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관료 / 김남주

2012. 7. 4. 15:43詩.

 

 

 

어떤 관료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이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대부분의 관료들과 마찬가지로 아이히만은 승진을 꿈꾸었던 평범한 독일인이었습니다.

그가 승진할 속셈으로 사악한 음모를 꾸미거나 이상한 행동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관료사회에 주어진 규칙을 어긴 일이 없는 평범한 인물이었습니다.

아이히만이 독일의 관료 사회 내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근면성과 성실성이었습니다.

최고 통치권자인 히틀러가 유대인 학살을 명령했을때, 그 명령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든 관계없이

최선을 다해 그 명령을 집행해야 한다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아렌트가 생각하기에 사유란, '타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무사유란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지요.

히틀러에게 받은 명령서에 서명하면서 아이히만은 그 명령을 수행했을 때 자신의 서명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어떤 효과가 미치는지 '사유'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아이히만은 반드시 사유해야만 했을 것을 '사유'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모든 일들이 너무나 전문화되고 분업화되어 있어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도대체 어떤 일인지,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거의 반성할 틈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이히만이 저지른 악, 즉 무사유로 인해서 발생한 악은 도처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누구나 제2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들은 이제 전체주의의 기원을 확인하셨나요?

 

 

 

- 강신주,『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종환, '가구' '접시꽃 당신'  (0) 2012.07.04
「그 깃발, 서럽게 펄럭이는」  (0) 2012.07.04
정일근  (0) 2012.04.01
정호승,「첫눈 오는 날 만나자」外  (0) 2012.01.30
이정록,「참 빨랐지 그 양반」外  (0) 2012.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