이 있었다나?, 박물관 지킴이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관람객도 별로 없는 이른 아침 시각에 점잖게 생긴 부인이 한 명 들어오더래.
사람이 없으니까 금방 눈에 띄었겠지.
중앙에 전시돼 있는 백자 항아리 앞에서 꼼짝도 않고 오랜 시간을 그렇게 서 있더라는 거야.
한참을 그러더니 대충 한바퀴 둘러보는 듯하다가 나가더라는구만.
그런데 좀 있다가 보니까 그 여자가 다시 들어와 있더래.
또 그 백자 항아리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는 결국은 뒤돌아서 돌아가는데…,
우리 알잖아, 떨어지지 않는 그런 발걸음을.
그걸 보고 얼마나 뭉클했는지 모른대.
지금 그 얘기를 옮기려니 나도 괜히 눈물이 고이네. ㅠㅜ.
나는 여태 도자기에는 별 관심 없었어. 볼 줄도 모르고.
국보급 보물급이 다른긴 다르구나 하는 정도....?
가격이 얼마나 되나, 저 귀한 걸 깨뜨리면 어쩌나 하는 그런 유치한 수준일 뿐인데,
요즘들어 괜히 은근한 궁금증이 생기더라 ?????
내가 도자기에 관한 책은 별달리 읽은 것이 없어.
‘야나기 무네요시’ 하고, 얼마전에 읽었던 ‘막사발 이야기’, 그게 다지.
아! 옛날에 박봉성 장편만화로 하나 읽은 게 있긴 하다.
얼마 전에 이병창 컬렉션에 대한 얘길 소개하면서,
혼자 이것 저것 많은 생각이 들긴 했었는데, 그렇더라도 그것 때문은 아닐 거고,
미학의 관심 범위가 자연스레 넓어지는 과정 아닐까.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음식을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고 『대학』엔가에 써 있다더라?
공주 박물관에서 요즘 탱화 특별전을 한다는데, 겸해서 도자기나 좀 보고 올까?
도자기를 어찌 굽는지, 어디서 흙을 파다가 굽는지, 도자기 평가는 뭘로다 하는 건지,
나야 뭐 아는 게 있나, 그저 형태의 아름다움이나 보는 정돈데,
그래도 일단 인사는 터보기로.
그런데 내가 참 깝깝하고 싫어하는 것은 진열장 안을 딜다봐야 한다는 것이야.
미술관 가서 그림 볼 때, 날로 보는 것과 유리액자에 넣고 보는 걸 생각해봐바.
난 그 점이 아주 못마땅한데.....
허면, 언제 동학사 도예공방에라도 가서 하나 사와 봐바바?
P.S
저 사진의 도자기는 재일교포 이병창이라는 분이 일본 오사카 도자기 박불관에 기증한 컬렉션 중의 하나입니다.
아래는 <막사발이야기> & <이병창 컬렉션>이라는 포스팅에다 제가 댓글로 남겼던 글입니다.
짧지 않은 글이라서 그대로 묻혀버리기엔 아까운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다시 옮겨 보죠.
- 알래스카 Ⅱ
- 2012.10.30 15:37
1.
일본사람들의 美에 대한 관심이나 감각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답게 축소지향적으로 특히 발달한 것 같습니다.
정원이나 분재를 보면 그렇습니다. 일본정원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합니다.
정원이나 분재는 자연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놓고 소유의 개념을 얹어서 보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너무나 사랑해서 그런다고도 하겠지만, 결국은 제 소유로 해놓고 주인 행세하며
자연을 쥐락펴락 해보겠다는 심산으로 보입니다.
도자기에도 어떤 면에선 마찬가지의 생각이 깃들어 있지 않을까요?
문양도 구름이니, 국화니, 소나무 대나무니, 물고기, 학,, 뭐 그런거잖아요.
역시 자연을 끌어들이는 거거든요.
한국에도 물론 정원도 있고 분재도 있고 도자기도 있습니다만,
분재는 모르겠으되 정원이나 건축이나 도자기는 잘 보면 확연한 차이가 납니다.
최순우 선생님이 말씀하신 '한국의 담장'을 참조하시면 이해가 쉽고 간단할텐데요,,
한국의 담장은 또렷하게 금을 긋는 의미가 아니예요.
자연이 슬그머니 담장을 넘어오고, 내 안뜰은 지그시 밖을 향해 구애한다고나 할까?
