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5. 09:47ㆍ책 · 펌글 · 자료/종교
오늘부터 읽을 책입니다.
저자 김삼웅이란 분은 인물평전을 쓰시는 분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쓰시는 걸 봤는데,
지금은 다 끝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2006')
저자 '김삼웅'은 |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이다.<민주전선>등 진보매체에서 활동했으며,<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 주필로 있으면서 동호지필(董狐之筆)의 소임을 다하고자 했다. 제7대 독립기념관장을 지냈으며,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제주4·3사건희생자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이사,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자문위원,<친일인명사전>편찬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친일정치 100년사> <곡필로 본 해방 50년> <한국필화사> <한국현대사 바로잡기> <을사늑약 1905년, 그 끝나지 않는 백년> <통일론수난사> <일제는 조선을 얼마나 망쳤나> <종교, 근대의 길을 묻다> <서대문형무소 근현대사> <단재 신채호 평전> <백범 김구 평전> <심산 김창숙 평전> <녹두 전봉준 평전> <안중근 평전> <약산 김원봉 평전> <장준하 평전> <죽산 조봉암 평전> <만해 한용운 평전> <김대중 평전> <리영희 평전> <김상덕 평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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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를 가져오려고 검색을 하다보니, 고은 시인도 만해 평전을 쓰셨더군요.
그런데 평전보다도 평전에 대한 비판글이 먼저 뜨더군요.
읽어보니까 대충 어떤 내용으로 썼다는 것을 알겠는데, 너무 의외네요.
전에 미당 서정주의 평가에 대해서도, 고은 시인의 평론이 도마에 오른 적도 있었습니다.
제 블로그에 옮겨적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도 고은 시인이 기회주의적이고 배은망덕하다는 얘기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고은 시인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만, 그냥 선입견이 안좋습니다.
기회주의자라는 말에 동의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래에 고은 시인에 대한 비판글을 소개합니다.
고은 저
1.
시인 고은 씨 '한용운 평전' 파문
작성자 윤미영
“(만해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은 어떤 의미에서 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설명문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설명문조차 모든 암시의 힘을 믿지 않는 사설체의 요설로 넘쳐 흐르고 있다.”
제1회 만해시문학상을 받고 만해축전대회장을 맡아온 시인 고은씨가 최근 재출간한 ‘한용운 평전’(향연)에서
“님의 침묵은 요설”이며, 만해의 신체시 ‘심(心)’은 ‘비속한 해설’이나 ‘붓장난’, 혹은 ‘승려들이 걸핏하면 지껄이는 정도의
사어(死語)’라고 단정한 사실이 불교계에 전해지면서 파문이 커질 태세다.
계간 ‘불교평론’은 2004년 봄호에 게재한 ‘고은의 만해론을 비판한다’란 제목의 논단에서
고은이 평전이란 이름 아래 “만해는 열등감의 소유자이며 순수하지 못한 승려였다”며 만해를 철저히 짓밟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은의 ‘한용운 평전’은 1975년 만해의 입적 60주기를 맞아 썼던 것을 2000년 고려원에서 재출간한 뒤, 지난 2월 다시 펴낸 것.
출판사측은 “‘한용운 평전’은 한국사의 가장 암울했던 한 시기를 온몸으로 살아나간 한용운의 파란만장한 삶과 그의 정신세계,
그리고 그의 진정한 의미를 꼼꼼히 되짚어보고 있다”며 “한용운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장 실체에 가깝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고은의 눈에 비쳐지는 만해는 소영웅주의자로, 시종일관 편협하고 이기주의적이며
최남선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일 뿐이다.
만해가 불문(佛門)에 든 직후 시베리아와 만주를 주유한 것은 ‘허영’에 불과하며,
만해의 대표작 중 하나인 ‘조선불교유신론’도 현실 인식이 부족한 치기 어린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만해가 온힘을 기울였던 ‘유심’에 대해서는 “공허한 배설물인 논설과 수필”이라고 최악의 평가를 내리고 있으며,
독립선언서에 추가한 ‘공약삼장’은 최남선에 대한 시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해의) 이런 유학과 모험의 실패가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천재 최남선에 대한 원한이 엉겨진 것이다.
