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 9. 18:13ㆍ발칸반도/스페인 · 모로코
무어인을 이베리아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고나서, 1471년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의 페르난도 왕이 설립한
종교재판소는 1781년까지 310년 동안 해마다 평균 100명을 불태워 죽이고, 900명을 투옥했다. 이 3세기 동안 통틀
어 3만 2천명이 화형에 처해졌고, 1만7천명이 교수형을 당했으며,29만 1천명이 투옥되었다. 페르난도-이사벨 시절에
1,200만명이었던 에스파냐 인구가 18세기 카를로스3세 시대에는 그 절반인 600만명 이하로 감소해 있었다.
- 홋타 요시에, 『고야 1』-
에스파냐인들은 15세기에 남진하여 이슬람 왕조를 지중해로 몰아내고 에스파니아 전역을 단번에 식민지화하는 동시에
그 여세를 몰아 콜럼버스와 함께 신대륙을 식민지화 하러 나갔다. 해외로 나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고 돌아온 것은 금은
보화 뿐이었는데, 이 신대륙에서 건너온 금은보화는 제국의 영광을 유지하고 신성한카톨릭 유럽을 지키기 위하여 물쓰듯
사용되었다.
이렇게 낭비를 일삼은데다 산업은 쇠퇴하고 금은보화만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에 에스파냐는 치명적인 인플레이션을 경험
한 최초의 나라가 되었다. 황금시대는 곧 쇠퇴기의 시작이 된 셈이었다
요컨대 아르헨티나에서 오는 금, 멕시코에서 오는 은과 구리는 에스파냐를 그대로 지나쳐 영국이나 프랑스 네덜란드로
가버렸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것은 궁정이나 교회, 은행의 장식 정도였다. 그러다가 식민지들이 독립해 버리면
에스파냐는 알거지가 된다.
외국 같으면 이런 중대한 정치 경제적 파탄은 민중혁명을 초래했지만, 그것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그 금은보화가 그들의
머리 위를 언제나 그냥 지나갔기 때문이고, 그들의 생활은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불과 3세기 사이에 신의 영광으로 더한층 황폐화해진 상태에서 차가운 금은보화만 끌어안고 있었던 이상한 민족이 에스
파냐인 말고 또 있을까?
- 홋타 요시에, 『고야 1』-
스페인 와서 처음 제대로 된 나무를 본듯합니다.
인공조림이지만 말입니다.
사진을 이렇게 찍어서 그렇지 큰 숲은 아니예요.
대충 100마지기쯤 되어 보입니다.
저 너머가「산타페」랍니다.
'산타페'라는 지명은 멕시코나 아르헨티나가 더 유명하죠.
스페인의 지명은 남미나 미국에서 거의 그대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군요.
그러니까 그것들 전부, 원조는 스페인이란 겁니다.
코르도바에서 그라나다로 넘어오니까 환경이 바뀌긴 바뀌네요.
산악지형에다 만년설까지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멀리서 보아서는 별로 높아보이지는 않았는데,
이 무더운 여름 날씨에 눈이 남아 있다니요?
스페인은 전역이 햇빛이 무지하게 강한 곳입니다.
그라나다는 인구 30 여만의 안달루시아 중심도시이자 최후의 이슬람 왕국 수도이며 스페인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장소다.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산들인 남부의 베티카산맥과 네바다산맥 알푸하라 사이에 있으며, 네바다 산맥 아래로 사크로몬테와 알바이신 언덕, 헤닐강과 다로강으로 둘러싸인 최적의 위치조건을 갖고 있다. 산맥 쪽에는 알파인기후, 헤닐강변에는 지중해성기후, 내륙은 대륙성 기후, 그리고 해변가는 준열대기후로 다양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그라나다의 화려함은 711년부터 시작된 이슬람교도들의 정착에서 비롯되었고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시대가 끝날 무렵 그라나다는 또 다른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칼리프제국의 분열, 코르도바와 세비아의 멸망 후 나자르 왕조가 13세기에서 15세기까지 정착하여 그라나다를 번성케 하였다, 이슬람 시대는 1492년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에 의해서 마감되었다. 스페인 오앙국에 흡수된 후 이슬람과 기독교의 공존, 그리고 르네상스 문화의 영향으로 오늘날의 그라나다가 탄생하였다.