그 경계가 모호해서, 담이되 담이 아닌, 색즉시공 공즉시색,,
밖과 안이 마치 남녀가 짝사랑하는 듯이도 보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그렇지가 않아요.
말로는 다도(茶道)니 기도(棋道)니 서도(書道)니 하지만,
"명확하게" 사람과 대상이 금 그어져서 구분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체과 객체가 확실하게 나뉘어져 있단 말이죠.
사람이 차를 마시는 생각만 하지 차(茶)의 입장이란 것은 아예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굉장이 멋을 알고, 풍류를 즐기고, 철학적 사유가 깊은 듯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예요.
위에서 들었던 예처럼, 담장 밖은 '자연'이라 하고, 담장 안은 '인간'이라고 칩시다.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측면만 있는 겁니다.
자연이 인간을 바라본다는시각은 존재하질 않아요.
인간이 정원을 바라보고 분재를 쳐다보는 것이지, 정원과 분재의 돌과 나무와 화초의 입장에서가 아니죠.
그러니까 유식한 척 말하자면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림을 봐도 그렇고, 건축을 봐도 그렇고, 저 막사발 같은 도자기를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건축 회화 공예, 무어든 간에 자연과 일체가 되는 걸 최고의 미학적 경지로 쳐주었습니다.
즉 우리네 미감은 자연과 가장 조화로워야 된다, 이겁니다.
일본사람들이 미학에 대해서 참 잘 알기도 하고, 표현도 멋드러지게 잘 합니다만,
제가 보기엔 말 그대로 아는 것일 뿐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이미 미학'속에 일체가 되어 있어요. 우리가 그걸 못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내 스스로가 이미 미학 덩어리인데,
굳이 내 몸을 분리해서 타자로 만들어서 바라볼 이유가 무에 있습니까?
저는 바로 이 점을 일본사람과 우리나라 사람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미학에 대한 필기시험은 일본 사람이 문제도 잘 내고 풀기도 잘 풀겠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이미 정답을 품고 있으니, 시험을 볼 필요조차도 없다는 뜻입니다.
전에「야나기 무네요시」의 글을 몇 편 읽어봤습니다.
매우 뛰어난 미학 감식가입니다. 존경할만큼 훌륭한 지성인이고요.
우리 한국인 입장이라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괜찮은 사람입니다. 그의 주장 하나 하나 다 귀담아들을 만해요.
굳이 꼬투리 잡고 싶은 생각이 저는 정말로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앞에서 얘기했듯이 그도 마찬가지로 일본사람입니다. 일본인의 품성이 있겠죠.
관찰자와 대상물, 인간과 자연의 경계가 또렷이 구분되어 있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주제 넘는 것일 수도 있는데,
그는 '한국의 물건'을 보는 눈은 탁월했지만 '한국사람의 미감'은 제대로 못 본 것 같습니다.
일본수집가들이 '귀한 도자기를 개밥그릇으로 주는 무지몽매한 조선인'이라고 했다지요?
조선사람들은 미학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관심도 없더라'는 식으로 야나기도 말을 하긴 하더군요.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민예품에 대해서 그렇게 섬세한 감식안을 가진 사람이 왜 조선사람, 조선사람들의 삶은 보지 못했을까요?
왜 조선인의 불결한 삶만 눈에 띄었냐 이겁니다.
삶 자체도 큰 미학의 범주로 볼 수 있잖아요.
물건이 그렇게 아름다우면 그런 물건을 쓰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미감을 가졌길래?
이거, 당연히 떠올라야 되는 질문 아닌가요?
이런 걸 보면 야나기 무네요시도 굉장히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미학자라고 할밖에요.
인격이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라는게 아니라 그런 오류를 태생적으로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인이라는.
거시적으로 볼 줄 모르고 미시적으로만 볼 줄 아는 축소지향의 일본인!
그러면 왜 한국사람은 뭔 근거로 미학덩어리라고 장담하냐?
느낌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데, 이유는 땅 같습니다.
한국의 땅이 사람을 그렇게 키워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외국 여행을 하고 인천공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시간여 집에 오면서 항상 느끼는 게 있어요.
"정말 한국 땅이 최고로구나.", "신토불이다 신토불이야!"
묘하게도 우리는 자연과 인간이 어깨동무하고 있는 형국으로 느껴집니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어울어 있어야 그 모양이 완성돼요. 사람이 함께 있어야만 경치가 더 아름다워요.
