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30. 16:35ㆍ詩.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정호승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
밤눈
기형도
네 속을 열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은실들이 엉켜 울고 있어.
땅에는 얼음 속에서 썩은 가지들이 실눈을 뜨고 엎드려 있었어.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한 점씩 하늘 낮게 박으면서
너는 무슨 색깔로 또 다른 사랑을 꿈꾸었을까.
아무도 너의 영혼에 옷을 입히지 않던 사납고 고요한 밤
얼어붙은 대지에는 무엇이 남아 너의 춤을 자꾸만 허공으로 띄우고 있었을까.
하늘에는 온통 네가 지난 자리마다 바람이 불고 있다.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찬 세상
그 끝에 첫발을 디디고 죽음도 다가서지 못하는 온도로
또 다른 하늘을 너는 돌고 있어. 네 속을 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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