"드디어 알함브라에 도착했습니다."
스페인에 와서 이렇게 숲이 우거진 곳은 처음 봅니다.
딴세상 온 거 같아요.
알함브라는 크게 네 곳으로 나뉜다. 알카사바 요새와 이슬람 궁전(구궁전)과 카를로스 5세 궁전(신궁전), 헤네랄리페 정원으로.
이슬람 궁전은 다시 멕수아르(정의를 집행하는 공간)과 코마레스 궁(왕궁)로 나뉘며, 코마레스 궁은 또 다시 사자의 정원과 접견
실인 대사의 방, 목욕탕 등으로 구분된다.
스페인도 유명 관광지엘 가면 현지 로컬 가이드가 반드시 나옵니다.
의무적이랍니다.
만나서 인사 나누는 폼새가 우리 가이드랑 유대가 돈독하더군요.
세계적인 추세가 그런가 봅니다.
어느 나라나 고용확대책의 일환이겠죠.
몇 년 전에 '프라하'를 가보니까, 시계탑 아래서였는데,
가이드가 아닌 사람이 단체관광객을 안내를 했다간 당장 감시원에게 잡혀간다더군요.
인솔자가 입을 가리고서 몰래 보충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모로코 같은 경우는 현지가이드는 물론 스루가이드까지 있었습니다.
스루 가이드를 고용하지 않으면 교통경찰이 괜히 잡는답니다.
그러면 버스기사가 돈을 좀 뜯겨야되는 모양입니다. 우리나라 70~80년대처럼요.
현지가이드가 특별히 안내를 한다거나 멘트하는 하는 일도 없습니다.
입장만 시켜주고 뒤따라오기만 합니다.
대신 입장할 때는 단체관광객이 먼저 들어가죠.
매표원과 잘 알고 지내는 사이 같습니다.
그들도 회사에서도 월급을 받는다는데,
우리 여행사에서도 팁으로 10유로 정도 준다더군요.
볼 품 없는 맨 중년 아줌마들이 나오는데,
여기선 웬일로 빠리빠리한 선머스마 같은 아가씨가 나왔네요.
카를로스 5세 궁전(신궁전)
카를로스 5세 궁전은 1526년 뻬드로 마추카가 설계했다. 알함브라 중심에 세워진 이 궁전은 카를로스 5세의 명령에 의한
대형공사였다. 그라나다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단서이며 현대 그라나다의 상징이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의 스페인 최고
건축물 중 하나이다.
마추카는 정사각형 건물로 설계하였으며 내부엔 원형 공간이 들어섰다. 원형 공간의 측면으로는 거대한 방들이 있으며 북동
쪽에는 지하묘소와 미사실이 있다. 단순하게 축조된 이 건물은 2층으로 설계되어 객실 입구에는 거대한 원형 천정을 두었다.
알카사바 요새
병사들 숙영지 터이고요,
요 우물처럼 생긴 건 영창이라네요.
모자에 매단 것은 마이크입니다.
잘들립니다. 이어폰 중에는 더러 밧데리 나간 것도 있더군요.
그러면 로컬 가이드가 바로 바꿔오죠.
알함브라궁전 맞은편 언덕에 위치한 알바이신 지역에는 이슬람 지배 당시의그라나다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알함브라궁전과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주택들과 이슬람 풍의 장식과 정원, 높은 벽들이 보인다.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꾸불꾸불한 길도 그대로이다. 알바이신은 이슬람교도들이 그라나다에 왕국을 세우면서 제일 먼저 성채를 건설했던 곳이며, 1492년 그라나다 함락 때 거센 항쟁을 펼쳤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
눈이 보이는 저 산이 시에라 네바다 산맥입니다.
전망을 보기에는 이곳이 가장 좋습니다.
'살리다' - 나가는 곳. 비상구.
p.s
개 데리고 가는 걸 보면 주인이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죠.
Ballade Pour Adeline
옛날에 대학때 음악다방엘 가면
이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와 ‘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세트로 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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