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일승법계도
(華嚴一乘法界圖)
화엄일승법계도는 신라의 고승 의상(義湘, 625∼702)스님이 광대무변한 화엄사상의 요지를
2백10자의 게송으로 압축한 도인圖印이다. 이는 54각이 있는 도인에 합쳐서 만든 것으로
‘가지가지의 꽃으로 장엄한 일승(一乘)의 진리로운 세계의 모습'이라는 뜻이며
삼국유사에는 <法界圖書印> <화엄일승법계도> <화엄법계도> <일승법계도> <법성도> <해인도> 등으로
기록되고 있다.
법계도는 54각의 네모꼴 도인에 합쳐서 만든 印章으로
의상스님 자신이 스스로 깨달은 자내증(自內證)의 경지를 표현한 것이다.
완전히 부처님의 뜻에 계합하는 것이기에 불후의 명저이기도 하다.
의상대사는 인(印)이란 형식의 법계도를 짓게 된 까닭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그물과 같은 교법이 포괄하는 삼종세간(三種世間)을 해인삼매를 쫓아 드러내,
이름에만 집착하는 무지한 중생들로 하여금 이름마저 없는 참된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다"
삼종 세간이란 물질의 세계(器世間), 인간들의 세계(衆生世間), 지혜의 세계(智正覺世界)를 말한다.
흰 종이에 붉은 도인의 줄과 검은 글자를 써서 만든 법계도의 백지는 기 세간,
검은 글자는 중생 세간, 붉은 줄은 지정각 세간을 나타낸 것이다.
3종 세간이 별개의 것이 아니면서도 따로 이해해야 함을 표현했다.
의상스님은 자리· 이타 · 수행 · 방편 · 공덕 등으로 구분하여 풀이하고 있다.
지극히 과학적이고 조직적인 법계도의 게송은 중앙에서 법法 자로 시작해서 다시 불佛 자로 맺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불교 의식이 집행될 때 법계도를 그리고 법성게를 독송하면서 의식을 집행하므로
불자들에게 친숙해 있다.
의상스님은 이 <법계도>를 그 제자들에게 인가의 표시로 주기를 좋아했다 한다.
이러한 도(圖) 자체가 극히 독창적이요 한국적 사고방식의 특성을 이룬다고 볼 수 있는데
상징을 통하여 깊은 뜻을 간추리고 짧게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전통을 보여주고 있다.
<법계도>의 근본 정신은 바로 <화엄경>의 근본 정신이기도 하다.
화엄일승법계도
華嚴一乘法界圖
법성원융무이상
法性圓融無二相
법[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성품은 원융하여 두 모습[주관과 객관]이 없으며
제법부동본래적
諸法不動本來寂
모든 법은 움직임이 없이 본래 고요하다. (모든 법은 분주함이 없이 본래대로 뚜렷하다)
무명무상절일체
無名無相絶一切
이름, 모양 할 것 없이 모든 것 다 끊어졌으니
증지소지비여경
證智所知非餘境
지혜를 증득해야 알 바요, 그 외의 경지가 아니다.
진성심심극미묘
眞性甚深極微妙
참된 성품은 매우 깊고 지극히 미묘해서
불수자성수연성
不守自性隨緣成
자신의 성품만을 고수(固守)하지 아니하고 연[조건]을 따라 이루어가니
일중일체다중일
一中一切多中一
하나 속에 모든 것이요, 많은 것 속에 하나다.
일즉일체다즉일
一卽一切多卽一
하나가 곧 모든 것이요, 많은 것이 곧 하나이다.
일미진중함시방
一微塵中含十方
한 티끌 속에 시방세계가 머금어져 있고
일체진중역여시
一切塵中亦如是
모든 티끌 속이 또한 이와 같다.
무량원겁즉일념
無量遠劫卽一念
헤아릴 수 없이 먼 시간이 곧 한 생각이요
일념즉시무량겁
一念卽是無量劫
한 생각이 곧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다.
구세십세호상즉
九世十世互相卽
구세[유한한 시간]와 십세[무한한 시간]가 서로서로 뒤엉켜 나아가나
잉불잡란격별성
仍不雜亂隔別成
(그 속에서) 어지러이 섞이지 아니 하고 떨어져 달리 이루어져 있구나.
초발심시변정각
初發心時便正覺
처음 마음을 내었을 때가 바로 바른 깨달음일지니 (바른 깨달음을 이룰 가능성이 큰 때이니)
생사열반상공화
生死涅槃常共和
생사와 열반은 항상 함께 어울려 있다.
이사명연무분별
理事冥然無分別
이[본체계]와 사[현상계]가 그윽하여 분별을 둘 수 없으니
십불보현대인경
十佛普賢大人境
(이는) 갖가지 이름의 부처님과 보현보살, 대인의 경계구나.
능인해인삼매중
能人海印三昧中
부처님이 해인삼매 속에서
번출여의부사의
繁出如意不思議
여여(如如)한 뜻을 무수히 쏟아내시니, 불가사의 하구나.
우보익생만허공
雨寶益生滿虛空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보배로운 비가 허공에 가득 차 있는데
중생수기득이익
衆生隨器得利益
중생들은 (자기의 정신적) 그릇(마음) 크기만큼만 이익을 얻는구나.
시고행자환본제
是故行者還本際
이러한 까닭에 수행자는 본마음(근본자리)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파식망상필부득
叵息妄想必不得
망상을 쉬지 않으면 반드시 얻을 수 없다.
무연선교착여의
無緣善巧捉如意
(불보살님들이 베풀어 놓은) 조건 없는 훌륭한 방편으로 (그 분들의) 여여한 뜻을 잡으니
귀가수분득자량
歸家隨分得資糧
(중생들은 제 각각 자기) 분상에 따라서 집[本際;본마음]으로 돌아 갈 노자(路資)와 양식(糧食)을 얻는다.
이다라니무진보
以陀羅尼無盡寶
다함이 없는[한량이 없는] 다라니(부처님의 가르침, 불법) 보배로써
장엄법계실보전
莊嚴法界實寶殿
법계(法界)를 장엄하시니 참으로 보배로운 궁전이라 하겠구나.
궁좌실제중도상
窮坐實際中道床
마침내 실제[本際;본마음]인 중도(中道)의 자리에 앉으시어
구래부동명위불
舊來不動名爲佛
예로부터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아[진리의 자리에서 변치 않고 있으니] 이름을 부처라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