사진 찍어봐도 그렇습니다. 사람을 넣지 않고 찍으면 별루예요.
자연을 배제한 인간을 상상할 수 없듯이 인간이 없는 자연도 생각할 수 없단 겁니다. 우리는.
그런데 외국에 나가서 보면 그런 느낌이 안 듭니다.
인간과 자연이 따로 느껴져요. 정복와 피정복, 주체와 객체, 나와 주변환경......
유럽선진국들, 자연환경에 대해서 얼마나 신경 씁니까?
그런데 남을 보살핀다는 것 하고, 내 육친을 더불어 함께 짊어지고 간다는 것은 다르잖습니까?
다시 말해서 한국은 사람과 자연이 마치 혈육 관계 같다는 말입니다.
달력 같은 스위스 경치, 거기선 인간미가 안느껴져요. 이름다운 자연만 있을 뿐입니다.
2.
장개석이 대만으로 도망가면서 중요 문화재를 전부 싸들고 갔잖습니까.
미처 배를 싣기 전에 모택동에게 보고가 됐던 모양입니다.
"장개석이가 거시기 싹 쓸어서 튄다는디요? 지금이라도 쫒아가서 잡을깝쇼?"
"냅둬라. 거기로 간다고 해서 중국문화재가 중국 것이 아니되겠느냐?.
장씨도 다 같은 우리 중국인인데 외국에다 팔아먹기야 하겠냐? 알아서 잘 보관할끼다! ... 신경 끄자!"
만일, 6.25 때 북한군이 후퇴하면서 우리 문화재를 다 훔쳐 간다고 할 때,
이승만이가 모택동처럼 말을 했다면 지금 뭐라고들 할까요?
왜정 때의 일본사람들도 크게 다를 거야 없지요. 어찌 되었든 합방된 관계였으니까요.
강탈을 해갔건, 돈을 주고 가져갔건, 민간이 수집을 해갔건.
솔직히 독립 이후를 생각한 사람이 얼마나 됐습니까.
"얼마나 우리 것이 좋으면 그렇게 가져갔겠노? 그냥 가질라면 가지라 캐라.
갸들이 우리보다 아는 것도 많고, 잘 사니께 관리도 잘 할끼다. 세계에 우리 문화를 알릴 기회도 되고..."
반면에 이렇게 말할 수도 있죠.
"너는 니 새끼를 누가 잘 키워주기만 한다믄 아무한테나 막 줄끼가?"
이병창씨 얘기는 재일교포들을 배려했다는 특수한 상황이기도 한데,
그보다도 보는 시각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
프랑스나 영국이나 미국 등, 강대국의 유명 박물관들이 보여주듯이 깡패스러운 면을 생각하면
민감해져서 민족주의 국수주의가 고개를 쳐들게 됩니다.
그러나 크게 인류사적으로 보면 그건 미시적인 관점이랄 수도 있어요.
사실 그들로 인해서 보관이 잘 된 바도 부정할 수가 없거든요.
중동 아프간지역에서 보듯이 불상 파괴하고 유물 약탈 된 걸 보세요.
이라크 전쟁 때 미국과 영국이 훔쳐간 게 수십만 점이랍니다.
인도도 가보면 불교 유적은 이슬람에 의해서 다 파괴되었습니다.
제일 좋은 방법이야 교류하면 되는 겁니다.
언제고 당사국에서 전시를 원한다면 최소한의 경비만 지불하고 빌려주는 관계 말이죠.
물론 보관을 어디에 하느냐는 중요합니다. 당장 내 땅에 없으면 내 맘대로 못 보잖아요.
민족 자존심이라거나, 교육자료, 관광자원, 등등 생각하면 걸림돌이야 많죠.
아무튼 이병창씨 건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겠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도 있고, 서운해할 수도 있는, 양시론적 입장입니다. 양비론이 아닙니다.
기증자 의도처럼 교포들에게 위안도 되고, 외국에 광고도 된다면..... 이해도 돼요.
그러나 서운한 맘이야 왜 안들겠습니까?
전부가 국보급이라는데요.
이병창씨도 여러모로 고민 고민했을 겁니다. 외국에 맡길 때야 이만저만 생각했겠습니까?
그 당시의 우리 박물관이나 문화 수준의 부족한 점도 고려를 했겠지요.
저는 그 분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싶네요.
저는 민족주의 국가주의와 사해동포주의의 중간쯤 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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