그래서 한용운은 독립선언서도 그 자신이 쓰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최린의 권유로 그 운동의 대표자들이 공인하고 있는 서울의 중인계층 최남선에게 돌아간 것이다.
한용운은 그 때문에 공약삼장이라도 추가해야 했던 것이다.
… (만해의) 소설 ‘죽음’, 그리고 시집 ‘님의 침묵’은 (최남선이) 신문학의 원조라는 관념에 대한 한용운의 치열한 질투심
(소산)이었던 것이다.”(289~300쪽)
“한용운은 최남선의 (기미 독립)선언서 원안을 싫어했다. 그것은 명백한 시기심 때문이었다.”(249쪽)
이에 따라 ‘불교평론’의 논단을 집필한 이재형(법보신문 편집국 차장)씨는 책이 평전이라는 이름만 붙였을 뿐,
기존의 연구 성과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인용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비범한 타심통’을 선보이며 만해에 대한 지독한 폄하를 시도한다”고 주장한다.
이 평전에서 만해는 승려도 아닐 뿐 아니라, “사랑을 가진 일이 없”이, “대중을 이용했으며,
그런 대중을 극단적으로 모멸”하는 정치선동가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형씨는 “지난 2001년 미당 서정주가 타계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고은씨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미당의 친일문제를 끄집어내어 신랄하게 비판했다”며
이는 “만해를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을 높이려는 의도로,
고은씨의 만해는 객관화된 만해가 아니라 만해라는 인물을 통해 투영되고 있는 철저한 고은씨의 모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전문이 아니고 발췌했습니다.)
2.
평전 아닌 ‘소설’ 전락 … 만해 아닌 고은의 자화상
작성자 : 이재형
그럼 고은 씨는 왜 이렇게 평전이라는 이름 아래 만해를 철저히 짓밟고 있는 것일까?
아마 그것은 고은 씨의 만해에 대한 콤플렉스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만해의 삶은 고은 씨가 걸어온 삶과 비슷한 점이 있다.
고은 씨는 1951년 해인사로 입산해 약 11년간 출가자의 길을 걸었다.
또 50년대 불교 언론의 창립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서정주와 조지훈의 도움으로 문단에 등단하고,
이후 1970년 전태일의 죽음을 접하면서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다.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했지만 1983년 14세 연하 이상화(중앙대 교수) 씨와 결혼식을 올려 단란한 가정을 꾸리기도 한다.
90년대 이후 그의 작품들이 일본어, 독일어, 영어 등으로 번역되면서 호평을 받고
하버드대 등 세계 여러 나라와 대학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문학 강의를 하기도 했다.
특히 몇 년 전부터는 김지하 씨 등과 더불어 가능성 있는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어느 단계까지 고은 씨의 행적은 만해와 닮아 있다.
출가했었다는 점도 그렇고, 문학을 했다는 점도 그렇고,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에 주력했다는 것도 비슷하다.
거기에 때늦은 결혼도 유사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한 사람은 한 때의 고통이 문화권력을 쥐는 계기가,
한 사람은 일평생 고난의 세월을 걷다가 영양실조로 죽는다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아마 고은 씨에게 만해는 처음엔 동경의 대상이었으나 나중엔 극복의 대상이 됐던 것 같다.
또 70년대 치기어린 글이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2000년 ‘고려원’에서 펴낼 때나 이번 ‘향연’에 펴낼 때는
어느 정도 수정과 보완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재발간을 욕심내서는 안 됐다.
이는 어쩌면 일종의 치졸한 질투심의 발로로,
고은 씨가 자신의 작품이 30∼40대 만해가 썼던 작품에 못미친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2001년 미당 서정주가 타계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고은 씨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미당의 친일문제를 끄집어내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인 이남호 고려대 교수는 “욕설보다 더한 악담으로 미당을 터무니없이 폄하하며
자신을 세우려는 비열함을 보이고 있다.”(〈동아일보〉 2001년 5월 21일 19면)고 질책했다.
이러한 이남호의 질책은 《한용운 평전》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는 만해의 불교관, 인생관, 문학세계의 꼭대기에 있다는 듯한 태도로
초지일관 자신의 구미에 맞춰 만해를 난도질하고 있는 것이다.
