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기의 美術'觀'

2012. 3. 15. 15:54미술/한국화 현대그림

 

 

 

그는 생명 없는 미술을 죽은 미술이라 규정했다.

진정한 미술이란 삶의 총체성을 인정하고 삶과 삶을 소통시킬 때만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살아있는 생명의 의미를 반영하지 못하는 미술은 아무리 그것이 완벽한 것이라도,

그것은 단순한 돌이나 물감이나 나무의 집합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예술은 직관이며 만들어진 이념일 수 없다.

직관이란 현실과 비현실의 만남으로 사상이나 도덕 이전의 상태,

즉 원시적이거나 근본적인 데 더 비중을 두고 있다고 밝힌다.

같은 맥락에서 그의 작품이 단순히 의미론적 방법으로만 해석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이는 규격에 가두어진 예술을 거부한다는 뜻으로서,

“회화는 자신의 신경조직이 캔버스 위에 투사되는 패턴이다.

회화는 대상의 도해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는 예술의 척도는 진실함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모든 미술의 논쟁은 진실함이 유일한 답이 될 것이며, 그 진실에 도달하는 길은 작가 자신에게 충실하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메시지의 유무, 추상이냐 구상이냐의 형식 문제 등도 작가 자신이 충실한 삶을 살고,

그 삶을 충실히 작품화한다면 별다른 문제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자신을 위해, 즐겁기 때문에 그리는 것이며,

상대방의 공감이 있다면 더욱 좋은 것이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감격 없이는 결코 그림은 시작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점에서 개성을 매우 중시했고, 외국 화풍의 권위나 교육을 앞세우는 예속주의를 역겨워했다.

심지어 외국 잡지나 뒤지며 모방하는 것을 도둑이라고 비난할 정도였다.

본질적으로 그림이란 배워서 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림이란 의도적이 되면 神氣를 느낄 수 없고,

우연에만 의존하면 허전해진다고 생각해 두 가지 태도가 서로 조화롭기를 바랐다.

 

예술가로서 그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훗날 모든 이들이 자기 그림 앞에 모자를 벗고 고개 숙이리라는 확신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그것은 오만이 아닌 참 자존심의 발로로서, 결코 부끄럽지 않은 사람만이 할수 있는 말이다.

 

그의 예술이 자신의 생명에 충실한 것이라도 결코 역사나 주변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예술이 시대적 환경과 변화에 무관심하며 과거의 경험에만 의존한다면

그 예술은 곧 쓸모없는 것이 되리라고 믿었다.

진정한 예술가는 항상 이미 정설이 되어있는 일체의 편견을 뒤집고,

자기 생각을 과감하게 표현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현실참여나 역사의식의 문제에 대해서도 그의 태도는 유리처럼 명쾌하다.

“역사의식이 우선이냐. 미의식이 우선이냐.

한 시대를 사는 인간으로서 충실한 작가가 자기 자신의 마음에 찰 작품을 진지하고 정직하게 제작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역사와 분리되고 미와 분리되겠는가.”

 

손상기의 삶과 예술은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가 원하는 것을 하라”고 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손상기는 그렇게 살다 간 사람이다.

 

 

 

(책에서 베낀 건데, 제목이 뭐였더라?)

 

 

 

 

 

 

화가 손상기 [孫詳基, 1949~1988]

 

 

 

 


1949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난 손상기(사진) 작가는 세 살 때 구루병(척추가 굽어지는 병)을 앓은 데다 초등학교 때 나무에서 떨어져 평생을 척추장애와 함께 살았다. 그는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고 원광대 회화과에서 그림을 배웠다. 고향 여수의 바다와 어시장을 소재로 작업하다 79년 상경한 뒤 아현동 홍등가와 도심 변두리 삶을 ‘공작도시’ 연작으로 표현했다.
81년 서울 동덕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그는 이듬해 ‘공작도시-신음하는 도심’이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한국미술대전 입선을 차지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주류 화단과 타협하지 않으며 묵묵히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추구하던 그는 김기창 등 원로작가들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았다. 83년에는 미술평론가들이 선정한 ‘문제작가’에 오르기도 했다.
병원을 오가며 겪은 가난과 고독을 그림과 글로 승화시킨 그는 높고 가파른 축대와 계단,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 사이에 드리워진 긴 그림자 등으로 서울 달동네를 묘사했다. 장애물이 많은 서울 전체가 생활하기에 벅찼던 작가는 “이런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다”고 적었다. 병마와 싸우며 외로움에 시달리던 그는 울혈성 심부전증으로 88년 서른아홉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손상기 <가족> 1984.

 

 

 

 

 

아빠와 딸

 

 

 

 

  손상기 <자라지 않는 나무> 1985

 

 

 

 

  손상기 <잘린 산> 1986

 

 

 

 

  손상기 <공작도시 - 겨울하늘>

 

 

 

 

 

 

 

 

  손상기 <나의 어머니> 1986

 

 

 

 

 

 

 

 

 

 

 

 

 

 

 

 

 

 

 

 

 

 

 

 

 

 

 

 

 

 

 

 

 

 

 

 

 

 

 

 

 

 

 

 

시들지않는 꽃

 

 

 

 

 

 

  

  

 

 영원한 퇴원

 

 

  

 

 장날

 

 

  

 

 도시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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