즉 만해를 희생양 삼아 그의 사상과 문학세계를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을 높이려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그러나 고은 씨의 만해는 객관화된 만해가 아니라 만해라는 인물을 통해 투영되고 있는 철저한 고은 씨의 모습일 뿐이다.
고은 씨가 문학을 바라보는 수준, 민주화를 바라보는 수준, 불교계를 바라보는 수준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문열이 만약 ‘고은 평전’을 쓴다면?
고은 씨가 만해의 일대기를 썼던 ‘격자(格子)’로 고은 씨의 일생을 엮어보면 어떨까?
이것은 상상에서 그치지 않고 재미있는 상상일 뿐더러 이것이 실제 시도된 바 있다.
바로 ‘홍위병’ 발언으로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문열 씨에 의해서다.
지난 1994년 이문열 씨는 《아우와의 만남》(둥지출판사)이라는 중·단편 모음집을 펴냈다.
여기서 한동안 문제가 됐던 것이 바로 〈사로잡힌 악령〉이다.
고은 씨라고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그’라는 화자를 통해 이문열씨는 고은 씨를 연상케 하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그’는 유명한 스님(고은 씨의 경우 효봉 스님) 밑에 상좌로 들어가 명사(名士) 사냥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다진 후
신분의 혜택에 힘입어 문단으로 적을 옮긴다.
그 후 추악한 짓과 교묘하게 시대적인 흐름에 편승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욕구와 야망을 채운다.
색주가인 그는 민주화 운동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시대에 편승함으로써 언제부터인가 민중시인이자 저항시인으로
탈바꿈한다.
시국사건에의 연루, 투옥, 고문, 재판, 중형으로 이어지는 수난의 이미지는 대중적인 지명도를 전국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그가 편승한 대의는 지식인 사회에서까지 그 명성의 실질을 보장해 주었다고 말한다.
계속 이어지는 글에서 이문열 씨는 ‘그’는 어떤 일간지의 지면을 빌어 자서전을 연재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것은 고은 씨가 신문에 연재했던 〈나 고은〉을 빗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까닭에 〈사로잡힌 악령〉은 초판 이후 시비가 불거지면서 《아우와의 만남》에서 삭제된다.
이것을 안 고은 씨는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아마 크게 분노했을 것은 뻔하다.
고은 씨의 《한용운 평전》을 새삼 비판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다.
첫째는 만해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만해의 본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점이다.
만해에 관해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고은 씨의 글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가에 대해 확연히 알 수 있다.
그러나 ‘고은’이라는 명성에 힘입어 만해를 이해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은 만해를 형편없이 편협하고 이기주의자이며
열등감에 시달린 인물로 기억할 것이다.
즉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간 만해가 고은 씨로 인하여 많은 이들의 삶의 이정표가 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어이없게도 가장 큰 문학행사 중 하나인 만해축전의 대회장을 아직도 고은 씨가 맡고 있는 것이다.
알다시피 만해축전은 만해의 사상과 민족운동사, 문학세계를 알리고 이를 본받자는 취지에서 열리는 행사다.
그런데 어떻게 만해문학을 ‘허접 쓰레기’로 보는 고은 씨가 대회장을 맡을 수 있는 것일까.
그가 만해문학상과 만해대상을 받은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만해사상을 선양하겠다고 그를 대회장에 앉힌 주최측도 어이없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무튼 고은 씨는 단지 시인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그리고 행여 앞으로 신채호, 조지훈, 서정주 등에 대한 평전을 쓰지 않기 바란다.
고은 씨의 그 굴절된 눈으로는 오직 고은 씨만 있을 뿐 정작 그 사람들의 실상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더 부탁을 한다면 고은 씨가 부처님 일대기를 부디 쓰지 않기를 바라고 바랄 뿐이다.
만해를 쓰는 식으로 고은 씨가 필봉을 휘두른다면 불자들에게 그 이상의 비극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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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 동국대 인도철학과 졸업. 동 대학원 사학과 석사과정 수료. 현재 법보신문 편집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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